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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비하인드 스토리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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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ünster Sculpture Project 197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1977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이제 가시 거리로 성큼(!) 다가왔다. 이에 안양프로젝트의 롤모델이기도 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란 정식 이름을 미처 달지 못했던 첫 번째 전시 <20세기 조각의 역사>의 ‘프로젝트 부문’을 살펴봤다. 독일 카톨릭의 3대 본산 중 하나인 뮌스터는 조용하고 보수적인 중산층의 종교 도시다. 유서 깊은 신학 대학들이 엄숙하고도 학구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가 되어 있어 다른 대중교통이 필요 없을 만큼 대단히 정서적으로 여유롭다. 카톨릭 성당을 비롯하여 도시 곳곳에 잔잔히 퍼져있는 예스러움은 도시의 역사를 반영하면서도 그들의 진부한 기질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은 뮌스터를 보수적인 시골 부르주아의 도시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니까.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기능을 잃은 카셀과 비교해 봤을 때, 카셀이 산업화와 도시화를 받아들인 반면, 뮌스터는 예전의 모습을 무식하게(?) 모조리 복원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태생적 보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 기획·글 안대웅 기자

Mike Kelley 'Petting Zoo (Streichelzoo)' Foto: Roman Men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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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뮌스터시는 작은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국 모더니즘의 거장 헨리 무어가 자신의 추상조각을 뮌스터시에 기증할 의사를 피력한 덕분이다. 뮌스터시는 이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하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무어의 작품이 너무 ‘모던’하다는 것. 바로 독일 예술계는 현대미술에 대해 보수적이고 냉담한 뮌스터의 분위기를 비판했고, 해명과 반박의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거듭되기 시작한다. 무어의 작품에 대한 논란은 70년대 중반까지 계속 되며 골칫거리로 성장해 결국 시정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시정부가 구매하기로 한 작품은 ‘모던’하다못해 ‘아방’한 키네틱 조각가 조지 리키의 작품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불타오른다.

이 과정에서 결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주립미술관장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n)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3개월 동안 방송에 출연하며 일반시민들에게 현대미술 ‘강의’를 통해 예술(모더니즘)의 정치적 미학적 도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기 시작한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시의 여론은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갔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부스만은 지역 주민에게 현대 조각과 공공장소의 야외조각작품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1977년 뮌스터 조각 전시(Sculpture Exhibition in Munster)를 제안한다. 미술관 본 전시 <20세기 현대조각의 역사>와 야외조각 ‘프로젝트 부분’으로 꾸려진 이 행사는,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다시피, 앞으로 10년마다 찾아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조각 프로젝트를 예고했다. 바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말이다.  




Carl Andre (*1935)
<97 Steel Line for Professor Landois> 
1977 Bodenskulptur aus 97 Einzelplatten Stahl, 
0.005×48.5×0.5m Standort: Hugel am
 Ende des neuen Aasees, Aufbau durch Carl Andre
 am 13. Juni 1977 Skulptur Ausstellungin Munster 3. 
Juli-13. November 1977 
Foto: LWL-MKuK/Rudolf Wakonigg



현대미술의 모험, 종교도시에서

애초부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그 자체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뮌스터 시민을 계몽(!)할 목적을 띈 본전시 <20세기 현대조각의 역사>에 딸린 부수적 프로젝트로서, 모더니즘의 ‘위대함’을 도시 널리 인식시키기 위한 장치이자 전략으로서 기획됐다. 부스만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를 초청해 뮌스터의 시민들에게 ‘미술의 현재’를 보여주길 원했다. 이를 위해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저명한 뮌스터 출신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를 불러들였으며,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대지미술의 기수들로서 70년대 당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지금은 전설적 인물된 클래스 올덴버그, 브루스 나우만, 칼 안드레, 마이클 애셔, 도날드 저드, 리차드 롱, 리차드 세라(이상 미국), 요셉 보이스와 울리히 뤽리임(이상 독일), 이상 9인의 작가 라인업이 포진했다. 대부분 당시 부상하고 있었던 ‘장소특정적’ 조각, 즉 특정한 장소를 재규정하는 개념주의적 조각을 제안했다. 아무래도 현대의 행동주의 공공미술과 비교했을 때, 당시 제안된 프로젝트는 비교적 정적이고, 모뉴먼탈한 조각의 면모가 없지 않았지만, 예술가는 그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저드가 스테이트먼트에서 밝힌 “퍼블릭과 프라이빗의 의미의 카테고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전시의 조건이나 사람들이 보는 것에 따라서 작품의 퀄리티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은 작품 내부로 끊임없이 수렴하는 미니멀리즘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 작업 <무제(untitled)>는 모뉴먼트와 뮌스터에 널린 원형 목장의 이미지를 조각에 겹쳐놓음으로써 지금은 없는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모튜먼트의 덧없는 양가성을 드러냈다.

