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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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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White Cube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가 1976년 『Artforum』에 기고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Inside the White Cube: The Ideology of the Gallery Space」는 전후 미술에서 화이트큐브(white cube)가 예술과 관람객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화이트 큐브는 궁극적으로 실제 삶을 지우고 ‘순수한 형태’로서 예술을 신화화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갤러리 공간과 경제, 사회적 맥락, 미학 등 시스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가 작업의 맥락에서 자기인식의 일환으로 전시공간의 형태를 검토했다면, 마리 앤 스타니제프스키(Mary Anne Staniszewski)는 『The power of display』(1998)를 통해 ‘전시디자인’ 자체를 미술사가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그는 200장이 넘는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뉴욕 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분석함으로써 디스플레이, 즉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보여주는지가 미학, 가치, 이데올로기, 정치 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임을 증명했다.
사실 아직까지 화이트 큐브의 힘은 건재하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이 전시 공간의 성역이 점차 무너지는 추세임은 미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큐브, 즉 정방형의 건물 일색에서 탈피해가는 미술관 건축 양식의 변화도 하나의 실마리라고 볼 수 있다. 일례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완성한 계단 없는 나선형의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도 독특한 태생적 구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의 전시디자인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정한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전시도 많지만, 미로를 헤매듯 혹은 수수께끼를 풀 듯, 관람객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음을 떠올려보자. 기존의 연구가 반증하듯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벽에 걸거나, 조각품을 텅 빈 공간에 놓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 이가진 기자

'클림트 인사이드' 1존 합스부르크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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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언프레임드(Unframed)는 종종 ‘Behind the Scenes’라는 제목으로 전시의 숨은 공로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기엔 전시 디자이너도 빠지지 않는데, 그들은 전시장 도면을 펼쳐두고 모형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획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에는 공간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을 자체적으로 꾸리고 있다. 이들은 전시마다 기획자와 협업하며 작품을 돋보일 수 있도록 최상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레이아웃, 설치, 조명부터 그래픽적 요소들(포스터, 도록 등)을 아우르는 모든 디자인적 요소들을 다룬다. 특히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소장품을 보기 좋게 나열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의 경험 내용이 중요해짐에 따라 기획자는 작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전시 디자이너는 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계획한다. 주제별 혹은 시기별로 분류한 특징에 맞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제한된 장소에 풀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인파 속에서 작품을 보호하면서도 관람객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등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도 여러 가지다. 


실제로 주로 연극, 오페라 같은 극예술의 무대미술 분야에서 사용되던 시노그래피(scenography)라는 용어가 해외에서는 전시 분야에서 공간을 꾸리는 일종의 방법론으로 여겨지며 큐레이팅 방식과 결합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층위의 내러티브를 공간 안에 구현하고,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뉴미디어와 융합하며 작품의 새로운 표현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 여기서 나아가 미술사, 미술계에 의미 있는 울림을 줄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서의 발전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소규모 기관에서는 담당 큐레이터가 전시디자인까지 도맡는 현실이긴 하지만, 전시 규모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기획 의도를 어떤 시각적 방식으로 풀어내는가는 그 공간 찾는 이들이 받는 인상과 직결되므로 전시디자인은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는 주제다.


「퍼블릭아트」는 화이트 큐브 이면에 담긴 비밀에 주목한다. 우선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정연심 교수의 글로 포문을 연다. 미술사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전시디자인의 변화에 관해 그 의미와 영향을 푼 글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용하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김용주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은 실무 경험을 토대로 전시디자인에 숨겨진 이야기와 방법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끝으로 디지털 시대의 전시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 고민할 거리 등에 대한 서울대학교 디자인학과 채정우 교수의 제언을 싣는다. 전시디자인이 특정 작품, 나아가 전시의 의미, 그리고 전시 공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술관 안에서 관람객의 경험은 어떻게 조성되는 것일까? 전시디자인에 담긴 숨은 맥락을 읽을 수 있음은 곧 전시를 읽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SPECIAL FEATURE 

미술의 변화와 전시디자인_정연심


SPECIAL FEATURE 

공간디자인을 통해 전시의 내러티브를 말하다_김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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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전시: 새로운 차원의 시점_채정우





릴리 레노 드봐르(Lili Reynaud-Dewar) 

