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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47분, 공예품을 제작하는 장인, 가넬 토다네(Ganel Todanais)가 경찰서로 급히 연행됐다. 그는 손잡이에 뱀 무늬가 새겨진 단검을 젊은 수사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마른 핏자국으로 얼룩진 오른손은 누가 뭐래도 그가 범인임을 가리키는 듯했다. 하지만 불안하리만큼 흔들리는 눈빛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은 어딘가 수상해 보인다.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가 힘겹게 털어놓은 자백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수사관을 따라 사건 현장을 직접 보아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죽였다는 피해자의 시신이 아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인의 자백만 있을 뿐, 피해자가 없는 기묘한 살인사건의 수수께끼가 관객에게 던져졌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부터 마주할 범죄의 장소는 다름 아닌 미술관이다. 꽤나 파격적인 기획이다. TV나 영화를 통해 미술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봤어도, 정말 살인 현장이 되어버린 미술관을 보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스크린을 넘어 크라임 씬을 직접 목격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도, 예술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다. 현재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진행 중인 <이중의 자아(Double Je)>전은 프랑스 추리소설가, 프랑크 틸리에(Frank Thilliez)가 집필한 원작을 토대로 살인사건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Exhibition view of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at Palais de Tokyo from March 24 to May 16, 2016
Photo : Aurélien Mole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방대한 심리학적 지식, 치밀하게 묘사된 과학수사과정, 몰입도를 높이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전개로 틸리에는 프랑스 전역에 범죄, 추리소설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 그의 텍스트가 3차원으로 구현된다는 소식은 전시가 시작되기 전부터 수많은 스릴러 마니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대중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공예품을 손수 제작해내는 장인이자, 유명한 아티스트로 이름을 떨치는 한 남자의 충격적인 살인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중의 자아>. 그는 누구를 도대체 왜 죽인 것일까? 지금부터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파헤쳐보자. 총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틸리에의 소설을 충실히 재현한 각각의 전시공간은 가넬이 누구인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가늠케 한다. 햇볕이 잘 드는 넓은 정원과 주차장이 딸린 가넬의 아늑한 집, 그리고 그가 가장 많은 시간 머무를 것으로 보이는 작업실이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다. 노란 테이프로 쳐진 폴리스라인을 뚫고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안 풍경이다. 평범하게 놓인 가구들 사이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조각들과 공예품들이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잘 정리되진 않았지만, 여느 집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칼로 긁히고 패인 자국투성이인 거울이 섬뜩할 뿐이다. 뒤이어, 집은 나탕(Natan)의 작업실로 이어진다. 도대체 나탕이란 자는 또 누구인가? 그가 바로 살인을 당한 피해자인가? 한 사람이 사는 줄로만 알았던 이 집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듯하다.
Exhibition view of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at Palais de Tokyo from March 24 to May 16, 2016
© ADAGP, Paris 2016 Photo : Aurélien Mole
가넬의 방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돈된 이 작업실은 사진을 비롯해 3D 프린터로 제작된 세라믹도자기와 훌륭하게 완성된 조각 작품들로 가득하다. 가넬이 나탕을 죽였다고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주차장을 둘러본 관객이라면 적어도 심증은 확실해진다. 처참하게 망가진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는 누군가의 파괴본능을 증명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객 스스로가 범행증거를 찾아내는 과학수사대원이 된 착각이 들 정도로, 관객의 현장 몰입도를 높이는 <이중의 자아>전의 성공 요인은 아마도 완벽에 가깝게 재현된 무대장치덕분일 것이다. 도예가, 디자이너, 항공기상 관측가, 해부학자를 비롯해 각종 분야의 전문세공인과 장인들, 아티스트까지 동원되어 완성된 이 크라임 씬은 단순한 현장재현을 넘어, ‘복원’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극사실적이다. 다만, 전시제목이 친절하다 못해, 대놓고 스포일러인 탓에, 사건 추리가 너무 맥 빠지게 쉽다. 이중의 자아를 뜻하는 ‘Double Je’는 발음의 동음을 이용한 언어유희적 표현의 하나로, ‘이중 플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가넬과 나탕은 한 창작자가 가진 두 개의 인격이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크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라임 씬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 외에도, 장인과 예술가의 만남이 성사됐다는 점에 있다. 흔히 ‘장인’이라 불리며, 특수한 테크닉과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공예품을 제작하는 아르티장(Artisan)은 르네상스 시대에 개화한 인문주의와 함께, 예술계에서 오랫동안 그 자취를 감췄다. 숙련된 기교로 행해지는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인간은 더는 참예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Exhibition view of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at Palais de Tokyo from March 24 to May 16, 2016
Photo : Aurélien Mole
그 대신, 미를 탐구하고 구현해내기 위한 창조성과 독창성은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자 자질이 되었다. 지향점이 다른 아르티장과 아티스트는 서로 다른 지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하고, 기존의 것을 또 다른 형태로 변화, 확장하며, 나아가 서로 다른 시각들의 교차와 공존을 추구하는 현대예술의 흐름 속에서 장인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까닭에 가넬과 나탕에 투사된 장인과 아티스트의 이중 플레이는 더욱이 반갑고, 신선하며, 그 의미가 값지다. 침대 시트에 있는 자수 무늬부터 단검에 새겨진 문양에 이르기까지, 국가대표 장인들의 손길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위에 작가 틸리에와 예술가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진 크라임 씬은 두 개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살인사건 현장의 가운데, 미로의 방이 있다. 황금빛으로 물들여진 이 미로는 그 어떤 미로보다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닌 동시에, 해답을 풀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비슷한듯하지만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온 장인과 예술가, 그들을 나누는 경계선 역시 이 황금미로 만큼이나 풀기 어려운 것이리라. 시대가 변했다.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지금, 영혼 없는 복제기술이라고 멸시를 받아왔던 장인들의 손길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마도 장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때인 듯하다. 예술가와 장인, 서로 다른 그들이 만들어낸 크라임 씬을 통해 창조적인 테크닉, 테크닉의 창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본다.
Exhibition view of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at Palais de
Tokyo from March 24 to May 16, 2016 Photo : Aurélien Mole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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