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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으로부터 온 특별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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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counsels of seven

꿈이 뒤숭숭하니 오늘 하루 행동거지에 조심해라, 오늘은 운전하지말아라, 남쪽에서 귀인을 만날 것이다... 새해가 되면 굳이 믿지 않더라도 토정 비결과 신년운세를 한 번쯤은 보게 된다. 현재에 대한 불안함을 동반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마 이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미술계 원로들의 급작스런 사망소식, 전씨 일가 미술품 경매 100%낙찰, 실효성 없는 비엔날레의 창궐, 문화재 부실관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파행 등 2013년 미술계에서 벌어진 다사다망한 사건들을 뒤로 하기엔 입가에 씁쓸한 맛부터 감돌지만, 어쨌든 새해다. 이번 한 해 미술계에선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할 터다. 신년을 맞아 퍼블릭아트는 세계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명한 한국 미술계 인사 7인에게 2014년 그들이 몸담고 있는 미술계의 판형을 물었다. 그들의 신년 계획과 비전을 통해 올해 세계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갈지 각자 점쳐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이번 해는 제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 기획 안대웅 기자 ● 진행·글 편집부

Kimsooja 'To Breathe : Bottari' 2013 Courtesy ARKO Arts Council Korea & Kimsooja Studio Thierry Depagne ⓒ Kimsooja Studio Photo: Jaeho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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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No. 1 

은근과 끈기로 가라

● 김승덕 프랑스 디종 르 콩소르시움

(Le Consortium, Contemporary Art Center) 공동 디렉터 및 협력 큐레이터



프랑스 디종에 위치한 현대미술센터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의 국제 전시기획 디렉터로 잘 알려져 있는 김승덕은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몇 안 되는 한인 큐레이터 중 한 명이다. 국제 큐레이터로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부대전시 <아시아나>로 큐레이터 신고식을 치른 이후, 베니스와 서울을 오가며 전시기획을 했으며, 유럽을 기반으로 삼성미술관 컨설팅 큐레이터로서 미술관 건립및 하랄트 제만,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같은 많은 저명한 큐레이터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국제 미술계 네트워크에도 이바지 했다. 이후 퐁피두 센터 소장품부에서 협력 큐레이터를 거쳐, 2000년부터 르 콩소르시움에 적을 두고 있다. 


국제적 규모의 야요이 큐사마, 린다 벵글리스등 다양한 전시기획을 맡아 진행해오고 있는 그는 파리 팔레 드 도쿄 프로그래밍 외부 전문 위원이기도 하다. 2011년 6월부터 현재까지 도하(카타르 의 수도)의  대규모 중심 도시발전 공공예술 전략 사업에서 르 콩소르시움과 함께 프로젝트 디렉터 및 아트 컨설턴트를 맡아오고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서 김수자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바 있다. 바람잘 날 없이 바빠보이는 그가 불쑥 한국을 찾았다.  2014년 리용 컨템포러리 미술관에서 열릴 국제 기획전 ‘트랜스 모더니즘’ 관련 한국작가 리서치와 작품 선정을 위해서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전시에 대해 살짝 엿들어 보았다. 그리고 르 콩소르시움, 파리 컨템포러리 아트의 상황, 한국의 아티스트를 위한 제언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07 (Tea House)> 2005 Anyang




퍼블릭아트(이하 PA) : 먼저 베니스비엔날레 이후의 소회를 듣고 싶다.


김승덕(이하 SDK): 베니스비엔날레라는 환경은 1년도 채 안되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치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을 요구한다. 개인적으론 처음 기획한 바가 마지막까지 잘 실현되어 무척 만족한다. 항상 한국관을 방문할 때마다 ‘저 커피숍 같은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지난 전시를 통해서 한국관이 가장 마지막에 지어진 건물이라 건축 당시 제약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제약 중 하나가 밖의 바다가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야만 하는 것이고 유리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등등의 제약들.) 그 속에서 전시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이 제약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전환시킬까, 생각해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8월 기자회견 당시, 작가 선정에 있어 한국관 건축 구조물의 장소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선결 조건이 있었다. 사실 한국관이 문을 연 이후에 본격적인 보수 작업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매해 번갈아 가며 열리는 미술전과 건축전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가능하기 위해선 보수 공사가 필수 조건이었는데 아르코가 흔쾌히 지원했다. 모든 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관만이 2층에 올라갔을 때 바다가 보인다.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번엔 쓰지 못했지만, 써도 될 수 있게끔 완벽하게 보수했다. 나는 작가들이 뭔가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데 주력했던 것 같다.



PA : 가장 최근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한국을 찾은 이유가 새로운 전시 리서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키워드가 ‘트랜스 모더니즘’인데, 생소한 개념이니 설명 부탁한다. 언뜻 듣기로는 니콜라 부리요의 얼터 모던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SDK : 트랜스 모더니즘은 현재로서는 임시 타이틀인데…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면, 서구의 모더니즘이 다른 문화권에 들어갔을 때 로컬 문화와 만나서 생겨나는 독특한 모더니즘의 양상을 살펴보는 일이다. 이 아이디어는 2006년도의 어떤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당시 야요이 쿠사마 순회전 기획 차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나는 항상 그 나라의 문화를 빨리 파악하는 방법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는데, 현대과 민속박물관을 겸한 곳을 방문하게됐다. 거기서 흥미롭게도 골든 월터라는 뉴질랜드 작가의 아주 훌륭한 추상회화와 마오리족의 패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더니즘이 로컬 문화와 만났을 때, 재밌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느꼈고, 다른 문화권내에서 이런 현상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시작되는 프로젝트가 굉장히 많다.) 그 때가 2006년이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즘에 와서야 여러 나라의 모더니즘을 들여다보는 추세가 되었다. 서양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아시안, 또는 한국의 모더니즘, 브라질리언 모더니즘 살펴보는 것. 우리가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니까 현재는 여러 군데서 순회전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년 10월 리용 컨템포러리 미술관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일본의 미술관 두 곳에서 순회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와는 현재 논의 중이다. 한국에서도 보여 질 기회가 있으면 매우 기쁠 것 같다.




Yayoi Kusama <Dots Obsessions>

 2008 Parc La Villette




PA : 한국의 경우는 어떤 작가군을 염두에 두고 있나. 전시에 관한 구체적인 구상이 나왔는지도 궁금하다.


SDK : 누구보다도 김환기를 꼽고싶다. 운 좋게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100주년기념 전을 봤다. 잘 기획된 좋은 전시였다. 기획을 앞둔 입장에서 다시 보니 국제무대에서 동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자신의 고유한 시각 언어를 발전시킨 매우 훌륭한 작가라 새삼 인식된다. 그 밖에 유영국, 이응로, 박래현,하인두, 같은 분을 리서치 중이다. 그룹전에 한 두 점씩 넣어서 컨셉 보여주는 백과사전식 전시는 지양할 것이다. 국제무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주 좋은 작가와 작품 5-10점 대표작을 뽑아서 제대로 국제무대에 선보이고 싶다. 김승덕은 르 콩소르시움의 공동 디렉터이자 동반자이기도 한 프랑크 고트로와 ‘트랜스 모더니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줄 작가를 찾아 내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유영국의 작업에 대해 리서 치중이란다. 이렇게 일을 ‘만들고’ ‘수행하고 있는’ 두 디렉터를 보니 르 콩소르시움의 구조가 궁금해졌다.



PA : 르 콩소르시움을 흔히들 “구조 없는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SDK : 한 사람이 많은 일을 각자가 알아서 하고 조직도 수직구조라기 보다는 수평구조라 볼 수 있다. 전체 직원은 11명 정도인데, 디렉터가 4명이었다가 최근에 와서 6명으로 늘었다. 디렉터 숫자가 일반 직원보다 많다는 의미는 협동적인 지식 (collective intelligence)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구조가 없어 보이는 이곳의 독특한 운영 형태를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인턴쉽에 응모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르 콩소시움’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합’의 의미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한다’, 이것이 정의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문화 분야 전반을 통틀어 진보적인 생각을 시각문화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곳이다. 회의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외부에서 요구되는 자료 외에 ‘무엇을 보고’한다는 개념은 아예 존재치 않는다. 이것은 각자가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오직 자신의 기획 자체에 시간을 쓰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전시 뿐만 아니라 건축, 영화, 출판 등등 모든 것들은 위와 같은 생각을 위한 도구(tool)다. 이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



PA : 그러고보니 출판사와 영화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SDK : 르 콩소르시움은 70년대 자비아 두루(Xavier Douroux),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 두사람의 설립 멤버와 뜻 맞는 몇 친구들이 작은 책방을 빌려서 시작했다. 아마 1977년으로, 퐁피두 미술관과 같은 해 세워진 걸로 기억한다. 당시는 작가에게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기관이 매우 드물었다. 요즘 같지 않은 매우 척박한 상황이었다. 그때 르 콩소르시움은 작가들과 생각을 교환하면서 모든 창작 과정을 함께 했다. 크게 보자면 오늘날 문화 전반에 관한 생각과 흐름을 미술, 건축, 공연, 영화 등 서로 다른 분야와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도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작가와 함께 협업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났다. 레프레스뒤레알이라는 출판사와 아나산더스라는 영화사도 이런 맥락에서 작가의 필요에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레프레스뒤레알에서는 잘 알려진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을 출판한 바 있으며, 아나산더스에서 배급한 작품도 언클 부미의 아피챠퐁 페라세타쿨과 같은 타이랜드 감독등이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월계수 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성과를 올리고 있다.



PA :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SDK : 사람들이 나에게 제일 먼저, 그리고 많이 물어보는 것은 누구의 지원으로 그 많은 일들을 하냐는 것이다. 60퍼센트는 중앙, 지방 정부이고, 40퍼센트는 우리 스스로가 외부로부터 벌어 들인다. 우리는 매우 검소하게 살면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일을 많이 벌리는 셈이다. 단, 우리는 전시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절대 예산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이 생기고 만들어지는 것은 단언컨대 내용에서부터다. 내용이 좋다면 여러 방법을 강구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도록 노력한다. 이런 프로젝트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대로 잠자고 있다가도 적당한 시기에 다시 재검토되기도 한다. 출판, 전시 등 모두 마찬가지다.




Le consortium de Dijon Architect: Shigeru Ban 

Photo: Andre Morin ⓒ Le Consortium  




PA : 증축 공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완공이 됐는가. 컨셉은 무엇인가.


