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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치는 혼, 벨기에를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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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gium

Chun Kwang Young
2017.5.18-2017.8.27 브뤼셀, 보고시앙 재단-빌라 엉팡

한국의 이야기를 싸는 작가 전광영의 개인전이 유럽의 수도 브뤼셀의 보고시앙 재단(Boghossian Foundation) 미술관 빌라 엉팡(Villa Empain)에서 5월 17일부터 8월 27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12점의 평면 작품과 2점의 대규모 설치 작품으로 구성되며 뉴욕, 파리, 런던 등 전 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큐레이터 아사드 라자(Asad Raza)가 기획을 맡았다. 라자는 이번 전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며 “전광영의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정’을 느낀 시간이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 이민영 벨기에통신원 ● 사진 Villa Empain 제공

Installation view of 'Chun Kwang Young'(2017.5.18-8.27) at Villa Empain, Bru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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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시앙 재단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15)’ 기간에 열린 단색화 전시를 후원하고 빌라 엉팡에서 단색화 전시를 열며,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나타낸 바 있다. 또,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세미나를 여러 차례 진행하며, 서양 예술사적 시각 안에서 한국의 단색화를 바라보고 그 의미를 재정립하여, 단색화를 알리는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는 루이 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과 공동전시를 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보고시앙 재단이, 작가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솔로 전시여서 더 화제를 모은다. 아르메니아 태생의 보석 갑부로 알려진 보고시앙 가족이 세운 보고시앙 재단은 예술로 지리적 거리를 줄이고, 다소 예민한 정치적 이슈로 자주 언급되는 동과 서의 불편한 관계를 화합과 평화의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졌다. 재단은 예술 학교 및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건립, 젊은 작가를 후원하고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등 인류애적인 활동에 적극적인데, 그 재단의 중심에 아름다운 건축의 빌라 엉팡이 있는 것이다. 브뤼셀 중심 대사관 저택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서도 가장 화려한 빌라 엉팡은 벨기에 아르데코(Art Deco)의 진수를 뽐낸다.





Installation view of <Chun Kwang Young>

(2017.5.18-8.27) at Villa Empain, Brussel




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면 전광영이 처음으로 시도한 야외 조각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지작가라는 타이틀을 지닌 터라, 야외 설치가 과연 가능한가 궁금했던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보고시앙 재단의 야외 전시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흔쾌히 ‘예스’라 대답하고 도전해 오랜 시간의 실험을 거쳐 탄생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보고시앙 재단 전시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벨기에의 짓궂은 날씨에 대비해 여러 겹의 보호막 처리를 거쳤지만, 그의 작품 특유의 섬세함과 정교함은 고스란히 지녔다. 빌라 엉팡의 상징이기도 한 정원 앞에 2m 30cm의 대형 구가 약간 불안한 자세로, 조금만 힘을 가하면 수영장으로 떨어질 듯한 포즈로 서 있다. 이는 전 세계 불안한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최근 테러 사태로 긴장한 벨기에에 잠재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에 대한 불신 등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야외에서 들어와 바로 보이는 빌라 엉팡의 중심 홀에 또 하나의 놀라운 대규모 설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파란색 수영장과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공간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방에 힘겹게 울려 퍼지고 있는 둥둥거리는 심장 소리가 평온한 바깥 풍경과는 대조를 이루며, 쓸쓸하지만 경이롭게 들린다. 한지로 섬세하게 싸인 작은 삼각형이 수천 수만 개가 모여 만들어 내는 강렬함과 그의 수고가 우선 놀랍다. 수없이 많은 오래된 우리들의 이야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심장 소리와 함께 어울려 고동치고 있다. 빛이 바래 검게 그을려 타들어 가는 심장이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다해 요동치고 있다.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200여 명 환자들의 꺼져가는 심장 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인생의 공허함과 절박함이 느껴지나, 한명 한명의 역사가 만들어낸 우주가 작은 삼각형 안에 담겨 결국 그 끝이 허무하지 않고 이야기로 남아 정성껏 싸여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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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8-8.27) at Villa Empain, Brussel





대형 작품들에 매료된 후 지하 전시장에 발길을 돌리면 12점의 평면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그 빛을 담고 있는 한지에 싸인 삼각형의 작은 픽셀 하나하나에 주목한다. 고서에 적혀있는 글씨들이 주는 뜻 모를 이야기들과, 싸여진 종이와 같은 한지로 꼬아 만든 끈으로 묶인 삼각형의 형태는 섬세함과 정밀함이 압권이다. 멀리서 바라본 작품의 추상적 형상과 가까이서 본 삼각형 픽셀의 섬세함이 대조적이다. 이 이중성과 대조적인 모습이 삼각형 하나하나의 사실 표현과 추상적인 표면 사이에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전시되고 있는 12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의 변화와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구성이 더욱 간결하고, 한지에 적혀있는 메시지가 더욱 부각되어 나타나 있는 초기 작품에 비해, 삼각형이 최근에 오면서 더욱 크기가 다양해지고 빛이 더욱 강렬해 지고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 개개인의 역사들이 모여, 강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 중에 우연히 마주한 전광영의 작품 앞에서 새삼스럽게 눈물이 났다’는 한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이만큼 한국인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한지작가로도 알려져 있는 전광영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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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8-8.27) at Villa Empain, Brussel




60년대 말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그는 서양의 넘쳐나는 폭발적인 창조에너지와 표현의 자유에 현혹되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시대의 저항아들이 만들어 낸 추상표현주의였다. 그 역시 색으로 나타난 빛의 흐름과 강렬함을 캔버스에 혼란스럽게 쏟아내었다. 이 시대에 받아들인 화면의 평면성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그의 작품의 특성 중 하나인 듯하다. 그의 화면에 가득 찬 혼란스러움은 그 당시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그리움이 그의 내면에 가득 차 있었다. 쏟아내고 뱉어내도 계속해서 허무함이 몰려들었고, 자신의 옷을 입지 않고 다른 이의 옷을 빌려 입은듯한 어색함만이 그를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게 하였다. 결국, 그는 열정을 다해 달려왔던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의 긴 뿌리 찾기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조상이 우리에게 남겨 준 유산의 흔적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 흔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남의 것 흉내 내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의 결심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동안의 표현방법을 철저히 배제하고 붓으로 그리는 행위가 아닌 싸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모든 것을 지우고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Chun Kwang Young>

(2017.5.18-8.27) at Villa Empain, Brussel




어릴 적, 사탕 몇 알 얻어먹기 위해 매일 들리던 큰할아버지의 한약방에 대한 추억에서 시작된 한약 포가 작품의 기초가 되었다. 한지로 정성껏 한약 약재를 싸고 끈으로 동여맨 한약 모양이 그의 작품의 기본 픽셀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삼각형 형태의 기본 모형인 것이다. 그리고 삼각형을 싸고 있는 한지에는 고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은근히 드러나 있다. 우리 조상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고서를 품은 삼각형이 특정한 흐름 없이 우연에 맡기어져 한데 모여 있다. 하나하나의 다른 이야기들이 한 작품 안에서 결국은 한 제목으로 불리며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마치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사회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이것은 현대 한국인의 모습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들이 때로는 밖으로 삐져나와 불안감을 형성하고, 안으로 파묻혀 존재감 없이 보이기도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픽셀로 만들어진 전광영이라는 작가 세계의 한 구성원인 것이다.  


 

글쓴이 이민영은 파리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다. 그 후,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해 현재 Art’Loft/ Lee Bauwens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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