또 안드레는 아 호수(Aasee) 끝의 언덕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로 세로 50cm, 높이 0.5cm의 동일한 크기의 강판 97개를 연결해 총 길이 47.5미터의 서정적인 긴 선을 만들었다. <란도이스 교수를 위한 97 스틸 라인(97 Steel Line for Professor Landois)>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보수적이고 정적인 뮌스터의 시간성을, (아마도 뮌스터 출신 학자 란도이스에게 영감을 받은) 활기차고 유동적인 시간 개념으로 달리 정초한 조각 작품이다. 공공(public)과 조각 그리고 장소로서의 뮌스터, 이 세 개의 개념적 사유축을 통해 자신의 조각의 조건을 이야기 하는 안드레를 봤을 때, 한편으로 개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개념미술가의 오만한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한편 올덴버그는 아직도 뮌스터 성벽에 그대로 박혀있는 (2차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포탄과 뮌스터의 명물 열기구에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3.5미터 짜리 거대한 당구공 모양의 조각을 뮌스터 전역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거대한 당구공을 통해 뮌스터 전역을 당구대로 삼아 관람자의 시선을 “쥐의 눈”으로 전치시키려고 했던 그의 야심은, 예산 부족과 주민 반발로 인해 축소된 채, 3개의 조각만 제작되어 아 호수 옆의 잔디밭 위에 비교적 온건하게 설치돼야만 했다. (이후 이 작품은 <거대한 당구공(Giant Pool Balls)>으로 불린다.) 계획이 축소된 경우는 독일의 전설 요셉 보이스도 마찬가지었다. 애초에 보이스는 하이덴버르그플라츠(Hindenburgplatz)로 가는 지하 터널 위 움푹 파인 쓸모없는 공간과 오디토리엄 빌딩의 램프(Ramp,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교차로) 아래를 밀랍으로 채우는 작업 <지방(Tallow)>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예산과 조직의 반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고, 대신 그것을 토막낸 후 내셔널 뮤지엄의 아트리움에서 전시했다. 한편 그는 카톨릭의 보수성을 비판하려는 듯, 우버바서 교회의 첨탑 위에 두오모로 향하는 송신기를 설치하고, 동시에 승리의 십자가 뒤의 성가대석에 작은 수신기가 들어간 긴 말린 당근을 설치하는 프로젝트 <라디칼(Radikal, 과격한)>을 함께 제안했다. 당근은 30분마다 라디칼(radikal)을 읊조리는데, 이것은 당근(die Mohre)은 곧 뿌리(die Wurzel)이며, 독일어로 뿌리는 ‘die Radix’로도 쓴다는 점(Radix는 radikal의 유의어)에서 착안한 언어 유희다. (이 알쏭달쏭한 작업과 관련해 1997년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재미있는 동화를 지어내기도 했다.) 성 피터 성당 옆에 일렬로 세워진 9개의 뾰족한 돌은 독일의 거장 조각가 울리히 뤽리임(Ulrich Ruckriem)의 작품이다. 그는 돌 자체의 본질적인 가치와 감성, 순수한 표면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졌던 미니멀리스트다. 저먼그린스톤(German green stone, 옥의 종류)을 채집해 규칙적으로 잘라내어 재배열하고, 마지막으로 표면의 광택을 내는 등의 약간의 손질을 통해 완성된 이 조각은, 조각과 장소 사이의 화해를 이끌어내어 유럽에서의 최초의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유명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77년 뮌스터에서 가장 특이했던 작업은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의 <카라반(Caravan, 이동식 자동차 주택)>이다. 그는 카라반을 이끌고 19주의 전시 기간 동안 뮌스터의 다양한 지역(주차가 금지된 곳을 포함해 어느 곳이라도)을 떠돌았다. 매 주 월요일마다 장소를 바꿔 총 19번을 이동,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보는 미술관 로비의 프론트 데스크에 놓아 관람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주거 유닛의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은, 모바일 폰이 쏟아지는 요즘 더욱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이후 프로젝트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동일 작업을 진행했다. 서서히 변해가는 생활 환경과 변하지 않는 카라반의 대비가 보여주는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는 아마도 아는 사람[뮌스터 시민]만 즐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진풍경이었을 테다.)