SDK : 르 콩소르시움은 70년대 조그마한 책방을 빌려 시작한 이래, 80년대 디종 시내에 옛날 목욕탕을 개조한 곳 그리고 거기서 좀 떨어진 공장지대(독일 포로수용소 역사가 있는) 이렇게 두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중 공장 지대 주변 땅을 모두 사서 약 천이백평이 넘는 두 개 층의 큰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는 전시를 30년 넘게 한 사람들이니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건축가 시게루 반(Shigeru Ban)이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 좋은 건축가와 협업으로  좋은 공간을 창출해냈다.


워낙 역사가 오래됐고,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다종다양한 기관인지라, 르 콩소르시움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르 콩소르시움은 각자가 알아서 움직이는 자율적인 공동체이고, 각자가 만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반성까지 해야 하는 "정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설령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기도 한다. 그들이 하는 일들의 키워드이자 비밀은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당연한 서로의 신의,바로 이것이다. 이제 르 콩소르시움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PA : 현재 프랑스 아트씬의 핫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SDK :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다. 올해 프랑스 컨템포러리 아트씬에서는 국제를 리드한다거나 이런 게 특별히 없었다. 그런데 지금 퐁피두에서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1월5일까지), 팔레드도쿄에서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1월12일까지)라는 작가 전시가 1월 달까지 열린다. 거의 과장 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두 전시라고 미술계에서 평가한다. 전세계에서 이 전시 보러 다들 오는데, 사실 이런 경우 좀 드물다.



PA : 왜 그렇게 이야기하나.


SDK : 60년대 출생한 작가들에 대해선 예전과 다르게 (인터넷 같은 미디어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공감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게 생기기 시작한 게 90년대부터다. 이 사람들 작업을 두고 어떤 미학으로 어떻게 크리틱 할 수 있느냐, 교과서적인 지침서를 준 것이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 미학’이다. 필립 파레노, 피에로 위그, 마리찌오 카탈렌 ,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스터, 카스텐 헐러, 호헤 파흐도, 리암 길릭 등 서로들 친구이기도한 이들 작가들이 르 콩소르시움 디종에 내려와서 이야기한 것도 90년대이다. 이들은 작가가 전시장에서 무엇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전시라는 형식 자체를 작업의 일부로 고민했고 작가들 사이에 협업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 사람들 각자가 지금은 스타들이 됐다. 지금은 아주 완전히 성숙기에 들어와서 좍 풀어서 보여주는 것이 두 전시다. 또 이런 전시는 하기 힘들다. 여담으로 퐁피두가 오랫동안 자고 있다가 알프레드 파크망(Alfred Pacquement)이 나가고, 블리스덴(Bernard Blistène)이라는 새로운 디렉터가 왔다. 앞으로 퐁피두가 일을 많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PA : 마지막으로 한국의 예술가와 큐레이터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린다.


SDK : 무엇보다도 더듬이를 잘 세워서 천천히 사고해야 한다. 유행보다는 새로운 감각으로 보다 더 깨어 있어야 한다. 결국은 예술을 하고 문화를 한다는 것은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심히 봐야 한다. 오늘날 세상이라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문화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국수주의다. '코리안 아트'하면 진짜 코리안 아트가 나오지 않는다. 그게 자꾸 자기를 옭아매서 한계를 짓게 되서 밖으로 나가기 보다는 더 안으로 들어오는 현상이 된다. 그래서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한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뛰어난 감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브랜딩(branding)에 매우 강한 나라이다. 이미 K-Pop, 한국 드라마 등이 한류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아시아를 휩쓸고 있고 싸이와 같은 국제 가수를 배출해서 심지어 유럽에서도 현재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등 한국 문화 전반에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반짝 유행처럼 지나가지 않으려면 그 저변을 받쳐주는 진득한 문화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조금 더 넓게, 자유롭게 생각하자. 어떻게 하면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어서 빨리 떠 볼까 하는 것은 매우 짧은 생각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굉장히 배타적이다. 외국에서 뭘 갖고 오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있으려면 남이 서 있을 자리도 있어야 한다. 우리 것만 자꾸 주장하고 소리치다보면, 남의 소리 못 듣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공통된 언어 속에서 자기 아이덴티티가 나오다 보면,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안하고 싶어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있다. 자신감 속에서 뭔가 나와줘야 그 생명이 길다. 은근과 끈기가 우리의미. 이것을 밀어가는 게 중요하다.  




Charles de Meaux <Story of Shinjike> 

2012 Yeosu Expo EDG




김승덕은 미국 뉴욕 메리마운틴 맨해튼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뉴욕 종합대학에서 프랑스 문화사 석사, 헌터대학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8년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DEA,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유럽에 거주하며 삼성문화재단(현 삼성미술관 리움) 자문 큐레이터(1993-2000)를 지냈으며, 파리 퐁피두센터 어소시에이트 객원 큐레이터(1996-1998)를 지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아트센터 르콩소르시움에서 국제 전시기획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프랑크 고트로와 함께 발렌시아 비엔날레 커미셔너(2005), 플라워 파워 문화 수도 릴전시(2004),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 공동커미셔너 (2007), 야요이 쿠사마 순회전(2008-9), 린다 벵글리스 순회전(2009-11) 등 다양한 국제 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해 오고 있다.


샘 듀란트(Sam Durant)

 <포셀린 의자(Porcelain Chairs) - 유일한 일체형 의자> 

2008 중국 샤먼성 지아노 지 스튜디오에서 

예징유와 두웨이동, 크라프





Special Feature No. 2 

‘한국 미술’, 새로운 대세로 부각될 것

● 조앤기 미시건대학교 미술사학과 조교수



현대미술의 중심 미국에서, 조금씩 ‘세를 확장하는’ 우리나라 미술을 실감하는 이가 있다. 최근 저서 『한국의 현대미술-단색화와 방법의 긴급성』(Contemporary Korean Art-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 미네소타대 출판부)을 펴낸 조앤기(기정현) 교수는 “세계적 붐을 형성했던 중국 현대미술이 한풀 꺾이고 일본 미술이 대세를 이어받는 듯하더니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관심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전후(戰後) 미술에 대해 전문가들의 관심이 지대한데, 아마 곧 여러 가지 뉴스들이 생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뉴스’란 유수 미술관과 저명한 갤러리에서의 한국 미술 기획전을 일컫는 것일 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역량을 넓혀가는 조앤기 교수, 그는 직접 체득한 반응과 정보를 바탕으로 이 같은 상황을 확신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조앤기 교수는 1997년 예일대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로스쿨(2000)을 졸업했다. 이후 NYU에서 한국의 단색화 연구로 박사학위(2008)를 받은 후 미시간 대학 교수로 임용된 그는 미국 최초의 현대아시아미술 전문 교수란 직함 덕분에 큰 이슈를 형성했다. 단색화에 대한 조앤기 교수의 연구는 점차 밀도를 더해가고 있는데, 그는 서구 미니멀리즘과 비슷한 맥을 형성하면서도 여백의 미 등 독특한 형식을 지닌 단색화의 대표작가 권영우, 윤형근, 이우환, 하종현, 박서보 선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의 작품을 해석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6 캔버스에 안료 117×117cm




PA : 퍼블릭아트(이하 PA) : 최근 펴낸 책이 ‘영어로 된 본격 한국 현대미술 전문서’인 까닭에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간 나온 몇 안 되는 영문 한국 현대 미술서들이 작가별로 개괄적인 소개를 나열한 것에 비해 전문적이고 학문적이란 평이 지배적인데,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조앤기(이하 JK) : 맞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미국에서도 반응이 좋다. 최근 미국 대표적인 미술사학회인 College Art Association에서 주는 Charles Rufus Morey Prize에 이 책이 최종 후보로 선정돼 매우 흡족하다. 이 상은 매 해마다, 지난해 전 세계 출판된 미술사 저서 중 가장 우수한 도서를 선정해 수상하는 상이다. 작년에 출판된 여러 뛰어난 도서 중 4권이 최종후보로 선정됐는데, 그 중 『한국의 현대미술-단색화와 방법의 긴급성』이 있다. 최초로 근현대 아시아 미술 주제인 도서가 후보에 올랐다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보다 더 좋은 책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PA : 그런데 왜 단색화인가. 한국 현대미술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역사이며 태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조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미술에서 맥을 잇는 작가는 많지 않다. 당신의 시도에서 단색화와 컨템포러리 아트의 관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JK : 다 아시다시피, 1970년대 시작된 단색화는 우리 미술에서 처음으로 국제적 흐름과 함께한 미술이다. 단색화 대표 작가들이 동양적 전통이라는 기반 위에서 추상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한 부분은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그 정신과 미학 또한 오늘날까지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단색화가 확장된 추상화 세계에서 과연 그 오리지널리티는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에 대해, 나는 ‘무엇’보다는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 방법을 파헤치려 애쓰고 있는 한 사람이다.  ‘컨템포러리’란 명칭을 많이 쓰는데, 사실 이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비서구 작가들에겐 참 유용한 알리바이다. 굳이 지역성, 인종, 국적, 태생지를 강조하는 대신 작품으로 주목을 돌릴 수 있는 편리한 ‘marker’라고 볼 수 있으니까. 


'컨템포러리’ 단어 자체엔 애매한 모든 게 들어갈 수 있잖나. ‘컨템포러리’ 경향에 대해서, 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매달 40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열리는 시대에, 과연 어떤 것이 주류인가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문제인 셈이다. 내가 쓴 책 제목에 ‘Contemporary Korean Art’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사실 ‘현대’라는 개념에 중점을 두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인용하는 ‘컨템포러리’는 서구에서 쓰이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일본의 겐다이(gendai), 또는 중국의 시엔다이(xiandai) 하고도 다른 영역을 점하고 있다. 그러나 다만 1960-70년대에 한국 미술계에서 일어난 전환의 과정에서 쓰인 ‘컨템포러리’란 단어는 전혀 다른 맥락을 지닌다. 




하종현 <이후접합 10-2>

 2010캔버스에 유채 244×366cm  




PA : 그렇다면 미국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어떤 형태로 영역을 형성하고 있나. 혹 아직 특별한 관심을 얻고 있지 못하다면, 한국 미술이 세계무대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JK : 분명하게 말하자면, 한국 미술에 대한 인식도는 아직 낮다. 그나마 2013년 열린 대규모 조선미술 전시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신라미술 전시 덕분에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한국 미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 작가들이 유명세를 얻긴 했지만, 대부분 ‘한국작가’라기보다 ‘컨템포러리 작가’라고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성공한 작가는 ‘컨템포러리 작가’고, 아직 빛을 못 본 작가는 ‘한국작가’라고 구분 짓는 것 같다. 이는 중국, 일본작가의 경우와는 완전히 딴판인 상황이다. 거센 중국 미술 붐 때문에 ‘중국작가’라 불려도 동시에 ‘컨템포러리 작가’로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가? 일본 미술 같은 경우도 아방가르드라는 틀을 전시를 통해 잘 설치해서 전후미술의 중요한 ‘터치스톤(touchstone)’을 마련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대형 미술관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컨템포러리 갤러리에 들어가면 잭슨 폴록, 로버트 라우센버그, 마이크 켈리 등 이미 주류미술사에 언급된 작가 옆에 구타이 작가인 시라가 카즈오 작품이 걸려있다. 


