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Special Feature

논문, 다시 담론으로Ⅱ ①

0원
Back to the discourseⅡ

2016년 9월, 미술을 주제로 한 9편의 논문을 소개한 특집 [논문, 다시 담론으로] 제1탄에 이어 근래 정리된 새로운 이론들을 묶은 특집이다. 우리는 그간 많은 석·박사생 논문을 읽고 심사한 주요대학 미술 전공 교수들께 또 한 번 ‘특출한 논문’, ‘독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논문’ 추천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논문 작성자가 직접 압축·요약한 아홉 편의 논문을 소개한다.
예술 철학은 물론 연구 대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고쳐 쓰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완성하는 것이 논문이다. 이 책에 실린 요약본을 통해 미디어아트, 조형예술, 서양화, 공연 영상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에 걸쳐 어떤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 미래 미술 학자 및 작가가 현시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국회전자도서관사이트에서 논문 제목과 저자의 이름으로 검색이 가능하니 각 논문 목차 및 세부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은 참고하시길!
● 기획 정일주 편집장·진행 정송 기자

바바라 블룸(Barbara Bloom) 'Semblance of a House Drawers, Library, Sofa, Gaming Table' 2013-2015 Leihgabe der Kunstlerin, Courtesy Galerie Gisela Capitain, Koln ⓒ Nationalgalerie im Hamburger Bahnhof, SMB / Jan Windszus
SHOPPING GUIDE

배송 안내

배송은 입금 확인 후 주말 공휴일 제외, 3~5 일 정도 소요됩니다. 제주도나 산간 벽지, 도서 지방은 별도 추가금액을 지불하셔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송비는 6만원 이상 무료배송, 6만원 이하일 경우 3,000원입니다.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주문된 상품 불량/파손 및 주문 내역과 다른 상품이 오배송 되었을 경우 교환 및 반품 비용은 당사 부담입니다.

- 시판이나 전화를 통한 교환 & 반품 승인 후 하자 부분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여 택배를 이용하여 착불로 보내주세요.


교환 및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 반품 기간(7일 이내) 경과 이후 단순 변심에 한 교환 및 반품은 불가합니다.

- 고객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포장을 개봉 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 가치가 상실된 경우,

  고객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하여 상품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 포장을 훼손한 경우 교환 및 반품 불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 상담 혹은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 교환/반품 배송비 유사항 ※
- 동봉이나 입금 확인이 안될 시 교환/반품이 지연됩니다. 반드시 주문하신 분 성함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 반품 경우 배송비 미처리 시 예고 없이 차감 환불 될 수 있으며, 교환 경우 발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상품 반입 후 영업일 기준 3~4일 검수기간이 소요되며 검수가 종료된 상품은 순차적으로 환불이 진행 됩니다.

- 초기 결제된 방법으로만 환불이 가능하며, 본인 계좌가 아니면 환불은 불가합니다.(다른 명 계좌로 환불 불가)
- 포장 훼손, 사용 흔적이 있을 경우 기타 추가 비용 발생 및 재반송될 수 있습니다.


환 및 반품 주소

04554 서울시 중구 충무로 9 미르내빌딩 6 02-2274-9597 (내선1)

상품 정보
Maker Art in Post
Origin Made in Korea
정기결제
구매방법
배송주기

정기배송 할인 save

  • 결제 시 : 할인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선택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Special Feature 수량증가 수량감소 a (  )
TOTAL0 (0개)

할인가가 적용된 최종 결제예정금액은 주문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

SPECIAL FEATURE 

미술 학위논문 쓰기_김남시

 

SPECIAL FEATURE Ⅱ

9개의 논문

 

1. 공공외교로서의 팝아트 1964-1967_이미경

2. 장소특정성 라이프로그에 기반 한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망우동> 제작 연구_손윤지

3. 상실과 부재의 감정 그리기-나의 드로잉과 판화 작업을 중심으로_임재형

4. 거리영화의 발전과 분화 : 근대적 형성 과정과 장르적 특성을 중심으로_이도훈

5. 세계화를 통해 다시 보는 단색화의 한국성과 미술사적 위상서구 모노크롬 회화와 김환기 전면점화와의 비교를 통해서_이승현

6. 아나 멘디에타의 작품에 나타나는 제의(祭儀)적 요소와 그 의미에 대한 연구_추성희

7. 반영 이미지의 환상성: 레안드로 에를리치를 통해 바라본 거울과 창문 환상_이예린

8. 낯선 정보가 불러온 상상과 비-재현적 형태에 대한 연구_이동근

9. 선언의 관점에서 본 예술가의 사회적 발화: ‘제4집단’과 ‘현실과 발언’을 중심으로_김진주

 



 

이동근 <Signboard(welcome)> 2015-2017

 Installation cuts Mixed works 240×420×60cm





Special feature 

미술 학위논문 쓰기

● 김남시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미술에 대한 글쓰기

 

미술에 대해 생각할 일이 있을 때마다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가 전하는 ‘그림의 기원’에 대한 일화를 떠올린다. 『박물지(Historia Naturalis) 35권에서 플리니우스는 그림의 기원을 그리스 코린트 지역 도공의 딸 데부타데(Debutade)에게서 찾는다. 그가 깊이 사랑하던 애인이 전쟁터로 떠나야 했을 때 그는 벽에 비추어진 애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렸는데 이것이 그림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미술의 기원에는 사냥감을 붙잡으려는 생존본능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숭배도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이 있었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남성 헤게모니가 우세한 오늘날 미술계의 상황을 생각하면 남성이 아닌 여성이 미술의 기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음미할만하다. 그러나 미술의 특성을 보여주는 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보여준 태도에 있다. 


