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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V가 4년간 준비한 끝에 선보인 <Baldessin/Whiteley: Parallel Visions>은 호주 예술계의 두 거물, 조지 발데신과 브렛 화이트리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한 전시로, 이들의 유사점을 끌어내고자 한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 의미를 둔다. 1939년, 같은 해에 태어난 발데신과 화이트리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적이 있고 호주 예술가들이 동경하던 런던에서 이십 대를 보내며 경력을 쌓았다. 예술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늘 화제가 되었던 이들은 예기치 않게 일찍이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발데신과 화이트리의 공통점은 예술적 세계관에서 더욱 많이 발견된다. 둘 다 추상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표현주의자였으며 대중문화, 아방가르드, 실존주의적 관념에 매료돼 있었다. ‘성적 욕망, 위태로운 삶, 분리된 자아’ 등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면서 이를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지만 클래식한 소재인 ‘누드’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라서 독특한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매체를 사용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내러티브를 작품에 담아낸 두 이야기꾼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시대를 축약한 예술을 창조했다고 평가된다. 

발데신은 1960년대 멜버른에서, 화이트리는 1970년대에 시드니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며 각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본 전시에는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명예교수 사샤 그리신(Sasha Grishin)이 초대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그리신은 화이트리에 상응하는 작가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발데신을 선택한 것에 대해 "두 작가를 동등하게 평가할 수 없지만, 그동안 과소평가되었던 발데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두 작가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개인전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이례적인 시너지 효과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신은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행보를 보여준 이들의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대표 연작, 추상회화, 누드 등 특정한 테마에 따라 구분했다. 

Brett Whiteley <Sacred baboon> 1975 Brush and ink, wood stain,

 watercolour, gouache and cut printed colour illustration 

on cardboard 81.6×67.6cm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Purchased, 1978 (A23-1978) ⓒ Wendy Whitele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희귀작을 포함하여 12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테스 에드워즈-발데신(Tess Edward-Baldessin)이 수십 년 동안 보관 중이던 발데신의 그림과 판화가 전시를 위해 복원되었는데 그리신은 이를 두고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이라고 극찬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로는 발데신의 <Pears>(1971-1972)와 ‘MM of Rue St Denis’ 연작(1976), 화이트리의 ‘크리스티(Christie)’ 연작(1965)과 <The American Dream>(1968-69) 등이 손꼽힌다. 

유럽의 전통과 철학을 작품에 반영했던 발데신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형이상학 예술 전통에 따라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조각을 만들곤 했다. 그 대표작인 <Pears>는 다섯 점의 대형 배 조각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세 점은 호주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에 있는 원작의 주조법을 따라 새로 제작되었다. 각각의 청동 조각상이 개별적인 이야기를 지닌 독립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이 하나로 합쳐질 때 가족 초상화처럼 보인다거나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처럼 보이는 등 또 다른 인간의 형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즉 <Pears>는 관람자의 상상에 의해 무궁무진하게 해석된다. 

화이트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양면성을 파고들었던 발데신은 ‘MM(Mary Magdelene) of Rue St Denis’ 시리즈를 통해 ‘거리의 소녀’와 ‘성녀’ 사이의 모호함을 드러냈다. 해골을 들고 있거나 에로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성의 누드는 파리의 생 드니 거리에서 일하던 소녀라고 알려졌지만 제목이 암시하듯이 성녀의 또 다른 모습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화이트리의 경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크리스티 시리즈’는 1940-50년대 영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범죄자의 심리와 정신세계에 호기심을 품고 시작한 이 연작은 아내를 포함하여 약 8명의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악명 높았던 영국의 살인마 존 크리스티(John Christie)와 그 희생자들을 그린 것으로 흡사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George Baldessin <Personage and factory smoke> 1974

 Etching and aquatint printed in black ink,

 and stencil printed in brown inks 60.5×76.3cm (plate) 

69.0×89.5cm (sheet) Edition of 25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Gift of William Peter Kerr and Edwin James Schefferle, 

2015 ⓒ Estate of George Baldessin  

화이트리 일생일대의 대작 <The American dream>은 베트남 전쟁 당시 뉴욕에 머물며 미국의 상황을 벽화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업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사이즈 때문에 미국에서는 한 번도 전시되지 못했다. 그가 호주로 돌아온 이후에도 작업 전체가 전시된 적은 없었고 작품 일부만 몇 차례 전시되곤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전에 화이트리가 구상했던 원형 방식으로 최초로 전시된다.  <Baldessin/Whiteley: Parallel Visions>를 통해 발데신과 화이트리의 작품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작업 방식이 이들의 명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데신 조각이나 회화 대신 판화 제작에 몰두해 자신의 경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화이트리는 대형 회화 작업을 고수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꾸준히 주목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29살에 미망인이 된 테스 에드워즈-발데신은 자신이 예술계와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발데신이 사후(死後)에 각광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20대부터 함께 예술가로 활동한 웬디 화이트리(Wendy Whiteley)는 남편의 작품을 관리하는 데 헌신하면서 각종 전시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화이트리가 예술적 명성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리신은 발데신과 화이트리를 마티스(Henri Matisse)와 피카소(Pablo Picasso)의 유명한 경쟁에 비유한다. (물론 화이트리와 발데신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경쟁자는 아니었다.) 지난 30년 동안 마티스와 피카소를 함께 기획한 전시가 많았다면 이제는 발데신과 화이트리의 차례가 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고유한 시각 언어를 발명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비전을 창조한 두 예술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