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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을 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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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21 – 2017.3.31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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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서 시간으로



안규철의 작품은 당혹감을 안겨준다. 자전거 대가 서로 반대쪽으로 향한 붙어있거나(< 대의 자전거>), 바퀴가 상자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붙어 있거나(<상자 2>), 소리로 울려 퍼져야 종은 아무런 소리도 없는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작품들은 이중의 의미에서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우선 보기에, 오브제의 의미가 교란되어 있다는 점에서 난해한 텍스트 앞에 있는 느낌이 들고, 다음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을 타개할 묘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 대가 반대쪽으로 향한 붙어 있다니, 이게 무슨 의미이고, 이걸 어떻게 해결할 있겠는가? 작가의 작업 과정을 생각해보자. 작가는 충돌, 모순, 역설, 변신 등의 논리를 통해 작품을 구축한다. 그리고 논리들 이전에 어떤 작은 이야기가 있다. 안규철의 시그니처가 같은, 흥미로운 연필 스케치들과 함께 나란히 적힌 비의적(秘意的) 문장들을 보면 이를 있다


그는 주위의 풍경과 인물들로부터 세심히 길어 올린 어떤 상상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문장과 이미지들은 대략 시의 구절이나 단편소설의 모티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는 문인들과 거의 비슷하게 출발한다고 있다물론 그는 그다음 어느 지점에서 다른 길로 접어든다.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짤막한 문장을 고치고 늘려가는 작업을 하겠지만, 미술가인 그는 시각적 구성물을 통해 단편을 담아내고자 한다. 정확히 말해, 이야기 자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어떤 정서를 작품 안에서 보존하고 싶어 한다. 개인적인 깨달음이든 사회적인 사건이든, 작가에게 도달한 어떤 정서를 그는 감각적 재료와 오브제들을 통해 보존하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정서들을 진동시키기 위해서 작품들이 물음표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게 뭐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주요 정서가 당혹감, 낭패감, 실패의 자의식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작가의 번째 윤리학이 있다


우리의 삶과 사회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닐까 묻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들은 안정과 자유, 추억과 탈주를 모두 욕망하면서, 정작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족하지 못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작가의 이전 전시의 연장 선상에서 말하자면, 세월호의 비극은 생명권과 효율성이 엇갈리는 가운데 벌어진 허망한 좌초이고, 한국 사회 전체의 환유라 있다. 어느 방향으로 몰려가거나 앞서가려고 뛰어가기 전에, 우리의 삶과 사회의 본성 자체가 방향으로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역설(paradox) 어원으로 따지자면, 방향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방향의 자전거는 우리 삶이 일종의 역설인 점을 일깨우면서 관람객들을 멈춰 세우고자 한다. 그의 작품들이 작동 불능처럼 보이는 것은 때문이다. 그는 예술이 거대한 사회적 기계를 멈춰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들의 심리적 자동 기제를 교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국가적 기계의 작동은 심리적 자동 기제를 관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안규철의 작업은 무의미를 생산한다기보다 상위의 차원에 놓인 의미를 지시한다. 우리는 보통 의미 있는 말이나 이미지는 평서문처럼 완결된 형태라고 생각한다(이를테면, 인상주의에서저것은 오후 2시의 성당이지.”). 하지만 들뢰즈(Gilles Deleuze) 『의미의 논리』에서 설명한 것처럼, 의미란 의문문의 형태에도 담겨 있다. 설사 그것이 대답할 없을 같은 질문이라 할지라도(“내가 오늘 출발하면 어제 도착할 있을까?”). 이처럼 안규철의 작품들은 역설적인 질문의 층위에 의미가, 아마도 순수한 의미가 놓여 있음을 환기한다. 그런데 질문들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 관람객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쉽사리 알지 못한다.