사랑하는 애인을 전쟁터로 떠나보내야 하는 데부타데가 자신의 격정만을 따랐다면, 그는 애인의 목을 붙잡고 매달린 채 떠나지 못하게 가로막았을 것이다. 슬픔과 정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면 그는 떠나야 하는 애인 앞에서 절망과 슬픔을 소리 내어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애인을 조용히 벽 앞으로 데리고 가 앉히고는 조심스럽게 벽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 그렸다. 자신을 떠나 부재하게 될 애인의 모습을 남겨놓기 위해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놓을 섬세한 손놀림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미술은, 데부타데의 손이 애인의 목을 끌어안는 것을 멈추고 붓을 들었을 때 시작되었다. 애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으로 마비되는 대신, 그의 손은 애인의 모습을 남기기 위한 방책을 구했고 그를 통해 애인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비친 벽의 표면, 거기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 그릴 필기구를 활용한 것이다.  





리차드 헤밀턴(Richard Hamilton) <Toaster> 

1966-1967(reconstructed 1969) 

Chromed steel and Perspex on colour photograph

 81×81cm Hamilton Estate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애인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애인의 모습을 그려 남기려는 동기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 사랑은 미술의 출발점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몸짓으로 표현하기에는 넘쳐흐르는 감정이 강렬하게 신체를 지배할수록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은 가슴 속의 격정과 슬픔에 매달리기를 중단하였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미술은 그런 감정이 신체 외부를 향해 방향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노래나 춤과는 달리 미술은 자신의 신체뿐 아니라 그 신체 외부에 있는 사물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그릴 표면, 그것을 그리게 하는 도구, 그리고 그 도구의 움직임을 형상으로 남겨 줄 물감이 있어야 한다. 이 사물들을 사용하려면 미술가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의 직접성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맹목적인 격정으로 분출되어 버리지 않는 사랑이 사물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침착한 기술과 결합되어야 비로소 미술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했을 때 그림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결합체가 된다. 데부타데가 그린 것이 애인의 실루엣이라는 사실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실루엣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바로 그 사람의 개별적 인상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크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작기 때문이다. 데부타데가 그린 건 자기 애인의 실루엣이지만 그것은 애인을 떠나보낸 모든 여인의 애인 모습이 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다.


이 이야기를 한 건 미술에 대해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무엇인가에 대한 글쓰기는 그 대상의 성격과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하겠기에 말이다. 미술은 격정과 정념의 직접성을 넘어서 있다. 미술은 자신의 감정과 신체 바깥의 도구들, 다시 말해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앎에 근거한다. 그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에는 그를 시작하게 한 작가의 내면적 동기가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그의 지식과 활용에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작된 작품의 의미는 작가 자신이 말하는 의도만으로 오롯이 환원될 수 없다. 그 작품 속에 사용되고 드러나 있는 사물은 작가의 의도와는 독립적인 세상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의 여파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와중에 바다를 여행하는 여객선 그림은 제아무리 작가가 고집하더라도 결코 ‘이상적 사회를 향한 동경’의 상징으로 읽힐 수 없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그 사물은 우리가 함께 겪은 사회적 트라우마 속에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주관적 내면성을 넘어서 있는 세상의 사물에 대한 사유가 요구된다. 작품을 만드는 건 온전히 작가의 몫이겠지만 그 작가가 만든 작품에는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 사물 의미의 층위가 물들어 있다. 작품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내면적 정념을 구구절절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가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의 사물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분석과 논리, 사유를 필요로 하는 글이라는 매체는 이러한 점에서 한 작품의 의미가 온전하게 발휘되는데 함께 기여한다.

 



랄프 베이커(Ralf Baecker) <Mirage> Crédit: 

 Ralf Baecker 2014/2015 

 



미술 학위논문 쓰기 

 

알다시피 미술에 대한 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미술 관련 학위논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의 높은 학력 인플레이션이 노동시장에서 문화 자본으로서의 학위의 교환가치를 현저히 하락시켜 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위 소유는 대학이나 공공기관 등의 분야에 진입할 수 있는 필수 요건으로 작동하고 있다. 요즈음은 대학에서 미술 관련 강사 자리를 얻기 위해서도 박사 학위가 요구되며 국공립 미술관 등에 취업하는 데에도 최소 석사 학위 이상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이전의 객관적 평가 기회에서는 적절했던 지각 도식과 평가 도식을 학력 시장의 새로운 상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아비투스(habitus)의 지체 현상”(부르디외(Pierre Bourdieu))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학위는 상속되는 문화자본이 모든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해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획득’할 수 있는 유효한 문화자본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학위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수행해야 할 일이 학위논문을 쓰는 일이다. 논문이 문화자본으로서의 학위 취득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은 학위 논문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생겨나게 한다. 그렇지만 논문은 그를 준비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른 영역에서보다 더 큰 자기규율과 훈련이 필요하며 그 애씀이 상호주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물질적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교적 공평무사한 매체다. 일필휘지로 쓰이는 대신 꽤 길고 고달픈 단계를 거쳐야 논문이 탄생한다는 사실도 이 매체의 ‘획득’적 성격을 강화시킨다.




