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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로스트 헤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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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Lost Heritage

문화 유적지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포함해 두 차례의 세계 전쟁과 중동 지역에서의 크고 작은 분쟁으로 이미 우린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잃어버렸다. 이 밖에도 사람의 욕심이나 실수, 혹은 의도적인 악행으로 인한 유실도 숱하다.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옛것을 그대로 재건하지 못한다. 설사 똑같이 만들었다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이미 그 안에 담긴 역사는 유실됐는데. 이제 역사 속 희미해진 이들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 기획·진행 정송 기자

Notre-Dame de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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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건설된 신전 파르테논(Parthenon)은 고대 아테네의 수호신이었던 아테네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추정된다. 특히 파괴되기 이전 상태의 신전, 옛 파르테논(Older Parthenon)은 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거둔 승리에 대한 감사를 바탕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기원전 489년 페르시아 제국에 파괴될 때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이후 둘레에 기둥을 둘러싼 형태(peripteral)의 새로운 신전은 다른 그리스 신전과 마찬가지로 국가 금고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의 금고로 사용된 점에서 특별하다. 이곳의 기초는 거대한 석회암으로 만들어졌고, 기둥에는 펜텔릭 대리석이 사용되었다. 기둥 양식은 도리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파사드에 8, 옆면에 17개의 기둥을 세워 9:4의 비율을 만들었는데, 이는 기둥과 높이 사이의 간격처럼 건물의 수직과 수평 비율뿐만 아니라 파르테논 곳곳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비율이다. 신전 본체인 켈라(cella)는 다른 신전에 비해 면적이 무척 넓다. 이는 아테네의 큰 동상을 수용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Angkor Wat, Cambodia © Ginger Wang 





앞쪽과 뒤쪽 현관(porch)은 다른 그리스 신전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지어졌다6개의 도리아 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가운데 정면과 뒤쪽 현관을 받치고, 23개의 작은 도리아 기둥이 2층으로 된 대장간이 동상을 에워쌌다. 이 신전의 조화로운 비율, 정밀한 건축, 그리고 실제와 같은 조각품들은 수천 년 동안 기념되고 모방되어 왔다. 그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은 이 시기 아테네에서 건국된민주주의 기념물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6세기에는 성모 마리아를 위한 가톨릭 성당으로 바뀌고 1460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이후에는 모스크와 첨탑이 세워지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가장 심각하게 파괴된 건 1687년 튀르크-베네치아 전쟁 때 일이다. 신전 안에 쌓아둔 오스만 튀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 군의 폭격으로 폭발하며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1806년 영국의 토마스 브루스(Thomas Bruce), 엘긴 백작이 오스만 제국에 허락을 구한 뒤 파르테논의 일부 조각을 떼어 갔고, 1816년 런던 대영박물관에 매각해 지금 그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현재까지 수많은 학자가 이곳의 원래 상태를 디지털로 복원해보고, 부서진 파편들로 재건할 수 있는지 논의를 이어왔지만, 결국 원형으로 다시 만들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설상가상으로 100여 년 전 거쳤던 한 번의 보수공사에서 사용된 쇠못의 부식으로 인해 북쪽의 기둥들이 갈라져 붕괴 위험에 처한 바람에 1990년대 이를 티타늄으로 교체하는 대대적 공사를 진행했던 바 있다유럽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중동을 대표하는 고대 건축물로는 지구라트(Ziggurat)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주요 지역마다 이 지구라트가 세워졌다


사실 지구라트는 신전이 놓이는 기단을 일컫는 말이다. 이 문명에서 기단의 높이와 크기가 상식을 넘어선 규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지구라트라는 별도의 이름이 붙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기후적 특성과 강의 빈번한 범람, 또 잦은 전쟁으로 인해 건축 환경이 좋지 않았는데, 네오 수메르, 즉 우르 제 3왕조 시기 문화 부흥을 도모하기 위해 문화, 건축에 많은 힘을 쏟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던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지구라트인 셈.  





Remains of zuggurat Chogha Zanbil & temple of Elamite god Kiririsha, Shush, Iran Complex is no.1 object in 

UNESCO List in Iran One of most ancient & attractive tourist sites in Khuzestan province 

 