또 미술사 대학원에서 치루는 박사 예비시험 슬라이드에서도 ‘Hi Red Center’ 또는 ‘Monoha’ 등이 등장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것에 비하면 한국 미술은 아직 정확한 영역을 확립하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영역을 만들 필요를 느낀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근현대 한국 미술사를 구축할 뿐 아니라, 이를 전시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동양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갤러리나 미술관보다 일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행해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 고무적인 경향이 있다. 최근 5-10년간 블루칩 갤러리들은 미술관 못지않은,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 중대형 전시를 많이 기획하고 있다. 돈, 시간,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해 미술관에서 해야 할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다. 그들은 판매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같은 전시를 유치한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세계 갤러리 추세를 보면 대규모 갤러리는 점점 팽창하는 경향이다. 컨템포러리 미술 시장을 장악하는 갤러리는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빗 즈워너, 하우저 앤 워스 등 몇몇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이미 작품을 많이 파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니다. 그 대신 갤러리는 장기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는지, 또는 일류기관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이런 이슈가 중요하다. 따라서 대규모 갤러리들은 역사적(historical)인 전시에 관심이 많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 분야에 가장 유력한 학자 또는 블루칩 큐레이터를 동원해 기획전을 선보이고, 학문적인 도록까지 출판한다. 원론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이 같은 추세는 매우 긍정적이며 한국 미술이 외국에서 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전시에서 만족해야할 관객은 대중이 아니라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 미술’을 강조하기보다 작품 자체에 대한 세밀한 분석으로 관심을 끌고 동시대 아시아 미술이라는 맥락 안에서 전략적으로 주요 작가와 작품을 내세우며 이 같은 경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요 작가와 작품을 내세우며 이 같은 경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PA : 끝으로, 앞으로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을 꼽아 주신다면.


JK : 앞으로 수묵화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원로 작가들한테는 좋은 기회다. 1950년 이후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 수묵화 작품의 수준은 월등히 높다. 독특한 개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후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나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Contemporary Korean Art’ 그룹을 개설해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몇 천 명의 관객이 방문했다. 미주 지역을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 호주 사람들까지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지 일종의 실험처럼 선보인 것이었는데, 뜻밖에 박래현의 1950년대 작품 <부엉이>, 이승택의 1960-70년대 사진 및 설치 작업, 주명덕의 인천 중국타운 사진 시리즈와 정강자의 1960년대 조각등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서세옥  <사람들> 

1989 화선지에 수묵 164×260cm  




조앤기는 미시건대학교 미술사학과 조교수는 미국 최초 현대아시아미술 전문 교수로 임용됐다. 1997년 미술사 전공으로 예일대를 월등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2000). NYU 인스티튜트 오프 파인아츠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2008년부터 미시건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Artforum』, 『Oxford Art Journal』, 『Third Text』, 『Art Bulletin』, 『Art History』 등 주요 전문 미술사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MIT 대학 출판사의 『Art Margins』 편집위원 및 홍콩 ‘Asia Art Archive’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싱가폴 국립대학, 뉴욕대학, 홍콩대학과 워싱턴의 National Gallery of Art 등 펠로우쉽도 받았으며 현재 미국미술과 법에 관련 저서를 집필 중이다.




박서보 <묘법(Ecriture) No.37-75-76> 

1976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194.5×300cm





Special Feature No. 3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판화의 길을 모색하다

● 에미 유 싱가폴 타일러 프린트 인스티튜트(STPI) 대표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싱가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싱가폴 타일러 프린트 인스티튜트(STPI)는 판화 기반 레지던시다. 2002년에 개관한 이 기관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데이비드 호크니 등 저명한 예술가의 판화를 만든, 현대 판화의 거장 케네스 타일러의 정신이 그 모태가 됐다. 사진의 발명으로 이제는 위축되어 가고 있는 판화계의 사정을 봤을 때 다소 의아한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STPI를 거쳐간 작가를 살펴보면 장난이 아니다. 모두 비엔날레 등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눈에 띠게 활동하고 있는 ‘컨템포러리’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어 STPI의 대표 에미 유를 만났다. “세계적인 작가를 계속 초청해 그들이 거의 해보지 않은 판화 작업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라는 그에게 STPI에 관한 질문과 더불어 싱가폴 미술 현장 전반을 물었다.



퍼블릭아트(이하 PA) : STPI는 판화 공방이면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다. 이 조합이 흥미로운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에미 유(이하 EE) : 판화의 표현성을 여러가지 연구를 통해 확장시킨 미국의 저명한 판화가 케네스 타일러(Kenneth E. Tyler)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 타일러가 70세쯤 됐을 때 유지를 이어갈 사람이 없었고, 수많은 판화 공방 속 기계들이 폐기처분될 상황에 이르렀다. 타일러 그라픽스(Tyler Graphics)라는 판화공방이 뉴욕에 있긴 했지만 작은 규모에 불과해 수용할 처지가 못 됐다. 도구들은 일본에 새로 지어진 미술관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급작스럽게 경기침체되는 바람에 유야무야 됐다. 기계들이 갈 곳을 못 찾고 방황하던 차, 타일러는 우연히 싱가폴의 류 타이커(Liu Thaiker)와 만나게 된다. (류 타이커는 싱가폴의 저명한 건축가로 싱가폴 국립예술위원회의 이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 이후 류 타이커가 정부를 설득해 타일러 공방 전체를 싱가폴로 사들였고 이것이 지금의 STPI가 됐다. 그래서 우리의 정식 명칭이 싱가폴 타일러 판화 공방(Singapore Tyler Print Institute)이다.



PA : 창립멤버로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다. 2009년부터 디렉터를 맡고 계신데 전 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EE : 2002년 개관 후 처음에는 스페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다가 2009년부터 디렉터를 맡고 있다. 달라졌다기 보다는 좀 더 세심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레지던시 운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작가를 유치하는 것이다. 왜 판화를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보통 몇 년씩 걸린다. 그리고 그 외에도 경비, 필요 인력, 내부 워크샵 등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도 시간을 많이 요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서도호 선생님과는 2007년부터 연락을 시작했는데 2010년에 모셨다. 그래도 겪어보고 나서는 우리 시스템이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다들 말씀하신다. 한국의 경우 서도호 선생님 외에도정광영, 양혜규 같은 좋은 작가들이 우리 기관을 거쳐 갔다.



PA :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달라.


EE : 1년에 6명 정도가 시기를 달리해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 번에 단 한 명의 작가하고만 일을 하는 셈이다. 보통 3주 정도 입주했다가 간격을 두고 다시 2주정도 머문다. 그리고 18개월 안으로 전체 전시를 한다. 예를 들어 서도호 선생님은 시간 제약과 전시장 규모 때문에 작업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가셨다. 그래서 이번 봄에 다시 입주하셔서 마무리하실 예정이고 2014년엔 꼭 전시를 개최하려고 한다. 그 외에 매년 여름에 교육적 목적의 기획전을 크게 열기도 한다. 이번 해에는 피카소의 판화를 전시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2014년엔 우키요에를 테마로 한 기획을 구상 중이다.



PA :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나. 수익 구조는 있나.


EE : 비유하자면 우리는 양서류다. 서류상으론 비영리 기관이고 해마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갤러리를 운영해 수익을 내고 있다. 정부지원금은 총 연간 운영비의 2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기관의 경우 레지던시 기간 중 제작된 작품의 소유권이 기관에 귀속된다. 그리고 그것을 아트페어 등지에서 판매했을 때 작가에게 지분을 나눠준다. 작업이 팔리려면 당연히 좋은 작가의 유치가 중요해지고 연구도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검증되지 않은 작가를 초청하기 꺼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에 입주 작가는 입주 기간 동안, 우리 기관의 판화 스페셜리스트와 협업하게 되는데, 이때 스페셜리스트들이 작가의 컨셉을 발전시킨 판화를 제작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아트상품으로 개발하기도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벌어들인 돈은 다시 모두 프로그램 운영에 쓰인다.



PA : STPI 레지던시 프로그램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EE : 갤러리부터 작가 스튜디오 및 숙소를 다 갖추고 있어 기획부터 제작, 전시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 말고도, 판화 작업을 지원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STPI는 기본적으로 판화공방이기 때문에 500t짜리 프레스를 비롯해 펄프 제작 시스템과 판화 제작 관련 기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자원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능력을 가진 14명의 판화 스페셜리스트가 상시 근무하고 있다. 그러니까 판화에 관한한 세계와 견주어도 거의 독보적인 수준인 셈이다. 입주 작가는 이런 조건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개인 작업 외에도 판화 같은 새로운 장르를 거리낌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팀워크다. 우리에겐 사람이 보물이다.



PA : 싱가폴의 블루칩이라면 누구를 떠올리나.


EE :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밍 웡(Ming Wong)이라는 작가를 들고 싶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파빌리온에 참여하기도 했고 종종 한국에서도 전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에르메스에서 같이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또 히만 청(Heman Chong) 같은 개념미술가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한 <리얼 DMZ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또 쯔녠호(Tzu Nyen Ho)의 작업도 재밌다. STPI를 거쳐가기도 한 이 작가는 그림, 영상, 퍼포먼스, 설교, 쓰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싱가폴 사회 문화사를 심도있게 다룬다. 아트 바젤 필름 섹터에서 선보였는데 아주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 



PA :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굉장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싱가폴 아트씬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EE : 새로운 시장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길만 바락스(Gillman Barracks) 같은 많은 갤러리들이 싱가폴에 와서 지점을 열고 있다. 마치 홍콩 같이.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생기고 있고 내달에 아트 스테이지라는 아트페어도 개최되는 것으로 안다. 2015년에 내셔널 아트 갤러리 싱가폴(National Art Gallery Singapore)이 완공된다. 그 전까지 국립미술관이 싱가폴에 없었다는 점이 큰 아쉬움이었다. 본격적인 동남아시아와 싱가폴 미술 연구가 시작될 것이다. 또 2015년은 싱가폴 독립 50주년이다. 이래저래 2015년이 큰 행사가 많을 것이다.