임재형 <People Around Me> 2015 

종이에 유채 총 75점 중 2점 각 65×50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대한 여러 의견을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일관된 논리를 이끌어내는 논문 쓰기의 과정은 비판적 사유의 기본적인 훈련에 속한다. 가장 먼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 나가는 관심사들의 공통 지점을 찾아내고 그를 엮어 결집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때로 과감한 삭제와 결단이 필요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작으면 작을수록 더 깊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연하게도 논문의 주제는 자신을 지적으로 흥분시키는 것,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이어야 한다. 논문 쓰기의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애초의 관계가 때로 그 대립물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점에 유의하라. 논문을 마쳤을 때 얻은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자기 환멸을 가져다줄 주제를 선택하는 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해롭다. 주제가 하나로 결집되었다면 다음에는 선택한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야 한다. 


지금껏 누구도 관심을 두거나 주목하지 않아서 자신이, 철학사에서 플라톤(Plato)처럼 그 대상에 대해 최초로 말할 기쁨과 자유를 누릴 대상을 발견한다면 행복하겠지만, 그렇게 보이는 주제라 할지라도 덥석 끌어안기 전에 먼저 ‘왜 이 주제가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세상에는 나 혼자의 판단보다는 소위 ‘사람들’의 결과적, 집단적 판정이 옳을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런 미지의 주제가 아니라면 이미 다른 이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남겨놓은 읽어야 할 연구들이 쌓여있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는 비판적 읽기가 필수적이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다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런 평가의 출발이 된 전제나 사유의 출발 지점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다가 애초 자신의 연구 가설을 수정하거나 아예 바꾸어야 할 슬픈 사태도 생겨나지만, 여러 관점과의 대결을 통해 애초 자신의 가설이 더 튼튼하게 자리 잡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를 통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가설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단계가 되면 어떤 논리적 과정과 체계를 통해 자기주장의 설득력을 높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논문의 목차를 세우는 것이다. 물론 목차는 논문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계속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논문의 구성 요소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과 아예 막연한 가설과 아이디어만 가지고 집필을 시작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목차는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토템’과도 같다. 그것이 없다면 불현듯 지금 자신이 와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는 낭패감에 빠질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이루어졌다면 이제 남은 건 본격적인 집필이다. 


알다시피 글이란 넘쳐흐르는 나의 아이디어도, 세상을 향해 반짝이는 빛을 발할 것 같은 나의 정념도 기어이 배신하고야 마는 다루기 쉽지 않은 야생동물이다. 특히 개념들은 내가 그를 발견하기 전까지 나와 무관하게 살아왔던 자신만의 역사와 의미를 갖는다. 그의 습성과 행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위에 올라타 사유의 밧줄을 마구 휘두르려다 기필코 낙마하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그를 내 곁에 끌고 오는 데 성공했어도 글을 쓰다 보면 그 개념들은 돌연 내 손을 빠져나가 애써 쓰고 있는 글의 흐름을 파괴하며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논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에 휘둘리다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리거나, 이미 손에서 빠져나간 개념의 빈 껍데기만을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Reflex>

 2004 Aluminum frames, polyester, piezo high-tone speakers,

 max/msp program, firewire soundcard 255×255×300cm 

Exhibition view of <anti reflex> at Schirn Kunsthalle, 

Frankfurt/Main, Germany 2005 

Photo: Uwe Walter Courtesy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  

 



미술 논문, 특히 작품 논문이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는 개념에 의해 작품의 개별성과 구체성이 질식당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지적했듯 “어떤 사태 그 자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것을 개념의 관계체계 가운데로 가져가서 그것에 짜 맞춘다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요소를 그것의 다른 것과의 내재적 관계 가운데서 인지한다는 것이다.(「형식으로서의 에세이」)” 작품 논문의 목표는 개념들의 매개를 통해 작품의 개별성과 구체성을 파악하려는 것이지 작품을 통해 특정한 개념의 유효성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품을 중심에 두고 개념들을 그리 끌어 당겨오려는 끈질긴 사유의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다음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더 훌륭하게 글을 쓰는 것은 동시에 더 훌륭하게 사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항상 전할 가치가 더 큰 것을 창안해내고 그것을 실제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 같은 책에서 니체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종이에 옮기는 사람은 비극적인 저자가 된다. 그러나 그가 고통스러웠던 것 그래서 이제는 기쁨 속에서 휴식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자는 진지한 저자가 된다”고 썼다. 논문이라는 글쓰기의 저자는 비극적인 저자가 아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논문의 저자는 고통스러워하는 걸 종이에 옮기지 않는다. 그가 쓰는 건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겪고 얻어낸 (잠정적인) 앎이다. 그는 기쁨 속에서 자신이 얻은 인식을 우리에게 말하는 진지한 저자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편의 논문을 보면서 그것이 나오기까지 치러야 했을 그 저자의 고통을 떠올려야 한다. 지금도 연구실 혹은 도서관에서 논문 쓰기의 고통을 겪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건투를!  

 


글쓴이 김남시는 서울대학교 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예술학 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베덴보리, 니진스키, 파울 슈레버 등 광인들의 텍스트에 드러난 글쓰기의 문제를 다룬 『광기, 예술, 글쓰기』(자음과 모음), 눈으로 본다는 것이 갖는 함의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인문서 『본다는 것』(너머학교) 등의 저서와 보리스 그로이스 『새로움에 대하여』(현실문화) 등의 번역서가 있다.



