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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기증Ⅰ: 국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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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의 미술품 기증 소식이 전해지며 관련 뉴스가 앞다퉈 보도되고 미술계가 연일 떠들썩하다. 대중은 그간 사적 수장고에 있던 작품을 국공립 미술관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 반면, 이를 정치적 프레임에 대입하며 기증작 수와 가치에 한껏 예민해진 이들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미술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지금, 정작 기증의 과정이나 세제 혜택 등 제도의 면면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 대중은 차치하더라도 기관이나 매체는 이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확립하고 있는가. 그래서 편집부는 이에 대한 특집을 기획해 총 2부로 나눠 선보인다. 먼저 이달엔 체계적이고 뚜렷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끌어나가고 있는 미술 기증의 국외 상황을 이모저모 살펴본다. 미술 기증의 역사와 문화에서 출발해 체계와 과정을 알아보고 제도를 영민하게 활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는 우리 문화와 인식을 공고하게 다듬는 자료와 기회가 될 것이다.
● 기획 · 진행 정일주 편집장, 김미혜 기자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내부 전경 이미지 제공: HDRwizardry/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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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No. 1 

미술품 기증의 역사: 고대 로마에서 테이트 모던까지_이은화  


SPECIAL FEATURE No. 2 

미술품 기증, 어떻게 이뤄지나?_이가진   


SPECIAL FEATURE No. 3

미술관을 비추는 빛, 기증_김미혜





Special Feature No. 1

미술품 기증의 역사: 고대 로마에서 테이트 모던까지

● 이은화 미술평론가



미술품 기증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탈리아 메디치(Medici) 가문을 비롯해 영국 헨리 테이트 경(Sir Henry Tate)과 네덜란드의 크뢸러 뮐러(Kröller-Müller) 부부, 미국의 앤드류 멜론(Andrew W. Mellon) 등 미술의 후원자이자 컬렉터였던 이들은 세계 주요 뮤지엄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다. 유력 가문은 물론 부유한 기업가와 개인들의 기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미술품 기증 역사의 시작과 그 전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 내부 전경 

Manchester Square, Marylebone, London 

© The Trustees of the Wallace Collection




미술품 수집의 역사


미술품 기증의 역사는 미술품 수집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미술품을 수집했을까? 수집의 기원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 인도 등 고대 문명의 사원이나 무덤, 또는 성소에 진귀한 물건들을 축적해 지배자나 종교의 영광을 드러내던 행위에서 비롯됐다. 서양에서는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1세기)부터 미술품 수집이 활발했다. 그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나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 조각상도 이 시기에 제작됐다. 열정적인 고대의 수집가들은 진귀한 물건이나 조각품으로 집과 정원을 꾸미는데 열심이었는데,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 기원전 27-14년)의 통치 기간 동안 예술품 수집이 크게 유행했다. 


기업의 예술 보호 활동을 뜻하는 ‘메세나(Mecenat)’라는 말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했던 명문귀족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황제의 총신이었던 그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와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당대 시인과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으며 이들의 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후원해 로마의 예술 부흥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렇게 미술품 수집의 역사는 고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적 개념의 미술품 수집과 예술 후원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생겨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부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등 세기의 천재들이 동시대 같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이탈리아가 천재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반증이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e degli Uffizi) 

내부 전경 

이미지 제공: Khristal/Shutterstock.com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예술 후원가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만토바의 곤차가(Gonzaga) 가문, 우르비노의 몬테펠트로(Montefeltro) 가문 등이 있다. 이들은 조각품과 회화, 정교한 사치품으로 저택을 장식했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컬렉션을 만들었다. 사유재산제의 발달로 큰 부를 축적한 신흥 귀족들은 예술 후원의 기회도 많아졌다. 미술품을 주문하거나 수집하는 건 후원자의 사회적 지위나 학식, 취향을 보여주는 행위였기에 후원자들 사이에서도 더 뛰어난 예술가를 확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 역시 존경 받고 재능 있는 엘리트로 간주되어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16세기 들어서는 유럽의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 놀랍고 진귀한 오브제를 모아 놓은 방 ‘분더카머(Wunderkammer)’가 유행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물건이나 박제된 동물, 보석, 뛰어난 예술품, 과학 기구 등을 수집해놓은 방이다. 분더카머는 ‘놀라운 캐비닛’이란 뜻의 독일어로, 미술품을 모아 놓은 방은 ‘쿤스트카머(Kunstkammer)’로 불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공간을 스탄지노(stanzino), 스튜디오올로(studiolo), 뮤세오(museo) 또는 갈레리아(galleria)라고 불렀는데, 메디치 가문은 그들의 궁 안에 ‘갈레리아’를 만들어 예술 작품을 전시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의 전신이다. 우피치 미술관이라고 번역해 부르지만 원어는 ‘갈레리 데글리 우피치(Gallerie degli Uffizi)’, 즉 우피치 갤러리다. 