PA : 마지막으로 현지의 한국작가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EE : 2005년 정도부터 한국 작가가 눈에 띠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전광영, 서도호, 양혜규, 최수앙 등 한국 작가들이 심심찮게 자주 눈에 띤다. 내가 에르메스 싱가폴 재단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할 때 정연두, 지니서와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또 2009년 싱가폴 뮤지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을 가지고 전시를 가지기도 했다. 그때 반응이 좋았고 이후로 한국 작가 전시가 종종 열린다. 또 싱가폴 갤러리 클러스터에 한국에서 오신 분이 갤러리를 여셨는데 그 분도 한국작가를 프로모션하고 있다고 들었다. 트랜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한동안은 일본 작가를 좋아하기도 했다.  



에미 유는 보스턴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했다. 그 뒤 다시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학교에서 예술경영까지 섭렵했다. 2007년부터 싱가폴 에르메스 재단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면서 프랑스 문화 전파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싱가폴 타일러 프린트 인스티튜트에서 2002년부터 스페셜 프로그래머를 거쳐 2009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양혜규 개인전 전시전경. STPI





Special Feature No. 4 

아시아 주어되기, 각자의 중력과 싸우는 과정

● 김희진 비영리전문예술사단법인 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조감독 

현대미술 독립 큐레이터



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로 진보적인 전시를 주로 기획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큐레이터 김희진. 그가 최근 눈코 뜰 사이 없이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라는 대주제다. 누군가에게는 그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합류한 것의 의외였을 지도 모른다. 로컬리티와 관계된 기획을 많이 해온 그가 ‘아시아’라는 초국가적 영역에 ‘중심’을 만든다는 일이 상상이 잘 안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이 기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베일에 싸여있었다.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눈에 앞둔 날, 김희진을 만났다. 그에게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 무엇인지, 그가 아시아에 어떤 비전을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퍼블릭아트(이하 PA) :  아트스페이스 풀 디렉터로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으시다가, 최근에 아시아 문화 관련해 서울 광주를 오가신다는 뜬소문이 돌았다.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지만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 일단 직함부터 풀어서 설명 부탁드린다.


김희진(이하 HJK) : 크게 두 가지다. 비영리전문예술사단법인 아트 스페이스 풀 대표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조감독. 직함이 좀 길다. 아트 스페이스 풀은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하고, 후자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대통령령으로 시행하고 있는 문화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라는 사업이 있다(http://www.asiaculturecity.com). 문화 저변 활성화를 통한 도시 재생 사업인데 중심도시 사업 전체는 워낙 광범위해 제 영역 밖의 사업들이고(웃음) 그 중에 주요 문화 기획 사업으로 5개원으로 구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 및 전시 기획사업이 있다. 나는 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문화창조원 전시예술감독이신 이영철 선생을 도와 2015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개막될 문화창조원의 상설, 기획 전시들을 총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문화부의 개막전 콘텐츠 개발 관련 연구용역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이 사업과는 짧은 인연이 있었다. 연구용역에 한때 참여했다가, 결국 사업의 실행단계에 다시 참여하게 된 경우다. 2013년 9월에 입사했으니 이제 4개월 됐고, 전당 사업을 총괄하는 일종의 R&D 및 실무 기관으로 문화부가 설립한 특수법인 아시아문화개발원(http://www.iacd.kr)에 고용된 형태로 일하고 있다. 프로젝트 계약직이다. 좀 복잡하다. 



PA : 역시 직함만으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HJK : 문화중심도시 조성에 대한 법령이 2008년 제정되었고, 들으신바 있으시겠지만 문화중심도시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니 하는 사업 자체의 정체성과 목표에 대한 기관 내외부로터의 진통이 컸다. 바깥에서 비평하고 자문하며 분석하긴 쉽지만 막상 일에 손을 대려하면 인간의 스케일을 넘을 정도로 크고 어려운 사업이다. 전당 전체 연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누군가에 의해 크고 야심차게 설정된 정책 비젼 때문에 막상 그걸 구현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대치에 부합하면서도 실현가능한 실제 사업에 접근하느라 악전고투 중이다. 그렇게 듣고 깨지고 고민하고 그동안 축적된 연구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가능할 만한 잠재적 컨텐츠들을 몇 십개 씩 만들며 궁리해오다가 이제는 실제 내용과 형태를 정해야 하는 단계가 된 거다. 16,326 평방미터에 달하는 창조원 공간에 전시나 프로그램 포함해서 구현해야 할 프로젝트가 이십 여개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는 프로젝트들의 판형 전체를 보면서 해당 밑판(큐레이터 선정, 세부 주제 조율)을 깔고 있고, 그것의 전시준비의 각종 실행업무, 즉 작가 및 전시물 선정, 전시물 제작이 모두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내년의 일이다. 전당은 현대미술 비엔날레와 다르기 때문에 전시들도 현대미술 전시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시아 문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아무리 세부 주제, 지역별로 전시를 분담해도 큐레이터들의 조사연구 범위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속칭 전시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과정 중에도 계속 세부 주제별 연구개발이 보완되게 해야 할 장치도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이 구조적으로 화학적으로 잘 융합되기가 쉽지 않다. 동시 오픈은 어렵다 해도, 오픈의 시작 일정은 2015년 7월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PA : 홍콩의 구룡지구, 카타르의 도하, 싱가폴의 센토사, 마리나베이 등등 오늘날 아시아 각지에서 재개발을 통해 문화 특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롤모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마치 누가 아시아의 문화 패권을 선취할 것이냐 경쟁하는 것 같기도 하다. 


HJK : 맞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은 시점에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동시에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도래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만한 점이다. 그리고 이때 “재개발”이라는 용어에 무조건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각 문화권역, 지역에서 도시 재개발이라는 현상이 어떻게 도입, 전개되어 왔는지 따져보고 그것과 문화는 어떻게 상충 혹은 협상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이해해야 한다. 나는 현재 전시 실무에 뛰어든 상황이라, 각 지역에서의 세밀한 결이 어떤 것인지 각 지역의 로컬만큼 알지 못해서 각 이니셔티브들을 감히 비교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파악한 선에서 보자면, 적어도 하드웨어의 측면에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은 상계동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70-80년대식의 무자비한 도시철거와 재개발 방식은 쓰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전남도청 건물을 지상에 두고, 전당 시설은 지하에 매립형으로 지어지고 있는데, 나는 그 위치설정이 좋다.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모두 순탄하고 누구나 기분 좋기만은 했겠는가. 단, 현재 단계에 투입된 나로서는 공사 중인 현장에서 도청과 상무관 건물을 여전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겸허함을 배운다. 거의 잊었던 신화적 상상을 환기시킨다. 


다음은 기자님이 말씀하신대로 당연히 국가주의나 지역주의 등의 도구로 정치화되는 문제인데, 이 지점은 우리 모두 고민과 비판은 충분히 했고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항상 문제는 똑같은 비판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한 치라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실행안을 누군가는 실천해야 한다는데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제목은 처음부터 그 노골적인 “중심” 레토릭 때문에 뭇매를 실컷 맞았고 지금도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빈축을 사고 있다. 그런 순진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고를 쓰는 국책사업인데 그럼 “주변” 도시를 하겠다고 하겠는가. 그런 문구에 원론적으로 흥분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담 우리는 각자가 어떤 포지션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그 활동이 아시아라는 가공의 문화에 어떤 지식을 생산해 보완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 아래로부터의 포지션들이 모여서 광주고, 한국이고 간에 아시아에서의 문화적 포지션이 만들어지는 것일 게다. 지역 차원에서 말하면, 개인적으로 광주는 아시아의 근대 이후 동시대와 미래를 상상하는 지형에서 여전히 발언해야 할 지역이라 느낀다. 민주화 이후 미래에 대한 하나의 화해와 각축의 지형에서 광주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지역들과 테제의 동시대화와 미래를 이끌 책임이 있다. 이 지점은 감정적 차원이 아닌 엄격한 지식생산의 차원얘기다. 그러니 새로운 얘기를 전개할 판형이 필요한데, 그것이 아시아인 셈이다. 


이때 아시아는 싱가폴, 카타르, 홍콩 하는 식의 국민국가들이 포진된 현실정치 지형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언어, 민족, 시공간대가 공존하는 그 자체로 인간이 만든 문명의 집결이다. 아시아 안에서의 국가주의적 현실인식을 견지하면서도 인간의 근대적 문명이 남긴 혼성적 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험대이다. 이러한 매크로, 마이크로 판형을 모두 인식하면서 아시아에게, 아시아가, 아시아에 대해 말을 하는 움직임은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편하게 아시아가 ‘화자’되는 연습이라 부른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 포지션을 보자. 중국은 정말 넓고 막대한 역사자원을 지닌 곳이라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에 있어서도 구심력이 워낙 세다. 그래서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문명 전체에 대해 스스로를 중심 기표로 상정하는 전략적 프레임을 쓰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상상이 기술되는 좌표의 사전 포획이 가장 두렵다. 좌표를 다분화하기 위해, 아시아의 다양한 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아시아의 여러 목소리들이 언어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과 역사 비판을 해오지 않았는가. 그 연속선상에서 다른 시공간 대의 문명을 좀 메타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발굴과 복원의 노력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시아가 화자가 되려면 우선 아시아를 국가 몇 개 하는 식으로 보는 사유체계를 넘어서는 문명적 시공간대의 반경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인류문명사에 걸쳐 누적된 어떤 고정관념과 사고방식, 언어를 의심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어떤 제안의 카드가 나와야 하는데, 현실정치에서의 각축과 근대의 재고를 넘어서는 과거의 사유체계, 감각체계를 발굴, 복원해 내면서 이것을 미지의 미래문명에 대한 상상체계에 직결시켜야 하는 프레임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홍콩, 싱가폴, 카타르 등의 문화도시 개발 패러다임을 단순히 재개발 패러다임이니 팬아시아 패러다임이니 반복 비판하는 자세를 넘어서서 그렇게 되지 않게 해보려는 구체적 실천안을 생각해보고 싶어서 이 일에 참여했다. 이것은 외부에서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각자 익숙한 사고방식이 끌어당기는 중력과 싸우는 과정이다. 이상적으로는 홍콩, 싱가폴, 카타르 등지에서의 사업과 광주 사업이 모여 얘기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첫 회에서는 그것이 구현 불가능할 듯하다. 각자 지역내외, 현실의 중력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 본다. 



PA : 복잡하다. 정리를 좀 해주셔야 할 것 같다.


HJK : 문화 관료들이 말하는 사업의 정치적 목표를 비웃고만 있기엔 실제 소위 개념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과업이라 본다고 까지만 말하겠다. 데스크에 앉은 지 4개월 밖에 안되서 실무적으로 정리가 안 된다. 아시아를 닮은, 아시아가 시작해야 할 사업이라 보고 있다. 