 

<The Hidden Cezanne>(2017.6.10-2017.9.24) 

전시 전경 Kunstmuseum Basel





Special feature Ⅱ-1

공공외교로서의 팝아트 1964-1967

● 이미경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 이메일 lmk21012148@gmail.com

● 추천인 계명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신채기 교수

 


한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면 예술은 한 나라의 문화 외교 영역에 포함되어 상대국가에 대한 한 국가의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도구이다. 1960년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공공외교에 대해 차츰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미국 해외공보처(U. S. Information Agency: USIA, 이하 해외공보처)가 탄생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공외교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예술이 가지는 공공 외교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박람회와 국제 전시회의 형식으로 널리 보급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추상 표현주의에서 팝아트로 전환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공공외교활동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추상표현주의에 집중되어 있는 데 반해 팝아트 연구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에 본 논문은 공공외교로서의 팝아트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박람회와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전시회에서 팝아트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졌고 팝아트가 보여주는 미국 이미지는 미국의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출품된 작품들에는 미국의 생필품에서부터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선전하고 싶은 국가 이미지들이 담겨 있었다. 이와 같은 공공외교 국제 전시회는 팝아트가 대세였던 1960년대 말까지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강한 힘으로 팝을 통한 미국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팝아트는 1960년대 미국 내에서 널리 유행한 미술 형태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1964년 ‘뉴욕 박람회(New York World's Fair, 1964)’와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Montreal World's Fair, 1967)’와 ‘상파울루 비엔날레(Sao Paulo Art Biennial)’에 초점을 맞춰 1960년대 박람회와 비엔날레 속 팝아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공공외교와 팝아트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위의 4개의 전시회는 미국 정부가 큰 예산을 들여 계획하고 시행했던 것이므로 집중적으로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본격적으로 국제 전시회에서 팝아트를 찾아보기에 앞서 Ⅱ장에서는 미국 팝아트의 출현과 특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해외공보처의 탄생과정과 함께 중요한 공공외교 도구로 작동하기 시작한 국제 전시회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 사이 브뤼셀, 몬트리올 등 다양한 곳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드러났다. 국무부에서 담당하다가 해외공보처로 이관된 세계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미술 전시회도 해외공보처와 협력기관에 의해 기획되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 박람회와 미술 전시회 모두 세계적으로 미국을 널리 알리고 미국의 권력을 과시하려는 수단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본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Ⅲ장에서는 먼저 국제 전시회에서 추상 표현주의 작품이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팝아트가 대두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958년 ‘브뤼셀 박람회(Brussels World's Fair, 1958)’ 미국관에서 열린 <17명의 미국 작가와 8명의 조각가(17 American Artists and 8 Sculptors)>전 회화 부분에는 추상 표현주의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브뤼셀 이후에 열린 1962년 ‘시애틀 박람회(Seattle Worlds Fair, 1962)’에서는 추상 표현주의 작품의 비중은 줄어들었고 이 작품들과 함께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작품이 전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64년에는 팝아트가 ‘뉴욕 박람회(New York Worlds fair)’와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뉴욕 박람회’에서는 뉴욕관 외벽에 걸린 10점의 대형 작품 중 무려 5점이 팝아트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미국관 대부분을 팝아트가 차지하였다. 국제 전시회에서 팝아트의 인기는 1967년까지 이어졌고 ‘몬트리올 박람회’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도 마찬가지로 팝아트 작품들이 전시장 대부분을 장식하였다. 특히 몬트리올에서는 추상 표현주의 작품이 완전히 배제되고 색면 추상, 옵아트, 미니멀리즘 등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작품들이 팝아트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전시장은 마치 거대한 팝아트 전시회같이 보였다. 출품작들에서는 성조기 같은 국가의 공식적인 상징물과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비롯한 대중 인기 스타, 유명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미국 영화 산업이 팝아트 작품 속에 반영되었다. 더불어 당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던 포드 자동차에서부터 코카콜라, 캠벨 수프 통조림 등의 식료품을 포함한 일상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당시 미국적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상징물들이 출품작에 대거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팝아트 이미지 속에는 다양한 상품들이 존재하여 적절한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수 있는 미국 사회를 반영하였고 이것은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동시에 선택권 없던 소련과 자연스럽게 대조를 이루었다또 포드 자동차와 코카콜라와 같은 거대 기업은 국제 자본을 미국으로 집중시키고 세계 경제를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들어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에 위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팝아트 출품작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미국의 대표 아이콘들은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미국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것은 당시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국적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정책을 시도했던 케네디 정부의 방향과도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이에 박람회와 비엔날레에 출품된 팝아트 작품에서 자동차의 대중화와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 소비문화, 매스미디어의 발달 등 당시 미국이 경제 강국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폭격과 핵무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작품 속에 포함되어 미국은 경제 강국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강국임을 선전하였다. 이것은 핵폭발 장면을 직접적으로 담으면서도 다른 이미지들과 병치시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으면서 달 탐사와 같은 우주 경쟁에 이어 군사적 경쟁에서도 미국 최대의 경쟁자였던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F-111>, 워홀(Andy Warhol) <토요일 사고(Saturday Disaster)> 그리고 리히텐슈타인(Furstentum Liechtenstein) <오케이 핫 샷(Okay Hot Shot)>에서 볼 수 있듯이 상파울루에서는 핵폭발, 사고사, 전투기 등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보다 부정적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해외공보처가 국가선전의 도구로 더는 팝아트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듯 1970년 ‘오사카 박람회(Osaka World's Fair)’ 미국관에서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얼음주머니(Ice Bag)>을 제외하고 팝아트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팝아트의 비중은 극도로 줄어들었다이에 팝아트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국제 전시회에 집중적으로 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났지만, 이것들은 예측 불가능하고 즉흥적이면서 주관적인 추상 표현주의에서 벗어나 역동적이고 현대적이면서 풍요로운 미국의 정체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주었다. 게다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려웠던 추상 표현주의와 달리 팝아트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여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용이하였다. 그 결과 팝아트의 이미지들은 기호로 인식되어 미국 사회에 대한 이미지를 직, 간접적으로 전달하였고 자유국가 사회로서의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냉전이 심화되고 있던 1960년대에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노력했으며 팝아트를 통한 공공외교활동에서도 공산화를 저지하고 자유주의를 강조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박람회와 비엔날레 속 팝아트가 비추고 있는 미국의 단편들은 미국을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선전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문화 분야에서도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Special feature Ⅱ-2

