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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Lee Kun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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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치장한 생생한 욕망

백묵을 들고 땅에 서 허리를 굽힌 후, 마치 컴퍼스처럼 빙글 돌면서 원을 하나 그린다. 그리고 나서 원 밖에 잠시 나가 서 있다가 원의 중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기”하고 외친다. 그래, 거기. 거기잖아. 아리송하다. 이때 원 안으로 슬그머니 다시 들어가 발밑을 향해 가리켜 “여기”하고 외친다. 여기?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원 밖으로 걸어 나가 멈춰서 등 뒤에 있는 원을 어깨 너머로 가리키면서 “저기”라고 또 다시 외친다. 관객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모든 시선은 하얀 원에 집중된다. 이 틈을 타 원 둘레를 따라 걸으면서 “어디, 어디, 어디…….” 그는 외치면서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때 관중 틈에 섞여있던 어느 분석 철학자 한 명이 머리를 탁 치며 내지른 외마디. “…당했다…!”
● 안대웅 기자 ● 사진 작가 제공

메인'달팽이 걸음' 1979 바닥에 백묵 드로잉, 언어 퍼포먼스. 상팡울로비엔날레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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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앞서 서술한 것은 70년대 스타, 이건용의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인 <장소의 논리>(1975)의 퍼포먼스 실황. 마지막 철학자의 외마디는 아마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가던 기호학적 분석 논리들이 “어디…”를 통해 깨부숴지는 순간이었을 테다. 아무 것도 없는 땅 위에 원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거기’, 그러니까 장소가 드러나게 되며, 가만히 있는 ‘거기’에 신체가 들어가고 나옴에 따라 ‘거기’는 ‘여기’가 되고 ‘여기’는 ‘저기’가 된다. 신체와 장소가 관계 맺는 상황에 따라 그것을 호명하는 언어가 거짓말처럼 바뀐다. 하지만 언어가 세계를 재현한다는 초기 기호학적 믿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퍼포밍은 미안하게도, 예상을 뛰어 넘는다. 원을 밟아 가려버리는 행위를 통해 불현듯 재현의 대상이 사라지고, ‘어디’를 외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유식하게 기호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기표에 여러 개의 기의가 덧 씌워져 기호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으로, 남은 것은 ‘텅 빈 기표’인데, 그것마저도 야속하게 사라진다. 그러니까 결국 ‘거기’나 ‘여기’나 ‘저기’나 모두, 하나마나 똑같은 소리라는 것. 상당히 간명하면서도 논리적이고, 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수행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이 작품은 이건용표 퍼포먼스의 핵심 방법론,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씹은 껌> 2011-현재 
나무판 위에 껌 가변크기



탁월한 퍼포머 이건용은 작업의 방법으로 ‘이벤트’를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벤트는 이벤트인데, ‘이벤트-로지컬’이다. 뭔가 알 듯 모를 듯 해 보이는 이 독창적인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벤트와 해프닝(Happening) 그리고 개념미술의 관계를 알아야 하는데, 또 이 모든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70-80년대의 한국적 미술 상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해프닝의 원조는 앨런 카프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로젠버그적 의미(그러니까 캔버스를 행동의 장으로 간주하는)를 발견한 그는 즉흥적 행동성과 아상블라주 기법을 종합해 독자적 개념, ‘환경(Environment)’을 만들어냈다. 2차원 평면을 벗어난 환경은 곧 무엇인가 즉흥적으로 일어나기로 계획된 장소였고, 여기서 카프로는 ‘해프닝’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그다음 이벤트. 이벤트는 플럭서스 작가들이 그들의 음악적 퍼포먼스를 해프닝과 구별하기 위해 이벤트 혹은 이벤트 악보(Event Score)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짧고 단순한 행위로 이뤄진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특징인데, 해프닝이 아직 공간성에 초점을 두는 편이라면 이벤트에서는 시간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편 개념미술에 관해선 이건용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조세프 코수스를 언급하는 편이 옳겠다. 코수스는 ‘개념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당대 회화를 비평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회화는 다른 회화와의 유사성을 통해서만 예술임을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예술임을 따져 묻지 않고 습관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동어 반복적 언어적 세계관, 즉 ‘언어로 재현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식의 믿음에 기초해있었다.

이벤트-로지컬, 부정합 관계처럼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은 들을수록 사뭇 묘하게 찰진 매력이 있다. 이벤트-로지컬은 말 그대로 이벤트와 개념이 결합한 결과다. 작가는 “해프닝은 우연적인 행위 자체에 주목하지만 나의 이벤트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위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해프닝은 행위자체에 머물러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못하고 개념미술은 정보나 지식에 머물러 역시 한계가 있는데 나의 이벤트는 이런 결점을 극복하려는 논리적 사건이다”(1975)고 작가 노트에 부연된 바 있다. 이벤트-로지컬은 60년대 중후반 득세하기 시작했던 한국적 해프닝과의 구별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로 강국진, 김구림, 정강자, 정찬승 등에 의해 이뤄진 60년대 해프닝은 추상회화 일변도의 한국 미술적 상황에 대한 반발로서 나타났다. 주로 2명 이상의 해프너가 가담했으며 정밀하게 짜인 스크립트가 있다기보다는 주제의 충동적인 표출과 함께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주로 일상 현장에서 이뤄졌고 때로는 정치 저항적 성격도 띄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이건용의 이벤트는 해프닝이 가진 비논리성에 대한 논리의 보충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이벤트는 꽉 짜인 계획적 해프닝, 그러니까 로직(logic)을 시공간 속에서 실현시키는 행위란 소리. 논리에 대한 관심은, 물론 당시 유행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분석 철학과 코수스의 작업과 서적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다음의 사회적 상황을 통해서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는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이건용, 고승욱 <된장과 케첩> 2005 
된장, 케첩 퍼포먼스. 쌈지스페이스에서 초연



