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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예술: 나와 너의 가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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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degenerate art
: the attack on modern art in nazi germany, 1937
2014.3.13-9.1 뉴욕, 노이에 갤러리

지구평화 수호자를 꿈꾸는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가 감독한 영화 ‘모뉴먼츠맨’을 이끌어가는 질문은 “예술품을 위해 인간은 고귀한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였다. 그리고 영화는 “있다”를 암시하며 끝난다. 인류는 후손을 남기고 문화는 대대로 전승되므로, 선조들이 높은 가치를 부여한 유물인 예술품엔 목숨을 바칠만하다는 것.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실제로 존재했고, 아직도 사설탐정의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예술품 수호자인 모뉴먼츠맨은 나치약탈품을 원소장자에게 돌려주는 데 활동을 주력한다.
● 이나연 미국통신원

Adolf Hitler and other Nazi officials(Hoffmann, Willrich, Hansen, and Ziegler) standing by the Dada wall at the 'Entartete Kunst(Degenerate Art)' exhibition. July 16, 1937. Paintings by Vasily Kandinsky, Paul Klee, and Kurt Schwitters have been deliberately hung askew and are accompanied by a slogan penned by George Grosz. This photo was published in the Nationalist Observer, South German (Suddeutsche) issue, No. 199, July 18, 1937. Staatsbibliothek zu Berlin Stiftung Preussischer Kulturbesitz, Berlin, Germany. bpk, Berlin, Art Resource,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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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과정에 있는 나치약탈품은 아직도 수천 점 이상이고,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100억 원 이상이라고. 이 영화에 발맞추듯, 최근 나치와 일한 화상의 아들로서, 나치약탈품들을 자신의 뮌헨 아파트에 비밀리에 소장하던 코넬리우스 구를리트(Cornelius Gurlitt)의 정체도 드러나 화제였다. 각종 매체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탈세 조사를 받던 구를리트를 수사하던 중 1,400여점, 1조5천억 원 규모의 예술품이 발견됐다.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폐기해야할 것으로 분류된 미술 혹은 추방되거나 수용소로 쫓겨 가는 유태인의 소장품이었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중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앉아있는 여인(Seated Woman)>등이 포함됐다. 영화계와 각종 뉴스가 나치약탈품을 거론하며 분위기가 달아오른 중에, 뉴욕의 오스트리아 미술관인 노이에 갤러리는 악명 높은 히틀러의 1937년도 <퇴폐예술> 전람회에서 전시됐던 회화와 조각품을 선보였다. 애초 3월에 시작해 6월 30일에 끝날 예정이었던 전시는, 의외의 성황을 거두어 연일 늘어나는 관객의 반응에 응답하며 9월 1일까지 두 달간 연장되기도 했다.  


퇴폐예술이란 나치가 세운 인종이론에 근거를 두고 독일적이지 않은, 즉 나치의 이상에 걸맞지 않는 예술이나 유대인 예술가들을 박해하고자 만든 선전용어다.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 새롭고 혁신적이었기에 고전적이지 않은 모든 예술, 말하자면 대부분의 근대예술 주요 사조들이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탄압받았다. 히틀러가 인간에게 드리웠던 이분법적이고 계급적인 시선이 예술에 그대로 적용돼, 제 눈에 저급해 보이는 예술은 눈앞에서 치워버리려 함과 동시에,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려는 위험한 시도였던 것이다. 비아리아인의 그림, 문학, 건축과 언어를 파괴함으로써 문화적인 유산과 정체성을 완벽히 전멸시키는 것이야말로 나치가 원하는 바였다.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이라 불린 비아리아인 인종청소와 똑같은 방식으로 예술청소를 단행하기에 앞서 “이것이 나쁜 미술이다”는 것을 알리는 교육이 필요했기에 <퇴폐예술>전은 열릴 수 있었다.




Adolf Ziegler <The Four Elements: Fire (left wing), 

Earth and Water(center panel), Air (right wing)> 

1937 Oil on canvas 170×270cm Pinakothek der 

Moderne, Bayerische Staatsgemaeldesammlungen, 

Munich Photo credit: bpk, Berlin/Art Resource, NY  




아카이브의 성격을 띠는 노이에 갤러리 버전 <퇴폐예술: 1937년 독일 나치의 근대예술에 대한 공격>은 갤러리 임원이자 학자인 올라프 피터스(Olaf Peters)가 기획했다. 나치가 압수했던 기록과 함께, 70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그림을 돌려받은 후손에게서 1,700억 원에 달하는 값으로 사들인 역사로 유명한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이 2층에 상설 전시된 노이에 갤러리는, 어쩌면 <퇴폐예술>전이 열리는 데 필연적인 공간이다. 미술관 이전에 개인주택이었던 탓에 다소 좁은 편인 3층 전시장의 복도에선 전시의 시작을 알리며 양쪽 벽을 뒤덮을만한 사이즈로 확대된 사진을 도배했다. 한쪽은 1938년, 함부르크에서 열렸던 <퇴폐예술>의 순회전이 시작되는 날, 방문객들이 길게 늘어선 전시장 바깥풍경을 담고 있었다. 당시에도 꽤 관심이 높은 전시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쪽은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새로 도착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양쪽 다 일종의 인파를 묘사하고 있지만,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용소에 모인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빼앗은 예술품을 조롱할 목적으로 열린 전시를 찾는 사람들을 대조된다. 사실 이러한 이미지의 비교 대조를 정치선전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치의 방식이었다. 별 성과는 없던 <위대한 독일예술>전이 1937년에 열렸고, 이듬해에 112명의 작가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 <퇴폐예술>전을 연 것처럼 말이다. 이젠 그 방식 그대로, 그들이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주게 됐지만. 지루한 <위대한 독일예술>의 전시에 비해 성황을 이뤘던 <퇴폐예술>의 당시 전시 장면을 미국 사진작가가 찍은 영상도 이번 전시장에서 소개됐다. 포스터와 브로슈어 등도 선보여 당시의 공기를 불러내는 데 도움을 줬다. 2014년 버전 <퇴폐예술>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전통적 기법으로 그려진 금발 여성의 누드화인 아돌프 지글러(Adolf Ziegler)의 <네 가지 요소들(The Four Elements)>(1937)과 고문당하는 사람과 보트에 탄 사람을 표현주의적으로 굵직한 선과 색감으로 표현한 막스 배크만(Max Beckmann)의 <출발(Departure)>(1932-1935)을 나란히 배치시켜 대조시킨 것이었다. 