장소특정성 라이프로그에 기반한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망우동> 제작 연구

● 손윤지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상·콘텐츠디자인학과

● 이메일 yoonjison@gmail.com

● 추천인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박제성 교수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디지털 작업엔 전통적인 미디어와 비교되는 그 나름의 고유한 속성이 있다. 미디어는 인간 경험의 확장이라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말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현실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그것을 수신하는 방식을 바꾼다. 뉴미디어의 발전으로 등장한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방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여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Interactive Documentary)라는 장르에 대해 고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디지털 방식을 이용하여 개인의 삶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라이프로그(Lifelog), 작업과 장소의 관계성에 대한 미술 담론인 장소특정성(Site-Specific)의 성격을 지닌 <망우동>이라는 작업을 제시한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이 상호작용적인 특징을 이용한 서사와 마주하길 기대하는 것은 TV, 영화와 같은 린백(Lean-Back) 미디어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시네마에서 다루는 허구의 서사는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가 몰입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관객과 드라마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하며 무대 위에 존재하는 허구적 세계와의 경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랙티브와 서사에 대한 연구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와 함께 논의되고 있다.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의한 현실의 구성과 표현을 묘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웹 사이트를 마우스로 클릭하거나 멀티 터치 태블릿 화면을 탭 하여 미디어를 재생하는 등의 다양한 유형의 상호작용으로 다큐멘터리는 관람 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단지 영화 제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술 논쟁의 핵심이 된다. 궁극적으로 디자인 프로세스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최신 VR(Virtual Reality)의 등장과 “몰입의 전화(immersion turn)”는 충분한 연결성을 지닌다. 이는 체험적 스토리텔링과 대체 현실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가져왔고, 상호작용이 의미하는 바를 재구성하는 발단이 되었다. 허구의 서사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일면을 아카이빙 하고 제공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따라서 현실 세계의 정보에 접근하고 연결 짓는 새로운 방법으로 다큐멘터리가 논의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VR의 등장과 함께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맞지만,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다. 본 연구에서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디지털이 다른 형태의 아날로그 미디어와 결합, 체험하는 방식의 상호작용적 맥락에서 여러 플랫폼과의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공유한다. 선형 내러티브를 지닌 전통적 다큐멘터리와 디지털 비선형 내러티브 구조가 내재한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모두 우리가 살아가고 공유하는 세계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기본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 텍스트, 관객의 관점으로 다큐멘터리의 전반적 논리가 구성되는 반면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제작자, 사용자, 기술의 관점으로 논리가 구성되기 때문에 화이트로우(Mitchell Whitelaw)의 주장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확장으로 보는 것보다는 별개의 것으로 보고 발전시켜야 한다. 뉴미디어의 객체들은 각 파일이 서로 연결된 독립적 존재들의 ‘집합’이다. 선형 서사에서 촘촘히 계획된 내러티브의 구조는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에서 번번이 위협받고 심지어 변형된다.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선형 다큐멘터리보다 더 유동적이고, 계층화되고, 변경되며, 컷은 하나의 형태로 대체되어 분할된 여러 하이퍼링크로 구성된다. 본 논문은 전통적 다큐멘터리와 비교하며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가 가진 특징을 설명한다. 본 연구작 <망우동>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은 개인의 일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되고 공유되는지에 대한 연구인 라이프로그와 장소성이 예술에서 어떻게 이해되는가에 대한 담론인 장소특정성과 연결될 수 있다. 미디어와 기술의 관계는 우리 사회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문화와 표현 형식도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 다큐멘터리는 하나로 수렴되는 목적성을 토대로 한 기록이다. 디지털 센서를 통해 멀티미디어 아카이브로 저장되는 개인의 디지털 기록인 라이프로그는 한 가지 목적성으로 수렴되는 기록이 아닌 무작위적인 기록의 형태를 가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일기, 사진, 영화, 상태 업데이트, 트위터와 같은 다양한 형태를 사용하여 문서화하고 정리한다. 이렇게 포착한 순간들의 반영은 우리에게 삶의 사건들을 조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우리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 존재의 단편들을 일관된 내러티브로 만드는 것에 익숙해진다. 라이프로그 기술은 디지털 수단을 통해 삶의 역사를 보여준다. 뉴미디어 객체들은 대부분 일관된 선형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디지털 예술의 특징은 구조 내에 포함된 정보를 재구성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형성과 데이터베이스의 계층적 구조 사이의 긴장을 일으킨다. 본 연구작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Man With a Movie Camera)>(1929)처럼 산발적으로 수집된 일상의 데이터를 연구자의 주관에 의하여 서사화하고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작업이다. 예술가들은 빅 데이터에 대해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내비게이션 공간에서 데이터베이스 미학(database aesthetics)에 대한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 디지털 예술 담론에서 데이터베이스 미학은 데이터베이스의 논리를 모든 유형의 정보에 적용하고, 데이터 수집의 필터링과 시각화하는 미학적 원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 그 중,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로 수집되는 위상학적 정보는 데이터 시각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도의 제작(Cartography)에서는 정보의 제공 뿐만 아니라 시각적 예술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작 <망우동>은 기본적으로 공간에 관한 기록이다. ‘망우동’이라는 실제 공간에서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며GPS의 정보적 특성이 관객에게 중요한 정보로 제공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물리적 공간에서 더 나아가 더불어 볼노(Otto Friedrich Bollnow)의 체험하는 공간으로서 장소를 해석하고 가상 공간을 실제 공간과 상호 보완, 발전하며 공간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관계로 이해한다. 이러한 예술과 장소성의 특징을 가지고 데이터베이스를 시각적으로 외연화 하는 방법과 가상의 내비게이션 공간과 실제 내비게이션 공간을 연결하고, 그 관계를 디자인하여 하나의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망우동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경계가 되는 곳에 놓인, 도시의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이다. 서울에 하나뿐인 공동묘지가 있는 망우동은 ‘근심을 잃는다’는 의미의 망우(忘憂)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원류부터 죽음 및 무덤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는 동네의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연구자에겐 연구자 개인과 가족의 시간이 중첩된 장소이다. 이 공간에 대한 연구자의 작업은 2012년에 제작된 <망우리(Mangwoo-ri)>에 대한 연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작업 모두에서 망우동은 잊힌 기억에 대한 회상이며 부정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관객은 연구자가 기록한 마을의 이미지를 가상의 공간에서 마주한다. 작가의 의도는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시스템이 제공하는 상호작용적 대화로 대체되며 유동적인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 공간은 연구자가 관찰한 망우동의 면면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작품의 감상은 연구자 내면의 이해로 직결되지 않는다. 연구작은 감정의 교감보다는 망우동이라는 장소를 통해 자신과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연결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연구작의 시작은 개인적인 관심과 동네에 대한 애정이다. 하지만 개인이 일상에서 모은 정보는 웹 공간에서 공유되며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생산 주체들과의 교류와 새로운 만남의 장을 제공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다. 망우동은 다양한 구성원이 역동적으로 확장되고 여러 관점이 융합되면서 형성된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를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작은 사적인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고자 한다. 아직 정립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는 창작과 수용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은 물론 문화, 예술, 사회, 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할 수 있고 여러 플랫폼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개인의 작업과 연구를 통해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가 국내에 알려지고 그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본 연구작은 http://www.yoonjison.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Special feature Ⅱ-3

