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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
Oh Won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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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의 형상, 인간으로부터

새하얀 북극에서 뛰노는 얼룩말, 작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하는 당나귀,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하늘을 나는 84마리의 금붕어, 도심 속에서 요가를 연습하고 공중곡예를 선보이는 북극곰 무리. 언뜻 익숙하고 친숙한 주체들에 마음을 빼앗기려는 순간, 이들이 응당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어딘가 어색하고 낯선 공간에서 다분히 생경한 액션을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을 ‘불가능한 기적’이라 일컫는 파올라 피비(Paola Pivi)는 비현실적 요소들을 예술을 완성하는 재료로 십분 활용하며 실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일상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이렇게 현실의 프리즘에 투사된 아이러니의 빛은 인식적 한계를 초월하고 이내 우리를 숨겨진 이면의 수수께끼 세상으로 이끈다.
● 최태만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무제' 2007 캔버스에 혼합재료 231×47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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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의 거울로서 인간 형상


여수에는 GS칼텍스재단이 정기출연금으로 조성한 문화공간 예울마루와 함께 장도 전시관과 창작스튜디오가 있다. 이 문화공간은 대·소극장, 전시실·전시관과 함께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다. 오원배는 여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넓은 전시실에서 지난여름 두 달 동안 장도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제작한 62점의 드로잉을 발표했다. 느린 산책 걸음으로도 한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이 작은 섬의 정상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의 물결로부터 항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들, 양식장의 부표, 방파제와 갯벌, 해당화는 물론 자신이 작업실 앞에 던져놓은 어망을 주로 흑백의 단색으로 표현한 드로잉들은 말 그대로 ‘2개월간 장도 생활의 기록’이었다. 


이처럼 오원배는 자신의 일상, 일상에서 마주친 사물, 한 시대를 살면서 경험한 느낌과 생각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왔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사소한 일상을 소재로 제한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특정한 상황에 놓인 ‘인간’을 주제로 작업했다. 따라서 ‘실존’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존주의 철학의 지금, 여기의 ‘현존재(Dasein)’, ‘세계-내-존재(in-der-Welt-sein)’, ‘상황’ 등은 오원배의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는 유신독재가 시작되던 1972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는 유신 말기의 정치적 탄압과 10·26, 12·12 군사 쿠데타, 1980년 5월의 민주화와 곧 이은 광주항쟁이 연속했던 격동기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년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그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라비틀어진 육체를 통해 가난의 절망을 표현하는가 하면 가면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했다. 재학시절 한국의 정치적 격동과 군 복무 중에 겪었던 폭력의 현실은 그가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동기를 제공했지만, 그가 인간의 실존 그 자체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1983년 프랑스로 유학해 작업하면서부터였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입학해 자크 얀켈(Jacques Yankel) 스튜디오에서 수업할 당시 그는 프랑스의 저명한 진보적 신문인 『리베라시옹(Libération)』을 콜라주한 후 그 위에 인간의 일그러지고 변형된 형상을 그리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작품에 꾸준하게 나타나는 연작의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연작은 형태가 불분명한 인간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서로 뒤엉겨 있거나 혼란스러운 난투를 벌이는가 하면 서까래 같은 격자 공간 속에 유폐 혹은 방치된 채 그 공간 속으로 스며들 듯 실내풍경을 구성하는 구조물과 일체가 된 고독한 인간의 형상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표현적 필치와 묵직한 색조 때문에 비극적 정서를 고양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인간을 주제나 소재로 한 다른 작가의 작품과 분명히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양식을 구축하고 있었다. 다만 오원배는 그것을 계속 반복, 자기 복제하지 않고 인간으로 향한 주제와 개성적 표현은 유지하되 작품의 내용, 형식과 방법을 꾸준히 개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4년 그가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연 개인전 <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이 그것을 증명한다. 파리의 지붕과 굴뚝을 그린 프레스코 풍경들은 그의 다른 작품이 지닌 웅장한 구도, 거대한 화면, 어두운 색조에 비하면 작고 섬세하다. 그만큼 집요한 노동과 적절한 시간 활용이 생명인 프레스코 기법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파리에서 유학할 때 정통 프레스코 기법을 터득해 화학적 특성까지 꿰뚫고 있던 그는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의 후불탱화를 제작하면서도 필요한 도상 외의 장식을 배제하고 현대인의 체형에 필적하는 인체 비례를 적용하여 불교미술의 현대화를 실천하기도 했다.