<TEETH, GUMS, MACHINES, FUTURE, SOCIETY> 

(trash cans) 2016





Special feature 

미술의 변화와 전시디자인*

● 정연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미술은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만들기도 하며, 새롭게 형성되는 카논(Canon)과 기술의 변화 속에서 이전에는 없던 예술 형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많은 미술사 및 비평 저서들이 사회와 교감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논하지만, 미술작품이 뮤지엄,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방식이나 디자인 또한 시대마다 변해오고 있다. 때때로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하는 미술작품들은 예술가들의 의식을 선언하는 주제가 되기도 한다. 미술사에서 회화가 독립된 매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모더니즘 시기부터 미술작품은 흰색의 입방체라 불리는 화이트 큐브(갤러리 공간)에 걸리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이전 시기인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그림들을 전시할 때 미술관의 흰 벽을 다른 색으로 디자인하는 것도 당시 시대와 어울리는 방식으로 관람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925년 에스프리 누보관(Pavillon de lEsprit Nouveau)을 디자인하며,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의 추상회화를 흰 벽에 걸었다. 이들 모더니스트에게 화이트 큐브는 성당이나 교회에 들어가는 것처럼 엄숙하며 빛이 절제되어 있고 떠들어서는 안 되는 엄숙한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시기에도 미니멀한 흰 벽에 그림을 디스플레이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술사적으로 20세기의 전시 디자인을 가장 혁신적으로 바꾼 이들은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들로 시작하였다.





오토모 요시히데+야수토모 아오야마 <위드아웃 레코드> 

2008 턴테이블, 금속, 목재, 플라스틱, 피드백 스피커 등 

가변크기 야마구치 아트 앤 미디어 센터(YCAM) 커미션, 

YCAM 인터랩 공동 개발 백남준아트센터 설치 기술 감독: 

타카유키 이토(YCAM 인터랩) 기술 지원: 사토시 하마, 타쿠로 이와타

(이상 YCAM 인터랩), 마코토 히라바야시  프로덕션 매니저: 

리나 와타나베(YCAM) 오리지널 설치 큐레이팅 및 

자문: 카즈나오 아베(YCAM)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첫째, 다다이스트들의 실험적 시도나 디스플레이 방식을 출발점으로, 1920년대 팽배했던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실험운동, 1930년대 각종 박람회 전시 등은 20세기 전반의 미술 역사 속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나 프레데릭 키슬러(Frederick Kiesler)가 시도한 탈중심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은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공간 구성을 구현하였으며, 이는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 선구적인 전시 사례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를 들면, 취리히,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 쾰른 등의 지역에서도 다다 그룹의 활동은 있었지만 이 중에서도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이 오토 부르크하르트(Otto Burchard)의 베를린 갤러리에서 행했던 아트 페어는 전시 자체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었다. 1회 ‘국제 다다 페어(The First International Dada Fair)’로 불렸던 이 전시는 1920 6 30일부터 1920 8 25일까지 개최되었으며, 200여 점에 가까운 ‘다다의 제품(Dadaist Products)’을 “전시·판매한다”고 홍보를 했다


이 페어의 전시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 하우스만(Raoul Hausmann), 여성 베를린 다다이스트 한나 회흐(Hannah Höch), 모자를 쓴 그로츠(Geroge Grosz) 등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실제로 이 전시는 베를린 다다를 국내외로 홍보하기 위해서 전문 사진가를 고용했다. 현존하는 사진 속에는 하트필드(John Heartfield)와 슐리히터(Rudolf Schlichter)가 제작한 돼지머리 모양을 한 군인 아상블라주인 <프러시안 대천사(Prussian Archangel)>가 천장에 매달려 있으며, 슐리히터는 이 작품이 과거 부르주아들이 보여주었던 전시방식이나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 등에 대한 ‘대안’이 되기를 원했다. 2004년 런던의 내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와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 기획한 <다다(Dada)>전에서 당시 전시되었던 일부 작품들은 리메이크가 된 적이 있는데, 전시의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자체를 예술가들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했던 중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빨주노초파남보

>(2016.3.2-2016.7.24) 설치 전경




둘째,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진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던 것과 같이 전시 디자인 등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과 꿈을 탐색하였지만, 그들의 기여는 현대미술의 물꼬를 트는 개념적인 기여에 그치지 않고 전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험적인 디스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뤼스 부누엘(Luis Bunuel)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를 제작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실험적 모색은 비제도적인, 반전통주의 방식으로 여겨졌다뒤샹과 달리를 중심으로 기획된 초현실주의 그룹전은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전시되었으며, 이는 1937년 나치의 ‘퇴폐 미술’에 대한 저항으로 기획되었다. 주요 전시로는 1938년 파리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전시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장의 놀이공원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전시로 특히 후자는 초현실주의자들이 활동 무대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기려는 의도 하에 기획되었다


