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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철학Ⅱ-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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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Philosophy

2016년 겨울을 달궜던 ‘예술과 철학’ 프랑스 편에 이어 이번에는 독일이다. 인류의 지성사를 풍성하게 한 음악, 문학처럼 철학에서도 독일의 위치와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이론적인 면에서 그 무게를 과시하는 독일 철학은 유럽 대륙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중요성을 증명해왔다. 그 영향력은 예술론에도 끼쳐,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19세기를 지배했던 헤겔 사상의 반동으로 태동하며 다양한 갈래로 뻗어간 현대 철학의 물줄기에 새겨진 주요 내용을 모았다. ‘고전’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철학자들의 핵심을 추렸다. 지금부터 헤겔, 니체, 하이데거, 벤야민의 이름을 되뇌어 보자.
● 기획 정일주 편집장 ● 진행 이가진 기자

[편집자 주] 현대미술의 거점에 독일, 특히 베를린이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2017 베니스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17)'에는 독일 열풍이 불었다. 특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관을 대표한 안네 임호프(Anne Imhof)는 'Faust'라는 제목으로 강렬한 전시를 꾸렸다.

Eliza Douglas in Anne Imhof 'Angst II' 2016 Performed at Nationalgalerie at Hamburger Bahnhof, Berlin, 2016 ⓒ Photo Nadine Fraczkowski Courtesy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Isabella Bortolozzi Gal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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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예술철학에 대하여_박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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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적 조건으로서 예술·니체의 확장된 예술정의와 현대 독일미술_정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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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와 진리: 틈의 예술_김주현


SPECIAL FEATURE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 약식 벤야민 사전_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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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 Wilhelm Friedrich Hegel_헤겔의 예술철학에 대하여

● 박배형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1. 머리말 - 예술에 대한 헤겔의 기본 입장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와 같이 예술에 매우 높은 가치를 부여한 철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이 사실은 그가 이른바 ‘예술의 과거성’ 명제(이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서 서술할 것이다)를 내세웠다고 해서 퇴색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최고의 진리를 담고 있는 절대정신의 세 영역으로 철학, 종교, 예술을 꼽고 있으니 말이다. , 헤겔에 따르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서보다도 철학이나 종교와 더불어 예술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계란 어떤 것인지를 포괄적으로 발견하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술은 우리에게 우리를 알려주는 거울과 같으며, 이 거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또 우리의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본다. 헤겔 예술철학의 근본적 특징은 이처럼 그가 일상적인 것에서 발견되기 어려운 최고의 심오한 진리가 예술 속에서 표명된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에서 경험하는 감동 역시 예술이 주는 참되고도 깊은 진실의 표명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에 대해 널리 퍼진 통념, 즉 예술은 미의 표현이라는 통념을 떠올리면서, 이것과 헤겔의 견해가 상당히 다르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잘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토니 크랙(Tony Cragg) <표류물

1997 플라스틱니스와 페인트 190×140×140cm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2. 진리와 미의 결합


오늘날 예술과 관련하여 종종 듣는 말 중에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가의 자유라는 것이 있다
. 이것은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고 주장되고 있으며,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곳에서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자유의 행사는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 정도를 재는 척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미학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런 자율성과 자유는 근대 이후에나 정당화되고 보장될 수 있었던 것으로서, 처음부터 당연시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 기독교적 진리를 거스르는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자는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또한 그 당시 예술의 아름다운 표현은 기독교적 진리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근대적 민주주의 사회의 성립 이후에나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었다고 하겠는데, 물론 그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가 실현된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금서목록이나 언론에 대한 검열과 같은 현상을 보면 해당 사회가 이러한 자유를 얼마나 허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다른 맥락은 차치하고, 미학사적으로 보자면 예술의 자율성은 미의 독자성 내지는 자율성과 깊은 관련을 지닌다


미의 독자성이라는 것은 미(), 아름다움이 다른 궁극적 가치들인 진리나 선에 종속되거나 의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를 진, , 미로 볼 때, 미라는 것이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미의 독자성 역시 근대 이후에나 가능해졌다. 다시 말해서 예술의 세계를, 미의 세계를 도덕의 잣대로, 선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려 하지 말라는 주장은 이런 미의 독자성이라는 개념을 근저에 두고 있는 것인데, 이런 주장은 근대 이후에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었다물론 이는 주장만으로 끝나지 않았고 근대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외쳐왔고 실천해온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근대 이후 기성의 도덕적 질서에 도전하고 새로운 도덕적 규범의 창조에 앞장선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고 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미의 세계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계로서 도덕의 잣대로, 선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은 이렇듯 근대적인 것이며, 이런 사상을 기초로 해서 오늘날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가의 자유라는 것 또한 지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페흐 키르케비(Per Kirkeby) <무제(Læsø)>

1991 캔버스에 유채 116×95cm

  Per Kirkeby, Photo Uwe Walter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또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맞느냐 틀리느냐와 같은 인식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인식이 추구하는 가치인 진리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하여 예술의 예술다움 내지는 미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역시 근대적 의미에서 미와 진리의 분리를 드러내는 사고방식이다. 이렇듯 진, , 미라는 가치의 원칙적 분리라는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근대적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준 인물은 칸트(Emmanuel Kant)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칸트는 근대 이후 예술의 전개나 사람들이 예술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간주되어 마땅하다그런데 헤겔은 일견 칸트가 분리시켜 놓은 미와 진리라는 가치를 다시 결합시킨 복고적 인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헤겔은 미를 진리의 감성적, 감각적 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미는 진리가 감성적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진리와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결합은 칸트가 성취해낸 분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헤겔은 칸트의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철학 체계를 주조해낸 철학자이지, 칸트를 거부하고 전적으로 다른 길로 가버린 인물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는 진, , 미라는 가치들이 더욱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로 통일된다는 철학적 입장을 견지한다. 마치 신이 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자 합일체인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근대 세계가 칸트와 더불어 이룩해낸 예술과 미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예술은 더 이상 중세처럼 기존의 기독교적 진리를 전파하는 수단이 아니다다시 말해서 그는 진리가 예술적 표현 이전에 이미 발견되고 완전히 파악되어 존재하며, 그 다음 예술이 이를 감성적으로 표현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또 예술 속에서 진리가 드러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그들의 철학이나 종교 속에 이미 존재하고 예술은 단지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 속에서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그런 이해와 인식이 더 강력하고 생생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프리드리히 바스만(Friedrich Wasmann) 

<Paul, Maria und Filomena von Putzer> 1840 

Ol auf Leinwand 37×49cm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사진 Andres Kilger 

프리드리히 바스만은 헤겔과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로이 작품은 

<19th century Painting.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galerie

 - Inventory catalogue, online database, presentation and colloquium> 

(2017.3.30-7.30, 함부르크 반호프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3. 예술의 역사적 성격