‘오피스’라는 뜻을 가진 우피치 궁은 1560년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CosimoⅠ)의 명으로 1560년 착공해 1581년에 완공됐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설계한 우피치 궁 꼭대기 층에는 이들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과 로마 시대 조각을 전시한 갈레리아가 만들어졌는데, 가족과 손님들을 위한 프라이빗 갤러리였다. 명문가 집안의 개인 컬렉션이 공공 소유가 된 건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Anna Maria Luisa)의 기증 덕분이었다. 토스카나 지방의 마지막 공작부인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그는 메디치 가문이 대를 이어 수집한 컬렉션과 함께 가문 소유의 궁과 빌라 건물들을 1737년 피렌체에 기증했다. 이로써 우피치궁은 르네상스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거듭나 1765년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Portraits of the Duke and Duchess of Urbino)> 

ca. 1465-1472 66×47cm © Gallerie degli Uffizi




뮤지엄의 시대를 연 기증과 기부


17-18세기 유럽의 귀족과 왕족들은 르네상스 후원자들의 길을 따랐고, 이들의 미술품 수집은 이후 이어지는 위대한 박물관의 시대의 초석이 되었다. 박물관이 공공을 위한 교육과 계몽, 즐거움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세계 도처에서 뮤지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끝에 1793년 파리에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이 개관했고, 1824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가, 1836년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가 차례로 개관하며 미술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도 1872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이 문을 열었고, 이듬해엔 볼티모어에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Gallery)이 개관하며 본격적인 뮤지엄의 시대를 열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는 산업계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가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미술품 수집과 기증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영국 국립미술관인 테이트(Tate)는 제당업자이자 미술품 컬렉터였던 테이트 경이 국가에 기증한 65점의 그림과 건립비용을 토대로 1897년 설립되었고,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작품을 270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도 미술품 수집가였던 크뢸러 뮐러 부부의 소장품과 미술관 부지 기증 덕분에 1938년에 개관할 수 있었다.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은 부유한 은행가 앤드류 멜론의 소장품 130여 점과 기금을 토대로 1937년 탄생했다. 1920년대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멜론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 고전 걸작들과 조각품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1930년에서 1931년 사이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의 소장품 중 21점을 사들여 미국으로 가져왔다. 여기엔 라파엘로,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걸작들이 포함돼 있다. 


세계 현대미술의 1번지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의 역사도 기부와 후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뉴욕이 세계 최고의 부자 도시다 보니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가가 나서서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을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완전히 반대다. MoMA가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국가 주도가 아닌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기부자들과 후원자들 덕분이었다. 특히 초대 설립위원이었던 세 사람,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Abby Aldrich Rockefeller), 메리 퀸 설리반(Mary Quinn Sullivan), 릴리 블리스(Lillie Bliss)의 공이 컸다. 이들은 모두 미국 대부호의 부인이자 미술품 컬렉터였다. 1920년대 말, 급진적이고 영향력 있는 미술 후원자였던 이 여성 삼인방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미술관들에 도전하는, 현대미술(modern art)만을 위한 미술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건립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미술관을 이끌 참신하고 진보적인 미술관 관장을 직접 인터뷰해서 뽑았는데 그가 바로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Jr)다. 당시 27살의 전도유망한 미술사가였던 바는 이들 창립 멤버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개관 초기만 해도 미술관은 작은 임대 건물에 위치해 있었고, 작품을 구입하거나 미술관을 운영할 수 있는 어떤 기금이나 기부금도, 소장품도 전혀 없는 터였다.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외부 전경 © Yoshio Taniguchi