상실과 부재의 감정 그리기, 나의 드로잉과 판화 작업을 중심으로

 임재형 서울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과 판화전공

● 이메일 oz5150@hotmail.com

● 추천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임자혁 교수

 


이 연구는 내가 왜 일련의 모호한 감정에 반복적으로 이끌리는지, 그리고 그 이끌림의 발로가 왜 그림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이내 그 의문은 ‘그림을 통해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그림으로써 감정을 다루며’, ‘그것을 그린 그림은 결국 어떤 것이 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으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이 결국 ‘그림을 대하는 태도’, ‘작품의 제재와 주제’, ‘시각화의 방법론’에 관한 자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본문을 통해 앞선 세 가지 질문에 관한 연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순서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작업의 기반이 되는 그림에 관한 믿음에서부터 작품의 표면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탑을 쌓아 올리듯 작품론을 구조화해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대표하는 단어를 떠올림으로써, 즉 감정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을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감정이 복잡 미묘한 일종의 양상인 데 반해 이름이란 범주화된 하나의 개념을 지칭하는 기호일 뿐이므로, 결코 그것이 지시하는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무지개의 수많은 색이 단 일곱 개의 이름으로 손쉽게 분류되듯, 감정의 복잡 미묘한 양상 또한 언어화의 과정을 거치며 단순화, 일반화된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다른 구체화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림이 그러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그림은 어떠한 의도 아래 그려진다. 그러나 완결된 그림은 늘 작가의 의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영역을 품은 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그림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인식하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많은 선택이 즉흥적,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에 못지않게 많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선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림에는 의도에 따른 표현 뿐 아니라 다양한 비()의도적 흔적이 함께 담겨있게 된다. 헌데 이러한 흔적은 그것을 야기한 작가의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며, 나아가 무의식적 정황까지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림은 의도의 구현일 뿐 아니라 작가를 다층적으로 반영하는 총체적인 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은 주체의 감정 또한 담아낸다. 


또한, 그리기는 개념화를 수반하지 않는 구체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으므로 같은 단어로 묶이는 감정들도 그려지는 과정을 통해 모두 개별화된다. 즉 하나의 그림은 다른 어떤 감정과도 다른 ‘바로 그 감정’에 관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감정을 그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감정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주체의 내적반응이므로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 즉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것들 중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대상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일련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나는 그림의 소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는데, ‘타인의 무표정한 얼굴’과 ‘부재의 풍경’이 그것이다.


내가 그려온 인물들은 예외 없이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무표정을 이름을 얻지 못한 미세한 표정들의 집합으로 본다. 때로 그것은 너무도 미세하여 그로부터 읽어낸 감정의 기척이 그의 것인지, 혹은 그것을 보는 나의 심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즉 무표정한 얼굴은 불확실한 얼굴이다. 나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 하나는 그것을 나의 감정에 비추어 해석하려는 것이다. 이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그리듯 그들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나의 감정을 구체화하려 한다. 이러한 그림의 경우 미세한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기척을 섬세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서 무표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그리듯 그들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며, 화면을 뿌연 창문처럼 바라보고 그 너머에 있는 그들을 그림으로써 타자에 대한 일종의 거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물이 빠져나간 빈 곳이나 죽은 식물의 껍질, 과거에 그렸던 그림과 같은 소재들은 그 자신의 의미 있는 부분을 결여함으로써 부재를 환기하는 대상들이다. 나는 그것들을 상실의 경험과 관련하여 다룬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상실한 것을 직접 드러내는 것을 꺼리며, 동시에 부재를 환기하는 비유적인 대상들을 찾아 부단히 이미지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상실된 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연관된다. 