Thomas Schutte (*1954) <Kirschsaule> 
1987 Sandstein, Aluminium, lackiert, Hohe 600 cm 
Skulptur Projekte Munster 1987 
Foto: LWL-MKuK/Rudolf Wakonigg  



우리집에 왜왔니!?

물론 이 말썽쟁이들로 인해 보수적인 분위기의 뮌스터에 생길 파장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먼저, 브루스 나우만이 피라미드를 거꾸로 박아놓은 것 같은 <꺼진 광장(Square Depression)>을 뮌스터시에 제안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Forget about it(잊어버려라).”였다. (한편 이 작품은 결국 30년 뒤 2007년 프로젝트에서 실현된다.) 작품을 뮌스터 전역에 설치한다는 최초 계획도 무산되어 아 호수 부근으로 집중되었다. 그 뿐 아니라 앞서 살펴봤듯이 올덴버그, 요셉 보이스의 계획 또한 ‘예산 부족’과 조직위의 비협조로 작품이 축소되었다. 일부 시민의 항의와 방해로 전시작품 제작과 전시가 경찰의 보호 하에 이루어져야 했던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올덴버그의 <거대한 당구공>을 호수물 속에 처박으려는 대학생이 체포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뮌스터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지만.) 한편, 뤽리임의 작품 또한 격렬하게 공격받으며 티비 방송에 “스펙타클하게” 보도되는 가운데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의 작품은 1987년에 재설치 된다.)

또 한 보도에 따르면 애셔의 카라반은 전시기간 중 견인되었다고 한다. 견인의 이유가 시의 관계자에 따르면 “카라반을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주차하라고 주의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주차시킴으로써 사람들이 통행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견인해 갔다.”라고 하니 뮌스터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했다는 게다. 부큐레이터 코리나 플라트와 부설립자 카스퍼 쾨니히가 슈피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이런 소통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플라트는 “물론, 어떤 주민은 낯선 무리 떼가 마을을 장악하는 것을 굉장히 성가셔 했습니다.하지만 지역은 전시에 대해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국제적인 도시가 되겠지요. 그들이 그걸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그들이 즐거워한다고는 확신하고 싶습니다.”라고 불안과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쾨니히는 “뮌스터는 이런 종류의 전시에 아주 이상적인 도시입니다.”라고 하며 심드렁하게 받아친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관객이란 뜻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내버려두고, 돈을 우리에게 내어 주는데 동의해주기 때문입니다.”





Bruce Nauman <Square Depression> 
2007 Foto: Arendt Mensing




지속한다는 것

지금까지 살펴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I(이하 뮌스터 I)>은 그 야심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또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출발했다. 무엇보다도 정작 (필시 수혜자일) ‘공공’과 동기화되기 힘들다는 공공미술의 고질적인 딜레마를 똑같이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모더니즘 조각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조각으로 이행하는 시기였고 공공미술의 개념이 특별히 정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이런 문제가 드러났다. 사실 뮌스터I는 공공미술전이라기 보다 [이름 그대로] 야외조각전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해가 갈수록 명망을 더해가며 2007년 4회째로 들어서면 명실 공히 특별한 국제 미술 축제의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올해 4회째를 맞이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모델로 삼은 듯한) 한국의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오히려 시민들의 반감을 사서 점점 입장이 곤란해지고 있는 상황을 떠올린다면 특기할 만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생각해 보건데, 다음과 같다.