무에서 시작한 MoMA의 컬렉션은 현재 20만 점이 넘는다. 이렇게 컬렉션이 방대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미술관의 재정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후원자(patron)의 후원과 기증 덕분이었다. MoMA 컬렉션의 상당 부분은 기증과 유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전통은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설립자들이 먼저 나섰다. 블리스는 1931년 폴 세잔(Paul Cézanne)의 <수영하는 남자(The Bather)>(ca. 1885), <소나무와 바위(Pines and Rocks)>(ca. 1897), <사과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1895-1898) 그리고 폴 고갱(Paul Gauguin)의 <달과 지구(The Moon and the Earth)>(1893) 등 116점의 소장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MoMA 컬렉션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올드리치 록펠러 여사 가문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와 페기 록펠러(Peggy Rockefeller)뿐 아니라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 필립 존슨(Philip Johnson), 일레인 댄 하이서(Elaine Dannheisser), 아그네스 건드(Agnes Gund), 존 헤이 휘트니(John Hay Whitney) 부부 등 수많은 미국의 부호들과 미술품 애호가들이 MoMA에 주요 작품을 기증하거나 유증함으로써 컬렉션을 한층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MoMA의 컬렉션 정책은 기본적으로 무조건부 기증과 구입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작품의 매각을 통해 컬렉션의 질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을 구입한 일이다. 바 관장은 좋은 미술품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가졌지만, 개관 초기 그는 이 작품을 사고 싶어도 작품 값이 너무 비싸 구입할 수가 없었다. 당시 경제 대공황으로 기업가들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터라 후원자들에게 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소장품인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과 블리스의 유증작 중 일부를 팔아 작품 구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피카소의 명작이 MoMA의 벽에 걸리게 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Portrait of the Postman Joseph Roulin)>(1888)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열다섯 점짜리 연작 ‘1977년 10월 18일(October 18, 1977)’(1988),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다이빙 선수(Diver)>(1962-1963) 등도 모두 기존 소장품의 매각을 통해 구입한 명작들이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이 소장품을 매각 처분하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이렇게 MoMA는 필요에 따라 과감한 결정을 하고 유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컬렉션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gallery Domestic Disruption 

(Gallery 412) in the exhibition <Collection 1940s–1970s> 

The Museum of Modern Art © 2020 MoMA, New York 

Photo: Jonathan Muzikar




미술가들의 기증


부호 수집가들만이 작품을 기증하는 건 아니다. 사실 많은 미술관에 작가들의 기증이 소장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 백미를 감상할 수 있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도 1922년 모네가 국가에 기증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1918년 모네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으로 프랑스 정부에 수련 연작 두 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결국 8점의 수련 연작을 기증했다. 세로 2m에 가로 길이 합이 총 100m에 이르는 대작들로 구성돼있는데, 거장의 말년 역작이다. 평생 빛을 탐구했던 모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디자인된 전시실은 자연광이 들어오는 백색의 커다란 타원형 모양이다. 이 특별한 전시실 개관을 몇 개월 앞두고, 모네는 1926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내에 1987년 문을 연 클로어 갤러리(Clore Gallery)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유산으로 꾸며진 전시 공간이다. 터너만을 위해 특별히 존재하는 총 9개의 전시실은 1851년 그가 사망하면서 기증한 300점의 유화와 약 3만점의 수채화와 드로잉을 위한 공간이다. 1984년 테이트 브리튼이 제정한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 ‘터너상(Turner Prize)’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연간 6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인 로스코의 방은 영국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1968년 기증한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로스코는 1965년 테이트 미술관(구 테이트 갤러리)에 처음으로 작품 기증을 언급했으나 그가 존경했던 터너의 전시실 옆에 독자적인 공간을 요구하다 기증이 미루어졌다. 결국 1968년 테이트 미술관 관장이 터너의 전시장과 같은 건물에 그의 작품만을 위한 독립적인 전시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해 작품 기증이 성사되었다. 원래 테이트 브리튼에 있던 로스코의 작품들은 2000년 테이트 모던이 개관하면서 옮겨왔다. 


테이트 모던은 미술품 기증뿐 아니라 막대한 신관 증축 비용과 1층의 터빈홀 전시 비용도 개인과 기업의 후원과 기부로 운영하고 있다. 그 덕에 다른 영국의 국공립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상설전 무료 관람제를 유지할 수 있다. 테이트가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문턱 낮은 미술관’을 위해선 기증과 기부는 필수인 것이다. 살펴보았듯, 유럽과 미국의 주요 뮤지엄들은 수많은 개인과 기업, 작가와 미술품 애호가들의 아낌없는 후원과 기부를 통해 유지돼왔다. 미술품 수집의 목적은 부자의 과시욕일 수도, 미술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자산 증식을 위한 투자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마음이 없으면 일어나기 힘든 행위다. 기증자와 기부자에 대한 예우로 MoMA는 전시실마다 기증자의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테이트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국립미술관임에도 아예 설립자의 이름을 쓰고 있다. 2016년 증축한 테이트 모던은 아예 신관 건물 이름에 3,700억 원의 공사비를 후원한 영국의 거부 블라바트닉(Blavatnik)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테이트 모던이나 MoMA가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조건 없는 기증과 후원을 해준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까닭일 것이다. PA



글쓴이 이은화는 런던 소더비 예술대학원에서 동시대미술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융합미술연구소 크로싱 대표로 있다. 신문, 방송, 출판, 저술, 강의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2018), 『그랜드 아트 투어』(2017), 『자연미술관을 걷다』(2014)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내부 전경 

이미지 제공: Alexsegre/Shutterstock.com





Special Feature No. 2

미술품 기증, 어떻게 이뤄지나?