저녁 때 길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기분 나쁘다며 싸움이 났고, 통금이 있었던 시대였고, 항상 비밀 정보원에게 감시당했습니다. 제가 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파리를 갔는데, 그 때 루브르를 구경하다가 정신이 팔려 자정을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온몸에 마비가 와서 실제로 죽을 뻔 했어요. 그러다 이 나라에 통금이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어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논리가 없는, 말이 안 되는 시대였던 것입니다.”(인터뷰 중) 어떤 면에서 논리에의 천착은 비정상적 사회에 대한 연구였다.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시대. 이런 시대에는 합리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이건용의 로지컬이 탄생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이벤트-로지컬, 논리적 행동,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다. 평론가 김복영이 지적한 바 있듯이 흔히 미술용어사전에서 통용되는 이벤트와 개념미술의 '개념'으로는 그의 작업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건용은 이벤트-로지컬을 통해 (퐁티적 의미에서) 세계와 만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어떻게? 그는 개념은 세계의 재현에 한계를 가지지만, 몸은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개념으로 훈육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한 논리이고 그로부터 파생된 방법. 방법은 몸을 움직이고 서서히 몸은 원래의 몸에서 탈피해 좀 더 실재적인 세계와 만나는 장소가 된다. 논리-방법-이벤트-몸-세계의 상호 간 “질적인 비약”은 그의 ‘이벤트-로지컬’ 시리즈, ‘신체 드로잉’ 시리즈 등 어디서든 발견된다. 이것이 아마 이건용의 이벤트-로지컬의 핵심이리라. 한편,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행하면서 이건용은 이벤트-로지컬 대신, 그의 작업에서 ‘문화회고-시스템-은 필자’라는 말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종종 평론가는 이 시점부터 시기를 구분한다지만, 이 글에서는 오히려 외연의 확장으로 보고 싶다. 여기서 나의 기획은 ‘문화회고’를 생각이나 관념보다 행위나 삶과 더욱 맥이 닿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간명하게 이야기해서 이벤트는 문화 회고에, 로지컬은 시스템에 대응되며, 그런 면에서 문화회고-시스템은 이벤트-로지컬이 확장된 결과라고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 작품으로 <독 속의 문화>를 살펴보자.



<신체의 사유 (Bodyscape-3) 76-2-08>
 2008 사진위에 아크릴릭, 면천 260×200cm



이건용의 회고에 의하면, 86년 <서울-요코하마교류>전에 있어 기존 드로잉(하나는 물고문을 주제로 한 미발표작이었고, 다른 하나는 임부를 주제로한 회화 <탄생>이었다)을 방 구석 양 벽면에 붙이고, 4대에 걸쳐 사용해 왔던 여덟 개의 독을 설치했다. 여기서 독을 활용해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그것이 <독 속의 문화>(1986)다. 그는 그 당시 “그 중 제일 큰 독에 들어가서 독이 갖고 있는 가족과의 관계라든가 이것은 한국의 '어머니 문화'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한국인의 삶의 가장 중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150년 묵은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서히 다리를 굽혀 완전히 독 속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내 말이 잘 들리느냐고 묻고, 밖의 소리가 이곳에서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나도 우리의 단절된 문화의 역사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하였다”고 회고한다. 그 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기억이나 예전 작품을 등장시키며 회화, 설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데, 2011년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OB들의 수다’ 토론회에서 짧게 “(예술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라고 일갈한 것처럼, 자기-해체적 면모까지 띄기 시작한다. 문화회고-시스템은 ‘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장소(위치)에 있느냐’의 문제, 구조적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삶과 문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그가 80년대 초 교수직 임용으로 인해 ‘ST’ 활동을 접고 군산으로 내려간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누구보다 당대 예술을 개념적 활동으로 비평하려고 했던 그가 스스로 개념미술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한적한 생활은 자아 성찰의 시간이 되었을 테다. 회고되어야 할 문화는 양면적이다. 곧 제도화된 문화와 잊히고 잠재된 문화, 두 가지다.



<장소의 논리> 1975 땅위에 드로잉 퍼포먼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연  



문화회고가 이벤트와 맥이 닿아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방식이 상기 인용과 같이 실천적이고 행동적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는 작가로서 개념적인 예술을 추구했지만, 결코 이론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발언하는 자는 항상 신체다. 이벤트-로지컬의 방법론을 통해 잠재된 몸의 존재를 행동으로써 끌어내려고 했듯이, 문화회고-시스템에 의거해서 이건용은 자신의 작업과 삶, 기억을 행동적으로 반추하며 (감춰져있던)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건용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기도를 하고 세수하기 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으고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며 씹던 껌을 하나씩 캔버스에 붙이고 있다. 일상의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예술인생을 종합해서 선보일 대형 개인전을 준비 중이란다. 내후년 안에, 하지만 장소는 비밀이다.  



이건용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수학했다. 1970년대의 실험미술의 기수 AG협회와 ST를 오가며 다양한 개념적 형식실험을 시도해 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불려진다. 제8회 파리국제비엔날레(1973), 제15회 상파울로 국제비엔날레(1979), 부산청년작가 비엔날레 커미셔너전(1987) 등 굵직한 해외 비엔날레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미술가 중 한 명이며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서울시 건축물 예술작품 심의위원, 군산시 건축위원,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서양화 분과위원장, 전북 청년미술상 운영위원장, 미스전북 선발대회 심사위원, 벚꽃아가씨 선발대회 심사위원, 군산 허수아비미술제 운영위원장, 군산대학교 현대미술연구소장, 공장미술제 운영위원, 한국청각장애인예술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군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의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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