첫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보수적인 뮌스터시민들에게 현대미술을 제대로 알리고 교육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1997년 스컵쳐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쾨니히는 “공공 조각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 목적은 예술의 목적이다”라고 간명하게 답한 바 있다. ‘하이아트를 일반 시민들은 이해 못할 것이다.’라고 지레 포기하기 보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예술계 내부에서 계몽(!)을 실천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프로젝트에 내재한 이런 교육적 이념은 2007년에 와서 여름아카데미로 확장되어 예술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현대미술에 대한 시민의 이해의 폭이 깊어졌다고 쉽게 추리할 수 있겠다. 둘째,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는 거의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2007년 프로젝트까지 중복 참가한 작가를 꼽자면 너무 많아서 다 꼽을 수 없다. 뮌스터I의 참가자에 한정해서 분석해 보자면, 안드레, 올덴버그, 뤽리임, 세라는 3회 중복 참가, 나우만과 보이스, 저드는 2회 중복 참가, 그리고 애셔는 총 4회로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참가했다. 아마 특정 작가에게 특혜를 준다는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을 테니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특정 작가에게 몰아주기’를 통해 뮌스터 프로젝트는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까?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개념의 지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뮌스터시는 프로젝트 후 남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해 보존한다. (77년 출품작 4점을 비롯하여 87년 22점, 97년 34점을 구입.)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남기고 간 작품을 10년 뒤 다음 프로젝트 때 와서 다시 보고 다시 쓰며,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음 작업을 이어간다. 그렇게 ‘21세기 조각의 작은 역사’를 조용히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뮌스터 프로젝트를 30년 동안 책임져 오고 있는 쾨니히 감독이 프로젝트의 핵임은 말할 필요 없다. 세간에는 30년 동안 비스무레한 프로젝트를 하는 쾨니히 감독의 무능력함을 비판하기도 한다지만, 단 4번의 프로젝트로 30년의 지속성을 만들어내는 것도 대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셋째, 굵직한 대형 축제와의 연계해 도시마케팅을 했다는 점이다. 잘 알려있다시피, 카셀 도쿠멘타는 5년 마다 한 번씩 열리고, 카셀과 뮌스터는 항상 만난다.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와 아트 바젤이 그 시기에 항상 열린다. 10년마다 한 번 씩 일어나는 이 ‘일식’같은 우연은 일명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팔린다. 이때 뮌스터는 조각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뮌스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며 도시마케팅에 힘쓴다. 공원과 빌딩 그리고 거리에서 이제 사람들의 무리가 무엇을 뒤지는지 보면, 손에는 전시 가이드를 들고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조각의 위치를 체크하고 있다. 이런 문화 예술작품을 통한 관광자원의 유치와 도시마케팅은 다른 지자체가 군침을 흘리며 예술가의 손에 예산을 쥐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자. 이것이 목적일까 아니면 효과일까?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쾨니히는 지자체 요구와 예술성 추구을 영리하게 조율한다. 뮌스터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힘은 분명히 여기서부터다.  


[참고문헌]
곽소연,「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소개」, 2013
김미옥, 「도시공간에 스며든 조각예술」, 2007
남덕현, 「집으로 돌아온 탕아? - 독일 뮌스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문화기획」, 2008
류병학, 「공공(미술)의 적5」, 2007
아르떼진 편집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07과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 ‘여름 아카데미’」, 2007
이숙경,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 공공 영역의 미술에 대한 실험」, 2007
Munster marketing, 「Sculptures in Munster」, 2009
http://en.wikipedia.org/wiki/Skulptur_Projekte_Munster
http://k.peik.tripod.com/symposiummuenster.htm
http://www.nytimes.com/1987/06/22/arts/art-the-munster-sculpture-project.html
http://www.sculpture.org/documents/scmag97/munster/sm-mnstr.shtml
http://www.skulptur-projekte.de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sculpture-invasion-in-muenster-the-art-world-goes-provincial-a-4896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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