메르츠바우(Merzbau)가 대중 매체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면, 1938년에 열린 초현실주의 전시는 다양한 매체의 관심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예를 들면, 1938년 윌덴스타인(Wildenstein) 소유의 보자르 갤러리(Galerie Beaux-Arts)에서 열린 전시는 장소특정형에 가까운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여 일회적인 ‘설치’를 강조하였고, 개개 작품의 성향이 초현실주의를 내포하는 것이 아닌 ‘전시’ 자체에서 관람객들이 초현실주의를 느낄 수 있도록 발현했다. 이것은 당시의 관람자들뿐 아니라 참여 작가들에게도 생소한 전시 방식으로 여겨졌다셋째,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활동했던 북미 출신의 루이즈 네벨슨(Louse Nevelson), 트라카스(George Trakas) 등 전후 1950년대 미술가들이 제작한 조각들은 공통적으로 전통 조각의 물질성과 매체성, 스케일을 벗어나 작품이 놓이는 공간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공간 자체를 중요한 사이트(site)로 다루면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1960년대 팝아트와 미니멀리스트들의 후광에 가려지면서, 1960년대 미술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던 작가들로 저평가되었다.




최정화 <Alchemy> 

2016 LED 전구, 플라스틱 보울, 철 보강재 

Courtesy of the artist and Park Ryu Sook Gallery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넷째, 전후 미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공간의 변화를 이끈 전시나 작가들을 꼽으라면 단연 런던의 인디펜던트 그룹(Independent Group)이다. 이들은 주로, 미국의 팝 아트에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로 분류되곤 했지만 최근 중요한 전시 형식으로 다시 다뤄지면서 미술사적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그룹 멤버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해주었던 런던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역할과 함께 이들 젊은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성장과 형태(Growth and Form)> <이것은 내일이다(This Is Tomorrow)>, 그리고 <삶과 미술의 평형(Parallel of Life and Art)>등은 영국의 모더니즘에 대해 재고하면서, 고급문화의 영역 안으로 대중문화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인디펜던트 그룹은 예술과 비예술(일상)의 경계, 회화(고급미술)와 사진(저급미술)의 경계를 규정짓던 전통적인 미적 가치를 전복시켰고, ‘모더니즘의 죽음, 파멸’을 선언하는 그들의 생각은 전시의 설치 방식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되었다.





Exhibition view of <Inside> at Palais de

 Tokyo(2010.10.14-2011.1.15) Photo André Morin




다섯째, 196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모더니즘의 마지막 지점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점으로 되짚어 본다면, 미니멀리즘은 조각의 재료, 스케일의 변화뿐 아니라 우리가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당시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와 함께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의 글이 『Artforum』에서 많은 주목을 끌었는데, 1964년 그린 갤러리(Green Gallery)에서 선보였던 모리스의 <L-Beam>은 우리의 눈에는 ㄱ자나 ㄴ자처럼 보인다. <L-Beam>은 바닥에 깔리기도 하고, 벽에 걸리기도 하며, 우리의 몸 위에 있기도 하고, 우리의 발아래에 위치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합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만든 다음 회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결과물이다. 당시 찍은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수평 구조물은 두 개의 벽을 이을 뿐 아니라 한쪽 벽을 따라 관람자의 머리 위에 육중하게 위치한다. 기본적으로 표준화된 산업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모리스는 현대조각, 설치 방식, 관람자의 동선 등을 다루는 데 있어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즉 오브제는 주어진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영구적이며, 불확정적인 과정, 우연성의 총체들로 존재한다. 모리스는 <거울 입방체 (Mirror Cube)>를 갤러리 안팎에 설치해 관람자들이 자신의 작품 사이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러한 등장과 더불어, 점차 장소성이 중요해지는 대지미술,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 신체미술, 퍼포먼스 아트 등이 중요해지면서 미술관, 갤러리 공간은 영구적인 오브제가 수동적으로 전시되는 공간으로만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미술관 안에서 해프닝이 일어나고, 관람자들은 오브제를 옮기거나 작가와 대화를 하는 현장성이 중요해지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관람자들에게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는가 하면, 전시 기간 내내 상주하는 테크니션이 존재하면서, 단순한 전시 디자인, 디스플레이의 변화만이 아니라 ‘전시’라기 보다는 ‘참여’, ‘개입’ 등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미술관의 관례와 전시의 방식을 변화시키게 된다. 