헤겔의 예술철학에 입문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예술철학은 단지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거기에는 풍부한 예술사적 사실과 자료들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예술철학에 관한 한 그는 어떤 이론가보다도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사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예술철학은 예술에 명백히 역사적 성격을 부여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예술의 역사적 성격’이란 예술이 그것의 초기 단계를 거쳐 정점에 이른 후 일종의 쇠퇴의 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헤겔은 예술의 역사를 이렇듯 세 단계로 구분하여 파악하며, 이렇게 구분된 각 단계를 각각 예술의 특정한 형식으로 명명하고 있다, 그는 초기 단계의 예술을 ‘상징적 형식’으로, 정점에 다다른 예술 형식을 ‘고전적 형식’, 일종의 쇠퇴의 과정 속에 있는 예술 형식을 ‘낭만적 형식’으로 부른다. 여기서 ‘일종의’ 쇠퇴라고 한 것은 그가 말하는 쇠퇴가 결코 예술제작의 양적 측면과 다양성 그리고 작품의 질적 우수성 자체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쇠퇴라는 것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 전반에 있어서 예술의 역할과 지위가 쇠퇴했다는 것, 또는 이전에 누렸던 중요성과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헤겔 당대에 예술이 융성했던 사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진 예술적 혁신운동과 새로운 시도들 및 양적 증대라는 현상이 헤겔의 주장을 반박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오히려 예술가들이 이전 시대에 그들을 구속했던 내용과 형식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할 전대미문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 갈 것임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과 예술의 쇠퇴에 대한 그의 견해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가 말하는 예술의 두 번째 단계로서의 ‘고전적 예술’과 세 번째 단계인 ‘낭만적 예술’에 대한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고전적 예술’이란 고대 그리스 시대에 꽃피었던 예술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이 예술은 ‘진리의 감성적 내지는 감각적 드러남으로서의 미를 구현하는 활동’이라는 예술의 정의에 가장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그는 고전적 예술에서 진리와 그것의 외적 형상화가 완벽한 통일을 이룬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마스 슈트(Thomas Schütte) <The Laundry> 1988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2014 Schenkung der Friedrich Christian Flick Collection 사진 

 Nationalgalerie im Hamburger Bahnhof, 

SMB, Schenkung der Friedrich Christian Flick Collection / 

Thomas BrunsVG Bild-Kunst, Bonn 2016





우리가 신체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그리스 조각상을 떠올리고,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그러한 고전적 미의 이상이 다시 예술을 통해 부활했던 것처럼, 헤겔에게 있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자 그 시대의 진리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었던 예술은 고전적 예술이었다. 그에 따르면 개별적인 인간적 형상 속에 표현된 그리스 신들은 당시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당시의 세계관과 정신성의 가장 적합한 구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신들과 세계 그리고 그들 자신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한 것은 그 어떤 방식보다도 예술을 통해서 또 예술 속에서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예술사의 세 번째 단계인 ‘낭만적 예술’은 기독교 시대 이후의 예술 전반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단계의 예술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비해 인류의 발전에 상응하는 보다 고차적이고 심원한 진리를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게 된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예술은 더욱 내면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며, 이렇듯 더욱 내면적이고 심원한 진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예술 본연의 감각적인, 감성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고전적 예술에 비해 더욱 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지만 예술에서 정신적인 진리내용과 외적 형상화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미의 이상으로부터 벗어나는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낭만적 예술은 인간의 정신세계와 문화 전반이 더욱 발전된 역사적 단계에서 등장하는 예술로서, 결국 예술이 고차적인 진리 내용을 더 이상 예술 자체의 방식으로는 충분히 잘 드러낼 수 없다는 역부족을 보여주는 예술이다.





막달레나 예텔로바(Magdalena Jetelova) <대서양 벽> 1995 

10장의 실버젤라틴 바라이트 프린트와 1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드로잉, 카드에 혼합 기법 60×90cm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상에서 드러나듯이 헤겔에게서 예술이 가장 예술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꽃피었던 시대는 고대 그리스 시대이고, 이런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의 황금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예술의 과거성’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헤겔의 ‘예술의 과거성’ 명제와 그의 예술철학이 표방하는 ‘예술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오늘날의 많은 예술적 현상들을 예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예술이 오랫동안 그 중심가치였던 미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제공하려고 하는 현상, 그리하여 그 와중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예술들이 출현하는 현상, 또한 오늘날의 예술이 보다 내면적이고 고차적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면서 지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철학을 닮아가려고 하는 현상, 이 모든 것들을 헤겔은 예견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헤겔은 ‘예술의 과거성’ 명제를 내세우면서 예술의 죽음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 앞으로도 그 다채로운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며, 우리를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이론적 성찰로, 철학적 고찰로 초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에 타계한 미국의 저명한 분석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이러한 헤겔의 예술철학적 입장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자신의 현대적 예술 이론을 구축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오늘날 변형된 버전의 헤겔적 예술론을 주창한 인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헤겔의 예술철학이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건재함을 방증하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읽을 만한 책]

G.W.F. 헤겔 『헤겔의 미학강의』 두행숙 옮김 은행나무 2010

박배형 『헤겔 미학 개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G.W.F. 헤겔 『헤겔의 음악 미학』 김미애 옮김 느낌이있는책 2014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와 역사의 울타리』 이성훈 외 옮김 미술문화 2004

William Maker(ed.) Hegel and aesthetic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0

Stephen Houlgate(ed.) Hegel and the arts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7

 

[참고할 만한 사이트]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gel-aesthetics/

 


글쓴이 박배형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학과 정치철학, 형이상학 및 인식론의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이성적인 것의 감성적 표현: 헤겔미학의 ‘표현주의’」, 「“부정적 현시”로서의 숭고 —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고찰—」, 「단토의 헤겔주의와 헤겔 미학의 현대성」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헤겔의 입장과 타자성」등이 있으며, 저서 및 주해서로는 『헤겔 미학 개요』, 『헤겔과 시민사회』(주해서), 역서로는 『칸트 미학: <판단력 비판>의 주요 개념들과 문제들』, 『문학이론 입문』(공역) 등이 있다.

 

 



마리-조 라퐁텐(Marie-Jo Lafontaine)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1991-1992 알루미늄에 이중 시바크롬 사진 

132×180×5cm, 나무에 단색화 유채 44×180×5cm, 

전체 176×180×5cm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Special feature