<무제> 2018 

판넬에 혼합재료 123×300cm




2. 출구 없는 밀폐공간에 부유하는 인간


내가 오원배의 작품을 처음으로 주목한 것은 토갤러리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1988년에 기획한 <형상과 표현의 언어>를 통해서였다. 당시 그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작품은 내가 제시한 개념인 ‘형상’과 ‘표현’을 모두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후 1989년 격월간지 『가나아트』에 오원배 작가론이라 할 수 있는 「동요와 불안의 군상」을 발표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날 기회가 많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만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솔직히 밝히건대 나로서는 그의 작품세계 중 일부만 건성으로 알고 있을 뿐 그의 작업 세계 전체를 조명할 통찰력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쓴 글 중에서 2017년 아트사이드에서 열린 <트라이앵글>의 도록에 수록한 것이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데 비교적 ‘그럴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원고에서 그 글을 고쳐 쓰며 오원배 작품의 특징을 돌아보고자 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특정 상황을 지시하여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제목을 지양하고 ‘무제’로 붙여진다. 2012년에 제작한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두운 실내에서 부유하거나 투명 인간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불쑥 튀어나오며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림 속의 인물이 있는 공간은 어둡고 깊은 실내다. 닫힌 공간에 유폐된 인물들이 마치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한 상황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다 코레조(Antonio da Correggio)가 파르마 대성당 큐폴라에 그린 <성 요한의 환상(Vision of St. John the Evangelist at Patmos)>(1520-1522)이나 <성모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1526-1530)처럼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는 듯한 형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제> 1992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386cm




이 천장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된 원근법을 준수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특징이 있다. 원근법은 플라톤(Platon),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로부터 시작하여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에 의해 정립된 천동설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란 관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고정된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은 원근법적 질서와 시각체제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매너리스트의 스승이기도 한 코레조의 천장화는 교회가 받아들인 천동설이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등에 의해 의심받으면서 르네상스가 수립했던 일시점 원근법이 해체되기 시작한 징후를 드러낸다. 


코레조의 천장화에서 인간은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력의 법칙과 상관없이 하늘 위에 떠다니고 있다. 이러한 부유 또는 공중부양하고 있는 형상의 등장은 일시점 원근법에서 다시점 원근법으로 가는 과정이자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구원을 갈망했던 매너리즘의 정신적 징후를 잘 드러낸다. 틴토레토(Tintoretto)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1592-1594)에서 볼 수 있는 사선 구조, 다시점은 강렬한 색채대비와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1495-1498)에서 보여준 일시점 원근법의 통일성을 거부하고 작품을 보다 신비적이고 정신적인 깊이의 세계로 인도한다. 물론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가 해석했던 것처럼 1527년 신성로마제국 군대의 로마 약탈, 종교개혁운동에 의한 교회의 분열, 로마경제권의 몰락 등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럽에 나타난 종말론적 위기의식은 르네상스를 대신하여 매너리즘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지만 세계관, 천체우주관의 변화와 마주친 당혹감이 초현실적이고 신비적인 회화의 등장을 촉발했다고 할 수 있다.


오원배의 <무제>에서도 인간의 형상은 중력의 법칙을 역행하듯 대기 속을 부유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공간은 하늘이나 넓은 만찬장이 아니라 인간을 가두고 있는 밀폐구조, 격리와 감금의 장소다. 출구도 열쇠도 없다. 이 공간 속에 갇힌 인간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구원의 환희가 아니라 탈출이 원천 봉쇄된 장소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고립과 단절된 상황에서 인간들이 취하고 있는 과잉된 제스처는 어두운 색조에 의해 비극적이면서 연극적인 상황을 고양한다. 그의 작품에서 벽은 인간을 가두는 제도와 폭력을 상징한다. 오원배는 그 닫힌 공간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폐쇄 공포가 풍선처럼 가벼운 인간을 짓누르거나 옥죄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제> 2018 

종이에 혼합재료 각 92×288cm




3.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로


1970년대의 ‘가면’ 연작이나 1980년대 초반 짐승과도 같은 야만적인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위선과 폭력을 은유하던 그가 유학을 마치고 1986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한국미술계는 민중미술이 요동치고 있었다. 1987년을 기점으로 민중미술이 거리와 광장의 미술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민중미술의 취지에는 공감하였으나 방법은 달리하여 그 나름대로 인간의 한계와 모순, 실존적 위기, 인간을 폭력적으로 억누르는 제도와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사물에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2017년 OCI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고가 나면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주요 도로마다 설치해놓은 CCTV를 포착해 그린 작품이 그 예에 속한다. 이 전시에서 그는 다가올(아니면 현재 이미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급격한 사회변화를 주제로 거의 벽화에 버금가는 대작을 제작했다. 기계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는 인간을 통해 그는 급격한 사회변화가 야기할 인간의 미래를 묵시록적이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 연작은 우주천체관의 변화에 매너리스트들이 느꼈던 당혹감처럼 지금까지 인간의 삶을 지탱해온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인공지능의 등장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당혹감의 시각적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제> 2017 

종이에 혼합재료 190×3,200cm(부분)




오원배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거대한 크기의 화면, 부유하는 인간, 한계상황을 암시하는 실내풍경, 거치면서 섬세하게 쌓아 올린 붓질, 칙칙하면서 깊은 무채색조의 웅장한 비장미다. 그것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개성적인 양식이자 시대를 바라보는 한 작가의 시선이 응축된 예언이거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출발해 인간으로 귀결된다. 그에게 인간의 형상은 놓칠 수 없는 자원이자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PA




오원배




작가 오원배는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미술학 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금호미술관, OCI미술관, 파리 시테 데 자르(Cité des Arts)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300여 회가 넘는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을 변형, 상징화함으로써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온 그의 작품은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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