지어진 지구라트 가운데 우르에 세워진 것이 가장 인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이는 현재 이라크의 바빌론 지역에 위치했다. 지구라트는 햇빛에 잘 말린 벽돌(sundried brick)을 역청으로 바르고, 갈대나 밧줄로 매트 감(matting)을 함께 쌓아 완성됐다. 이후 내후성을 위해 가마에 구운 벽돌로 외벽을 만들었다. 직사각형 모양을 기반으로 지구라트는 일련의 계단식 플랫폼에 안쪽으로 기울어진 벽으로 솟아올라 꼭대기에 있는 높은 신전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면과 양 측면에 있는 3개의 길고 긴 계단이 지구라트의 특색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현재 이곳도 인간의 욕심과 정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지구라트뿐만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성벽과 많은 문화재가 파괴됐으며,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주둔한 미군과 지역 도굴꾼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해를 입었다. 하지만 지구라트가 직접적인 폭격으로 인해 무너진 소식은 2016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는 많은 학살과 더불어 대체할 수 없는 고고학적 유적지의 파괴를 일삼았다. 당시 이라크 북부의 고대 아시리아 도시인 님루드에 2,900년 된 지구라트를 포함한 유적지들이 파괴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IS가 문화파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지구라트가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2015 4월에도 고대 도시 님루드에 있는 아슈르나시르팔 2(AshurnasirpalⅡ)의 궁전을 쇠망치와 드릴로 공격한 뒤 폭파한 바 있다. 이렇듯 ‘IS’라는 반인류적인 집단과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인류 4대 문명지로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화유산이 복구 불가한 상태로 무너지고 있다. 이곳의 완전한 모습을 앞으로는 사진으로 밖에 고증할 수 없는 점이 모든 이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숭례문 사진 제공: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이제 우리나라로 넘어 와보자. 아마 많은 독자가유실된 문화 유적지란 주제를 봤을 때 이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테다. 바로 국보 1호인 숭례문. 숭례문은 태조 5(1396) 짓기 시작해 태조 7(1398) 완성했다. 이후 세종 30(1448)에 고쳐 지은 기록이 있고, 성종 10(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음을 1961-1963년 이뤄진 해체 수리 당시 발견한 바 있다. 서울에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던 숭례문의 1층 문루는 석축으로, 2층 누각은 목조 건물로 지어졌다. 지붕은우진각지붕형태라고 불리는 사다리꼴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 다포 양식으로 채워져 조선 전기의 건축 양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2008년 한 노인의 분풀이로 인해 처참하게 타버린 숭례문을 보며 우리는 모두 착잡한 마음에 가슴을 쳤다. 당일 저녁 8 40분 숭례문 2층에 붙은 불은 2 11 0 25분경까지 타올라 2층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화재 4시간 만에 지붕 뒷면이 붕괴하기 시작해,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었다


숭례문을 복구하는데 총 1916, 5 3개월이 걸렸다. ‘복원이 아닌복구로 규정한 이유는 당시 숭례문 복구자문단 기술위원장 박언곤 교수의 말을 빌리면소실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013년 복구된 숭례문은 이전과 많은 부분 변모했다. 기존에 없던 성곽이 좌우로 각각 16m, 53m 함께 복원됐으며, 용마루의 길이 역시 1.1m 길어지고, 동쪽 계단 폭 역시 2.9m에서 5m로 늘어났다. 이 밖에도 잡상의 개수, 기와, 마루 등의 형태와 재료가 고증을 통해 수정됐다. 많은 이의 관심을 받은 현판은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가 소장하고 있는 숭례문 현판 탁본 자료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 촬영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을 토대로 바로 잡았다고 한다. 홍예 아치에 그려진 용 그림 역시 조선 전기 문양을 참고해 새로이 그려 넣었다. 하지만 이렇게 옛 모습인 듯 아닌 듯 우리에게 다시 공개된 숭례문 성벽은 벌어지고, 기둥은 갈라지며, 단청 군데군데가 벗겨지는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복구된 숭례문이 국보로서의 가치를 여전히 지님은 틀림없다. 그러나 복구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점과 복구 이후에 발생한 문제점들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Notre-Dame de Paris, France © Loic Salan

 




전 세계인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지켜봤던 지난 4월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의 화재 사건. 노트르담 대성당은 6세기 지어진 바실리카를 대체하기 위해 1163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1250년경 완공된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먼저 성가대석(choir)부터 시작해 신랑(nave)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중 성당 구조에 대한 수정이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노트르담 대성당 역시도 12세기 오리지널에서 변화된 모습이다. 높이는 바닥에서부터 아치형 지붕(vaults)까지 110ft에 이르는 거대한 성당이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자연광을 들여오기 위해 신랑에 클레어 스토리지(clerestory),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플라잉 버트레스를 활용했는데, ‘장미 창이 단연 가장 유명할 것이다


특히 1260년에 만들어진 남쪽의 창은 직경이 13m이며 84개의 유리 패널로 이뤄져 규모 및 예술적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화재 사건으로 인해 노트르담의 첨탑과 중심 부분이 소실되었다. 성당 내부 수많은 문화재급 보물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건물의 붕괴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이를 잃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의 귀추가 주목됐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프랑스의 보물이라 일컫는 가시 면류관(The Holy Crown of Thorns), 에마뉘엘(Emmanuel), 십자가 조각, 석조 각상 등 다수는 불길에서 건졌지만, 스테인드글라스와 장미 창 등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 철학가, 문학가에 영감을 준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는 현재 10년에서 길게는 40년까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담긴 역사적 가치를 여전히 보존하며 복원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앞서 언급한 4개의 문화유산 외에도 캄보디아의 사원 앙코르와트,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등과 같이 많은 유적지가 사람들의 손길에 몸살을 앓거나, 내전이나 전쟁에서의 폭격으로 유실되었다. 이는 우리의 무관심과 무심함으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문화를 선도하는 것 역시 발전을 위해 무척 중요하지만, 수천 년간 인류가 존재하며 쌓아 온 지식, 기술의 축적물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는 것을 21세기를 나아가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의 베이스로 삼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래야 우리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 역시도 현재 우리가 이룩한 것의 가치를 기반 삼아 앞으로 나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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