Friedrich Nietzsche

생리적 조건으로서 예술·니체의 확장된 예술정의와 현대 독일미술

● 정낙림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1. 니체의 예술생리학


“세계는 미적 현상으로 정당화 된다.” “세계는 스스로 분만하는 예술작품이다.” 앞의 글은 1872년 약관 28세 때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에서 한 말이며, 뒤의 말은 니체가 토리노에서 졸도하여 10년간의 긴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남긴 유고의 조각글에서 옮긴 것이다. 우리는 앞의 두 인용을 통해 예술은 평생 니체와 함께한 주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니체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전문가적인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은 일체의 창조적 활동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인식행위, 도덕적 가치를 수립하는 것도 포함된다. 청년시절 니체는 “학문을 예술의 관점에서,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미 청년시절의 니체는 예술이 학문보다  삶과 세계에 더 밀착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이때 예술은 종교와 형이상학을 대신하여 세계와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니체가 청년시절 자신의 예술철학을 “예술가-형이상학(Artisten-Metaphysik)”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예술에 대한 보다 심화된 사유는 니체가 40대에 접어들었던 1880년대 중반에 나타난다. 니체는 예술을 형이상학이나 신학을 대신하여 삶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본 청년시절의 관점을 포기한다. 또 그의 이른바 ‘미래예술(die Kunst der Zukunft)’ 선언에서 “은둔자 같은 예술가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예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함으로써 전통적 예술이해를 해체한다. , 미래예술에서는 예술 생산자와 소비자, 혹은 생산자와 생산품 간의 어떤 분리도 무의미해질 것이고, 인간의 모든 행위가 예술적 활동으로 간주될 뿐 아니라  세계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것이라고 본다니체의 미래예술 선언은 그의 ‘예술생리학(Physiologie der Kunst)’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예술생리학은 몸(Leib)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과 깊은 관계가 있다“더욱 놀라운 것은 오히려 몸이다우리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한없이 놀라워할 수 있다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그렇게 놀라운 통합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이 각각의 생명체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예속되어 있고그러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명령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 하면서 전체로서 살고성장하고 한 순간 동안 존립할 수 있는지이런 일은 분명히 의식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다! 몸은 의식이 지향하는 질서법칙 그리고 통일이 아니라오히려 혼돈과 우연을 따른다몸의 이러한 본성은‘영원한 혼돈’을 본질로 하는 세계의 본질에 상응한다그래서 니체는 “몸으로부터 출발하여 몸을 실마리로 이용하는 것이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몸의 활동은 법칙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즉흥적이고 그때그때의 맥락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산출해 낸다





조안 조나스(Joan Jonas) <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

 2015 Video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몸의 활동은 감정(Affekt)을 통해 표현되며, 의미는 바로 감정들 간의 놀이와 경쟁에서 탄생한다. 의미가 근본적으로 감정들의 협동 유희와 싸움의 결과라면 감정의 발원지인 몸은 의식의 뿌리인 셈이다. 니체에 따르면 정신은 몸의 수많은 활동 중 일부이며 그것의 특징은 세계를 반성적으로 파악하고, 질서지우며 언어화한다. 니체가 몸은 ‘큰 이성’이고, 이성은 몸의 ‘장난감’에 불과한 ‘작은 이성’이라고 단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몸이 세계와 맺는 관계는 직접적이고 근본적이다. 예술이 진정으로 세계와 삶의 본질에 다가가려면 몸과 관계해야 한다니체가 예술을 생리학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출발한다. 예술생리학에서 말하는 예술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예술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특정한 자질을 가진 창작자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의 결과가 작품이 되며, 그 작품은 특정한 장소에서 전시되거나 공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그러나 이러한 예술이해는 일체를 전문영역으로 분화하는 근대의 산물이다. 니체에게 예술이란 개별 인간이 가진 창조성을 근거로 성취되는 자기극복이나 자기창조의 행위 일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은 인간 모두가 근본적 의미에서 예술가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인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킨다. 이때 고양은 도취(Rausch)라는 몸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예술 활동의 필수적 요소인 도취는 생명감이나 활력이라는 생리적 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예술이 있기 위해서, 미학적 행위나 통찰이 있기 위해, 도취라는 생리학적 전제는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예술의 최초의 동인은 바로 활력과 생명감이라는 생리적 조건이며,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미적 체험은 불가능하게 된다. 도취는 니체에게 힘의 징후이고, 힘의 의지(Wille zur Macht)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내적 원리이다.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의 느낌이다.” , 우리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을 세계 속에 조형하려할 때 도취의 감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도취는 힘의 증후를 의미하고, 힘이 상승한다는 것은 삶의 건강성을 방증한다니체는 자기조형의 행위를 예술행위의 본질로 보고, “자기 자신을 조형하는 자(der Sich-selbst-Gestaltende)”를 예술가로 정의한다. 그는 예술을 예술창작자/감상자, 예술 창작자와/ 작품 간의 문제로 규정하는 전통 예술 혹은 미학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가치 창조 행위 자체를 예술로 봄으로써 인간 개개인을 가치 창조의 주체로서 세우고자 한다. 이러한 니체의 예술 정의를 흔히 ‘확장된 예술개념(Erweiterter Kunstbegriff)’으로 부른다. 





백남준 <보이스 복스> 1961-1986 설치,병품빈티지TV, 

액자판화,드로잉사진 등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2. 니체와 현대미술 


니체의 예술생리학의 귀결인 전통적 예술이해에 대한 전복은 현대예술의 성립에 절대적 기여를 하게 된다. 20세기 초 다다(Dada)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반예술 운동’은 삶에서 유리된 전시회나 연주회에 갇힌 예술,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거부한다. 그들은 전통적 의미의 작가와 작품 중심의 예술이해가 가진 문제점을 폭로하고 예술의 중심을 예술 활동 자체로 옮긴다.  그들은 예술 활동에서 우연과 놀이의 ‘비결정성’을 핵심적 요소로 받아들였고, 더 나아가 창작자와 감상자의 경계도 허물었다. 이러한 실험주의의 경향은 오늘날의 디지털 예술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예술의 경향에서 니체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슈미트(Wieland Schmied)의 “어떤 철학적 정신도 20세기 전환기에 - 그리고 이 세기의 폭넓은 기간을 통해 - 니체만큼 조형예술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다”는 평가는 정당하다.  


현대미술에서 니체의 수용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선 뭉크(Edvard Munch)를 비롯한 표현주의 미술에서 니체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오토 딕스(Otto Dix)는 강한 니체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일곱 가지 중죄(Die sieben Todsünden)>(1933)는 마녀, 난쟁이, 해골의 형상의 인간, 음탕한 여인, 뿔 달린 괴물, 코를 세우고 하늘로 얼굴을 향해 있는 인간, 솥단지 같은 철모를 쓴 인간 등 일곱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각각의 인물은  인색, 시기, 태만, 음탕, 분노, 교만, 탐식 등 인간의 추한 성질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들은 행렬을 지어 지나가는데  행렬의 뒷배경에는 창틀만 있는 폐허가 된 집이 있고, 그 집의 담벼락 아래 부분에는 니체의 『디오니소스 송가(Dionysos-Dithyramben)』에서 인용한 “사막은 자라고 있다. 화 있을지어다, 사막을 감추고 있는 자에게!”라는 구절이 적혀있다. 담벼락 옆의 공간에는 모래물결이 파도처럼 휘날리고 있어 사막이나 황무지처럼 황폐한 느낌을 주고 있다이러한 삭막한 풍경은 국가사회주의의 광풍을 상징한다. 뭉크와 딕스 이외에도 표현주의 작가들 중 다수가 니체의 영향을 받는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마르크(Franz Marc)로부터 출발하여 클레(Paul Klee)등 많은 동조자를 모은 ‘청기사파(Die Blaue Reiter)’ 계열의 표현주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니체와 다다 운동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스장 아르프(Hans/ Jean Arp) 

<La mise au tombeau des oiseaux et papillons.