<김경호 개인전 Magic Bullet Broadcasting Network> 

전시전경. 기획: 김희진. 2013.07.05-09.01. 

아트 스페이스 풀. 사진: 김경호

 ⓒ 아트 스페이스 풀; 김경호




PA :  그럼 지금 성과를 중심으로 말해 달라. 우리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종류의 성과는 있나.


HJK : 성과 없이 일하면 일하는 사람도 괴롭다. 당연히 성과를 위해 일한다. 이것만 기억해 달라. 창조원은 “전시”를 보여주는 곳인데 예술, 인문학, 과학 등이 혼재된 일종의 “문화” 전시로서 십여 개가 넘는 전시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전시물도 미술작가의 작품만이 아닌 예술작품, 유물, 데이터, 각종 문헌자료 등을 포괄한다. 엄격히 말해, 현대미술의 렌즈로 조명하는 전시가 아닌, 큐레이터, 예술가, 학자, 연구자 등이 같이 만드는 전시인 셈인데 이론적으로도 복잡하지만 제도 판형 속에서 얼마나 구현될 수 있는지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전시별로 특성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큐레이팅의 기본 포맷이 (미술, 역사 등 전문분야의) 큐레이터, 학자, 공간연출가, 아키비스트 등이 공동 편성될 수밖에 없다. 그럼 초청 큐레이터 수만도 20~30명에 달한다. 지금은 그 라인업에 따른 계약추진단계에 있고, 이 과정에서 기권하는 큐레이터들도 많으시다. 


이 사업의 우여곡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전당 전체가 지하 4층까지 내려가는 지하시설이다 보니 전남도청 뒤쪽 부지에서 20미터 땅을 파는 기초공사가 있었다. 이때 엄청난 양의 물이 땅 밑에서 솟아나왔다고 한다. 지하수라기엔 워낙 많은 양의 물이 솟으면서 그 물을 잡는 기반공사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한다. 그런 지맥과 수맥, 상무관 등을 바라볼 때마다, 이 사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흔히 생각하는 사업 홍보와 마케팅용 사전 행사를 빵빵 터뜨리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정도에는 공유할 내용이 많아지길 바란다. 



PA : 큰 질문이지만 한 번 해 보겠다. 왜 아시아가 중요한가?


HJK : 예를 들어 21세기 이후 문명을 꿈꿔본다고 쳐보자. 그게 유럽에서 발원할까, 아니면 북미일까하는 것은 정치나 사회의 ‘현상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여기서 마음 상태(mind state)의 변화가 올까? 자본주의를 엎을 수 없듯이. 그랬을 때, 이것을 다시 보는 발상의 전환이 어디서 가능할까? 그런 궁극적인 인식의 재구성 작업에 아시아적 스케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아시아는 지리적인 개념보다는 아시아의 상황 혹은 조건(condition)을 겪고 있는 인식의 벨트 같은 것이다. 근대의 모순을 끌고 가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일단 다른 옵션을 이야기해보는 판형 짜기가 나오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제부터 말하기 참 어려운 부분인데, 유럽이 갖고 있는 엄격함 같은 것이 있다. 기강이 너무 두꺼워서 이것을 뒤짚기도 어려운. 반면 아시아는 굉장히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한 데서 오는 판형을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쉽게 이야기하면 네거티브 사이언스 픽션(negative science fiction)이라고 하는데, 보통 우물 안 버전 디스토피아를 한 번 더 뒤집고 싶은 거다. 사실은 로컬리티를 한껏 머금은 상태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땅을 치고 올라가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21세기의 다른 공동체 문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면, 아시아가 답을 내줘야지 다른 데에서는 안 나온다. 



PA : 우리도 우리지만 사실 서구에서도 아시아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 여러 가지 의미로.


HJK : 정작 그들의 태도는 상당히 관찰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다. 우리가 너무 분열되고 복잡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들끼리 그 안에서 제일 무서운 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다. 체내화된 식민주의같이 보인다. 왜 이렇게 아시아를 스스로 폄하하는지, 미리 편견을 갖는지 모르겠다. 말을 더듬으면서 분열되더라도 말을 꺼내야 회자되지 않나. 그래서 이 사업 시도 자체가 아시아에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와 행동(affirmative action)을 제시하는 계기라 생각한다.



PA :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위험성도 항상 내포되어 있다.


HJK : 국가주의의 판형을 무지할 수 없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지성 체계 문제다. 아시아가 주어되기를 하고 나서 보면, 너무나 다른 아시아들이 아시아 속에 있고, 문화적 지식생산구조 안에 일종의 지성의 레짐, 스페셜리티 같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아시아 소위 열대아시아권은 이미 일본과 호주가 지식생산을 주도하고 각축을 벌인지 오래 됐다. 일본이 인문학을 많이 해왔다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심화된 연구를 많이 해왔다. 실제 현실정치 싸움만큼 치열한 지성과 언어의 각축은 일차적으로 식민주의, 제국주의를 걷어내면서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인간 사유의 지평을 만드는 싸움 아니겠는가. 여기서 국가주의를 노골화하는 선수는 알아서 도태된다. 예컨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벌써 동북강정이 대변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독점적이다. 그런 구심적 패러다임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아시아들이 각자의 비대칭적인 문화 교착 면을 오가는 지식생산에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하루아침에 되는 얘기는 아니다.  



PA :  마지막으로 한국미술계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큐레이터로서 진단을 해보자면?


HJK : 진단은 무슨. 내가 의사인가(웃음). “미술계”라는 단어 자체를 요즘 들여다본다. 이게 도대체 무슨 “계”인가 이게 생태계이길 바랐는데 생태계라기 보단 그냥 기계판 같다. 나는 큐레이터로서 작가의 생각을 보는 사람이고, 그 생각이 아깐 말한 지성의 지형에서 어떤 위치를 획득하고 어떤 언어를 재생산하는가, 이런 거에 관심이 있다. 그런 점에서 수면 위에서 파닥거리는 현상으로서의 미술계의 동향에 대해서는 점점 흥미가 없어져 간다. 그렇다고 지성으로서의 지형도 창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는 정치적 입장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진영 노선으로 당파가 있어서 힘들었는데, 미학 진영, 아이디어 진영이 되기도 전에 속도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면서 어느 순간 활동의 분자화 상태가 된 것 같다. 동력은 없는 가운데 초고속 속도로 막 돌아간다. 미친 기계같이. 무엇이이것을 돌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도저히 지형판독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때는 수면 밑의 지형이라도 잠재적 윤곽이라도 그려보자고 했었다. 이제는 무수한 활동 이면의 생각을 읽어내기도 힘들다. 잠깐 눈감고 미술기획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웃음)



PA : 진짜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와 일하고 싶은가?


HJK : 글쎄. 요즘 관심이 그러해선지 저는 천문학, 물리학, 지리학하시는 분들과 한 번 작업해 보고 싶다. 어떤 전시가 나온다고는 예측은 못하겠지만, 이런 학문을 하시는 사람들과 현재, 사람, 하늘과 땅이 만드는 관계 이야기를 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운행 역학 같은 것. 이 운행이 뭘까. 마음의 운행일 거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형. 마음의 운행 이런 것들을 그 사람들에게 좀 배우고 싶다.   




<Where the ends meet> 

2013.11.28-2014.1.5 

김희진 기획. 갤러리 우그, 리옹  




김희진은 현 비영리 전문에술사단법인 아트 스페이스 풀의 대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조감독이다. 1999년부터 미디어 시티 서울, 아트선재센터를 거쳐 2005-2009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에서 국제교류 담당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공동연구랩, 토론워크숍, 작품 프로덕션 및 프리젠테이션, 출판이 연동된 기획에서 미술창작인의 작업 과정에서 발원되는 지식생산, 미술이 제시할 수 있는 사회적 제안과 대안가치들, 지역 현실에 기초한 창작언어 발굴에 관심이 있다. 주요 기획 프로젝트로는 <Dongducheon : A Walk to Remember, A Walk to Envision>(2007-08), <Unconquered : Critical Visions from South Korea>(2009), <John Bock : 2 handbags in a pickle>(2008, Arko Art Center & IAS, Seoul), <Thought is made in the mouth>(2006), <Day of Confidence>(2010), <김용익 프로젝트>(2011) 등이 있다. 글로벌 기획 협업 네트워크인 뮤지엄 애즈 허브의 기획 파트너이며, 다수의 글로벌 현대미술 이니셔티브에 기획자문위원 및 기고, 발표자로 활동하였다.




<AC Publishing 개인전 TIMBER!> 전시 전경. 

기획: 정지영 2013.11.07-12.29 아트 스페이스 풀. 

사진: AC Publishing ⓒ 아트 스페이스 풀; AC Publishing  





Special Feature No. 5 

느린 템포로, 지속적으로

● 김한현정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AM)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



현대미술이 동시대성을 뽐내며 미술계를 뒤흔드는 이때, 미술계의 곳곳엔 묵묵히, 하지만 꾸준히 자기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전통적인 미술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 한 부류에 속한다. 빙산의 일각과 다름없는 하나의 사료나 미술품만으로 거대한 역사의 빙산을 비추어내는 사람들. 그 가운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의 한국관을 도맡아 연구·기획하고 있는 김한현정이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동양미술사학을 전공하고 4년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한국·중국미술부 학예관으로 있던 그는, 2010년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의 한국미술부 학예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특유의 뚝배기 같은 뭉근함으로 전통과 현대 사이를 연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외국에 있는 학예관으로서 그녀가 하는 일은 정확히 어떤 일이고,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미술계의 상황은 어떤지 물었다. 



퍼블릭아트(이하 PA) :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이하 AAM)은 사실 한국미술계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다. 좀 자세히 설명해 달라.


김한현정(이하 HK) : AAM은 시카고 철강업자이며, 올림픽 위원장이었던 에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가 기증한 아시아 미술 소장품을 기반으로 1966년 골든게이트 공원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아시아 7개 문화권의 미술과 문화를 다루는 전문 미술관으로서 소장품이 2만여 점에 달한다. 특히 10년 전, 드 영 박물관(De Young Museum)과 공동으로 썼던 공간에서 독립하여, 샌프란시스코 중심지인 씨빅 센터(Civic Center)로 이전,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 위치하고 있다. 



PA : 미국에 있는 아시아 미술관이라니, 조금 남다른 느낌이다.


HK : 미국 내에서 아시아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 기관으로는 AAM이 유일하다. 따라서 직원들은 어느 부서에 속해 있든, 아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하며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 또한 남다르다. 