● 이가진 컨트리뷰터



세계 3대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영국 테이트(Tate) 미술관은 19세기의 설탕 거부 헨리 테이트 경(Sir Henry Tate)가 없었다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당시 ‘라파엘전파’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테이트 경은 다수의 작품을 고국에 유증함과 동시에 거액의 기금을 쾌척해 ‘영국 미술’을 수집, 보존 및 연구하는 국립미술관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했고, 그 보답으로 자신의 이름을 영원한 상징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이 낳은 천재,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미술관은 파리 중심부 마레 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Musée Picasso Paris)이다. 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낸 그가 1973년 작고하면서 유족들은 어마어마한 상속세 대신 작품의 일부를 프랑스 정부에 ‘물납’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피카소 미술관이 예술가의 고향이 아닌 파리에 위치하게 된 배경이다. 


저마다 작품을 기증한 이유는 달랐지만, 기관의 운영에 있어 2개의 중심축은 기증과 후원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작품 기부는 미술관의 근간이자 방향을 결정하는 소장품의 목록에 관여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소장자가 자신의 컬렉션을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의지만으로 기증이 무조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공공기관이나 특정 미술관, 재단 등에 직접 기증 의사를 밝힐 경우 각 기관의 자체적인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내부 위원회나 유관 부서에서 기증 작품들에 대한 연구 및 검증을 하고, 컨디션을 확인한다. 경우에 따라 외부 전문가로부터 추가 감정을 받은 다음 기관 이사회의 동의 및 재가(裁可)를 거친 후에 기증을 받을지 여부가 확정된다. 한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 세금의 일부나 전부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 납부하게 하는 ‘물납세’가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나라들도 있다. 프랑스만 해도 일반 조세 항목(CGI)에서 규정하고 있는 높은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 서적, 오브제 등으로 세금 일부나 전부를 지불할 수 있다. 


상속세, 증여세, 부유세가 이에 해당하는데, 자선 목적의 기부일 경우 그 혜택 수준도 높아서 66%까지 소득세를 줄여주고, 부유세의 경우 75%까지 아낄 수 있다. 총 세금 혜택은 연간 과세 소득의 20%를 넘길 수 없다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지만, 기증에 관한 상세 내역을 세무 당국에 제출할 의무를 지우지 않는 등 적극적으로 기증을 장려한다. 비록 본격적으로 ‘물납세’를 시행하지는 않지만 대중의 문화 향유 확대에 기여하거나 기타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예술품이나 문화재를 기부할 경우 그 품목의 가치에 따른 비율에 근거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나라도 많다. 스위스는 과세 소득의 20%를, 독일은 세전 소득(pre-tax income)에서 20%를 공제해준다. 우리나라도 국가지정문화재 및 시·도지정문화재나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국가,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공단체에 증여하면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다. 이외에 해외에서는 어떻게 예술품 기증이 이뤄지고 구체적인 혜택에는 무엇이 있는지 짚어본다.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 내부 전경 

Manchester Square, Marylebone, London 

© The Trustees of the Wallace Collection




영국


테이트의 선례 덕분이었을까. 영국은 ‘물납세’의 도입 및 실행에서 단연 선구적이다. 19세기 후반, 부유층에 부과하는 상속세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납세 목적으로 많은 이들이 집이나 영지를 팔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문의 명의로 이어지던 컬렉션이 분실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나 미술품이 해외로 반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 1896년 그것에 대한 과세를 면하는 법령을 제정했고, 1903년에는 ‘National Art Collections Fund’를 세워 나라의 재산으로 예술품을 수집하는 기금을 조성하도록 했다. 지금은 ‘아트 펀드(Art Fund)’라는 명칭으로 영국 국민들의 예술 감상 기회 증진 및 교양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구입한다. 법 제정 이후의 시행착오를 거쳐 예술품과 관련된 ‘물납제’가 활발해진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운영하는 예술품 기증 및 그에 의한 세금 혜택 제도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cceptance in Lieu’, ‘Cultural Gifts Scheme’, ‘Conditional Exemption’. 이 중에서도 ‘기증’을 통한 직접적 세금 감면과 관련된 제도는 Acceptance in Lieu와 Cultural Gifts Scheme이다.