 Portrait Tristan Tzara> 1916-1917 Painted wood 40×32.5×9.5cm 

Gift of the Georges and Jenny Bloch Foundation, 1991 

 2017 ProLitteris, Zurich 




뒤샹(Marcel Duchamp)은 예술(Art)이라는 단어가 시작된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을 동원해서 예술이 단지 예술가의 창조적 기능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원래 ‘Art’는 ‘만든다’ 혹은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가의 창조행위는 ‘어떤 행위를 한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닐 뿐이지 여타의 행위와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뒤샹은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그에게 지금까지 미술작품으로 성립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형태, 재료, 내용, 범주, 기술 등이 무가치한 것으로 보고, 오히려 미술가가 어떻게 그것을 미술로서 규정하는가에 따라 미술의 정의는 달라진다고 보았다이점은 다다주의자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미술에 대한 다다의 정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술가가 뱉어놓은 모든 것은 미술이다.” 즉, 미술작품이 성립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형태, 재료, 내용, 범주, 기술 등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미술가가 그것을 미술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달려있다. 다다주의인 아르프(Jean Arp)의 작품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트리스탄 짜라의 초상(Portrait Tristan Tzara)>(1916-1917)은 나무로 만든 몇 가지 형태들이 중첩되어 있는데, 여기서 그 형태들의 배열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한 것이다


초현실주와 니체철학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는 자신의 초현실주의 작품이 니체의 철학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여러 번 언급한다. 키리코의 작품 <정물, 토리노, 1888> <정물, 토리노, >(1914) 은 니체가 ‘자신의 존재가 가능한 유일한 장소’라며 좋아했던 도시, 1889년 초에 늙은 말의 목을 안고 졸도한 곳인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이 있는 도시인 토리노가 주제이며, 키리코는 이 도시를 빈번히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독일 태생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에서 니체의 영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미국 망명 시절에 그린 <희극의 탄생>(1947)은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예술의 신으로 지목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을 두 개의 가면을 통해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신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가면으로 감추고 있는 <어두운 신들>(1957)은 “모든 심오한 정신은 가면을 필요로 한다”(KSA 5, 58)는 니체의 『선악의 저편』 한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3. 니체와 플럭서스


반예술주의를 표방했던 다다운동을 계승한 플럭서스(Fluxus) 1960년대 초 운동의 형태로 결성되었다. 플럭서스의 어원적 의미는 ‘흐르는 것’을 의미하며, 헤라클레이토스(Heraklit)의 ‘Panta rhei’에서 차용했다. 플럭서스 운동은 현대예술 중 가장 철저히 전통 예술과 결별을 선언한다. 플럭서스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실험정신이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인 예술의 장르 구분, 예술가와 감상자의 분리, 예술작품의 유일성과 영구성의 가치를 철저히 거부한다. 플럭서스는 해프닝, 퍼포먼스, 이벤트, 액션 등 전통적으로 예술의 영역 밖에 있던 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였고, 음악, 문학, 무대예술, 그리고 비디오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 간의 혼성교배를 통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창조했다. 또한 플럭서스는 삶과 예술의 이항대립을 폐기한다. 플럭서스는 전시관이나 공연장에서 정지된 오브제에 묶여있는 미술이나 주어진 악보에 따라 연주되는 음악을 거부한다


이런 형태의 예술은 삶이 가진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예술적 충동을 담아내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의 근원적 관계를 왜곡한다. 플럭서스 운동은 니체의 예술생리학의 정신을 수용하고 그것을 예술의 장에서 다양하게 적용시킨다. 예술생리학의 이념을 보다 철저히 수용하고 발전시켰던 플럭서스의 대표적 인물은 보이스(Joseph Beuys). 보이스는 이미 청년시절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으며 직접 바이마르의 니체 문서보관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 니체를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작품도 남겼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1978년의 콜라주 형식의 <일식과 코로나(Sonnenfinsternis und Corona)>이다. 이 콜라주 작품에는 두 개의 사진이 위아래로 겹쳐져 있는데, 위의 사진은 즉 죽기 1년 전의 병상에 있는 니체를 그린 한 올데(Olde)의 에칭 작품이다. 아래의 사진은 1938 11월에 일어난 국가사회주의자 즉,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박해의 날에 벌어진 일을 찍은 것이다. 보이스는 위아래의 사진에다 대각선을 따라 3개의 구멍을 뚫어 두었다. 그 구멍사이로 희미한 빛이 보인다. 이 작품은 유럽 문명의 위기와 그것의 탈출구를 암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요셉 보이스> 

(2011.8.25-11.6, 광주시립미술관전시전경 





보이스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떻게 (...) 이 지상에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은 (...)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확장된 예술개념’이다.  보이스의 생각에 따르면 자신을 조형하는 활동을 하는 한, 모든 인간은 예술가의 자격을 가진다. 그에게 노동자의 노동과 직업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는 다음의 사실이 원리상 동일하다고 본다: 하나의 생산물이 화가 혹은 조각가에 기원하거나 또는 물리학자에 의한 것이건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사회활동과 정치 행위마저도 예술 행위의 일종이 된다. 이러한 활동은 사회를 조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조각가가 물질적 재료에 조각하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은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를 공동으로 조각하는 셈이다. 이렇게 예술을 인간의 모든 행위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보이스의 ‘확장된 예술’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창작하는가: 조각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혁명적 과정이다. 그 때문에 내가 조각하는 행위는 확정되거나 완성되지 않는다. 이 과정은 계속된다: 화학적 반응, 발효과정, 색채변화, 부패, 말라비틀어짐. 이 모든 것은 유전한다. 보이스가 ‘확장된 예술개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치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확장된 예술개념은 우리가 어떻게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니체에 따르면 허무주의는 인간에게 등불 역할을 했던 최고가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고, 그렇다고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가치도 등장하지 않은 텅 비고 어두컴컴한 상태를 의미한다.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인간 스스로 가치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데 있다. 보이스는 이것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을 확장된 예술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니체의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이다”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예술의 본질은 그 어떤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세상에 조형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니체의 예술생리학의 정신과 보이스의 확장된 예술개념은 전적으로 일치한다.  

 

[읽을 만한 책]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전21권 책세상 2000

정낙림 『니체와 현대예술』 역락 2012

정낙림 외 『니체의 미학과 예술철학』 북코리아 2017

 

[참고할 만한 사이트]

http://www.nietzschecircle.com

 


글쓴이 정낙림은 경북대학교 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부퍼탈 대학교에서 니체의 예술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니체와 현대예술』,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등 다수가 있으며, 니체의 예술생리학과 현대예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경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Shoes> 1886 캔버스에 유채 38.1×45.3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Special feature

Martin Heidegger

하이데거, 존재와 진리: 틈의 예술

● 김주현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형이상학과 미학


철학사에서 근대는 인식적 전회로 시작한다. ‘존재신론(형이상학)의 퇴거’ 혹은 ‘(인식하는 인간) 주체의 등장’으로 명명되는 인식적 전회는 무한한 실재(reality)인 물자체(thing in itself)를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대 형이상학에서 신적 관점의 존재 인식은 정당화 없이 강요되었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이 이러한 지식에 이를 수 있을까? 이 논제에 대한 답은 인식론자와 회의론자로 갈리게 되고, 인식론자들은 이에 더해 각기 개인의 믿음을 보편적 지식으로 정당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식론자들은 토대론이나 정합론과 같은 프로그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정당화된 믿음’의 근거가 ‘생각하는 인간’, 곧 합리적 이성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확립된 근대 이성 중심주의는 단순히 주체와 객체를 분리할 뿐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위계적 서열을 완성한다. 인식적 전회 이후 현대 철학은 언어적 전회로 나아간다