주체가 상실에 대처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애도’일 것이다. 즉 상실의 경험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해보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일상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체의 안정을 위해 상실된 것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애도가 일종의 기만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애도를 거부함으로써 상실된 것의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상실한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아와 동일시하는 ‘멜랑콜리(melancholy)’의 상태가 창작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멜랑콜리커는 상실한 대상을 상징화하지 못하는 이들이므로, 자신이 표현하려는 바를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 채 파편화된 비유와 에피소드를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게 작업은 상실된 것의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배회의 과정에서 마주친 사소하지만, 의미 있게 여겨지는 대상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즉 배회는 그림의 소재를 발견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상실된 것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지 않지만, 그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배회의 중심지를 바라보게 하는 방식을 통해 상실을 다룬다.


앞서 언급한 소재들을 그림으로 옮길 때 나는 속삭이듯 작고 낮은 어조를 통해 그것의 형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색이나 명도, 질감 등 대상이 지닌 다양한 대비를 제거하거나 원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줄여감으로써 아주 작은 시각적 차이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려내려 한다. 이는 무언가를 더해가기보다 오히려 빼내는 과정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림 대부분에서 색은 소거되며, 명도의 대비 또한 축소된다. 또한, 형상은 엷고 희박한 한 겹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그려진 대상은 무게감과 부피감을 잃고 실체 없는 형체처럼 희미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그것은 가볍고 연약한 것, 또는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얼굴을 그린 작품들에서는 형상의 윤곽을 모호하게 흐리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다.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본다는 것이 곧 그것에 대한 시각적인 앎을 의미한다면, 나의 인물화에서 끝내 해소되지 않는 시각적 불명료성은 곧 타자의 불가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판화의 유령상(幽靈像, ghost image)을 활용하거나 과거의 그림을 다른 재료와 크기로 다시 한번 옮겨 그리는 것과 같은 시도는, 이미 그려진 것의 명료성을 간접적 표현의 과정을 통해 약화(弱化)함으로써 특유의 희미함에 이르는 방식이다. 희미하게 그려진 것과 그려진 뒤에 희미해진 것은 명백히 다르다. 유령상의 경우 프레스를 거쳐 반복적으로 찍혀 나오는 외부적 공정에 의해 희미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므로 피동(被動)적 느낌이 강조된다. 즉 그것은 이미지가 점진적으로 결핍되어가는 과정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 과정의 끝에는 형상의 소멸이 있을 것이다. 이는 기억의 소멸,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을 연상케 한다. 


빠르게 그려낸 수성 드로잉을 연필로 천천히 옮겨 그린 ‘다시 그리기’의 경우 앞선 드로잉이 지닌 격정적이고 빠른 필치를 ‘지시’하되 정적이고 덤덤한 필치로 이를 다시 더듬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앞선 그림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지니고 있던 강렬한 표현성은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어떤 시점을 시간이 흐른 뒤 거리를 두고 반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과적으로 그림들은 현실과 닮아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세계를 보여주며 그 다름의 양상에 따라 다양한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자아낸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내가 느낀 특정한 심리적 거리가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리감은 또한 그와 관련된 여러 감정을 파생시킨다. 그것은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일련의 미묘한 감정으로, 특정한 어조로 드러나는 섬세한 이미지를 통해 구현된다.  

 



 

Special feature Ⅱ-4

거리영화의 발전과 분화, 근대적 형성 과정과 장르적 특성을 중심으로

● 이도훈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 이메일 mbc7980@naver.com

● 추천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김지훈 교수

 


도시는 영화를 낳았고, 영화는 도시를 담았다. 19세기 말, 영화의 등장과 함께 근대 대도시의 일상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였다. 영화의 탄생과 관련된 신화적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Auguste& Louis Lumiere), 영국의 루이스 르 프린스(Louis Le Prince), 독일의 스크라다노브스키 형제(Max&Emil Skladanowsky), 미국의 에디슨(Thomas Edison) 모두 당대 근대 대도시의 교통수단 또는 거리풍경을 찍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사 안에서 도시를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고유의 장르적 양식이 구축된 사례로는 바이마르공화국의 거리영화, 도시 교향곡, 네오리얼리즘, 필름 누아르, 시네마베리테, 도시 에세이영화 등이 있다. 이처럼 영화사의 다양한 사조, 장르, 작가, 작품들이 근대 대도시의 삶과 문화를 참조하거나 반영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영화의 본성이 도시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빚을 지고 있다는 선언적 주장마저도 가능할 것이다. 이 논문은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 동안 거리영화(street film)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본디 거리영화는 1920년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한시적으로 출현했다가 사라진 영화들을 가리키는 장르적 명칭이다. 이 시기의 거리영화는 대도시의 물질적 표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던 것은 물론 중간계급의 정신적 삶을 심리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거리영화가 근대 대도시의 삶에서 영화적 개념을 끌어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그와 유사한 시도가 영화사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 논문은 거리영화의 역사를 기원, 발생, 성숙, 분화, 혼합의 시기로 구분하고 시기별 거리영화의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도식적인 장르적 분류법과 보편주의적인 영화사 서술에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거리영화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기존 영화사의 특정 시기, 작품, 작가 등을 재조명하는 것이 이 논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거리영화는 근대 대도시와 영화의 구조적 친연성을 반영하고 있는 정신분산(distraction)을 영화적 개념으로 활용한다. 