Acceptance in Lieu(AIL)

Acceptance in Lieu(이하 AIL) 제도는 납세자가 상속세(UK Inheritance Tax, IHT)를 납부할 때 예술 작품이나 문화재의 소유권을 국가에 넘김으로써 세금을 탕감하는 제도다. 문화재는 문화적, 과학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오브제와 기록물, 건물이나 토지 등을 아우르며 영국 및 해외 중요작가의 작품도 가능하다. 그만큼 기증자에게 주는 혜택도 확실하다. 토지를 상속받기 위해 내야 하는 세금이 40%지만 AIL을 통하면 세금의 25%를 줄여주고, 오브제의 경우에는 보통의 거래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약 17% 이상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AIL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기증할 현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 고해상 컬러 사진, 감정 소견서, 법적 소유권을 증명하는 서류, 과거 세금 혜택 여부 등을 정리해 제출해야 한다. 신청 이후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AIL 위원회의 패널들이 품목 전체를 검토한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

(Musée Picasso Paris) 외부 전경 

이미지 제공: Alexsegre/Shutterstock.com




패널들은 미술관 큐레이터, 학자, 아트 딜러 등 필요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중요성(의미)뿐 아니라 품질, 상태, 시장 가치 등을 복합적으로 살핀다. 3년 임기(재임용 가능)로 임명되는 위원회의 멤버는 신청을 거쳐 선출되는 봉사직으로, 기부 품목이 기준에 합당한지 살핀 후 결정권자인 각 부서의 장관들에게 승인 추천/비추천 의사를 밝힌다. 물납이 확정된 이후에는 각각의 성격에 맞는 공공 미술관, 기록 보관소, 도서관 등에 배치한다. 이때, 기부된 것들은 1년에 최소 100일 동안은 대중에 공개되어야만 한다. 물론 납세자가 특정 기관을 지정해 기증하는 조건을 내걸 수도 있는데, 장관의 동의를 거치면 즉시 지정기관으로 해당 품목이 이전된다. 『아트 뉴스 페이퍼(The Art Newspaper)』의 보도에 따르면, AIL을 통해 2020년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의 회화,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에칭 6점 등 6,500만 파운드(한화 약 1,020억 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국고에 귀속시킬 수 있었다. 



Cultural Gifts Scheme(CGS)

2013년 4월부터 실시된 Cultural Gifts Scheme(이하 CGS)은 AIL의 자매 격이라고 할 만한 제도다. AIL로 상속세를 대신한다면, CGS는 납세자들이 기부를 통해 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까지 공제받도록 적용 범위를 넓혔다. 해당 품목이 납세를 대신하기에 합당한지를 판별하기 위한 심의에 AIL 위원회의 패널들이 참여하는데, 그 기준이 좀 더 까다롭다. 예술작품, 유물, 수기 원고 및 아카이브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수준이 ‘탁월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CGS에서 승인을 받으면 개인은 소득세와 양도소득세에 대해 합의된 가치의 30%를 감면받을 수 있으며, 이 혜택은 품목이 영국 예술위원회에 등록된 이후 최장 5년간 유지될 수 있다. 법인은 영국예술위원회에 기증 품목이 등록된 시점에 해당하는 회계 기간에만 법인세의 20%를 절약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예술가들이 CGS릍 통해 자신의 작품을 직접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때는 외려 자동으로 세금이 발생하거나 그에 따른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할 수도 있다.