영·미에서는 언어 분석과 포스트-분석으로, 프랑스에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로 철학탐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경로는 달랐다. 독일의 근대 철학은 칸트(Kant) 선험철학의 형식적 객관성에서 낭만주의 자아를 거쳐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나아갔다. 이성의 극대화는 다시 고대 형이상학의 통합적 가치인 진--미를 독점하였다. 반면, 19세기 말에 발흥한 실존주의는 여전히 주체를 강조하지만 독일 근대 이성주의 철학과는 다른 길을 간다.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야스퍼스(Karl Jaspers),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주체의 고정되고 보편적인 본질을 비판하고 실존적 기분(mood)과 같은 감성적 방법과 주의주의적 결단을 내세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1927)에서 각자성(eachness)과 본래성(authenticity)을 지닌 실존이 유한성에 대한 ‘불안한’ 기분 속에 매순간 새롭게 결단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티릴 하셀크닙(Tiril Hasselknippe) <Balcony(sand)> 

2016 courtesy of DREI, Cologne 





하이데거의 중기 철학은 존재자가 아닌 존재의 형이상학으로 향한다. 이것은 이성 변증법의 최고 단계에서 세계 전체가 절대정신에 포획되는 헤겔(Hegel)의 형이상학과는 차이가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의 ‘열림(Offenheit)’과 ‘밝힘(Lichtung)’은 주체의 이성적 활동, 곧 실증적 정보나 합리적 추론에 ()구성된 실재 인식이 아니라 존재의 역운(Geschick)에 따른 신비한 각성이다. 존재의 탈은폐, 곧 진리(aleteia)는 주체의 반성적 사유나 의지의 결단의 대상이 아니며 오직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대지와 세계의 균열(Riß) 사이에서 형성된다. 이 작업을 주도하는 것은 주/객의 이분법을 벗어난 존재 자체이다. 이처럼 영·미나 프랑스에서와 달리 독일의 현대철학은 형이상학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현대의 형이상학은 이성, 보편, 존재자에 골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대나 중세의 형이상학과는 그 계보가 다르다. 초기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의 기본 개념들은 후기 철학인 형이상학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928), 『철학이란 무엇인가』(1955)는 물론 『예술작품의 근원』(1934-1935)에서도 『존재와 시간』의 사물(Vorhandensein), 도구(Zuhandensein)는 존재의 긴장과 통합을 드러낸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적 예술론이 영·미의 형식주의 미학과는 거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는 칸트 이후 영·미권의 분석적 탐구, 즉 ‘예술’개념이나 미학적 구조 분석에 골몰하는 형식주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으며 경계했다. 존재의 부름에 초점을 맞춘 그의 형이상학은 『존재와 시간』의 현상학과 그로부터 진전된 해석학 방법론에도 깊이 연루되어 있다.




 

크리스틴 힐(Christine Hill) <폭스부티크 공식견본

1999 Organizational Venture 액션룸테이블의자

폴라로이드 카메라폴라로이드 필름삼각대설문지연필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물과 도구 사이


미술계는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둘러싼 논쟁으로 인해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논쟁은 하이데거, 샤피로(Meyer Shapiro), 데리다(Jacques Derrida)라는 쟁쟁한 이름이나 다원주의 해석론과 같은 비평 이슈로 언급되고 있지만, 애초에 하이데거의 관심은 예술작품의 존재론이었다. 하이데거에게 예술작품의 근원은 존재이다. 예술작품에 존재의 진리가 탈은폐되고 그 빛은 비밀스럽게 전달된다. 데리다의 말대로 기껏 20줄만을 발췌한1) 미술사학자 샤피로가 하이데거에게 고흐의 구두 그림을 특정하라고 요청한 것은 ‘함정’이기보다는 ‘오독’이었다. 그럼에도 하이데거는 명백히 오독의 빌미를 제공했다.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와 실존을 사물과 도구 사이에서 논의한 『존재와 시간』의 틀을 빌어와 존재에 근원한 예술작품을 사물과 도구 사이에 위치시킨다. 사물은 자족성, 순수성, 무목적성을 가지되 세계 내 존재와는 무관하다


반면, 도구는 오직 용도로 작동하며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살림을 꾸리는 인간에게 존재의 진리는 도구 속에서만 드러난다.2) 그러나 도구는 항상 사용의 맥락에서 흐릿하게 지각(Umsicht)될 뿐, 그 자체를 향한 독자적인 감상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도구처럼 존재의 진리를 담보하되 일상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처럼 자족적인 진리 자체로 이끄는 예술작품의 이중의 위치에 착안했다. 모순적이게도 도구 존재를 사물처럼 집중할 때 예술작품은 존재의 진리를 전달한다그래서 하이데거에게 고흐의 구두 그림은 도구 존재인 ‘구두’의 진리와 용도에서 분리된(detached) 감상 대상인 ‘그림’ 모두가 중요했다. 하지만 미술사학자인 샤피로에게는 오직 ‘그림’만이 중요했다. 그는 도구의 도구성(Dienlichkeit)이라는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료를 위반하는 비전문적 미술 비평을 허용할 수 없었던 샤피로는 그림의 특정이 미적 판단의 전제였다. 작가, 제작연도, 구두의 소유자, 표현 양식과 재료 등이 작품의 미적 내용을 지정하며, 이 인과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제 에르크먼(Ayse Erkmen)

 <여기 그리고 저기> 1989 

16부분의 조각니스칠한 강철가변크기 각각의 높이 40cm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미술관





그러나 하이데거는 애초에 형상/질료, 형식/내용, 재현/표상과 같은 오래된 작품 분석틀에 도전하며, 예술작품을 쾌의 미학이 아니라 진리 인식의 텍스트로 간주했다는 점에서도 주류 예술론에 반기를 든다.3)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하이데거의 진리가 개별 대상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예술론은 표피적인 실증 인식론이 아니라 근원적인 존재론 탐구이다따라서 데리다의 말대로 샤피로는 비판은 『예술작품의 근원』의 논점에서 벗어났다. 또한 샤피로는 근대 미술사학 방법론에 대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 역시 샤피로의 오해를 샀다. 하이데거에게는 구두라는 ‘도구’와 ‘그림’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는 후자에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았고, 이것은 어쩌면 기술적(descriptive) 실수라기보다는 의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림이 ‘당연히’ 도구의 진리를 전달한다고 확신했으며, 이러한 인과적 확신은 샤피로의 선결문제와 동일한 것이었다더불어 데리다의 「Restitutions of the Truth in Pointing(1987)에 대한 오독도 만연하다. 데리다가 샤피로보다 하이데거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데리다는 샤피로가 뿌리 뽑힌 도시인 반 고흐에게, 하이데거가 대지에 뿌리 내린 농민 여성에게 구두를 귀속하는 것을 동일한 오류라고 보았다. 물론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귀속적 기술이 귀납적 사례라기보다는 알레고리적 상징일 뿐, 여성 농부 구두를 실증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귀속이 존재론이든 미학이든 작품의 의미를 특권적인 하나로 독점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에게 이 두 사람은 동일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존재의 안과 밖


