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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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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4 - 2021.1.31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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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고장(故障)의 유물



백남준아트센터의 이번 전시 제목 ‘현실 이상’이란 제목을 보고 흔히 보던 말이라며 무심코 지나쳤다면 보라고 써놓은 글자에 속은 것이다. 한글 제목 옆에 적어 놓은 영문 제목이 ‘Reality Errors’, 즉 현실 이상(異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플렛을 보면 그 ‘이상’이란 말에 이데아를 뜻하는 이상(理想)이란 말도 적어두었다. ‘현실 이상(以上)(Over the Reality)’의 세계,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理想的) 현실이란 현실의 이상(異常)에서 온다는 전언을 위해 세 겹의 동음이의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세 겹의 ‘이상’이 문제화되는 지점은 기계와 인간이 접속되는 곳이다. 알다시피 이상(異常)이란 불편하고 못마땅한 사태, 비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사태를 표시한다. 기계와 인간의 사이에서 진행되는 사태들이라면, 그 말은 약간 축소하여 ‘고장’이라고 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고장 없이 계획된 대로, 정상성의 틀 안에서 사태가 진행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계적인 것 아닐까? 인간이란 계획해 놓고도 거기서 벗어나는 존재자고, 정상에 아무리 가두려 해도 이탈해버리는 자들이니까. 반면 애초에 설계된 대로,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우리는 ‘기계적’이라고 명명하니까. 생명의 본질과 인접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창발(emergence)’이란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어떤 ‘질서’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때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고장 없는 기계들에 반(反)한다. 그러니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장 없는 현실야말로 인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고장’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상(以上)’은 이상(異常)과 이상(理想) 사이에서, 상반되는 색조의 하늘을 오가고 있다. 기계의 창조성과 고장한 인간세계 사이에서 인간의 반응은 동요하고 있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표상하는 고장 내지 이상(異常)을 키콘셉트로 하는 이 전시에서 우리는 다시 이런 동요를 작품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아메리칸 아티스트(American Artist)의 <2015> (2019)가 뉴욕 경찰이 도입해 시험하고 있는 예측 순찰시스템을 통해 기계에 포획된 인간의 편향성과 그것이 정상적 질서가 될 때 발생하는 이상한 삶을 고발한다면, 웨슬리 고틀리(Wesley Goatley)의 <기계 신들의 목소리>(2020)는 애플의 시리와 아마존의 알렉사의 ‘은밀한’ 대화를 ‘녹취’하여 과거의 신을 기계 신들이 대신하는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불편함과 불길함의 정서가 지배적인 감응이 감지된다. 현실 속으로 바짝 다가온 자율주행차가 예상되는 이상, 즉 사고에 대해 대처하는 상이한 경로를 ‘결정트리’식 프로그램으로 분류하여 보여주는 매튜 케루비니(Matthieu Cherubini)의 <윤리적 자율주행 자동차>(2013-2017)는, 고지식할 만큼 직설적으로 인명, 보호, 이익이라는 가치를 대비하여 이상(異常)과 윤리의 갈림길을 가시화해준다는 점에서, 비록 나름의 유머를 구사하고 있기에 같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유사한 방향의 감응을 담고 있다.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올라갔다가 죽은 개에 대한 디지털 추모비라고 할 수 있는 김세진의 <전령(들)>(2019) 역시 유사한 방향에 있는데, 비극적 파토스를 디지털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가장 무겁고 엄숙해 보인다.




아메리칸 아티스트 <2015> 

2019 싱글채널 비디오 21분 56초




반면 양숙현의 (2020)은 기계의 눈으로 인간을 보고 그들이 이상하다 느끼는 세상을 본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기계만큼 반복적인 인간의 동작들은 기계적으로 포착된 세계의 이미지와 그럴듯한 정합성을 갖는다. 그로테스크하지만 익살스런 감응은, 적어도 기계가 그 정합성을 긍정적 시선을 보고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업체eobchae가 제공한 네 편의 작품은 모든 것이 정보화된 시대, 생명조차 신체적 물질성을 떠나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생식과 섹스, 가족의 디지털화를 상상한다. 그 상상 속에서 생식과 섹스의 신체성은 시대착오적 감응이 되고 아직도 그 촌스런 감응을 찾고 있는 ‘후손’에게 충고하는 디지털 선조의 말에선 어느새 초월자의 어조가 느껴진다. 또 하나의 기계신이 이렇게 존재함을, 그 옆 부스에서 대화를 하며 자신들이 신이 되었다고 믿는 시리와 알렉사는 알고 있을까? 물론 신체 없는 섹스에 대한 상상 밑에서 영혼의 관념론을 대신하는 정보의 관념론을 발견하는 이라면, 그보다는 차라리 시리와 알렉사의 쌍둥이-나르시스적 신학이 과로사하는 택배기사들의 망각 덕에 가능하다는 점을 애써 들추어내리라 싶긴 하지만 말이다.