Visitors in the sculpture garden 

of the Kröller-Müller Museum 

© Kröller-Müller Museum Photo: Wieneke Hofland




미국


지난 2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40년 동안 여성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한 심리치료사 헬렌 코른블럼(Helen Kornblum)의 컬렉션 중 100장의 사진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100장의 사진은 이제 한 사람이 아닌 미술관 소장품 자격으로 전시 및 출판 계획에 있다. 이렇듯 작품의 위상이 달라질 뿐 아니라 미술관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기증의 근본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물납세’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 내 미술관 및 박물관 등 문화 기관이나 비영리, 자선 기관 등에 작품을 기부하는 개인이나 회사 및 단체는 소득세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미국 대부분의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증 및 후원, 멤버십 프로그램 등이 이런 혜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법령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회계사나 변호사, 세무사 등 세금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기증자가 1년 이상 작품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어떤 경로로 작품을 취득했는지를 따져 세금 공제액의 기준으로 삼는다. 수혜 기관은 적어도 3년 동안 기증받은 작품을 면세의 목적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야만 한다는 ‘관련 사용 규칙(related use rule)’도 심사하는 항목 중 하나다. 미국 정부에서 기증자에게 주는 혜택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 고려하는 핵심 사항은 작품의 ‘공정한 시장 가치(fair market value)’다. 미국 국세청(IRS)의 정의에 따르면 공정한 시장 가치란 “작품을 기증하는 해당 날짜의 공개 시장(open market)에서 팔릴 가격”을 의미한다. 또한 이 가치는 관련된 사안에 대한 합당한 지식이 있는 잠재적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동의가 이루어진 가격을 반영해야 한다. 5,000 달러(한화 약 570만 원)가 넘는 가격의 작품이라면  공인된 감정사가 작성한 서면 감정서 제출이 요구된다. 감정서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감정사와 기부자 모두 처벌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박물관협의회(American Association of Museums)는 공식 디렉토리에 신뢰할 수 있는 감정사의 리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IRS 역시 자체적으로 예술 자문 패널(Art Advisory Panel)의 도움을 받는다.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25명의 예술 전문가들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연구자 등으로, 무보수 봉사직으로 임한다. 이들은 신고된 작품에 매겨질 수 있는 연방 소득, 유산, 증여세 등이 적절한 액수로 과금되었는지 예술적 가치 외에도 ‘공정한 시장 가치’를 반영해 검토한다. 작품의 수준에 비해 절세한 금액이 적당한가의 여부도 결정한다. 자칫 모호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 가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 방법을 동원하고 민관의 협력도 활발하다.




Installation view of <Early Photography and Film> 

(gallery 502)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2019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Jonathan Muzikar




캐나다


캐나다 국세청(Canada Revenue Agency, 이하 CRA)은 세금 징수 항목에 현물 증여나 기부를 통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개별 케이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기증자가 대상 기관을 직접 결정해야 하고, 어디에 어떻게 기증하느냐에 따라 과세분도 달라질 수 있음을 명시한다. 또한 기증의 주체가 개인인지 예술가, 딜러 등 관련 분야 종사자인지도 혜택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가장 흔한 예술품 기증 형태는 컬렉터가 미술관 같은 예술 기관에 컬렉션을 넘기거나 자선 활동의 일환으로 기증하는 방식이다. 기증이 결정되면 이후 과정은 기관의 담당자와 협의 하에 진행하게 되므로, 추후 기부영수증을 발급받아 CRA에 신고하면 된다. 1,000 달러(한화 약 92만 원) 이상의 작품을 기부하려는 자는 공인 받은 감정가, 아트 딜러나 특정 오브제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해당 분야의 경력을 갖춘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아 기부품의 ‘공정한 시장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기증한 날짜의 시장 가격”을 표기한 ‘감정 보고서’ 제출이 필수적이다. 작품가가 높을수록 2명 이상의 전문가로부터 감정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미국과 달리 CRA는 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가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할 때 그것의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위원회인 The Canadian Cultural Property Export Review Board(CCPERB)가 일종의 인증 기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CCPERB는 ‘캐나다 역사나 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거나 ‘미적인 수준이 높거나’, ‘예술 또는 과학 연구를 위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문화적 자산에 대해서 ‘특별한 중요성(outstanding significance)’을 보장하는 증서를 발부한다. CCPERB에서 인증한 자산을 기증할 경우, 양도 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고 그에 더해 자산의 공정한 시장 가치에 따른 특별기부세액공제를 받기도 한다. PA



글쓴이 이가진은 국어국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예술과 텍스트라는 두 가지 영역에 관심을 두고, 그 사이를 잇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긴 호흡의 글을 쓰고자 한다. 





니콜라스 세로타 경(Sir Nicholas Serota), 

Chair of Arts Council England 

Photo: Olivia Hemingway





Special Feature No. 3

미술관을 비추는 빛, 기증

● 김미혜 기자


주위의 모든 것이 어두워진 바로 그때,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지난해 미술계는 견디기 어려우리만큼 캄캄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모든 기관이 문을 닫아야만 했고 언제, 어떻게 다시 문을 열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그 여파는 속절없이 깊고 진하게 물들어갔다. 그러는 와중 들려오는 일련의 기증 소식은 미술관에 조금씩 여명의 불빛을 드리웠다.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는 동안 미술관은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소장품을 확인하며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기증작을 통해 추후 전시 계획을 세우고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함께 헤쳐나가는 폭풍