바우하우스 컬렉션(The Bauhaus Collection

Bauhaus-Archiv, photo: Hans Glave




여섯째, 지난 30년간 설치미술이라는 인터미디어 미술의 등장을 주목할 수 있다. 설치미술에서는 ‘관람자-작품-작품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세 요소가 중요하며, 이들은 서로 보완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설치미술은 때로는 다양한 미디어, 퍼포먼스와도 만난다. 이제 작가는 전체 실내외 공간을 하나의 상황이나 환경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설치미술이란 용어는 그 태동부터 유동성을 보여주고 있어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은 전통 매체가 지닌 확실한 구체성을 띠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전후 미국에서 일어났던 예술운동과 독일의 플럭서스(Fluxux) 운동, 일본의 구타이(Gutai) 운동 등에서도 설치미술의 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정의 하에서 설치미술은 개념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아트, 프로세스 아트, 제도비판(institutional critique) 미술, 페미니스트 아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섭되었고 20세기 후반에 가장 가시적인 매체의 확장이었다


설치미술은 미니멀리즘 이후 현대미술에서 가속화된 모더니스트적 매체와 장르의 붕괴를 통해 계속해서 작가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져왔다. 이와 함께 뉴미디어와 무빙 이미지, 또는 영화 매체 등이 예술의 영역 속으로 진입하면서 미술가들은 복합적인 매체에 더욱 많은 매력을 느꼈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가 없었다면 이러한 유형의 예술 또한 존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시디자인과 설치 등은 기업의 후원과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자본주의의 예술로, 때로는 상업적 후원을 요하는 동시대의 키치예술로 저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주류미술에 들어오지 않은, 혹은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새로운 전시방식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함께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전시(디자인의) 방식은 지금, 미술의 내부에서가 아닌, 주변부에서, 혹은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Erster Preis zum Wettbewerb Bauhaus-Archiv: 

Staab Architekten GmbH, Berlin, Perspektive

 



[각주]

* 이 글은 필자가 쓴 『현대공간과 설치미술』(서울: A&C, 2014/2015)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을 수정했다.

 

 

글쓴이 정연심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뉴욕 FIT의 미술사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2013, 미진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2014, 건축문화), 『한국동시대미술을 말하다』(2015, 건축문화) 등을 출판했으며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협력 큐레이터, 뉴욕 베이스 독립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이다.

 


 

앨로이즈 하우저(Eloise Hawser) <Sunrise Plaza> 

2016 installation view of <Emotional Supply Chains>

 at Zabludowicz Collection, London, 

2016. Photo: David Bebber

 




Special feature 

공간디자인을 통해 전시의 내러티브를 말하다

●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

 


최근 몇 년간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 기관의 수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전시도 증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전시 관람은 소수만이 누리는 문화가 아닌 공연, 영화 산업과 같이 대중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증가하는 전시산업 분야의 양적 팽창은 우리에게 여러 담론이 생성될 수 있는 문화적 기회인 동시에 방황과 탐색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관람자라는 현대미술에서 부각된 새로운 아우라를 중심으로 다변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그에 따라 전시디자인은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품과 관람 행위와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미술관에서 전시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미술 ‘전시’를 이야기함에 있어 ‘전시디자인’은 그 중요성에 비해 학문적 가치와 연구가 소홀히 다뤄진 경향이 있었다. 미술 전시에서 전시디자인은 90년대 초 유럽을 중심으로 실험적 학문으로 연구되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구현되며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모더니즘적 전시 스타일 이른바 ‘화이트 큐브’1) 방식이 유행하면서 전시디자인은 하얀 공간 속에 중립적 성격을 띠며 표준화되어, 그 역할과 기능이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전시는 일정 기간 오픈했다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어 이후 전시에 관한 기록은 사진과 글로만 흔적이 남게 되었다. 남겨진 대부분의 전시 사진은 출품된 작품을 위주로, 텍스트의 기록은 기획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쓰이게 되면서 ‘전시디자인’에 관한 자료는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전시디자인에 관한 언급과 연구가 희미해졌다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공간 변형 프로젝트-상상의 항해>

(2016.8.19-2017.2.12) 설치 전경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술사에서 전시디자인을 무시한 채 개별 작품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사실 작품이란 언제나 역사적으로 해석되고 의도된 기획과 연출된 공간에 맞춰 전시되며 다양한 요소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즉 예술 작품은 전시 공간 속 작품이 놓인 관계, 전시장의 분위기, 작품과 또 다른 작품 사이 관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인식의 체계가 교차하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복합적 관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드러나는 전시디자인의 표현 방식은 개별 작품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관람자들에게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전시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 몇 가지 실행 사례를 살펴보자. 미술 전시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회화 장르의 전시는 일반적으로 작품 사이 일정 간격을 두고 눈높이에 맞게 벽에 거는 방식으로 행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전시에서 관람자의 역할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작품의 개별 가치를 인식하게 될지는 모르나 기획자의 의도, 전시스토리,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2012년 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한국의 단색화>전의 경우 기존 화이트 큐브 회화 전시방식을 넘어 ‘관계성’과 ‘관람자 움직임’을 고려한 전시 방식을 제시했다. 본 전시 공간에서 관람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품들 사이 새로운 매칭과 의미 관계를 포착하게 된다. 즉 관람자의 움직임은 작품들이 의미를 가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 뚫린 커다란 ‘창’은 구획된 영역을 관통하며 ‘시선의 축’을 형성한다. 관람자들은 눈앞에 걸린 작품과 ‘창’ 넘어 보이는 작품을 비교 감상하며 단색화의 다양한 표현 기법과 작가들의 작품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2차원 회화 작품을 보다 다양한 거리와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다음으로 입체물을 다루는 조각 전시의 경우 <한국현대미술작가:최만린>(2014)전으로 예를 들어 살펴보겠다. 최만린은 유년 시절에 한국 전쟁을 겪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체험한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의 단색화>

