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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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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7 – 2018.5.15 세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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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들



제목에서부터 ‘전시’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하는 전시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은 전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큐레이터 이양헌은 전시에 대한 물음을 전시로 답하기로 하며, “전시와 전시가 아닌 것, 전시일 수도 있는 것 혹은 전시가 되고자 하는 것을 모아 혼성화하고 그 안에서 큐레이터들을 위한 일종의 임시적인 무대를 가설”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가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은 전시라는 용어가 문제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전제한 질문이다.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은 문제적인 용어 ‘전시’를 수면 위로 건져 올리며 스스로 문제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렇다면 전시는 비단 오늘날에 새롭게 부상한 문제적 용어일까? 전시를 문제 삼는 순간, 전시가 문제시되었던 과거 사례들이 함께 딸려 올라온다. 그렇게 되면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전시에서 옆길로 새 물꼬를 튼 특정 전시들을 회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글에서 살펴볼 몇 개의 전시는<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을 기획한 이양헌의 물음에 선행한 여느 큐레이터의 물음이기도 하고, 이미 한차례 앞서 시도한 실험이기도, 어쩌면 이 전시를 관람한 관객의 반응 또는 경험과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전시들은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의 이해를 돕는 도움닫기가 될 수도 있고, 전시를 관통하는 날카롭고 적확한 화살이 될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큐레이터 세스 시겔로브(Seth Siegelaub)는 전통적인 전시 형식에서 벗어나 미술이 보일 수 있는 다른 문맥과 환경을 모색하며 전시의 몸체로 책을 사용해 몇 개의 전시를 기획했다. 시겔로브는 그 첫 시도로 <Xerox Book>(1968)을 기획했다. 그는 <Xerox Book>에서 7명의 작가에게 표준 사이즈의 종이 사용, 25쪽의 동일한 분량, 전시의 형식에 대한 생각을 작업으로 풀어낼 것, 이 세 가지를 전제로 전시의 조건들을 표준화함으로써 최종 결과물이 정확하게 각 작가의 작품 내용으로 귀결되기를 기대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July/August 1970>(1970)에서 6명의 비평가를 초대한 뒤 잡지 『Studio International』에 각각 8쪽 분량의 섹션을 하나씩 주며 전시를 기획하도록 했다. 참여 비평가 중 한 사람이었던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작가들을 초대해 다른 작가를 위한 큐레이터 역할을 하도록 지위를 부여했고, 리파드의 실험은 시겔로브가 꾸린 실험적 전시에 완전히 부합하는 동시에 이를 역전시키는 기획이 되었다. 시겔로브가 전시 매체를 두고 실험을 벌이고서 몇 년 뒤, 1972년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은 ‘도쿠멘타5 (Documenta5)’의 총감독을 맡았다. 





‘예술: 어쩌면, 그건 정말 취향의 문제

(Art: Perhaps, it’s so much a matter of taste...)’ 

전시 전경(큐레이터: 장진택)




제만이 기획한 이 전시는 그가 보다 앞서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와 더불어 전통적인 전시와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획 방식을 제시한 전시가 되었다. 제만은 독립 큐레이터라는 상을 촉발시키며, 큐레이터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질문을 함께 끌어냈다. 한편 ‘도쿠멘타5’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이었던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은 이 전시가 작가를 위한 전시가 아닌 큐레이터 중심의 전시라고 비판하며 「Exhibition of an exhibition」(1972)이라 제목 붙인 짧은 글을 해당 전시 도록에 싣기도 했다. ‘도쿠멘타5’가 열리고 30년 후,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감독을 맡은 ‘도쿠멘타11(Documenta11)’(2002)은 상영된 영상의 길이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 


100일의 전시 기간 동안 관람할 수 있는 분량을 초과하는 길이의 영상들이 상영되며 관객은 전시 관람 전부터 전시를 다 볼 수 없음을 전제 조건으로 떠안게 되었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앞선 ‘도쿠멘타11’의 사례처럼 최근 전시에서 발견되는 경향으로 영화적 작업의 상영 시간과 관람 주체의 위치를 문제 삼았다.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영화적 시간의 증가는 전시를 판단하는 주권자로서 관객이 가졌던 판단의 우위를 폭파한다.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는 관객은 방대한 분량의 작업이 내포하는 의미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전시를 장악할 수 없게 되고, 전시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 또한 동시대 미술관에서 관람되는 전시의 경험이 전통적인 미술관 혹은 전시의 틀 안에 포섭될 수 없음을 인지했다. 관객은 미술관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이벤트의 연쇄 중 어딘가에 위치한다. 관객의 시선은 전시의 일부만을 경험하게 되고 전체 풍경을 아우르지 못하게 되면서 전시의 주도권을 잃는다. 또한, 전시의 부대행사로 꾸려진 각종 강연과 퍼포먼스, 워크숍이 난무하는 전시 환경 가운데 어디까지가 전시이고 또 아닌지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관객은 전시의 전체를 경험할 수 없으며 수많은 연쇄망 가운데서 특정 부분만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짚어본 몇 개의 전시들은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으로 향하는 어떤 ‘도움닫기’이자, 어떤 ‘화살’인가? <Xerox Book>과<July/August 1970>에서 작가 또는 비평가들에게 제시한 ‘전시 조건의 표준화’는 이양헌이 6명의 개별 큐레이터에게 동일한 전시 조건을 제안하며 서로 다른 전시를 펼치길 기대한 맥락과 유사하다. 또한 ‘도쿠멘타5’에서 총감독이 작가-큐레이터(author-curator) 혹은 전시 작가(exhibition author)의 위치에서 전시를 꾸린 것처럼, 이 전시 또한 개별 작가의 작업보다도 특정 큐레이터와 그의 기획의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영상 작업의 상영 길이로 논란이 된 ‘도쿠멘타11’과 같이, 전시 전체를 보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나타난 전시 관람 경험의 문제는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에서도 발견된다. 총 길이 20시간을 넘어서는 50여 점 영상 작업을 이틀간 상영한 ‘24시간 스크리닝’과 6일의 짧은 기간 동안 매일 바뀌는 전시를 다 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저리 타임(Injury Time)’ 전시 전경

(큐레이터: 권혁규)




전통적 의미의 전시로 포섭될 수 없었던 과거 새로운 전시 유형의 등장과 실험, 전통적인 전시 관람 경험에서 빗겨나간 전시를 이루는 변화된 조건들을 짚은 앞선 전시들은 오늘날에 다시금 묻게 되는 “전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유의미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전시라는 단 하나의 용어가 가진 복수(複數)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같은 이름으로 너무도 다르게 존재하는 동시대 전시의 범람을 말이다. 사전에서 ‘전시’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뜻은 여전히 업데이트되지 않지만, 변함없이 이 사전적 단어에 꼭 들어맞는 전시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사전적 의미로 설명되거나 수렴되지 않는 전시들이 있다. 복수(複數)의 전시가 함의하는 또 다른 맥락에서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은 홑화살괄호로 묶은 단 하나의 전시가 되기도 하고, 홑화살괄호를 푸는 순간 퍼져 나오는 6개의 서로 다른 전시가 되기도 하고, 또 50여 개에 달하는 영상 작품 각각의 상영을 개별 전시라 할 수도 있다. 전시의 수렴과 확산은 순서 없이 일어난다. 전시는 하나의 이름이었다가 다수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또다시 하나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 다종다양한 ‘전시들’ 모두가 ‘전시’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 용어가 문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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