PA : 그렇다면 미술관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


HK : 2010년부터 AAM의 한국관 담당 큐레이터로 일해 왔다. 한국 미술 소장품을 조사·연구하고, 한국 미술품을 수집한다. 또한 특별전시를 기획하고, 한국 문화 관련 교육 및 대중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타 논문을 출판하거나, 학술적인 발표를 하기도 한다. 미국 내에서 다채롭게 한국 미술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맞다. 특히, 미국 내 큐레이터는 학예 업무 외에도 타 부서와의 협업을 많이 한다. 보도자료 작성, 마케팅 구상, 전시 협약 그리고 기금 모금 및 후원 행사 등 다양한 업무에 투입된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소프트웨어이며 중심축이다. 



PA :  AAM이 준비하고 있는 기획이나 방향성이 있나.


HK : 개관 이후 아시아 전통 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왔으나, 아시아 현대 미술 특별전을 열기도 하는 등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깨우쳐서 미래를 고무한다(Awaken the Past and Inspire the Next)”는 새로운 비전하에, 2010년의 분청사기 특별전 <흙으로 시를 빚다; 삼성 미술관, 리움 소장의 조선시대 분청사기>전을 기획했고, 현대 미술품을 포용하여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했다. 신미경, 이수경, 구본창, 이강효, 하인선 작가가 참여해 조선시대 도자기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관람객은 모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기 때문에, 현대 미술이 과거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관람객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통 동양 미술품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 출판, 교육 등의 다양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PA : 한국 미술계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나.


HK : AAM의 모든 부서는 한국의 소식에 민감하고 한국 미술계의 동향에 관심이 지대하다. 학예부에서 중요한 미술계 동향과 소식을 해당 부서들에게 알려주고 토의한다. 한국 미술부에서는 인터넷, 신문, 잡지를 통하여 한국의 미술 동향 및 최신 소식을 접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을 통해서 인연이 닿은 세계 곳곳의 큐레이터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하며 국내외 미술계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PA :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하고 있다면 무엇인가.


HK : 지금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은 10월 25일에 연 한국미술 특별전인 <조선왕실, 잔치를 열다>전에 관련한 일이다.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정규적으로 유물과 테크놀로지 점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관람객들과 비평가들의 반응에 귀기울이고 있다. 또 최근 한국관 상설전시실의 유물들을 교체했다. 6개월에서 8개월 주기로 서화와 직물 작품들을 교체하고, 전시되었던 유물들은 5년간 수장고에 보관한다. 이번 보관품에는 현대미술작가 구본창이 백자로 작업한 사진 3점도 포함됐다. 유물 교체를 위해서는 수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고, 특히 교체 선정된 유물들의 전시 가능여부를 적어도 3개월 전에 결정해야 한다. 교체를 하자마자 다음 교체 유물들과 주제에 대한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PA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은 어떤지. 


HK : 현지에서의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다. K-Pop과 테크놀로지 등의 21세기 한국에 대해서는 익숙하겠으나, 조선시대의 존재라든가 한국의 지리상의 위치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복잡한 역사 맥락의 설명이 필요한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는데 고충이 많다. 아마 한국 밖에서 한국 미술을 다루는 모든 큐레이터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낯선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가? 어떤 방법과 전시 방향을 고안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항상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PA :  가까운 미래에 예정되어 있는 일이 있나.


HK : <조선왕실, 잔치를 열다>전을 열자마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미술관에서 공동 전시의 제안이 들어왔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 전시가 확정되면 300만 명이 오가는 공항에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재해석한 도자기들을 6개월간 선보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조만간 한국관 소장의 한국 미술 대표 작품에 대한 영한 책자의 출판될 예정이다. 한국관의 소장품에 대한 미술사학계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의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 대한 인지도는 낮다. 미술관과 한국 미술 대표작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도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번 책자를 발간한다. 이를 시작으로 영어, 한국어 두 개의 언어로 여러 연구 서적을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PA :  해외에서 보는 한국미술은 어떤가. 솔직한 답변 부탁드린다.


HK : 이곳 큐레이터들이나 문화계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현대 미술계가 빨리 움직인다는 점에 놀란다. 작가들의 작품 활동도 그렇고 전시 또한 짧은 시기에 기획, 진행된다. 생동감이 있고 첨단시대의 감각이 표출되는 반면,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작가의 오랜 고민과 문제의식, 절실함 등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시의 완성도와 기획력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미국과 비교해보자면, 미국에서 특별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는 적어도 3년이 필요하다. 첫 단계부터 다양한 부서 직원들과 협의하고 전시 주제와 기획의 방향을 다져간다. 토론과정은 담당 큐레이터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며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PA : 현지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 작가가 있나. 


HK : 서도호작가와  김수자 작가.



PA :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HK : 새로운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존재해왔던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다면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예술은 하루아침에 새롭게 부상하는 것이 아니다. 길게 보고 기다리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동안 꾸준히 준비해온 작가들, 그리고 전시 기획자들의 결실이 나타날 때 그들에게 주목하고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김한현정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학사학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타바바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에서 미술사학과 동양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회화사연구원 선임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강의를 했다. 2006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의 한국·중국미술부 부장대우 학예관으로 있었고, 2010년부터는 자리를 옮겨,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에서 한국미술부 학예관으로 일하고 있다.




Koret Foundation Korean Galleries 

at the 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Image credit: Natalie Jenks / 

Orange Photograph




Special Feature No. 6 

탈-중심화 속 새로운 도약

● 정도련 홍콩 M+ 수석큐레이터



전 세계 미술계가 홍콩을 주목하고 있다. 홍콩 당국이 아시아 거점의 새로운 문화 허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에 거액을 투자해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2017년엔 20-21세기 현대미술과 건축, 디자인, 영상 전체를 포괄하는 박물관 ‘M+’가 개관할 예정인데, 규모는 6만㎡(1만8150평), 건축 설계비만 6억 4200만달러(약 7212억원)에 이른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한 명, 한 명의 인사가 결정될 때마다 매체들은 앞다퉈 소식을 전했는데, 이 박물관에 관장으로 취임한 전(前) 영국 테이트 모던과 스톡홀름의 국립현대 미술관 모데르나 뮤제엣의 관장 라르스 니티브(Lars Nittve)는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인사로 급부상했을 정도다. 


미술관을 실무적으로 기획하게 되는 수석큐레이터의 자리엔 누가 앉을까 역시 큰 관심을 모았는데, 한국 교포로는 처음으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부큐레이터를 역임한 정도련이 M+의 수석큐레이터로 영입됐다. 현재, 그는 관장의 지휘 아래 15명의 큐레이터를 실무적으로 이끌며, 2012년부터 2017년까지 10억 홍콩달러(약 1400억원)를 들여 중국과 아시아 전역 그리고 그 외 지역의 미술·건축·디자인·영상 등 시각문화 관련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새집 단장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만나 M+와 홍콩 미술계, 그리고 2014년 미술계에 대해 물었다. 




Andreas Gursky 

<Hong Kong and Shanghai Bank, Hong Kong, China> 

1994 C-print 226.2×176.2cm




퍼블릭아트(이하 PA) : 많은 사람들이 곧 홍콩에 열릴 새로운 미술관 “M+”에 대해 궁금해 한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정도련(이하 DC) : M+는 홍콩 구룡반도섬에 ‘서구룡문화지구’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속하는 기관이다. 이제 막 생기고 있는 뮤지엄(museum)으로 아직도 유동적인 부분이 많다. 아시다시피 뮤지엄이란 말은 (한국말로든 중국말로든) 미술관이나 박물관 두 가지 모두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인데, 디자인, 건축, 영상까지를 포함한 시각문화 전반을 다루려는 곳이기 때문에 미술관이라기보다 시각문화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M+, Museum for Visual Culture’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와전되어 고유명사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사실 정식 타이틀은 간단하게 M+. 나의 직책은 M+의 수석큐레이터(Chief Curator)이며 동시에 서구룡문화지구 프로젝트에 속해있다. 



PA : M+의 비전이 있다면.


DC : M+는 시각미술, 디자인, 건축, 영상의 영역을 따로 나누지 않고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각문화박물관으로서 20C, 21C의 시각문화를 이끌어나가고자 한다. 홍콩이라는 기점을 중심으로, 중국, 동아시아, 더 확장된 아시아 전역, 그리고 서구를 포함한 지역을 모두 포괄할 예정이다. 이렇게 말하면 개념이 조금 추상적인데, 비교하자면, 모마,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처음부터 국제적 컬렉션을 보유하고 국제적 규모의 전시를 열며, 최근에 와서 더욱 글로벌하게 방향성을 잡은 기관들이다. 모마에서 비서구의 미술을 다루는 전시가 있고 작품을 수집한다고 해도 결국은, 전시와 콜렉션의 80%가 서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중심 미술관이다. 뒤집어 말하면 M+는 홍콩, 중국,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할 의무가 있다. 모마 같은 미술관들이 70~80%를 서구에 비중을 두어 활동하는데 반해, 개인적으로 M+는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동아시아에 50~60% 정도의 비중을 두고, 나머지는 더 다양한 전시를 꾸리고 컬렉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PA : 서구룡지구를 문화적으로 형성하려고 했던 움직임은 언제부터 있었나.


DC :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1년 전인 1996년, 서구룡에 매립지가 생겼다. 홍콩이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역사적으로 매립지가 많았다. 70-80년대 홍콩 매립지 개발은 정부가 공개입찰을 통해 개발회사에 맡기는 식이었는데, 이 경우 몰(Mall)과 같은 형태의 주상복합문화시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전부터 홍콩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어 이를 어떻게 시정할 것이냐는 모델에 대한 요구가 있어 오긴 했지만, 계속 다양한 시도와 실패만이 있었다. 서구룡문화지구의 땅이 매립된 이후 같은 기로에 놓였었는데,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한 개발회사에 넘기려는 당초의 계획은 시민단체의 반발로 인하여 우선 저지되었다. 그 후 2000년대 초,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처럼 구겐하임 등의 서구유명기관들의 분관이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무산되었다. (결과적으론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문단을 형성한 후, 홍콩,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그리고 그 외의 지역들을 특유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박물관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고, 승인되었다. 단순한 미술관 아니라 시각문화 전체를 포괄하자는 의미에서 뮤지엄 플러스(+)라고 가칭했는데 이것이 본 이름이 되었다.



PA : ‘결과적으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DC : 서구모델이 동양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하여 콜로니얼(식민적) 자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상황을 단순하게 보고 싶진 않다. 1997년 중국으로의 반환 후 그리고 글로벌 시대를 맞은 홍콩사회는 훨씬 복잡다단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현대미술이 (넓게는 현대문화까지도) 벌써 다양화, 탈-중심화 되었다는 것은 지난 10년 사이에 충분히 드러났다. 앞서 자생적 기관이 생긴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다행이라고 말한 것은 국수주의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홍콩이 자기 맥락을 이야기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이기 때문이다.