(2012.3.17-2012.5.13) 설치 전경 




60년에 이르는 그의 작품에는 인간애와 생명에 대한 의지가 녹아 있다. 이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의 행로와 전시 공간의 상황을 일치시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전시 공간으로 전이되도록 계획 했다. 그러한 과정에 관객이 놓여 있음을, 때로는 관객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가 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공간 컬러, 작품 시기별 전시영역 면적배분, 조도 등 공간의 분위기와 구획을 통해 완성 작품만을 나열하는 디스플레이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의 배경과 변화 과정을 함께 보여 주는 인스톨레이션 개념을 전시에 도입했다. 전시 공간 속 자유 동선 구간을 두어 관람자 스스로 작품 감상 루트를 선택하며 보다 다양한 방향에서 조각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전시디자인은 그동안 작품이 주가 되고 관객이 부가되는 상황에서 탈피해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람자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제시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최근 미술관들에서 활발히 다뤄지고 있는 건축전시를 살펴보자. 작년에 있었던 과천관 30년 특별전: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김태수>전은 건축가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시기별 변화를 통해 그가 추구한 가치와 분야에서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전시였다. 전시디자인에 모티브가 된 회랑(corridor)은 김태수 건축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공간 아이덴티티를 적용해 전시를 구성했다. 회랑은 하나의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중심 공간과 주변 공간을 형성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현대미술작가:최만린>

 (2014.4.8-2014.7.6) 설치 전경




이는 전시에서 다뤄져야 하는 여러 프로젝트의 위계와 질서를 형성시켜 주는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또한, 연속성이 강조되는 회랑공간의 특징은 작품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꾸준히 지켜온 건축가의 일관된 가치관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전시공간의 컬러는 주로 스완 화이트(swan white)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전시실의 느낌과 전시실 밖 실제 미술관 공간이 갖는 회랑의 이미지를 이어 가기 위함이다전시 마지막 섹션인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부분은 본 전시의 하이라이트로서 이 부분에서는 30m의 미술관 외부전경 이미지를 3면에 걸쳐 펼쳐 보이며 전시실에서 느끼는 시각적, 공간적 확장감을 극대화 시켰다. 또한 건축가가 직접 드로잉한 미술관 설계 도면을 플라잉 방식으로 공중에 띄워 파노라믹한 이미지를 가리지 않으면서 어떠한 설계 과정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미술관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관람자들은 보다 공간 체험적으로 건축가의 건축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김태수>

(2016.2.19-2016.6.6) 설치 전경




다음으로는 미술관 전시공간이 아닌 대안공간에서 이뤄졌던 전시 사례를 살펴보자. 본 사례에서는 전시디자인이 주어진 장소와 전시 콘텐츠를 어떻게 조응시키는지 그에 따라 관람자와의 소통을 어떻게 확장해 나가는지 볼 수 있다. 2014 12월부터 2015 1월까지 열렸던 <어반 매니페스토 2024> 전은 젊은 건축가들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도시를 향한 비전 제시를 통해 도시정책 담론을 대중과 공유하는 목적의 전시였다. 전시 공간은 온그라운드 갤러리, 보안여관, 커먼빌딩 세 곳으로 분리되어 관람자는 장소를 이동하며 전시를 보아야 한다. 전시장소마다 공간 조건이 달라 각기 다른 세 장소의 환경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하는 부분과 장점이 될 조건 등을 고려해 전시물을 배치, 계획 했다. 주어진 장소의 조건을 살펴보면 먼저 통의동에 위치한 온그라운드 갤러리는 적산가옥 구조로 천장의 구조재 틈사이로 빛이 들어와 채광의 결이 생기는 특징이 있으며 갤러리 내부는 4개의 작은 전시실로 구획되어 있다


