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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 만화 : 펜 아래 운율, 길 위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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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30 – 2014.8.4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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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 자체를 다루는 만화전시회를 기다리며



쉽지 않은 만화전시


2008년에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던 <고우영, 네버엔딩스토리> 전시. 과한 기대를 했기에 실망이 컸었다. 당시 썼던 전시평의 말미를 옮겨본다. “새로운 무언가의 습득을 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전시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소설이나 만화처럼, 길이가 있는 매체를 전시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큐레이터라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도전일 터인데. 너무 가볍게 판단했던 건 아닌지. 여전한 만화에 대한 무지와 무성의한 접근방식에 실망한다. 멋있어 보이는 말들의 조악한 나열이 아닌, 미술관급 미술관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만화 전시를 만나게 될 날을, 그래도 한 번 기다려보자.” 이때만 하더라도 해외의 몇몇 충격적이었던 만화전시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었다. 그 이후 벌써 6년이 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그때만큼의 커다란 기대감은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의 하나가 만화전시를 한다면, 만화계의 일반적인 전시회와는 달리, ‘표현형식으로서의 만화’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만화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다루는 그런 전시를 만들어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박흥용은 최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영화의 원작 만화가로 세간에 좀 더 알려졌다. 1959년생으로 1981년에 『돌개바람』이라는 단편으로 데뷔했고, 80년대~90년대 초까지의 중단편들은 여러 층위에서 시선을 받았다. 이후 방대한 한국사(20권) 및 세계사(21권) 학습만화작업을 진행했다가, 1995년부터 다시 창작만화계로 복귀, 만화잡지와 신문지면을 통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경복궁학교』, 『내 파란 세이버』, 『호두나무 왼쪽길로』 같은 작품들을 발표한다. 만화잡지가 무력해진 이후부터 바로 단행본으로 작품들을 출간하고 있고, 한국만화를 논할 때 꼭 언급되는 대표적인 중견작가 중의 한 명이다.


아르코미술관에서 박흥용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포럼 참가제의를 듣고서야 알았다. ‘한국의 작가주의만화’라는 주제였고, 박흥용을 ‘작가주의’와 연계시키는 것이 전시의 한 입장이겠다는 추측을 했다. 동시에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만화학계의 연륜이 짧다보니, 어떤 용어들은 그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채 떠돌아다닌다. ‘작가주의’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 작가의 경력에서 드러나듯, 양적으로 보자면 학습만화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이를 과연 엄밀한 의미에서의 ‘작가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흥용의 창작만화들이 학습만화 경력에 가려진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의 ‘작품성’은 창작만화의 영역에서 아주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학습만화 작업에 손을 대어왔다. 학습만화도 분명한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에서 감추어야 하는가? 이러한 ‘논란의 여지’야말로 어쩌면 이 전시에 엄청난 활기를 던져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아르코미술관이건 또는 만화계이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흥용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다룰까? 전시제목은 <펜 아래 운율, 길 위의 서사>. 영문전시명은 ‘리드미컬한 서사(Rhythmic Narrative)’이다. 일단 의미가 모호하다. 만화라는 표현형식은 칸들의 배치를 통해 작품마다 고유한 운율을 만든다. 따라서 펜 아래 운율은 박흥용에게만 특화된 것이 아니다. 이 작가가 유형의 길을 많이 그리고, 무형의 길을 다룬다는 점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포착했다면, 그것은 ‘길 위의 서사’가 아니라 ‘길의 서사’일 것이다. ‘아래’와 ‘위’라는 반대말을 운율적으로 함께 사용하는 건 좋았지만, 그러다보니 의미가 불명확해졌다. 여하간 주어진 자료만으로 파악해보자면 이 전시는 박흥용이 ‘길의 서사’를 고유한 방식으로 제시해왔다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리라.




전시 전경




관람객에게 친절한 <박흥용 만화>전


날은 무척이나 덥고 아르코의 붉은 벽돌이 고풍스럽기보다는 답답하게 느껴질 무렵, 커다란 홍보용 걸개가 보였다. ‘2014 아르코 대표작가전.’ 이런, 그냥 기획전이 아니라 대표작가전이었음을 놓치다니. 1년에 단 1번 열리는 대표작가전에 만화전시라니, 아무래도 기대치가 상승한다. 1충 전시장으로 바로 올라갔더니, 전시도우미가 티켓을 요구한다. 깜빡했다고 하니, 이미 올라왔으니 전시를 다 본 이후에 갖다달라고 한다. 조직의 원칙인지 개인의 품성인지 알 수 없지만,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작품보다 먼저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실히 전시 관람에 영향을 끼친다. 높아진 전시호감도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첫인상은 공간배치가 시원시원하다는 것이었다. 공간이 크니까 웬만큼 채워도 가득 찬 것 같지 않은 것아 편안했다. 처음 마주치는 벽에 전시기획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만화를 다채로운 형식과 내용이 통합 및 교차하는 시각문화의 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만화매체 자체가 전달하는 고유의 시각성과 미학적 성취에 주목하고자 만들어낸 전시이다(...)기존의 만화장르에서는 시도되지 않거나 그 양식을 비껴가는 그의 실험과 노력, 만화적 상상력과 구현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박흥용의 작품제시와 해석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만화라는 표현형식에 대해 탐구해보겠다는 선언 아닌가. 멋지다.