그렇다면 정말로 하이데거의 예술 존재론은 미적 판단을 독점적으로 결정하는가? 후대 학자들의 만연한 오해와 데리다의 전체 저작들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소 유보적이다. 데리다의 불어 제목, La Vérité en Pointure」와 이 글이 속한 책 제목, La Vérité en Peinture』에서 Peinture(회화) Pointure(사이즈, 찌르기)의 관계4)는 흥미로운 힌트가 된다. 공교롭게도 샤피로는 하이데거의 구두 기술을 〈한 켤레의 구두〉(1886)에 관한 것으로 특정했다. 그리고 데리다는 바로 그 ‘한 켤레’를 문제 삼는다. 데리다는 구두의 사이즈와 형태에 주목하면서 결코 한 켤레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한다. 한 켤레가 아닌 구두를 신고 걸을 수 없다5)는 것이다. 데리다에게 이 ‘그림’의 ‘구두’는 2인 이상의 소유자에게 귀속되지만, 다른 구두 그림이든, 혹은 다수의 소유자이든, 그 귀속 관계가 밝혀진다 해도 그것은 그림의 진리 상환과는 무관하다.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그리스 아테네, 

기원전 432-447 경 사진 playlight55 (www.flickr.com)  





그러나 작품의 특정이나 소유자의 귀속이 진리 상환과 무관하다고 해서 데리다를 존재 진리의  회의론자로 볼 수는 없다. 진리 상환의 불가능성은 특권적이고 독점적인 진리에 대한 비판이지, 진리‘들’, 혹은 진정성(truthfulness)을 말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다시 하이데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하이데거의 구두 그림 기술의 핵심은 ‘신뢰성’(Verläßlichkeit)으로6), 도구의 도구성에서 나오는 존재 이해이다. 예술작품의 존재 진리인 신뢰성은 도구의 존재 관계로 도구 사용자의 존재 양식을 드러낸다.7) 작품 속에는 비은폐된 진리가 생기(Geschehen)한다. 하이데거는 농민 여성의 구두가 자신의 존재의 빛 가운데에 들어선 것이며, 존재자의 존재가 지속적인 자신의 밝힘 가운데로 나선다8)고 하였다진리의 생기는 은폐의 대지와 개시의 세계의 투쟁, 그 균열된 틈 속에서 새어나온다. 대지는 우리의 주거지로, 모든 발현하는 것들이 되돌아가서 숨는 곳이다


반면 ,세계는 건립(Aufstellen), 열어젖힘, 드러냄이다. 작품은 대지와 세계를 함께 세운다. 대지를 세계의 개시 가운데로 밀어 넣으며 또 세계는 대지 속에서 보존된다.9) 그래서 하이데거의 존재의 진리는 빽빽한 숲 속의 빈터에 쏟아지는 햇살과 같다. 데리다가 귀속과 상환이 작품이 밝히는 존재의 진리와 무관하다고 했을 때, 예술작품이 전하는 존재의 진리는 개별적이며 독특하다(unique). 그리고 종종 지연하며 해체된다. 데리다의 예술작품의 진리는 독점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창조적 생기의 기표이다. 데리다에게 진리는 부재하기도 하고 존재하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의미와 해석은 산포(dissenmination)한다.10) 그 점에서 데리다는 위치의 정치학(politics of location)을 주장한다. 특정한 해석의 위치가 겨냥하는 존재의 진리는 고정된 상환이 아니다. 구체적인 위치들 속에서 기표는 미끄러지며 지연 속에서 틈을 드러낸다. 위치를 바꾸는 구체적인 과정이 해체이며 이 해체의 순간에 마주치는 은폐와 탈은폐의 틈은, 하이데거의 용어이자 우리의 희망인 바, ‘존재의 이웃’이 가늠했던 빛의 순간일 것이다.  

 

[각주]

1) Jacque Derrida Restitutions of the Truth in Pointing, The Truth in Paint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87 p.85

2)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오병남 역 경문사 1994 p.95-97

3) 위의 책 p.80-83

4) 이성훈 「반 고흐는 누구의 구두를 그린 것인가?—하이데거, 마이어 샤피로, 그리고 데리다」 대동철학회 편 『대동철학』 45 2008 p.310

5) Derrida op. cit., p.278

6) 하이데거 앞의 책 p.100

7) 박유정 「하이데거의 미학-존재론으로서의 예술」 한국현상학회 편 『철학과 현상학 연구』 66 2015 p.33

8) 하이데거 앞의 책 p.102

9) 위의 책 p.114-115

10) 류의근 「하이데거의 〈낡은 구두〉 해석 논쟁」 대동철학회 편 『대동철학』 76 2016 p.50

 

[읽을 만한 책]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역 까치 1998

마르틴 하이데거 『숲길』 신상희 역 나남 2008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오병남 역 경문사 1994

휴 실버만 『텍스트성, 철학, 예술』 윤호병 역 소명출판사 1999

오토 푀겔러 『하이데거 사유의 길』 이기상·이말숙 역 문예출판사 1995

Jacque Derrida(1987), Restitutions of the Truth in Pointing, The Truth in Paint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255-382.

Fredric Jameson(1991),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London and New York: Verso, 1-54

Meyer Schapiro(1968/1994), The Still Life as a Personal Object-A Note on Heidegger and van Gogh, Theory and Philosophy of Art: Style, Artist, and Society, New York: George Braziller, 135-142

 

*[필자 주]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을 1935-1936년 겨울에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강의했으며, 14년 후인 1950년 출판한 『숲길(Holzsege)』에 수록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샤피로는 「예술작품의 근원」을 읽고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편지를 하이데거에게 보낸다. 하이데거는 답신에서 암스테르담에 열린 고호 유작전에서 보았다고 했지만 “잘 알려진 유화 한 폭”이라고 언급할 뿐 특정 작품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샤피로는 스스로 전시 도록을 찾아 “낡고 끈이 늘어진” 구두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한 켤레의 구두〉를 특정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진리의 증명 여부는 그림의 특정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필자 주]하이데거는 파르테논 신전에 자신의 예술론을 적용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기본 개념들을 강조한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 틈새로 은폐되며 개시된 실내를 통해 신의 모습을 신성한 영역으로 드러낸다. … 신이 현현할 때 찬란한 빛 속에서 세계는 비추어진다. … 신전은 세계를 일으켜 세운다. … 하지만 신전은 땅을 그 자체에서 은폐되는 것을 보존한다.(하이데거, 1994: 109, 필자가 재번역)



글쓴이 김주현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페미니즘 미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전공은 예술작품의 존재론이며 현장비평과 메타비평에도 매진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외모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 『퍼포먼스, 몸의 정치』, 『생각의 힘: 비판적 사고와 토론』 등이 있고 「설치미술의 존재론-박이소 유작전 진품 논란」, 「퍼포먼스 아트의 존재론-신민의 <basketball Standard>를 중심으로」, 「상실, 애도, 기억의 예술: 낸 골딘의 사진」 등 다수의 논문과 비평문을 발표했다.