사전적으로 정신분산은 주의산만, 방심, 오락, 기분전환과 같은 다의적 의미가 있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근대 산업화, 도시화, 기계화의 영향 속에서 인간의 지각 체계가 불안정해졌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정신분산을 통해 근대 대도시의 삶이 오락과 상품에 도취하는 경험과 그러한 경험 속에서 현실의 모순이 드러나는 각성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보기에 영화 또한 정신분산의 이중성, 즉 도취와 각성을 그 자신의 생산양식과 수용양식에 두루 적용한 매체였다. 거리영화는 영화사의 여러 국면을 통과하는 동안 도시적 경험과 영화적 경험을 관통하는 정신분산의 이중성을 각기 다른 정도로 구현하면서 발생과 성장을 거듭했다. 정신분산의 원리에 따르는 거리영화의 특징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거리영화는 몽타주의 원리에 따라 근대 대도시의 물질적 현실을 구성한다. 둘째, 오락 중심적인 거리영화일수록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완결성을 갖춘 서사를 통해 단일한 주제-도시화, 기계화, 산업화, 빈곤, 실업, 노동, 여성 등-를 다루는 데 집중하는가 하면, 사유 중심적인 거리영화일수록 대도시의 찰나적 인상과 우연적인 만남을 파편적으로 구성하여 도시에 관한 확장된 사유를 창출한다. 셋째, 거리영화의 확장된 사유는 근대화, 자본주의, 식민주의, 글로벌화, 도덕, 문명, 인류와 같은 거시적인 주제와 함께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관한 비판적 인식을 포함한다. 거리영화는 영화사의 주요 시기마다 각기 다른 장르적 양식을 지향했지만, 항상 근대 대도시와 영화에 관한 경험과 사유를 매개했다. 거리영화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거리영화가 등장하기에 앞서 대도시의 삶에 개입한 사례로 거리 사진이 있었다. 거리 사진 또한 고유의 장르적 역사와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대체로 대도시를 공적으로 기록하는 리얼리즘적인 사진과 대도시의 거리를 통해서 작가의 주관성을 표출하려는 조형적인 사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리영화에 앞서 거리 사진이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빈곤, 주택, 위생, 여성 문제 등-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제이콥 리스(Jacob Riis)는 19세기 뉴욕 빈민가의 사진들을 찍고 그것을 기초로 글쓰기, 슬라이드 쇼 강연, 책 출간 등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대도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전환을 유도해낸 바 있다. 초기 거리영화는 영화의 탄생과 그것의 산업적 발전 과정에서 자신의 장르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초기영화는 무언가를 말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데 그 초점을 맞춘 전시적인 매체였다. 이는 시각적 바라보기 그 자체만으로 관객의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뜻에서 어트랙션 영화(cinema of attraction)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침체와 관객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초기영화의 어트랙션은 그 매력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산업은 다방면에 걸쳐 영화를 체계화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 상업 영화의 장르적 규범과 표준이 구축된다. 초기 거리영화는 멜로드라마, 코미디, 범죄-스릴러의 장르적 특색들을 수용하여 점차 그 자신의 장르적 기초를 닦는다. 이후 미국 영화산업에 필적할 수준으로 성장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영화계에서 거리영화는 더욱 발전된 장르적 양식을 구축한다. 당시 바이마르공화국의 영화는 표현주의, 실내극, 거리영화 등의 다양한 장르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간에 경합을 벌이고 있었는데, 기존의 표현주의나 실내극과 달리 거리영화는 대도시의 물질적 표면과 그 대도시를 살아가는 중간계급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와 같은 바이마르공화국의 거리영화는 영화사에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미국 필름 누아르에서 나타나게 될 장르적 양식의 기초를 제공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적인 특색을 혼합한 아방가르드적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상업영화 진영을 중심으로 거리영화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동안 상업영화의 표준화된 질서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거리영화가 상이한 장르적 성향으로 분화되면서 동시에 혼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우선, 1920년대부터 조형 예술 영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받아 영화라는 매체 특유의 시각성, 운동성, 조형성을 강조한 영화들이 출현했다. 이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도시의 현실을 리드미컬하게 재구성한 도시 교향곡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진다. 도시 교향곡은 몽타주 기법의 충격적인 시각효과와 리드미컬한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대도시에 대한 대중적인 감각과 인식을 바꾸어 놓으려 했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성향을 가진 거리영화의 제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특히 누벨바그, 네오리얼리즘, 시네마베리테로 대표되는 모던 영화 중에는 문학의 에세이가 그러하듯이 연출자의 주관성을 직접 표출하면서, 극영화, 다큐멘터리, 아방가르드의 장르적 횡단을 추구하는 에세이영화(essay film)가 있었다. 에세이영화의 하위 장르인 도시 에세이영화는 확장된 사유를 통해서 도시적 문제에 접근했다. 이 부류의 영화들은 도시 내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 찰나적 인상에 대한 단상을 확장해 도시적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관해 성찰하기도 했다. 더불어 도시 에세이영화는 영화의 매체적인 특이성에 대한 연출자의 사유를 반영하여 궁극적으로 거리영화가 사유의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거리영화는 대도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대도시의 거리는 삶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이 만나고, 접속하고, 충돌하는 지극히 영화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해, 거리영화는 도시의 역사와 영화의 역사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다. 흡사 오래된 도시의 역사적 흔적들처럼, 거리영화의 가치는 스스로 소멸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논문, 다시 담론으로Ⅱ ②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게시물이 없습니다

WRITE LIST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