왼쪽으로 돌아서서 첫 번째로 만나는 작품들은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돌개바람』, 그리고 같은 해 발표된 『튀어 오른 공』이다. 두 작품 모두 한 페이지, 또는 양면페이지를 하나의 칸으로 사용하면서 시작하다. 데뷔할 때부터 흥미로웠던 그의 연출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어서 “주변을 밝히는 길”이라는 전시 설명문이 등장한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의 대표적인 14편의 단편들을 소개하는 이 첫 번째 공간이야말로, 어떻게 보자면 ‘박흥용’이라는 한 작가의 이름을 우리가 알게 된 이유들을 보여준다. 벽으로부터 세워진 액자 안, 새로 짠 나무책상위에 배치된 오리지널 원고에는 작가의 노력이 그대로 베어 나온다. 곳곳에 화이트 자국과 톤을 깎아낸 자리들이 남아있다. 작품들은 오리지널 원고만이 아니라 출력물, 아이패드, 프로젝터를 통해 제시된다. 프로젝터 앞에는 앉아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므로, 시간만 된다면 젊었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던 박흥용의 작품들의 정수와 충분히 만날 수 있다.


2번째 섹션은 “깨달음과 성장의 여정”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내파란 세이버』, 『호두나무 왼쪽길로』라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각각 장르만화를 차용하면서도 왜 박흥용이 펜대를 대면 ‘좀 다른’ 만화가 되는가를 설명해준다. 1번째 섹션도 그렇지만, 2번째 섹션부터 기획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3권 이상의 중장편이다. 이야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모두 보여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만화전시기획자들과 동일한 길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장면들을 골라서 제시하는 것. 엄청나게 품이 드는 일이다. 특히   <내파란 세이버>에서 보여주는 페이지들의 선정은, 기획자가 얼마나 열심히 작가의 작품들을 뒤적거렸는지를 잘 보여주는 벽면이다(사진6).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라는 동시대를 어떻게 스포츠 장르만화가 안아내는가는 박흥용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일 뿐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소리가 들린다. 이 3번째 섹션은 “정지된 공간의 여백”으로 작가의 기억에 각인된 시간과 장소를 다루는 작품들에 대해 말한다. 『경복궁 학교』, 『쓰쓰돈 돈쓰돈돈돈쓰돈돈쓰』, 『Phos』 라는 작품을 다루면서 빛과 소리라는 작가의 접근을 그대로 경험해보도록 디스플레이 해두었다. 마지막 섹션은 “공동체의 길”로, 이전에 『그의 나라』에서 다루다가 중단된 문제의식을 최근의 『영년』에서 계속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나머진 작가의 작품들이 등장했던 잡지 및 서적들과 박흥용 작가의 인터뷰 영상, 미완으로 끝난 프랑스 델쿠르 출판사와의 계약 작품이 출구까지 관람객을 배웅한다. 여기까지 보고나면, 첫인상은 완전히 사라진다. 물론 공간 디스플레이 자체가 여유롭다는 것은 변치 않지만, 보아야 할 것은 넘치도록 풍부하다. 섹션의 분할과 ‘길의 서사’는 약간 울퉁불퉁하지만, 전시의 성실함과 꼼꼼함은 그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게 만들어준다. 여러 층위의 독해를 배려한, 친절하고 착한 전시이다.



미술관과 만화전시


미련이 남는다면, 박흥용의 작품세계를 통해 만화라는 표현형식 자체에 대해 탐구하겠다던 의도는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시의 내용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러한 심층적인 의도까지 따라가기엔 관객들의 피로도가 너무 높아진다는 문제도 있다. 어떻게 보자면, 서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만화라는 형식에 대한 탐구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전시가 ‘만화’라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 영역을 선택하여 이미 흔한 만화전시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방식,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과하다. 우선, 전시는 예산이다. 물론, 돈을 쏟아 붙는다고 해서 기획력이 부재한 전시가 좋은 전시로 변신하진 않지만, 예산의 부족은 분명 좋은 기획력을 떨어트리게 만든다. 게다가 다루기 어려운 만화를 포괄하려면 거기엔 예산의 힘이 절대적일진대, 심지어 고우영전 대비 박흥용전에는 예산이 덜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예산이 풍부했다면, 과한 욕심이 욕심으로만 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위로받기 어려운 다른 의문점이 있다. 이는 국립미술관급의 만화전시들을 떠올리면 제기되는 것이다. 이들이 만화전시를 할 때, 실지로는 만화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층위에서 그러한데, 하나는 현실적인 담론 차원에서이고 두 번째는 만화라는 표현형식 자체에 대한 탐구의 차원이다. 결과적으로 만화전시에는 만화작품과 만화원고들, 만화가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두 가지 케이스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다. 만화의 장에서 일어나는 현실들과는 분리되거나, 주로 타 표현형식과의 상관성 속에서 제시된다. 이번 전시에서 학습만화 경력의 부재, 또는 웹툰이 흘러넘치는 시점에서 디지털미디어와의 결합에 대한 고민의 부재가 첫 번째 케이스이다. 


<한국만화 100주년전(과천현대미술관, 2009)>, <고우영>전은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한다. ‘미술과 만화’이거나 ‘대중문화로서의 만화’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방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접근방식의 자유로움이 없다면, 전시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만화자체에 집중한 전시는 없다는 말인가. 물론 겨우 세 번의 국립미술관의 전시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겉으로는 시각문화예술의 한 영역이라고 하지만, 기실은 만화의 대중적 인지도를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문화적 권위와 권력의 문제가 심층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미술관에 대한 과한 기대일까. <박흥용>전으로 너무 멀리까지 논의를 확대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전시의 성실함과 꼼꼼함을 보건대, 언젠가는 아르코미술관에서 만화 자체를 다루는 전시를 기획할지도 모른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 길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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