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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된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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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n stations that have become art

누구에게나 애틋한 기차역. 출발하는 설레임과 이별하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주인공 상우의 할머니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찾던 곳,『안나카레리나』의 주인공이 브론스키 대위와 사랑에 빠지는 곳, 그 모두 기차역이다. 도시를 채운 수많은 건물 중 기차역만큼 우리에게 가까운 존재 또한 없다. 사람의 첫인상이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듯 기차역이 이방인에게 주는 첫인상은 결국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기차역 건물은 그 자체로 그 도시의 규모와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었을 만큼 중요한 건물로 존재해왔고 많은 도시들이 화려하게 혹은 특색 있게 기차역을 짓는데 큰 공을 들였다. 현지인들의 생활과 문화,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나아가 건물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되어 도시를 밝히는 세계의 기차역 여섯 곳을 추려봤다.
● 기획·진행 조연미 기자

뉴욕 그랜드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 안내소 시계 사진: 권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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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이다. 승강장의 개수만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역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종종 등장하니 스크린을 통해서라도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루 평균 75만 명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1870년대 맨해튼의 심장부에 지어진 이후 뉴욕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어질 당시에만 해도 맨해튼은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후 그랜드센트럴 역을 중심으로 고층 빌딩이 올라가기 시작했으니 현재의 맨해튼을 존재하게 한 숨은 공신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맨해튼, 그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42번가를 향해 나있는 건물은 헤라클레스, 미네르바, 머큐리 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으로 장식해 뉴욕시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리는 관광객들에게 그 위용을 뽐낸다. 역 내부의 중앙 광장에는 높이가23m에 달하는 아치형 창문 3개가 있는데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세련되면서도 웅장한 역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랜드센트럴 역은 그 규모도 놀랍지만 그 곳을 이루고 있는 디테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놓쳐서는 안될 것은 역 안내소 위에 놓여있는 오팔 모양의 시계와 천장의 샹들리에. 값어치만 2,000만 달러, 한화 약 20억 원에 달하는 시계는 그랜드센트럴 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파리 북역(Gare du Nord) 사진: 임정현 




132개의 전구로 반더빌트 홀(Vanderbilt Hall)을 밝히는 샹들리에는 그 하나의 무게가 1,000kg이 넘는데, 트레이드 마크인 금빛 나뭇잎으로 장식돼 보고 있자면 마치 고전영화에 나올법한 화려한 연회장이 떠오른다. 건설 당시 프랑스에서 날아온 건축가 실뱅 살리에르(Sylvain Salieres)는 역 내부를 자연에서 따온 디자인으로 채우는 것에 주력해 동과 대리석을 깎아 만든 꽃과 나뭇잎 모양의 조각으로 곳곳을 장식하고, 천장에는 12궁도와 더불어 2,500여 개의 별을 그려 넣어 마치 하늘 아래 있는 듯한 느낌까지 주도록 했다.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면 영국 런던에 킹스크로스 세인트판크라스 역(King’s Cross St. Pancras)이 있다. 1868년 대중에 문을 연 이래 영국 각지에서 수도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가 모이는, 또 유로스타(Eurostar)를 통해 섬나라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역으로 영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하루에 13만 여명의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으로 『해리포터(Harry Potter)』에서 주인공이 마법학교로 가기 위한 기차를 타는 곳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세인트판크라스 역의 건축은 사실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 


굳이 특징을 찾자면 높이 30m, 너비 73m, 길이 213m의 초대형 아치형 천장을 들 수 있는데19세기의 기술을 생각해보면 엄청났던 것임에는 분명하다.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역 등 세계의 많은 기차역이 이 아치형 천장을 따라 비슷한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고 하니, 당시 이 건물이 얼마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역과 연결되어 있는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Midland Grand Hotel)이다. 




뉴욕 그랜드센트럴 역(Grand Central Station) 샹들리에 

 New York 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세인트판크라스 역이 지어진 후 건설사인 미들랜드 레일웨이사(Midland Railway Company)가 역을 한층 더 빛내기 위해 공모전을 열어 지은 것인데, 공모전에서 우승한 건축계 고딕양식의 권위자 조지 길버트 스콧 경(Sir George Gilbert Scott)은 6천만 개의 붉은 벽돌로 화려하게 지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성을 연상케 한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첨탑, 난간, 용마루 등 곳곳이 정교한 디테일로 장식되어 있고 기둥머리가 받치고 있는 프리즈 부분은 해마, 조개, 꽃 등을 새겨 넣어 여성스러운 아름다움까지 보여준다. 