두 번째 주어진 공간은 커먼빌딩 옥상 층으로 창이 크고 광량이 풍부했다. 세 번째 공간은 보안여관으로 이 공간은 조도가 고르지 않고 여관방의 구획 구조가 허물어져 일부의 벽과 목재 골조가 앙상히 남아있었다. 주어진 장소 조건 속에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4개의 실마다 각 주제에 해당하는 200장의 건축프로젝트 이미지를 세로, 가로, 사선, 엇갈린 배열 형식으로 전시하여 주제마다 공간에서 인식되는 패턴을 만들었다. 이러한 주제별 이미지 배열 패턴은 도판4의 하단 커먼빌딩에서 진행되었던 4번의 주제토론 때마다 온그라운드 갤러리의 전시주제와 시각적 연계를 맺기 위해 1주차 세로, 2주차 가로, 3주차 사선, 4주차 엇갈린 배열 패턴을 윈도우 그래픽 요소로 활용했다. 빛이 많이 들어오는 장소이므로 햇볕이 좋은 날엔 그래픽을 붙인 창을 통해 토론 장소에 패턴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또한 주제가 달라지는 주마다 창문의 컬러를 바꿔 공간에서 인식되는 전체 컬러를 바꿨다. 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컬러 인식’은 아카이브의 현장성과 동시적 특성을 인지하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됐다. 건물 외부에서도 창문의 컬러 바뀜을 통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했다.





커먼빌딩 <어반 매니페스토 2024>

(2014.12.29-2015.1.31) 설치 전경




보안여관은 방을 구획했던 남겨진 구조 사이사이를 관람자들이 거닐며 건축가들이 제시한 도시의 미래비전을 마주할 수 있도록 이미지마다 개별 조명과 함께 공간에 달아매는(hanging) 방식으로 전시했다. 끝으로 해외 전시 공간 사례를 하나 언급하고자 한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피나코텍모던(Pinakothek der Moderne) 뮤지엄은 공간의 다양한 대비적 스케일과 역동적 실내 구조가 특징이다. 로비에서부터 연결되는 와이드한 계단 전시공간은 마치 광장에서 작품을 만나는 듯한 공간 체험을 제공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품을 바라보면 서 있는 계단 위치에 따라 작품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와 수직 거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간결하되 긴장감 있고 스케일이 크되 공허하지 않은 전시공간이다. 2층 전시실은 하얀 공간으로 설계되어 어찌 보면 앞서 언급한 전형적인 모더니즘적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전시실에 들어서서 몇 걸음 걸어보면 단순 ‘화이트 큐브’ 가 아닌 ‘진화된 화이트 큐브’ 공간이라 느낄 수 있다


전시실을 나누는 벽체들은 때로는 나열식으로 때로는 방사형으로 펼쳐지면서 관람자의 움직임과 움직임에 따른 시선의 변화를 반영한다. 앞서 살펴본 장르별 사례들은 전시디자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우를 중심으로 언급하였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전시디자인이 전시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관람자의 역할은 그러한 전시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전시에 능동적 주체가 되는지 위상 변화를 좀 더 선명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술 전시디자인에 대한 변화와 흐름을 살펴보고 실제 프로젝트 사례 나눔을 통해 기존 화이트 큐브 전시방식이 해왔던 예술로 부터 주변요소를 지우는 탈맥락화 목적이 아닌 전시의 다양한 요소와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새롭게 끌어내는 재맥락화의 전시디자인 가치를 조명하고자 했다. 

 


글쓴이 김용주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으로 재직중이며, 계원예대 전시디자인과 겸임교수, 미국 Peobody Essex Museum,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전시디자인으로 Reddot Design Award 2016, 2013, 2012/ German Design Council Premium Prize 2015, 2014/ JAPAN Good Design Award 2014/ IF Design Award 2013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Spaceship Earth> Exhibition in the Ars Electronica Center, 

Linz Photo showing an impressionof the Spaceship 

Earth Exhibition (2015) in Ars Electronica Center, Linz





Special feature

디지털 시대의 전시: 새로운 차원의 시점

● 채정우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조교수

 


1. 시공간의 변화


전시(展示)란 여러 물건을 한 장소에 모아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전시는 본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라는 제약을 갖는 행위였다. 한날한시에 모으고 만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51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과 앨버트 공(Prince Albert)이 주도한 최초의 ‘런던박람회’도 식민지 세계의 문화와 문명을 동시에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권위를 과시하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근대 미술관의 탄생도 역시 시민혁명 이후 한자리에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제공하여 관람자끼리 조우함으로써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시도였다. 이렇게 ‘같은 시간과 공간’은 전시 이벤트가 갖는 필연적이고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인간, 사물, 장소가 초연결(超連結)된 지금의 시대에는 전시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상당히 변하게 된다. 20세기 말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라는 형식의 인터넷 출현으로 원격의 이미지와 멀티미디어의 전달이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에 불특정한 많은 사람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쉽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공을 초월하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쉽게 온라인상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를 개설할 수 있었고, 또 누구라도 쉽게 접속해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런데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이상적이고, 우아한 전시가 될 수 있었을까? 온라인으로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이미지 갤리리는 단순한 열람과 검색을 제공할 뿐이지 의미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관람자의 신체를 활용하여 체험하는 특별한 행위는 경험할 수가 없었다디지털과 네트워크 환경이 발달을 거듭하면서 최근의 IT분야에서도 ‘동일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다시 요구하고 있다