PA : M+특유의 분위기나 특성이 있나. 


DC : 모마는 창립된 1929년부터 뉴욕 미드타운 중심가에 있어왔다. 긴 역사와 중심적인 위치, 그리고 큰 명성 덕에 모마의 소장품에 대해서라면 일반인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큰 기관이다. 모마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리 잡은 대기업이라면 M+는 창업 컴퍼니(start-up company)에 있는 기분이랄까. 그러면서도 M+는 서구룡지구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정부 슬하의 행정기관에 속하기도 한다. 즉, 완성(set-up)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정을 만들어 나가야하면서도 정부와도 잘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종의 유연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모마에서 일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대기관 속의 복잡함을 헤엄쳐나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일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감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네고시에이션이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경직되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다.




<Found Space> ⓒ Herzog & de Meuron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and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M+ 아직 건물이 착공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해 4월쯤 M+가 주최하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4월 25일부터 6월 9일까지, 서구룡문화지구의 공원에서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지닌 <모바일 엠플러스: 인플레이션(Mobile M+: Inflation)!>전시가 열렸고, 중국의 차오 페이(Cao Fei)와 지아쿤 건축소(JIAKUN ARCHITECTS), 한국의 최정화(Choi Jeong Hwa), 영국의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 미국의 폴 맥카시(Paul McCarthy)와 홍콩의 탐와이핑(Tam Wai Ping)이 유목성을 띠는 작업들로 참여했다. 이미 박물관이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서 물었다. 



PA :  건물이 생기지 않았음에도 매우 바쁜 것 같다. 


DC : 건물은 세워지지 않았으나 이미 박물관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은 단순히 건물(building)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건물은 하나의 용기, 스태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매체에 불과하다. 이미 팀을 이룬 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팀들 역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소유의 공간은 아직 없지만, ‘모바일 엠플러스’란 이름의 전시 등 홍콩의 곳곳에서 전시를 열고 있으며, ‘엠플러스 매터즈(M+ Matters)’라는 심포지엄도 작년부터 이미 4회 정도가 열렸으니 박물관은 시작된 바나 다름없다. 



PA : 건물은 2017년 완공 된다고 들었다. 특정한 예정일이 있는가. 


DC : 2017년 미술관 건물이 열릴 예정이다.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고, 현재는 ‘예정대로(on schedule)’이다. 지난 6월, 공개 컴페티션을 통해 테이트 모던과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설계한 헤르조그&드 뫼론(Herzog & de Meuron)을 건축가로 선정했고 6개월 정도의 상세 설계 작업이 마무리 되면, 올 해 여름이나 가을 초쯤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건물을 완성하기까지 3년~3년 반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형성에 있어서, 컬렉션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일어날 전시들의 성격도 예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기관이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M+는 중국 현대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콜렉터 울리 지그(Uli Sigg)의 기증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이 컬렉션은 197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미술 작가 325명의 작업 1510여 점 정도로 이루어져있다.



PA : 울리 지그의 기증을 기반으로 미술관이 세워졌다고 들었다. M+가 생각하는 소장품 컬렉션의 방향성이 있는가.


DC : 울리 지그 기증이 현재는 실제로 컬렉션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앞서 밝혔다시피, M+는 20C, 21C를 선도하는 시각문화박물관을 지향한다. 커뮤니케이션 문젠데, 울리 지그 컬렉션 때문에 M+가 중국 현대 미술관으로 이해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컬렉션을 늘려 중국의 현대미술 뿐 아니라 아시아, 미대륙, 유럽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포함할 예정이고, 건축, 디자인, 영화, 영상,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도 전략적인 컬렉션을 갖출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M+의 컬렉션은 다양한 분야를 커버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울리 지그 컬렉션은 긴 컬렉션 분야 체크리스트에 있는 중국현대미술을 커버해줬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부분을 찾아서 채워갈 예정이며, 아시아, 유럽,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나갈 것이다.



PA : 홍콩 컨템포러리 아트씬의 분위기는 어떤가. 


DC : 아직 홍콩 미술계를 완벽히 파악했다고 할 순 없지만 홍콩 미술계를 점령하고 있는 두 가지는 문인화 전통(잉크페인팅)과 상업시스템인 것 같다. 분명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도 있지만, 잉크 페인팅 전통이 굉장히 강하다. 이는 아마도 홍콩 역사를 반영하는 듯하다. 홍콩은 역사적으로 중국대륙의 내란, 혁명으로 인한 난민들이 통해가는 관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인화 전통의 화가들 역시 홍콩으로 유입되었다. 전통이 강하다 보니 서양화가 눌린 부분이 있다. 두 번째로 옥션사업이 발달한 것을 홍콩미술계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최근까지 홍콩에서 미술은 경매와 상업갤러리 등을 통해서만 이해되어 온 경향이 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홍콩에 들어온 지는 몇 십 년이 지났지만(특히 소더비는 40주년을 맞이했다), 현대미술이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업계가 워낙에 강하다보니 비평계나 잡지, 문화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에 따라 홍콩 미술계는 그다지 크지 않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다. 홍콩 미술 인사들은 홍콩을 문화의 사막, 불모지라고 부른다. 상업이 지나치게 크게 자리하고 있어 빛을 보지 못했고, 그러한 맥락에서 서구룡문화지구도 추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트 바젤 홍콩을 눈여겨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홍콩 미술계를 한 층 더 상업에 치우치게 만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제적 현대미술로 홍콩 미술계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A : 홍콩의 아이덴티티가 강한 편인가. 그런 특성은 홍콩에 국한된 것인가 아니면 중국도 그러한가.


DC : 중국과 홍콩은 한 나라지만 두 시스템(One Country, Two System)이다. 어촌마을이었던 홍콩에 영국이 들어와 전혀 다른 현대 도시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홍콩이 반환되기 이전까지 ‘홍콩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했던 대로 홍콩은 난민들이 모이는 곳, 세계각지로 떠나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곳에 가까웠다. 그런데 1997년 홍콩 반환이 정체성 형성에 큰 계기가 되었다. 초기 몇 년간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바꿔버릴까 하는 불안감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홍콩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때론 반정부의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문화적 홍콩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다.



PA : 주목받고 있는 홍콩의 장소, 작가에 대해 말해 달라.


DC : 앞서 말했듯, 옥션사업과 문인화 전통은 홍콩 현대 미술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사이트 아트스페이스(PARA/SITE Art Space)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같은 기관들이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어왔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장소들은 특수 성격을 가진 공간들로, 작지만 현대미술에 관한 프로그램을 행하며 지속되어온 점이 돋보인다. 이들이야말로 홍콩 현대미술 생태계를 발화시키는 씨앗을 담보하고 있다고 본다. 작가로는 이번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리킷(Lee Kit)이 떠오른다. 나뿐만이 아니라 홍콩 미술계 전반이 주목하고 있다. 그 이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곽망호(Kwok Mang-ho)나 박셩추엔(Pak Sheung Chuen) 역시 모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Rocco Design Architects 

<Bastille Opera International Competition Model,

 Paris, France> 1983 105×85×24cm Gift of the architects




PA : 어떻게 한국 소식을 듣나. 듣는다면, 어떤 매체들을 통해 소식을 접하는지.


DC :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하려고 하지만 매일 체크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침에 한, 두 시간씩 인터넷뉴스를 볼 때 SNS를 틈틈이 보고 기회가 닿을 때 미술잡지를 보기도 한다. 많은 친구들이 미술계 종사자들이다 보니 페이스북(Facebook)을 보고 있으면 미술계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PA : 홍콩 미술계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은 어떤가.


DC : 앞서 말한대로 홍콩의 미술계 실정에 제 코가 석자이다 보니 홍콩에서 한국미술 역시 위상을 따지기 쉽지 않다.



PA : 현지에서 주목하고 있는 미술 이론이나 담론이 있나.


DC : 언급했듯,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 홍콩에선 담론이 강한 편이 아니다. ‘담론의 부재’라고 말한다면 너무 뻔할까. 개인적으로는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담론보다는 실용주의적(프래그머틱) 비평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매일 일하면서 ‘어떤 방향성을 전달하고 단순한 홍콩 미술관이 아니라 국제적 프레임에서 국제적 관객을 대상으로 어떻게 공감, 소통할 것인가,’ ‘어떤 수집, 전시, 인터페이스가 필요할 것인가’ 를 고민한다. 이런 것들을 결정하기 위해선 내부 크리틱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비평의 큰 흐름과도 종횡으로 만나게 된다. 



PA : 현재 가장 방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과 가까운 미래에 예정되어 있는 일이 있는지.


DC : M+건물과 건축 컬렉션에 관련된 전시가 예정 중에 있다. 템포러리 전시 파빌리온이 1년 반 후 정도면 완성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박물관 본건물 개관전까지 3~4개의 전시가 해마다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프로그램과 담론을 강화하고 인터넷 상 활동도 활발히 할 예정이다. 현재 웹사이트가 있지만 서구룡문화지구에서 운영하는 웹으로 프로모션에 멈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버추얼(가상) 공간에 미술관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큐러토리얼 플랫폼으로서의 인터넷 공간을 구상중이다.



PA : 다가오는 2014년,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DC : 새해가 온다는 것은 돌릴 수 없는 자연의 논리이지만, 그에 따라 새로운 사건이나 주제가 꼭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미술계에 탈-중심화(decentralization)가 피부에 느껴지도록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생각해 온 일이고, 그 현상은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전통적인 중심부가 단순히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바로크적인 진화를 해가고, 그로 인해 세계미술계 전체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도련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으로 이민, 버클리 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학사,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인류학, 비교문학, 동아시아학을 두루 공부했고 한국어, 영어, 일어에 능하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에서 큐레이터 경력을 시작했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서도호, 마이클 주 작가가 참여한 한국관의 코디네이터로 일한 뒤, 2003년부터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의 시각미술부에 근무하다가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스카우트 돼 조각과 회화부분의 부큐레이터(Associate Curator)로 일했다. 현재, 홍콩 서구룡문화지구 관리국 산하 M+의 수석 큐레이터다. 




Iwan Baan <Guangzhou Opera House #1> 

2010 C-print 91.4×137.2cm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y Rubenstein Gallery, Los Angeles





Special Feature No. 6 

대화(Dialogue)를 통해 세계로!