객실 내부는 스텐실과 금박을 입힌 벽지로 꾸며져 대영제국이 최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의 자부심을 그대로 전한다. 호텔은 1935년 운영을 중단하고 80여 년간 세인트판크라스 역의 일부로 있다 지난 2011년 ‘세인트판크라스 르네상스 런던 호텔(St. Pancras Renaissance London Hotel)’이란 이름으로 다시 개장했는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화려함을 보기 위해 찾은 손님들로 300개의 객실이 매일같이 가득 찬다고한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상벤투 역(Estacao de São Bento)은 원래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나폴레옹 침략 때 수도원이 파괴된 후 19세기에 지어져 포르투갈인들에게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다. 상벤투 역의 매력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다. 바로 역 내 연결통로를 포르투갈의 역사를 그리는 2만여 개의 아줄레주(azulejo) 타일로 벽을 장식해 놓은 것.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의 전통 타일 장식인데 이슬람문화에 영감 받은 타일로 문양이나 색채에서 화려함을 자랑한다. 위기에 강하고 서로 잘 뭉치는 포르투갈 인들이 역 내부를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해 한 풀 꺾인 포르투갈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아줄레주화의 일인자였던 조지 콜라코(Jorge Colaco)는 1905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현재의 타일을 완성했는데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포르투갈의 찬란한 역사, 또 현지인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타일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역을 찾는 관광객도 많다.





안트베르펜 중앙역(Antwerpen Centraal Station) 

 Visit Antwerpen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있는 헬싱키 중앙역(Helsinki Central Railway Station)은 단순한 기차역을 넘어 핀란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하루 평균 20만여명의 사람들이 이용해 핀란드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이기도 하다. 1919년 문을 연 중앙역은 당시 유행하던 유겐트슈틸(Jujendstill) 양식을 따른 건물을 자세히 보면 오가닉한 디테일이 숨어있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특히 주의 깊게 볼 것은 정문 양 옆으로 붙어있는 남성상. 한 쪽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조각상은 핀란드 신화에 나오는 거인들이다. 


각각의 조각상은 양손에 램프를 들고 있는데 이는 어둠을 밝히는 신화 속 거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램프는 밤이면 불을 밝혀 중앙역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조각상의 얼굴은 사실 조금 무겁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핀란드 국영철도 광고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핀란드 대표 캐릭터이기도 하다. 벨기에 제 2의 도시 안트베르펜에는 안트베르펜 중앙역(Antwerpen -Centraal Station)이 있다. 유럽 내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기차역으로 2009년 미국의 한 매체는 이 역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중 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1905년 벨기에의 건축가 루이스 들라센서리(Louis Delacenserie)가 설계한 건물은 20종이 넘는 대리석과 도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기차역 성당’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유리로 덮인 플랫폼을 통해 쏟아지는 빛, 또 엄청난 규모의 돔은 건물의 화려한 파사드에 몫을 더한다. 이 곳에 발을 딛는 관광객은 역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 뿐더러 안트베르펜 관광청도 자신 있게 관광명소로 소개하는 곳이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

(King's Cross St. Pancras) 사진: 오혜윤




바로 옆 나라 프랑스에 있는 파리 북역(Gare du Nord)은 1846년 문을 열어 현재 운영되고 있는 기차역 중 가장 오래된 역이다. 유로스타가 다니고 프랑스 전역의 기차가 모이는 곳으로 하루에 약 50만 명의 사람이 이용해 유럽에서 이용객 수가 가장 많은 역이기도 하다. 앞을 지나가던 이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만큼 위용을 자랑하는 듯한 건물은 그 높이가 150m에 달하고 이오니아식(Ionic) 벽기둥과 23 개의 여성 조각상으로 꾸며진 외관은 마치 신화에 나오는 신전을 연상케 한다. 기차역을 지을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역이 파리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만한 디자인을 요구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큰 공을 들였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역이 위치한 파리 10구는 현재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지만 화려한 외관의 북역은 그 악명까지도 잠시 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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