 

 


에드워드 킨홀즈(Edward Kienholz) <Volksempfängers

> 1975-1977 Staatliche Museen zu Berlin Nationalgalerie 

1976 und 1978 erworben durch das LandBerlin  Nationalgalerie im 

Hamburger Bahnhof,SMB, Eigentum des Landes Berlin 

/Jan WindszusEstate of Edward Kienholz, 2017 

 





Special feature

Walter Benjamin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 약식 벤야민 사전

● 강수미 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벤야민 르네상스’라는 표현조차 스스럼없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 ‘발터 벤야민은 어려운 철학자’로 회자된다. 또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복잡다기한 맥락과 상황에서 그를 인용하고 이론을 풀어서 해설하는데도 불구하고 ‘듣기에 흥미롭기는 한데 참 알아듣기 힘드네’ 같은 의견들이 귓가를 때린다. 사실 벤야민의 글은 어렵고 복잡하다. 사유는 간명하지 않고, 이론은 더하기 빼기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들어도 파악이 힘들며, 배워도 다른 데 써먹기 어려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지 모른다벤야민 사유 및 논리에 대한 대중의 수용 상황이 이와 같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를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벤야민 연구자인 내게는 전부터 실행에 옮기지 않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핵심 개념 또는 함축적 뜻을 담은 주제어를 뽑아 벤야민 자신과 그의 사유 및 이론을 교차시켜 설명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름 붙이자면 ‘약식 벤야민 사전.’ 그래서 객관적 지식 습득용 참고서가 아니라, 벤야민과 독자를 매개하는 생각과 해석의 징검다리 정도로 다음의 약식 사전을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여기 내놓는 주제어와 개념 해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니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후행 학습 또한 적극 권한다.

 


문턱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태인 부르주아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940년 유럽 전역을 덮친 나치의 위협에도 파리에 남아 모더니티 비판연구를 지속하다 매우 뒤늦게 미국 망명을 시도했고, 스페인 국경에서 갈 길이 막히자 자살로 48년의 생을 마감했다. 이것만으로 벌써 비극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 사실들에는 개인사를 넘어선, 단순한 생몰 연도를 넘어선, 드라마틱한 일화를 넘어선 의미심장함이 깃들어 있다. 19세기 끝자락에 출생해 20세기 중반에 타계했다는 점에서 벤야민은 세기의 문턱에 걸린 불안정한 경계인이고 과도기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면, 18세기 계몽주의의 기치 아래 두 세기 넘게 서구사회가 맹렬히 추진한 모더니즘의 양면성 즉, 진보와 파국, 계몽과 미망, 이성의 합리성과 광기, 기술의 꿈과 파괴적 전쟁, 휴머니즘과 파시즘, 세계의 탈마법화와 재마법화 같은 역사의 야누스적 얼굴을 예표 한다.

 




아르만도(ARMANDO) <깃발 9-4-85>

 1985 캔버스에 유채 165×240cm

 



현재성


벤야민은 서구 모더니즘의 내적 모순과 양가적이며 불가해하기까지 한 현실 경험을 인식비판론, 유물론 미학, 역사철학, 인간학적 유물론 등 사유의 체에 걸러 당대 유럽 사회를 짓누르던 난제를 짚어냈다. 지적과 비판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억압과 착취 없는 사회’를 향한 인류의 근원적 꿈을 일깨우는 동시에 근대 산업기술과 자본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돼온 가까운 과거와 현재적 과정을 겹쳐 재고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답을 모색했다. 그 답변들은 지금 여기 21세기 글로벌 사회의 복잡하게 고착된 난맥상 해결에도 방향타가 되는 앎/이론으로서 탁월한 가치와 기능을 발휘한다. 오늘 우리가 어떤 분야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접근해도 벤야민 이론과 마주치게 된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요컨대 오늘날 ‘발터 벤야민’은 현대 독일의 대표 지성이자 변혁적 사유의 고유명사처럼 불린다. 세대와 시대와 지리의 경계를 넘고, 철학, 미학, 예술이론, 예술비평, 영상이론, 커뮤니케이션론, 매체학, 공학, 정치철학, 자본주의 비판, 모더니티 연구, 역사학, 교육론, 건축, 도시공학 등 분과학문의 폐쇄적 격자를 횡단 융합하는 지성의 현재형으로 작동 중인 것이다.

 


사후 벤야민 르네상스


벤야민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다른 이유는 그의 학문과 사유에 대한 평가가 당대보다는 후대에 훨씬 활발하고 심층적으로 이뤄져 지금 여기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낭만주의의 예술비평개념’을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7세기 독일 바로크 비극예술을 다층적으로 분석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교수자격논문으로 프랑크프루트대학에 제출했으나 교수가 되는 데 실패했다. 논문을 심사할 교수들이 도저히 글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진 철회’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그 후 다시는 아카데미/교수 자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생애 중반부터 이미 재야 학자, 문필가, 자유기고 예술 비평가, 궁핍한 연구자로서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변방에서 이름 없이 죽을 때까지 그 입장으로 버텼다. 때문에 벤야민과 그의 학문 및 사유는 당대 학계에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적으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던 같은 시대 지식인들 —주요인물을 꼽자면 숄렘(Gershom Gerhard Scholem), 블로흐(Ernst Bloch), 브레히트(Bertolt Brecht),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등— 은 벤야민의 글에 내재한 학술적 가치, 창의적 서술, 비평적 판단력, 변혁의 추동력을 인정했고 기꺼이 확장시키고자 했다. 한때 세간에서는 신학적 논제나 실험적 예술비평문에 한정해 그를 비의적(esoteric) 문장가로, 문학적 수사가 다채로운 글쟁이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스스로 실험하는 “에세이스트이자 문학비평가” 정도로 이해했다하지만 1980년대부터 세계 학계는 물론 문화예술영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그에 대한 심층 연구가 본격화한 이래로, 또한 대학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학제 및 다원적 지식과 융복합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일명 “벤야민 르네상스”가 이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벤야민이 남긴 방대한 양의 저작들이 독일어 전집을 필두로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일본어 등으로 꾸준히 번역 출판되는 가운데 전 세계 다층/다중의 독자들 사이에서 벤야민은 “20세기의 고전”으로 우뚝 섰다.





헨리크 올레센(Henrik Olesen) 

<how do I make myself a body?>(Detail) 

2008-2016  Henrik Olesen, Courtesy Galerie Buchholz,

 Berlin, Cologne, New York 

 



진리


벤야민은 플라톤(Plato)을 따라 형이상학의 진리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추구할 수 있을 뿐’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인간의 주어진 인식 능력 및 물질적 현실 안에서 소유 불가능한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진리라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경험적 세계의 매개를 거치지 않는다면, 또 현상들로부터 출발하는 사유와 서술(Darstellung, 재현)을 통하지 않는다면 성립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런 철학적 관점에 따라 연구방법론 또한 설정했다.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예외적이거나 소외된 현상들, 벤야민의 표현에 따르면 “극단들”을 연구하는 것이 핵심 방법이다. 과거의 유실물들, 힘없는 익명들, 사회의 부스러기들, 부수적 문화의 단편들, 실패한 예술 행위들, 한철 덧없이 흘러가버려 흔적만 겨우 남은 존재들이야말로 진리의 계기이자 우리가 개념과 논리로 접근할 진리의 요소들이다. 예컨대 벤야민에게는 아케이드를 “세계의 미니어처”로 과대 포장한 1852년 파리 관광안내서의 몇 마디 홍보문구가, 혹은 그 아케이드 상점들에서 한때 유행한 여성들의 장식 주름이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변증법적 역사철학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보다 서구 모더니티의 더 많은 진실을 건드리는 것으로 보였다.