지난해 12월 21일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이하 ACE)가 발간한 「문화기증제도 및 물납제도 연간보고서 2019/20(Cultural Gifts Scheme(이하 CGS) & Acceptance in Lieu(이하 AIL) Annual Report 2019/20)」에 따르면 ACE는 추정가 약 6,500만 파운드(한화 약 1,018억 원)에 달하는 작품 52점을 확보했다. 모두가 어렵고 지난했던 시기에 사상 최대의 물납 건수를 기록하고 제도에 할당된 한도를 전부 소진했다는 점에서 이는 괄목할만하다. 영국 정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작품과 유산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CGS와 AIL을 시행하고 있다. 두 제도 모두 예술품을 기증받고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CGS가 문화 분야 자선 활동을 장려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기부의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제도가 영국 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떤 영향력과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2017년부터 ACE 의장을 맡고 있는 니콜라스 세로타 경(Sir Nicholas Serota)에게 인터뷰를 청했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 전역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소장품들은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즐기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재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컬렉션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CGS와 AIL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에 대한 세금을 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일생 동안 기증을 하도록 장려한다. 또한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공공의 소유로 확보함으로써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도서관 및 기록보관소는 방문객과 지역사회의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고, 나아가 창의성, 교육 및 연구의 중심축이 되어 스스로의 능력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장 에티엔 리오타드(Jean-Etienne Liotard)

 <The Lavergne Family Breakfast> 1754

 Pastel on paper stuck down on canvas 80×106cm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Accepted 

in lieu of Inheritance Tax by HM Government 

from the estate of George Pinto and 

allocated to the National Gallery, 2020




이어 그는 지난해 수집품 중 인상 깊었던 것에 관해 “현재 ACE 의장으로서, 예술위원회 첫 의장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어린 시절과 그의 저명한 가족들 기부금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 빅토리아 시대 잡지 『에이콘(The Acorn)』을 읽고 감동했다. 여기에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존 베티먼 경(Sir John Betjeman),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존 러스킨(John Ruskin), 엘렌 테리 여사(Dame Ellen Terry)가 쓴 견본이 포함된 마가렛 엘리자베스 케인즈(Margaret Elizabeth Keynes)의 사인 편지와 원고 수집도 함께 실려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20년 CGS와 AIL를 통해 어떤 작품들이 수집되고, 또 이들은 어느 기관으로 가게 되었을까? 세로타 의장에 따르면 CGS 산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품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영국 전역의 크고 작은 기관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가령 러시아 구성주의 조각가 나움 가보(Naum Gabo)의 모노프린트 작품들은 오크니의 피어 아트센터(Pier Arts Centre),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Scottish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헵워스 웨이크필드(The Hepworth Wakefield), 케임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박물관(Fitzwilliam Museum), 케틀즈 야드(Kettle’s Yard)로 배정됐다.


그런가 하면 지역 미술관들은 AIL을 통해 매혹적이고 매력적인 작품들의 수혜자가 되었다.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와 장 에티엔 리오타드(Jean-Etienne Liotard),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의 작품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로, 영국 극장에서 첫 동성애 키스를 그린 레너드 로소만(Leonard Rosoman)의 회화 시리즈와 팝 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의 자화상이 치체스터 팰런트 하우스 갤러리(Pallant House Gallery)로, 16세기 북네덜란드식 삼면화(triptych)는 더럼 카운티의 보우스 박물관(Bowes Museum) 소장품이 되었다. 이외에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영국 구성국 미술관에도 할당되었다. 웨일즈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Wales)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초상화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의 풍경화를 입수했고,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과슈 작품을 받았으며,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의 6개의 에칭(etching)은 벨파스트의 얼스터 뮤지엄(Ulster Museum)으로 갔다. 


세로타 의장은 지난해 락다운 기간 동안 “우리 중 누구도 혼자 이 폭풍을 이겨내기를 바랄 수 없다. 서로 협력할 때 더 강력하고 공유된 아이디어, 다양한 작업 방식을 나누고 국제적 수준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예술계 종사자들의 삶이 흔들리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기증 문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이들에게 함께 폭풍을 헤치고 나아갈 힘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국가적 유산을 대중의 이익을 위해 보존 및 보호하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에 기인한다. 




