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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10주년기념 대구근대미술전: 때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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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9 - 2021.5.30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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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에 미술이 만개하던 때



대구는 근대미술의 산실이다. 한국 20세기 미술 전개에 특별한 기여를 했던 이 도시에 공립미술관이 생긴 것이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뼈아픈 일이다. 약 100년 전부터 화가들은 열심히 작업을 해왔는데 이들이 활동할 무대도, 이들을 뒷받침할 사회 시스템도 너무나 미약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열심히 작품을 제작했고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았는데, 이 점은 새삼 경탄할 만하다. 그리고 비록 늦은 개관이었지만, 대구미술관의 개관과 10주년을 특별히 축하하고 싶다. <때와 땅>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에 매우 적절하고 탁월한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1922년 창설된 교남시서화연구소 주변의 인물에서부터 시작됐고, 전시는 어느 도시보다 빨랐던 대구의 서양화 유입과 전개를 집중 조명하였다. 대구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이인성과 이쾌대를 특별 섹션으로 다루었고, 일본인 화가와 대구 출신 근대화가의 사제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기 피란지 대구의 상황과 전쟁 직후 추상화로의 전이에 이르기까지 약 50-60년간의 대구미술을 총괄하면서, ‘대구 근대미술의 교과서’ 같은 기획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제1섹션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에서는 교남시서화연구회 주변의 인물을 다루었다. 석재 서병오에서부터 서상하, 서동균, 김진만 등의 대표작들이 전시의 첫 줄거리를 형성한다. 서동균의 고모부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기석 허섭(1878-1934)의 1930년대 작품이 나온 것도 대구 지역 화가의 발굴과 소개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시대의 중요한 지적 계보를 이끈, 시인 이상화의 형이자 독립운동가 이상정(1897-1947)의 인보집 2점이 전시된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개인 소장 <청금산방인원(聽琴山房印苑)>에 쓴 ‘자서(自序)’가 자못 인상적이었는데, 1936년 8월 중국 금릉(지금의 남경) 객지에서 41세의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이상정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이상정은 1917년부터 1919년 사이 계성학교와 신명학교의 도화교사로 근무하였고, 1921년에는 대구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개최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그의 이력이 더욱 깊이 있게 연구되고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서병기 <기모노를 입은 여인> 1935 

캔버스에 유채 43×33cm 개인소장 





전시의 두 번째 섹션은 ‘향토회’를 중심으로 한 서양화가들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서동진과 서진달은 가장 중요한 대구의 1세대 유화가이다. 서동진은 대구미술사를 설립하여 이인성, 김용조 등을 길렀고, 도쿄미술학교 출신의 서진달은 계성학교에서 김우조, 백태호 등 대구의 2세대 양화가들을 가르쳤다. 대구의 서양화가들은 같은 시기 경성의 화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세련된 감각과 진취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전시된 작품 중에는 김용조의 <어선>(1938), 서병기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1935) 등이 1930년대 근대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특히 눈길을 끌었다. 


또한 대구 출신 서양화가이자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두 명의 화가, 이인성과 이쾌대의 작품들이 나란히 특별 전시실에 전시 중이다.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1935), 이쾌대의 <군상(해방고지)>(1948) 등 한국 근대미술사를 빛낸 작품이 대구에서는 막상 처음 전시된다고 하니 대구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인성과 이쾌대는 수창초등학교 동문으로, 서울에서 활동할 때도 서로 돕고 의지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이쾌대가 1940년대 후반 성북회화연구소를 설립해서 운영할 때 이인성이 강사로 나오기도 했다. 이인성은 줄곧 조선미술전람회를 무대로 활약한 화가로, 이쾌대는 신미술가협회, 해방 후 미술문화협회 등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던 화가로, 둘 다 일가를 이룬 근대작가임에 틀림없다.


네 번째 섹션은 ‘예술, 전문(專門)에 들다’라는 제목에 걸맞게 대구 서양화가들의 사제관계를 조명하였다.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와 박명조, 고바야시 만고(小林萬吾)와 서진달, 우메하라 류자브로(梅原龍三郞)와 서병기, 다카야나기 다네유키(高柳種行)와 금경연 등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났거나 대구에서 도화교사로 사사받았던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을 병치함으로써, 대구 서양화단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인적, 학적 네트워크를 조명하였다. 전시된 일본인 화가 중 다카야나기 다네유키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그는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를 졸업한 후 1931년 조선으로 건너와 1945년 해방될 때까지 14년간 대구사범학교 도화 교사로 재직한 인물이다. 그의 제자로 금경연, 김수명 등이 있다. 





이쾌대 <군상Ⅰ(해방고지)> 1948 

캔버스에 유채 181×222.5cm 개인소장





마지막으로 ‘피난지 대구의 예술’ 섹션에서는 한국전쟁과 그 직후 대구화단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백태호의 형이자 대구 수창초등학교 출신에 일본 시나가와(品川) 사진학교 본과를 수료한 백락종(1920-2003)의 작품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무제(철조망)>(1964)는 전후(戰後) 실존주의에 기반을 둔 반구상 작품의 계열에 속해 있으면서도, 단연 독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후 대구 추상회화를 이끈 정점식과 장석수의 작품도 훌륭했다. 극재(克裁), 즉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반어적 호(號)를 썼던 정점식의 작품을 보면서, 이는 비단 정점식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술에 매진했던 대구의 모든 예술가들이 스스로 얼마나 많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다잡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약 140점에 달하는 많은 대구 근대미술 작품들을 ‘만끽’하고 나오면, 복도에 아카이브 섹션을 만날 수 있다. 원본으로 나온 대구미술사 관련 자료, 서진달 관련 사진 등이 흥미로웠다. 또한 대구에서 활동한 일본인 서양화가들이 주도한 자토회 리플렛(1925, 1927)과 이에 견줄만한 조선인 그룹이었던 영과회(1928, 1929), 향토회의 리플렛(1930, 1931, 1932, 1933, 1935)이 모두 나왔다. 이 자료들을 잘 분석해, 1920년대 말 1930년대 초 ‘결정적 시기’에 대구 서양화단의 태동을 살펴보는 작업이 더욱 심화되었으면 한다. 자료 중에서는 대구 근대미술의 지형도를 그린 출력물들도 인상적이었다. ‘대구근대미술가의 관계도’, ‘해방 전 문화단체’, ‘해방 후 문화예술공간’ 등 자료는 대구 지역 연구자들의 오랜 연구 성과의 결과물이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꿰어지지 못한 채 따로따로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작품과 자료를 서로 엮어서 줄거리를 형성하기에 현재 남아 있는 유산들은 너무나도 단편적이다. 그러나 대구의 연구자들이라면, 사실관계를 좀 더 치밀하게 연구해서 그 시대와 인물을 씨줄 날줄로 엮어내는 일을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 근대미술은 분명 한국의 대단한 문화유산이다. 이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재평가하여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일. 그리하여 그 유산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공유’하는 일. 그것은 지극히 중요한 우리의 과제이다. 대구미술관이 앞으로 더욱더 할 일이 많은 이유다.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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