<클림트 인사이드> 3존 순수와 퇴폐의 공존 춤추는 몸짓




트워크가 발달할수록, 역설적이게도 ‘동시성’과 ‘장소성’이 중요한 서비스의 쟁점이 된 것이다. 일례로, 소셜네트워크(SNS)로 자신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소위 ‘먹방’이 흔해진 것도 내가 ‘현재’에 있는 ‘장소’를 알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욕망에 의한 것이다실제로 ‘실시간’ 서비스와 ‘위치기반서비스’1)는 중요한 IT분야의 차세대 성장아이템으로 꼽는다. 아무리 온라인이 발달해도 미술관, 전시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온라인 환경을 활용하고 결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직비(ZigBee)2) 등을 활용하여 전시장의 작품 근처에서 자동으로 설명해주는 개인용 단말기의 도움을 받아 감상하는 방법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다


이에 더 나아가 최근에는 뉴욕의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Cooper-Hewitt, National Design Museum)에서 ‘The Pen’이라는 펜 형태의 디바이스를 활용하여 관람 중에 전시아이템을 디지털 펜에 저장하고 모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펜에 저장된 데이터를 별도의 미디어 테이블에서 다시 학습하고 필요에 따라서 집에서 다시 관람하고 공유할 수도 있다. 미술관에서의 관람행위와 온라인에서의 열람행위가 결합된 형태의 전시서비스다. 다시 말해 미술관에서의 ‘장소성’과 온라인 ‘원격’의 양면이 복합적으로 응용된 것이다. 미술 분야의 전시에서도 이러한 ‘동시성’과 ‘장소성’은 새로운 가치가 되고 있다. 특히 미디어 아트의 경우 그 장소에서 관람객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시각적 결과물에 참여하게 한다. 향후 디지털환경에서의 전시는 ‘시간의 초월 vs 동시성’ ‘공간의 초월 vs 장소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전시방법의 활용은 떨어진 장소(동시성, 공간초월)에서의 ‘원격의 예술’과 다른 시간에 같은 장소(시간의 초월, 장소성)에 남겨진 ‘흔적의 예술’등의 전시 방법을 예고하고 있다.

 



팀랩(teamLab) <크리스탈 유니버스>




2. 관람의 인칭과 시점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전시의 새로운 기법들이다. VR은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 등을 쓰고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고 AR은 ‘포켓몬고’라는 게임처럼 실제 공간에 가상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합성하여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VR AR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VR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AR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설명한다. VR은 마치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듯이, AR은 실제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관찰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 환경을 전시에 응용하면 VR을 활용하여 실존하지 않는 가상적 공간적으로 표현하거나, AR을 이용하여 실제의 공간에 가상적인 작품으로 표현하는 전시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디지털의 기술이  ‘인칭(人稱)의 기법’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미지를 창작하거나 전달할 때에도 비유, 강조, 변화 등 텍스트로 전달하는 문학적 기법을 많이 응용하여 왔지만, 우리가 앞서 말한 진보적 디지털환경을 전시에 활용한다면 새롭고 또 다른 문학적 기법을 활용한 관람의 세계가 열린다. 인칭과 시점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문학의 서사적 기법을 전시에 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2002년 스위스 엑스포의 <Cyber Helvetia>라는 전시에서는 다양한 인칭과 시법의 전환 기법을 예고하였다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착용한 사람이 가상의 물 위에 떠 있고가상의 물 가장자리에는 사람들이 특별한 인터페이스를 활용하여 물속의 가상 생명체와 소통을 하며 전시를 관람한다그리고 전시장의 2층에서는 이러한 모든 연출과 관람자들의 행동을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여기에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관람자인터페이스를 활용하여 인터랙션을 체험하는 2인칭 관찰자 시점의 관람자그리고 2층에서 조망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관람자가 한 공간에 공존하게 된다더욱 흥미로운 것은 <Cyber Helvetia> 전시장에서 서식하는 가상의 생명체는 인터넷에 접속한 관람자가 직접 디자인하여 전시장에 데이터로 전송하여 탄생시킨 것인데인터넷에 접속한 관람자는 가상 생명체가 성장하는 과정과 오프라인으로 직접 방문한 관람자와의 인터랙션하는 장면을 원격카메라로 인터넷에서 실시간 관찰할 수 있다


일종의 전지적 작가 시점의 전시체험 형태다. VR, 원격접속인터랙션관람 동선의 구성을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한 공간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 2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의 관람을 모두 제공한 것이다. 예술작품의 창작이나 전시방법에 문학의 수사적 기법을 응용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활용돼왔다만약 네트워크 환경과 VR, AR, MR3) 등을 활용하여 전시한다면 우리는 관람자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타자이입(他者移入)’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이것은 작품과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 관람자가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며또 다른 전시방식의 탄생이 될 것이다.