 


미와 대중


1920-30년대 이미 히틀러(Adolf Hitler) 치하의 파시즘 정권은 정치적/군사적 위력만이 아니라 예술을 도구 삼아 정치를 심미화하고 탐미적 군국주의로 대중을 기만하는 데 연일 성공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 벤야민은 예술을 정치화함으로써 공동체가 예술을 통해 현실을 각성하고 주체적으로 나서 해방과 사회변혁의 혁명을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 주장과 논리는 벤야민의 가장 유명한 글이자 대표 예술논문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 명확하고 충실하게 담겨있다. 매우 의미심장한 점은 벤야민이 정치나 경제처럼 통상 사회가 중시하는 부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통해 ‘근대사회 억압 받는 집단의 혁명과 파시즘의 종결’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벤야민 미학에서 놓쳐서는 안 될 주제어는 ‘미와 대중’ 또는 ‘대중의 미적 경험’이다. 그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N 인식론, 진보이론’ 항목에서 “위대하고 매우 감동적인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ad plures ire)’ 향함”임을 피력했다. 이는 고대 로마인들이 죽음에 부친 경구를 벤야민이 예술에 전유한 말이다. ‘미()’를 역사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논점을 확대한 것이다


요컨대 죽음의 보편성과 미의 보편성이 교차한다. 특히 미에 대한 정의를 인간의 절대적 한계 조건인 죽음과 결부시킴으로써 벤야민은 예술의 수용에서 시공간의 차이, 취향의 다름, 계급/계층 차별, 문화자산의 소유 여부를 넘어선 다중의 ‘향유/공유가능성’을 천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벤야민은 근대 유미주의 예술/예술지상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단적인 이유는 권위적 전통과 예술 패권 안에서 자기만족에 빠진 예술은 대중을 무시하고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런 예술은 심지어 인간을 도구로 삼는 데 주저함이 없다. 파시스트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침략 전쟁을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로 각색한 이탈리아 미래파의 창시자 마리네티(Filippo Tommaso Emilio Marinetti)처럼 폭력과 억압의 하수인으로 너무도 쉽게 변질될 수 있다.

 




온 카와라(On Kawara) <One Million Years> 1999 

MMK Museum für Moderne Kunst Frankfurt am Main 

 On Kawara 사진 악셀 슈나이더(Axel Schneider)




기술-예술


“산업이 역사에 고유한 시대적 성격을 부여”했던 근대, 사회 변화의 중추에 테크놀로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파악한 벤야민은 역사와 동시대 사회, 경제, 문화, 예술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의미의 ‘기술(Technik)’개념을 제시했다. 벤야민이 학술은 물론 예술현장의 비평 용어로 ‘기술’을 사용할 때, 그 뜻은 직접적으로 예술의 기술(기교)과 산업 및 과학의 테크놀로지를 가리킨다. 동시에 “기술복제시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기술이 전면화 된 모더니티 사회의 양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이다. 벤야민의 기술 개념은 ‘기술’ 또는 ‘기계장치’, ‘매체’라는 물질적 또는 물리적 조건만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고 적극화하는 “생산자”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다. 즉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 내지는 지식인 저술가를 향해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에 영향 받아 쓴 「생산자로서의 작가」(1934)에서, 벤야민은 “작가적 기술(die schriftstellerische Technik)”이라는 말로 이를 분명히 한다. 요컨대 기술은 예술가 및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일을 생산수단과 기술과의 관계 하에서 혁명적으로 철저히 사고”함으로써, 테크놀로지 기반의 모든 생산기구들을 사회변혁과 “계급투쟁”을 위해 “기술적으로 혁신”하고 “기능전환” 시키는 ‘정치적’ 실천의 방법론적 개념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국내에서 이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으로 번역돼 통용 중인 이 논문 제목은 ‘복제’에 대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독일어 원제의 뜻을 살려 번역하면 다소 어색하지만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시대의 예술작품’ 또는 ‘기술적 재생산가능성시대의 예술작품’이 타당하다. 2002년 미국 하버드 대학 출판사(Harvard University Press)가 출간한 벤야민 영어 선집은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Technological Reproducibility』라고 번역했다. 단지 번역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벤야민 미학에서 중요한 관점이자 주장은 유일무이함과 아우라적 존재 방식을 근간(“기생”)으로 한 유미주의 전통예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동시에 산업기술을 통해 대량생산과 대중 향유, 대중 소비, 다중 사용, 자율적 재생산 가능성/능력(reproduce-ability)을 충전한 새로운 예술에 사람들의 인식과 감각의 문호를 개방하고 그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유미주의 예술의 “예술적 기능” 대신 기술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전환(re-functioning)”이 핵심 메시지다. 



오늘 미술


약식 벤야민 사전의 마지막 항목은 동시대 미술비평가로서 내가 오늘의 미술에 던지는 비판적 시선이다. 독일의 미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 2010 10월 이플럭스(e-flux)에 발표한 글에서 “오늘날 미술계는 해방의 프로젝트들, 참여 행위, 급진적 정치 태도의 장소가 되었지만, 동시에 20세기 혁명[의 시도]에 대한 실망과 사회적 파국을 기억하는 곳”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오늘에 이른 즈음, 우리는 사회 참여적 예술 또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확산하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의 또 다른 변종으로 커버린 것은 아닌지 성찰할 단계다. 그와 함께 레트로모더니즘(retro-modernism) 현상처럼 과거의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 힙스터의 ‘취향 저격 굿즈’가 되고, 최근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단색화가 ‘빅머니 게임’의 낭만적 화폐가 되는 왜곡(perversion)의 습관적 반복-재생산 과정을 문제시해야 한다.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라는 벤야민의 경구는 우리에게 모든 부패한 관행과 타성에 젖은 인식 및 감각에 저항해 결을 거슬러 사고하고, 지각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읽을 만한 책]

강수미 『아이스테시스-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글항아리 2011

문광훈 『가면들의 병기창-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 한길사 2014

Kia Lindloos Now-Time/Image-Space: Temporalization of Politics in Walter Benjamins Philosophy of History and Art SoPhi 1998

 

[참고할 만한 사이트]

Walter Benjamin's Passagenwerk - othervoices.org

www.othervoices.org/1.1/gpeaker/Passagenwerk.php

 

 

글쓴이 강수미는 미학자, 미술비평가이자 동덕여대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다. 대표 저서로 『까다로운 대상-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아이스테시스-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문화관광부 ‘철학’ 분야 우수학술도서) 『비평의 이미지』가 있다. <비평 페스티벌> 창립자이자 기획자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한국연구재단 과제로 「다공예술: 한국현대미술의 수행적 의사소통구조와 소셜 네트워킹」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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