설치 전경




여기에 작가의 번째 윤리학이 있다. 작가는 새로운 층위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라면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유도한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에서 절대적이고 내적인 독백의 공간으로 들어가길 요청한다. 전시 제목당신만을 위한 여기에서 새로운 뜻을 드러낸다. 그것은 일견 위안이나 힐링의 말인 듯도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지극히 사적인 말이라는 뜻도 된다. 언어란 공동체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사적인 언어란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어떻게든 발화되어야만 하고, 표현의 양식을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은 시원의 새벽에 당신의 마음속에서 싹터 오르는 안개와 같은 이미지와 감정 같은 것이 것이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말한 것처럼 언어 이전의 자아, 침묵과 발화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 원초적인 표현의 배아들이 부글거리는 표면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표현을 획득하는 도약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회를 바꿀 것이다. 작가는 이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침묵의 >에서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당신만을 위한 > 통해 그러한 침잠과 도약을 요청한다. 그러한 도약의 결과는 무엇인가? 작품 <머무는 시간 I, II> 시간을 감지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작품은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서, 공은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왕복 운동을 하면서 내려온다. 가장 빠른 중력선() 따라 내려오는 것에 비해 하염없이 느린 운동을 좇아가면서 관객은 지연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실재적 시간을 베르그손(Henri Bergson) 지속(durée)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삶이란 이러한 지속의 시간을 상실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위탁된 삶과 주체적인 삶의 차이란 오롯이 템포의 시간을 따라가는지, 아니면 리듬의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는지의 차이다.


베르그손은 자신의 지속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각설탕이 녹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와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속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기억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와 우주 전체를 채우는 실재적인 시간들이기도 하다. 베르그손의 설명에서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은 각설탕을 통해 우주의 객관적인 시간과 만난다. 언명을 예술철학적으로 비틀어 말한다면 이렇게 것이다. 예술작품은 각설탕 같은 것이다. 어떤 작품을 통해, 전시에서는 <머무는 시간> 공이 구불구불한 궤적을 통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세계와 만나고 지속의 시간을 회복할 있게 된다. 여기에 작가의 번째 윤리학이 있다. 시작점과 끝점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중력선과 다른 궤적의 운동을 만들어 당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낼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시간의 발명은 다른 분기의 가능성, 복잡한 궤적을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각자 자신의 고유하고 실재적인 시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중력장의 직선처럼 효율성의 규격화된 시간에 내맡겨 있을 뿐이다.


끝으로, 나는 왠지 자꾸만 안규철에게서 어떤 부끄러움을 감지하려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수치 또는 염치는 유교 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정서이다. 그것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는 근본 정서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감정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 시인 김수영이 유학 사상의 모더니즘적 변용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있다(김상환 『공자의 생활난』 2016). 안규철을 그렇게 수는 없을까? 그의 작품들은 부끄러움을 향한 내적 성찰과 부조리에 대한 세계 감각이 결합된 질문들로 보인다. 그에게서 어떤 동아시아적 요소를 찾는 일이 과한 일이라면 최소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겠다. 그의 오브제-조각의 요소들을 서로 맞부딪치게 조립하는 것은 염치없음의 마음이라고. 엇갈리게 결합된 < 대의 자전거> 이리로 저리로 찢겨진 세상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의 고백이다.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성이 이전 전시들에 비해 약한 점은 아쉽지만, 역설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절대적인 내적 시간으로 침잠하도록 초대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전시에도 여전하다. 펠릭스 과타리(Felix Guattari) 통찰처럼윤리와 미학이 통합된 패러다임 발명하는 일이 우리의 세기에 절실한 일이라면, 안규철의 작업은 필수불가결한 참조점이 것이다.


추신: 한국 현대 미술사의 맥락에서 볼 때, 짧은 이야기를 의문형으로 담아 오브제-조각으로 표현하는 그의 방식은 한 가지 중요한 탐색의 결과이다. 그는 마침표의 단정적 체념(“그런 거지.”)이나 느낌표의 권위적 동원(“하라고!”) 대신 그는 물음표의 불확실성(“응?”)이 예술이 감당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그가 ‘현실과 발언’ 활동 이후 내내 고민해 온 문제에 대한 독특한 해답이다. 이야기를 몰아내고자 했던 모더니즘 색채 추상과 강력한 내러티브를 설파하고자 했던 민중미술 리얼리즘 사이에서 그는 1980-90년대 내내 제3의 길을 모색했던바, 그 돌파구는 질문의 형태로 상상의 내러티브를 그려내도록 관람객을 자극하는 것이다.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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