<반고흐 인사이드> AR체험존 




3. 관람자의 개입


문학에서의 서사(敍事,narrative)적 기법과 시각예술의 전시기법은 여러 부분에서 유사점이 있다. 특히 독자의 개입, 즉 관람자의 참여는 두 분야가 갖는 주목해야할 유사점이다. 뒤샹(Marcel Duchamp) 이래의 많은 전위적 작가는 관람자를 작품에 참여시키려는 시도들을 해왔고 옵아트와 키네틱아트 등은 관람의 방법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시도해 왔다. 특히 최근 인터랙션이 가능한 미디어 아트의 경우는 관람자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돋보이는 사례이다. 이와 유사하게 문학에서 독자가 개입하게 하는 시도는 1960년대 이후에 수용미학(受容美學)의 탄생과 함께 적극적으로 시도된다. 텍스트 상태의 문학작품은 아직 예술로 완성되지 않은 것이며 독자의 독서에 의해 텍스트의 지평과 해석의 지평이 만남으로써 미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저(Wolfgang Iser)는 구체화되지 않고 불확정(Unbestimmtheitstellen)의 여지를 독자에게 남겨주고 독자는 해석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디지털시대의 미술창작과 관람방법은 관람자의 해석을 통한 적극적 개입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따라서 디지털 환경의 전시공간을 디자인할 때에는 앞서 언급한 수용미학의 관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빨주노초파남보>

(2016.3.2-2016.7.24) 설치 전경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는 작가가 관람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작품을 알고리즘 형식으로 전시장에 설치할 뿐이지, 관람자 없이는 의미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관람자의 어떠한 행위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작품은 반응하고 완성하게 되는데, 여기에 완성되지 않은 불확정의 여지, 즉 관람객 참여의 여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전시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더욱더 디지털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전시공간은 관람자마다 다른 정보를 해석하고 학습하여 각자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하게 할 수도 있다. 전시 공간 자체가 학습하고 진화하는 일종의 인공지능이 되는 것이다. 관람자는 스마트폰 등의 단말기를 활용하고 전시공간은 이 단말기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서버를 구축하면, 서버는 관람객마다 관람행태를 학습하고 관람 때마다 다른 스토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T.um이라는 전시공간은 실시간위치추적시스템4)을 활용하여 관람자의 위치에 따른 콘텐츠를 관람용 단말기에 능동적으로 제공한다


전시시스템은 관람자의 정보를 분석하고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매번 다른 전시 콘텐츠를 제공한다. 관람자는 자신의 관람행위에 따라 전시콘텐츠를 다르게 체험하고 때로는 관람자 자신이 전시시나리오를 직접 구성하게 되는 적극적 개입의 관람형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관람자가 전시에 개입하여 매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4차원(4-Dimension) 공간에서 작품과 접하게 된다. 디지털 환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관람객 스스로가 재구성하면서 작품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의 전시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관람의 행위를 기획하고 시스템과 데이터를 설계해야하는 등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이 추가되지만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문학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서사적 기법을 응용한다면 다양한 시점과 전혀 다른 차원을 넘나드는 전시기법이 탄생될 것이다.  

 

[각주]

1) 약자로 LBS(location based service)라고도 한다. GPS나 무선중계기 등으로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하여 사용자에게 필요한 위치와 장소에 대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2) 소형의 저전력 근거리 통신망으로 무선인터넷이나 블루투스보다 저렴하고 단순한 기술이다.

3) Mixed Realtity

4) 실시간위치추적시스템(RTLS, Real-time locating systems) : 야외의 GPS처럼 실내 공간에서 물체나 사람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시스템

 

 

글쓴이 채정우는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간디자인 전문회사 ’CA plan’을 설립하고 2008년에서 2015년까지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라고 불리는 레드닷, iF, IDEA 10여차례 수상했다. 2010년에는 3대디자인 어워드를 동시에 수상하고 IDEA의 최고상인 Gold Prize를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SK T.um, 중국 광동성 WITO,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과, 대구아양기찻길 등 미디어환경을 활용하는 공간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에서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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