존 워터스(John Waters) in his studio 

Photo: Studio John Waters




드림랜드를 향하여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자라면서 어떻게 예술가로 남느냐이다(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he grows up).”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말처럼 어릴 적에는 예술가였던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예술가로 남아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 예술을 보고 자라 그 자신이 예술가가 되고,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다시 미래 예술가들에게 돌려주려는 이가 있다. 지난해 11월, 볼티모어 미술관(Baltimore Museum of Art, 이하 BMA)은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 배우이자 작가, 저널리스트인 존 워터스(John Waters)로부터 그의 컬렉션 약 375점을 기증받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워터스는 <핑크 플라밍고(Pink Flamingos)>(1972), <폴리에스터(Polyester)>(1981), <헤어스프레이(Hairspray)>(1988)와 같이 1970-1980년대 컬트영화를 제작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 주목해왔고 이후 영화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재치와 대담성을 바탕으로 한 시각예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기증 예정인 그의 소장품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부터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낸 골딘(Nan Goldin), 신디 셔먼(Cindy Sherman), 게리 시몬스(Gary Simmons),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리차드 아트슈와거(Richard Artschwager),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 리 로자노(Lee Lozano),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그리고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까지 저명한 아티스트 125명의 작품을 비롯 그 자신의 작품 90점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랜 고민 끝에 진행되는 이번 기증은 그가 죽고 난 뒤에 이루어진다.


워터스가 자신의 소장품을 BMA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주요하게 자리한다. 볼티모어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50년대 부모님과 함께 BMA를 자주 방문했는데, 아직도 처음 방문했던 날을 기억한다고 한다. “BMA에 가는 것이 좋았다.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와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를 그곳에 데려가줬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 그의 첫 작품 구매와 수집도 시작된다. “나의 첫 작품 구입은 BMA 기프트샵에서 산 2달러짜리 호안 미로(Joan Miró) 포스터였다. 집으로 가져가 부모님 집 침실 벽에 걸어놓았는데, 이를 본 친구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예술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충격을 주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놀라게 하고, 적대감을 일으켜 분노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발견하기 위해 60년 동안 찾아 헤매왔고 평생의 컬렉터로 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의 고향 미술관인 BMA에서 시작되었다. 미술품을 기증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나에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을 안겨준 곳에 감사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다른 어떤 기관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존 워터스(John Waters) <No Smoking> 2006 

© the artist and Marianne Boesky Gallery, New York




, 워터스는 작품 기증 조건으로 한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어떤 작품도 판매해서는 안 된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즉 투자의 목적으로 예술품을 사지 않는다. 워터스는 말한다. “나는 평생 단 한 개의 작품만을 팔았다. 작품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 어디에도 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워터스의 소장품들은 볼티모어와 뉴욕시,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그의 집과 스튜디오, 사무실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이 그의 사후에 미술관에 기증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BMA는 워터스의 이름을 딴 두 개의 화장실과 로툰다(rotunda)를 설치할 계획이다. 그의 작품을 보았거나, 그를 알고 있는 이라면 이 모든 것이 워터스 본인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별로 나누는 것이 아닌, ‘존 워터스 화장실(The John Waters Restrooms)’로 알려지고 불리길 기대하며 그는 남녀 화장실 벽 모두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성중립적(gender-neutral)으로 보이게 만들 계획이다. 발랄한 유머와 엉뚱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야말로 워터스다운 이 공간은 그 어떤 전시실이나 기념비보다 그의 이름을 방문객에게 각인시키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워터스는 자신의 영화를 위해 고용된 캐스트들과 제작진을 아우르는 프로덕션 이름을 드림랜드(Dreamland)로 칭한 바 있다. 오랫동안 그가 꿈꿔왔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예술을 좋아하면 마침내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밀클럽에 가입한 것처럼 특별한 언어를 배우고, 이상한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나는 예술계의 모든 우스꽝스러운 엘리트주의를 사랑한다. 아주 재밌는 것 같다.” 워터스 스튜디오 관계자에 따르면 BMA는 현재 그의 소장품을 엄선한 첫 전시를 선보일 계획 중에 있다. 워터스가 평생에 걸쳐 설계한 드림랜드, 그곳에 첫발을 내디딜 시간이 머지않았다.


밤을 지나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제대로 보내기 위해 우리는 바쁘고 치열하게 움직인다.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를 향유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기꺼이 보존해야만 하는, 이 공간들이 유지되고 지켜지려면 기증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요소다. 국내에서도 기증과 물납제도에 대한 논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함께 폭풍을 헤치고 드림랜드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기증의 진정한 의미와 그 가치를 실로 고민해야만 한다. PA




존 워터스(John Waters) <Loser Gift Basket> 2006 

© the artist and Marianne Boesky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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