● 김유연 독립큐레이터



세계 미술현장에서 ‘독립큐레이터’는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고 전시에 필요한 기획, 전시공간, 글, 예산, 홍보 등 제반 여건을 ‘스스로’ 해결하는 속칭, 프리랜서다. 제도와 권력에서 자유로운 반면, 살아가는 현실은 항상 녹록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을 기반으로 20년 가까이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유연은 독보적이다. 혈혈단신으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주요 국제전을 이끌어내며 한국 미술을 끊임 없이 세계에 알리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인간의 역사와 경로에 대한 시각적 호기심, 철학 그리고 열정”이 동력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치열한 뉴욕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퍼블릭아트(이하 PA) : 뉴욕에서 오랫동안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셨다. 타국에서 혼자 활동하기가 녹록치 않으셨을 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김유연(이하 YYK) : 내가 독립큐레이터로 남아있길 원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구속하는 틀이 없다 보니 유연하게 사고하고 대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창조적인 기획으로 이어진다. 예술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뉴욕에 있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감성의 흐름을 그 현장의 중심에서 직접 감지할 수 있다. 뉴욕은 나에게 세계각국의 예술가와의 만남을 가능케하고, 예술공동체의 메카니즘과 유동성을 체감시켜주는 세계의 창구다. 유수의 예술가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또 이러한 만남에 의해 아이디어가 촉진되기도 한다. 이들의 예술적 언어를 동반한 전시 기획을 실현해 볼 기회가 생긴다는 점도 장점이다.



PA : 기획 단계에서 거치는 과정이 궁금하다.


YYK : 비엔날레 경우 이메일로 먼저 정식 초청장이 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주요 미술관에 기획서 제출 후, 직접 미술관 관계자와 만나 자세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PA : 인하우스 큐레이터와 비교했을 때 안정적인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다. 특히 뉴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YYK : 독립큐레이터 활동자금은 항상 제로에서 시작된다. 주로 문화기관 및 재단 그리고 미술관과 협업하여 예산을 확보하려고 한다. 때문에 기획 준비 기간이 1년에서 3년 정도 걸린다. 기획 추진을 위해 리서치 출장은 필수인데, 미국 록팰러 재단 혹은 리서치 팰로쉽 재단에 신청하면 일 년 정도 후 활동비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많이 생기는 일의 특성상, 개인 비용으로 대처할 때가 많다. 




Shirin Neshat <The Book of Kings>

 Installation view  




PA : 그 동안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기획을 해오셨는지 간단히 소개해달라.


YYK : 25여년 간 기획해온 전시를 돌이켜 보니, ‘거주지’ 라는 특정한 장소성을 주제로 국제전을 많이 기획해온 것 같다. 예를 들면, 199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부르그 비엔날레’에 기획자로 참여했을 때, 케이프 타운과 요하네스부르그 80여명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고립된 사회라서 그런지 정체성이 겹겹이 응집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종차별, 성차 등. 남아공화국이 지니고 있는 물리적 거리, 소외감, 괴리감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을 문화지정학적으로 살피고 디지털 공간과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전시 <교차점(Transversions)>을 기획했다. 


1998 년 멕시코 다섯대륙과 한도시 비엔날레에서 진행했던 아태 지역의 회화전, <파편된 역사(Fragmented Histories)>도 비슷한 주제였다. 동남,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유산, 과거를 지배하는 파편적인 기억들을 메타포로 전시를 기획했다. 2004년 리버풀비엔날레도 리버풀 장소특정성에 입각한 도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즉, ‘대화(Dialogue)’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로 다른 국가 혹은 지역이 만나 교류할 때,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에서 야기된 긴장감이 생긴다. 이러한 긴장감을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일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김유연의 대표적 기획 중 하나인 <호랑이의 눈(In the Eye of the Tiger)>(1997) 또한 한국미술과 국제 컨텍스트 간 ‘대화’를 시도한 전시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그가 최초로 기획한 한국현대미술전이기도 한 이 전시는 뉴욕의 전설적인 비영리기관 엑싯아트(Exit Art)에서 열렸으며, 당시 뉴욕 미술계가 술렁일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에 리뷰가 실렸고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지에 이달의 베스트 전시로 선정되었다. 이후, 이 전시는 서울 일민미술관에서도 순회전을 가진 바 있다. 김유연은 인터뷰 내내 ‘대화’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뉴욕 현지는 얼마나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지도 궁금할 일이다. 


PA : 뉴욕 미술씬이 한국 미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객관적으로 말해달라.


YYK : ‘어디서 왔는가’는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예술적 주제다. 그것으로부터 서로 다른 문화의 관계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뉴욕 미술계는 아직 한국 미술사를 큰 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 현지에서의 한국미술은 중요하며, 미술관, 학계 그리고 문화 기관의 다각적 협력 하에, 기획자들이 다양한 전시를 소개하여 한국미술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 한 예로, 뉴욕에서 이번 해 9월 6일부터 다음 해 1월 5일까지 <이란 모던(Iran Modern)>전이 열렸다.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술관(Asia Society Museum)을 비롯하여, 화랑, 학계에서 동시에 소개되어 이란에 대한 역사, 사회, 정치, 문화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PA :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분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이슈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YYK : 뉴욕 부동산의 흐름을 보면 러시아, 중국, 인도, 중동 인구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유럽인들도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맨하탄 이스트 리버 (East River)를 따라, 부르클린 덤보(Dumbo)와 윌리엄즈 버그(Williamsburg), 노스포인트(North Point), 퀸즈 21가는 예술가들이 거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고 2012년 맨하탄 허드슨강으로부터 불어온 샌디 폭풍 (Hurricane Sandy)이 예술가의 삶의 질을 앗아가기도 했다. 외부에서 볼 때, 이제 맨하튼은 예술가가 부재하고 단지 세계 예술 시장의 도시로만 부각되기도 하는데, 최근 『부르클린 레일』 저널 주최로 이런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전시 <Come Together: Surviving Sandy, Year 1>가 열렸다. 대규모 전시로 작가 250명이 참여했고 627점을 소개했다. 부르클린 산업도시의 한 비어있는 빌딩을 지원 받아 성황리에 열렸다. "뉴욕 예술가들은 살아 있다"라는 예술가의 존재감과 예술적 역량을 보여준 사례다.



PA : 뉴욕 미술계 트랜드가 있다면 알려 달라.


YYK : 2013년은 상업주의의 일환으로 흥미위주의 스펙타클한 작품을 다수 볼 수 있었지만,  예술의 흐름은 딱히 경향이나 트랜드라는 경계가 없다고 여겨진다. 추상회화전이든 멀티미디어 영상전이든 아무것도 멈출 수 없게 하는 곳이 뉴욕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근대미술관 , 브루클린 미술관,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 그리고 첼시, 로우 이스트 사이드, 미드타운, 업 타운 화랑 과 비영리기관 등 전시공간이 많기도 많다. 사실 우리는 이 중에서 선택을 할 뿐이다.




Alfredo Jaar <The Eyes of Gutete Emerita> 1996 

Two Quadvision lightboxes with six black-and-white

 text transparencies and two color transparencies




PA :  뉴욕에서 특별하게 눈에 띄는 작가는 누구인가. 혹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전시는 무엇인가.


YYK : 예술과 경제의 관계에 대해 해학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작업이 눈에 띤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삭 줄리앙(Isaac Julien)의 멀티영상 작품 <플레이 타임(Playtime)>이다. 예술소장품으로 가득한 두바이의 호화빌딩에서 필리핀계 하인이 삶의 고달픔을 고백한 이야기, 아이스랜드 예술가의 집이 은행에 저당잡힌 이야기, 그리고 런던의 한 수집가, 저널리스트, 옥셔니스트의 이야기가 점차 전개된다. 배우인 제임스 프랑코가 실제 인물인 옥션인이자, 화랑딜러이자, 수집가인 시몬 드 퓨리(Simon de Pury)로 연기하였는데, 결국 글로벌 경제로 야기된 승자와 패자에 대한 비판의 몫은 관객에게 주어진다. 이 작가는 뉴욕 MOMA에서 <만개의 파도(Ten Thousand Waves)> 영상작품과 동시에 전시하였다. 뉴욕 퍼블릭 펀드(New York Public Fund) 선정 작가, 조세핀 멕셉퍼(Josephine Meckseper)의 <오일 프로젝트(Oil Project)>도 주목을 받았다. 8미터 규모의 키네틱 조각을 타임스퀘어에 설치했는데 20세기 텍사스 오일 펌프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오일이라는 부의 상징과 타임스퀘어라는 특수한 장소성으로부터 비지니스, 자본주의, 부동산, 자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그 외, 파키스탄 태생이자 인도작가인 날라니 말라니 (Nalini Malani)의 드로잉전도 기억에 남는다. 과거 복합된 역사의 흔적과 여성문제를 독백 형식으로 풀어냈다. 부르클린 미술관의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중력과 축복(Gravity and Grace: Monumental Works)> 설치전도 인상 깊었다. 가나의 황금해안으로 인해 식민지국가로 전락했던 과거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버려진 병 마개 등 금속 폐품을 지역 공동체 주민과 함께 조각보처럼 이었다. 필립 로카 디코르시아(Philip-Lorca diCorcia) <허슬러(Hustlers)> 사진 시리즈, 노예의 삶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재조명한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의 <12년간의 노예(12 years a slave)>도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안작가 일리야와 에밀리아 카바코프(Ilya & Emilia Kabakov)의 회화전은 차분한 색채와 시대적 배경, 콜라쥬의 환상적 긴장감으로 인상에 남았다. 



PA : 동시대 미술에서 남은 유효한 질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YYK : 현대미술은 더 이상 지역적 대화가 아니다. 예술가의 주관적 언어를 구사하되, 문화배경의 근원인 국제포럼의 대화(Dialogue)에 기반해야 한다.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예술가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이젠 서구와 동등하게 사고할 때다. 




Qiu Zhijie <Tattoo No. 2> 1996 Photographs




김유연은 독립큐레이터다. 세계 5 대륙 주요도시에서 19 년간 주요 국제 비엔날레전과 국제전시를 기획해온 그녀는 메디에이션 비엔날레(2008) 리버풀 비엔날레(2005) 제3회 광주비엔날레(2000) 다섯대륙과 한도시(1998) 제2회 요하네스부르그 비엔날레(1997)의 커미셔너 및 기획자를 역임했다. 대표 전시 기획으로는 <나침반의 끝(The Points of the Compass)>(2008), <Translated Acts; Performance and Body Art>(2001- 2003)이 있다. 『라이브 미술과 퍼포먼스(Live: Art & Performance)』, 『Zhang Huan』 등 저서가 있다. 현재 서울, 베를린,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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