김윤철의 <트리엑시얼 필라스 II>(2017-2020)와 <아르고스>(2018-2020), 정승의 <프로메테우스의 끈 Ⅶ>(2020)은 고장으로서의 이상(異常)을 정보화된 시선보다는
 물질적 신체성 속에서 긍정한다는 점에서 이와 다른 방향을 향해있다. 정승의 작품은 생명과 기계의 경계, 아니 단백질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진 이후 양자의 융합을 사고하는 하나의 경로를 택했지만, 그것을 연결하는 것은 정보화된 생육조건이란 점에서 일반화된 정보이론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반면 김윤철의 작품은 아름다운 금속입자의 흐름을 통해 생성되는 새로운 신체의 가능성을 가시화하는데, 생명이란 핵산 이하의 입자들이 액체적 흐름 속에서 우발적으로 만나며 생성된 것이란 점을 안다면, 금속입자들의 저 흐름은 기계와 생명을 아주 근원적 깊이로 끌고 내려가는 힘을 갖는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말하는, 그러나 그가 사용한 것과는 좀 다른 의미의 ‘생동하는 물질’을 여기서 본다.

박혜수의 <퍼펙트 7>과 차오 페이(Cao Fei)의 <아시아 원>(2018)에서 우리는 이런 ‘신체성의 유물론’과 다른 ‘연결망의 유물론’을 본다. 박혜수는 흔히 비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가족형태를 증식시키는 방향으로 밀고나가 다른 관계, 다른 연결망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다른 연결망은 다른 사회, 다른 세계인 것이다. 차오 페이의 작품은 좀 더 강한 의미에서 ‘연결’에 대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자동화된 공장인데, 두 종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하나는 코드화된 포즈대로 움직이는 기계화된 인간들, 다른 하나는 자동화된 기계들을 관리하는 두 사람이다. 물론 주역은 기계들의 연결자 역을 하는 두 사람이나, 그들 또한 기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기계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고장 또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동화된 기계들의 오류, 다른 하나는 인간에 의해 연결이 끊어진 로봇의 방황. 고장난 기계들이 엉뚱하게 흩어놓는 사물들을 관리자인 인간은 다른 것과 연결한다. 그것은 다시 상상을 통해 증폭되며 공장의 라인들을 놀이동산의 기구들로 바꾸어 놓는다. 고장으로부터의 창조. 인간을 따라다니며 도와주는 로봇은 인간의 감정적 반감에 의해 연결이 끊어지면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다른 사물과 더불어 쓰레기가 된다. 두 사람은 다시 로봇을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고장이 보여주는 두 가지 미래를 연결망의 물질성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일까?



업체eobchae <대디 레지던시?>, <오에스 파파 엑스>, 

<-제네시스>, <자궁보안튜토리얼> 2020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제안하여 연결망의 물질성과 인간 아닌 것들의 능력을 긍정하려 했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과학인문학 편지』에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여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을 때, 즉 무언가가 고장이 났을 때, 우리는 유물론자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철학의 외부』에서 “유물론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정의한 적이 있는데, 이때 유물론이란 정신이나 의지의 ‘바깥’이 있음을, 의지나 의식대로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는 태도, 그 바깥을 통해 사태를 보려는 태도라 하겠다. 그 바깥이 누구에게는 신체의 물질성이라면 누구에게는 연결망이나 관계의 물질성인 것이다. 아무 문제없이 일이 뜻한 대로 진행될 때, 우리는 관념론에 머물기 쉽다. 그러니 사태가 나의 의지나 의식대로 풀려가리라는 안이한 태도가, 고장 나지 않고는 안 보이는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맹목성이 관념론을 둘러싸고 있다 하겠다. 

기계와 인간의 연결, 거기서 발생하는 고장은 우리로 하여금 비로소 안 보이는 것의 존재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상(異常)한 현실을 발전이나 몰락의 연속성에 비춰 빠르게 도출되는 미래에 귀속시키고 거기에 진지함의 색깔을 칠하는 것보다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은, 고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에 따른 정지를 다른 긍정할 수 있는 연결망의 창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물론자가 된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고장과 이상(異常)을 통해 현실에, 나아가 현실 바깥에 눈 돌리게 하려는 이 전시는 내게는 하나의 유물론적 장으로 보인다. 


*양숙현 <OOX에서 온> 2020 3D 컴퓨터 그래픽스, 2채널 비디오 인터랙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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