Paul Klee <The Angler> 1921 Watercolor,

transfer drawing and ink on paper 50.5×31.8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John S. 

Newberry Collection Digital Image ⓒ 2014 

The Museum of Modern Art/Licensed by 

SCALA/Art Resource, NY ⓒ 2014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삼면화라는 공통점 외엔 소재와 형식, 표현적이 면에서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은 히틀러가 제시하는 예술의 ‘좋은 예’와 ‘나쁜 예’다. 좋은 작품인 지글러의 삼면화는 무려 히틀러의 거실에 걸려, 두고두고 감상의 대상이 됐다. 나쁜 작품으로 취급된 배크만의 작품들은 500점 넘게 몰수됐고, 결국 작가는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로 가게 된다. 이때 암스테르담에서 그린 ‘수의를 입은 자화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배크만은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서 생을 마쳤다. 지금은 거장의 이름을 달만한 이들이 탄압을 받던 시대를 환기해 주는 듯, 폐기된 작품들을 은유하는 텅 빈 액자들이 전시장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지금은 없는 화가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사라진 작품들의 부재를 통해 더욱 강렬한 존재를 각인시켜 주기에 적합하고, 효과적이며, 성공적인 전시 방식이었다. 파울 클레(Paul Klee), 게오르그 그로츠(George Grosz),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에밀 놀데(Emil Nolde)처럼, 당시는 퇴폐예술가였으나, 지금은 친숙한 작가들의 재로 변한 작품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텅 빈 액자엔 부당한 폭력이 남긴 아픈 상처가 그려져 있었다.    




Lasar Segall <Eternal Wanderers> 1919 

Oil on canvas 138×184cm Lasar Segall 

Museum, IBRAM/Ministry of Culture 

Photo: Jorge Bastos




당시 베크만과 함께 강도 높게 탄압받던 퇴폐예술가 중엔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가 있다. 키르히너는 드레스덴에서 다리파를 창설한 이 중 한 명으로 독일 표현주의를 이끌었다. 그의 활약이 두드러질수록, 나치에겐 더 강력한 억압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림으로는 어떤 타개책도 찾을 수 없던 암울한 시대에 환멸을 느끼고, 그는 1938년 권총으로 본인의 목숨을 끊고 만다. 이번 전시엔 키르히너 특유의 기법으로 4명의 다리파 멤버들을 그린 초상이 전시돼 있다. 어두운 표정으로 그려진 4명의 다리파 멤버들의 모습은 당시 112명의 퇴폐예술가로 분류된 작가 중에 단 4명만 있었다는 유대인 화가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전시에 포함된 다수의 근대 작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거래하던 화상들은 모두 직업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음은 물론, 유배 혹은 추방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은 자연스레 최근의 사건들과 연결된다. 나치가 저지른 인종청소만큼 이러한 문화말살도 극악무도한 범죄였음이 자명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유대인에게 품고 있는 죄의식도 납득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학살을 정당화하진 못한다. 나치의 “최종해결책” 프로젝트와 매우 유사한 사고논리로 자행되고 있는, 선민사상에 기인해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해 저지른 민간인학살은 용서 받지 못할 폭력이다. 선인들이 치른 값비싼 희생이 후대인들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당장 오늘 밤에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환경에 처한 가자지구의 사람들에게 “인간은 예술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치겠다. 




Ernst Ludwig Kirchner <A Group of Artists

(The Painters of the Brucke)> 1925-26 

Oil on canvas 168×126cm Museum Ludwig, 

Cologne Photo: ⓒ Rheinisches Bildarchiv Cologne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어린 군인들이나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이들을 떠올리면서, “인간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물을 수 있겠다. 사실상 국가는 개인들이 평화로운 삶을 지속하고자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안전망과 같기 때문에, 좀 더 완화된 표현으로 “인간은 미래를 꿈꿀 삶을 보장받고자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가?”로 풀어 물을 수도 있다. 예술이란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충족된 후에야 성립되고 유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을 얻은 후에야, 다시 “인간은 예술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억지를 좀 부리면서 답을 정리하자면, 예술은 곧 삶의 미래고, 따라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여쁘고 무구한 우리 후손들을 위해, 목숨과 비유할 정도의 큰 가치부여가 가능하겠다. 



글쓴이 이나연은 사실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수료할 수 있는 기간 정도, 미술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 후 뉴욕으로 유학을 와 미술 비평 전공으로 석사 학위 까지 땄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고도 누구에게도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을 사랑한다. 주로 최대의 노력을 쏟아 붓고 최소의 결과를 얻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마르크스를 읽는 쾌감이 좋아서 뉴욕 체류 중이다. 누가 뭐래도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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