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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자카 다카마사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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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YOSIZAKA Takamasa
Panorama World: from life-size to the earth
2022.3.19-2022.6.19 도쿄, 도쿄도 현대미술관

● 김도희 일본통신원 ● 이미지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제공

'요시자카 다카마사전: 수염부터 지구까지, 파노라마 보기' 전시 전경 2022 도쿄도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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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사사한 건축가인 동시에 모험가, 알피니스트(alpinist)로 활동했던 요시자카 다카마사(吉阪隆正). 그의 궤적을 쫓는 대규모 개인전이 도쿄도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에 마련돼있다. 여러 방면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해온 그의 인생을 일련의 파노라마처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시자카는 191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부임하고 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는 귀국 후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해 ‘고현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콘 와지로(今 和次郞)를 만나 스승으로 삼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계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2년 남짓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요시자카는 종전 후 인공토지*에 세운 ‘요시자카 자택’ 외에 문화부 대신 예술상(미술)을 받은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일본관, 일본 건축 학회상을 수상한 ‘아테네 프랑세(Athénée Français)’, 도쿄도 선정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된 ‘대학 세미나 하우스 본관’ 등을 설계하며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한 조소적 조형의 독특한 건축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건축이라는 것은, 전 세계에서 상호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편 요시자카는 건축뿐 아니라 다른 활동에도 전력했는데, 지구를 종횡무진한 활동들은 건축계 제일의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의 부제 ‘수염부터 지구까지, 파노라마 보기’는 그가 만든 조어의 조합이다. 지역과 시대를 넘어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파노라마 보기’는 그의 표상이며, 등신대 크기의 ‘수염’, 이 ‘수염’이 비유하는 것은 각기 다른 개체가 지구 전체 규모의 활동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것을 뜻한다.
전시는 요시자카 삶의 파노라마를 총 7가지 섹션으로 소개한다.




<요시자카 다카마사전: 수염부터 지구까지, 파노라마 보기>

전시 전경 2022 도쿄도 현대미술관




제1장: 출발점

1920년부터 1932년까지 스위스, 영국에서 유학하며 국제적인 평화 교육을 받고 귀국한 요시자카는 와세다 대학에 진학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 그는 ‘상호이해와 평화를 위한 건축을 할 것’이라며 장래에 대한 결의를 글로 남긴 바 있는데, 종전 후 폐허가 된 토지에 건축물을 짓고 마을 복구에 힘을 쏟았다. 이후 프랑스 유학을 거쳐 교육자로서 와세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집필활동 및 건축 설계, 지역사회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40세부터는 아프리카와 북미 대륙을 횡단했고, 2년간 아르헨티나에 부임했으며, 인도, 중국 등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교류했다. 전시는 이러한 그의 궤적을 쫓는다.

“흔히 아름다운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긍지를 품는다. 수염부터 국토까지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발견을 위한 시점과 시야, 실현을 위한 수단과 연구. 어떤 것이 좋을지는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요시자카, 1975) 뫼비우스의 띠, 와선, 촉각, 촉감, 등신대…. 요시자카는 인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건축에 담았다. 그의 노트는 마치 시집을 연상케 한다.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고, 건축을 통해 주변 사람들, 나아가 지구 속 전 세계 사람들의 미래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온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건축물은 그저 자신의 표현 수단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기보다, 그의 철학, 즉 인간에 대한 고찰과 독자적인 표현 수단, 크리에이션을 통해 가장 좋은 방향으로 문제 해결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프로세스의 끝에는 문제 해결뿐 아니라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조소가 존재한다.

“나는 어디 있는가? 이 의문이야말로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요시자카, 1980)




<요시자카 다카마사전: 수염부터 지구까지, 파노라마 보기>

전시 전경 2022 도쿄도 현대미술관




제2장:어느 주거

전쟁으로 청년기를 보냈던 집은 모두 불타버렸고, 그는 그 터에 막사를 지어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1950년부터 2년간 프랑스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일과 요시자카 자택 구상을 병행했다. 그리하여 귀국 후 바로 설계, 착공, 약 2년여에 걸쳐 자택을 완성했고, 이는 일본에 처음 세워진 콘크리트 주택이 되었다. 1960년 요시자카는 자택 건설의 경위부터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어느 주거』라는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2년 마당에 설치한 U 연구실 아틀리에는 현관문도, 울타리도 없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학생들과 다수의 건축가들이 방문했는데, 르 코르뷔지에 역시 방문했다고 한다.

“막사를 제거하고 대지는 만인의 것이 되었다. 나는 인공의 토지에 공중에 살게 되었다. 마을의 어린이들은 넓어진 이 토지에 자유로이 와서 놀게 되었다. 그런데도 인공의 토지 위 공중에 사는 내 삶은 전혀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다.”(요시자카, 1960)



제3장: 건축의 발상

‘우라 저택(浦邸)’의 설계를 시작한 1954년, 설계 작업에 오오타케 쥬이치(大竹十一)가 참여하면서 둘은 평생의 협업 파트너가 되고, 이외에 3명이 함께하며 총 5명이 ‘요시자카 연구실’의 창립 멤버로서 본격적인 설계 작업을 시작한다. 이들은 주택의 설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학교, 시청사 등 공공 건축물까지 열정과 고집이 느껴지는 건축물을 발표해 나갔다. 유기적인 조형적 표현의 콘크리트 건물이 연구실의 특징인데, 어쩌면 차가운 인공적인 소재 콘크리트를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만드는 그들만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이어받은 자유로운 설계 사상이 어떻게 그들의 건축물로 탄생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전시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이름을 ‘U 연구실’로 개명했는데, 요시자카를 중심으로 개성 넘치는 멤버들이 독립된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불연속통일체’ 이론을 실천한다. 모형을 둘러싸고 각자가 의견을 피력하는 형태로 하나하나의 건축물이 디테일을 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형을 살려 자연과 융합, 그 속의 사람을 1:1 스케일로 상상하는 디테일이 큰 특징이다.

“창세기 이래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공통분모. 그것은 대자연 속 동식물 혹은 광물까지도 닮아있는 것으로 나를 움직이게 한다. 콘크리트가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선 대자연의 대법칙 그 속에 녹아있는 것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근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시인이 그 이후에 문명인이 되었다고 한들 원시인 시절에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부분을 잃지 않은 것처럼.”(요시자카, 1958)




<요시자카 다카마사전: 수염부터 지구까지, 파노라마 보기>

전시 전경 2022 도쿄도 현대미술관




제4장: 산악 / 설빙 / 건축

유년기 스위스에서 등산을 처음 경험한 요시자카는 산행에 매력을 느껴 와세다 대학에서도 산악부로 활동했다.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 횡단과 킬리만자로 등산, 북미대륙 횡단 등 탐험대를 구축해 건축 못지않게 열심이었다. 목숨을 걸고 체득한 자연으로부터의 지혜는 한랭지대 농촌 민가의 연구와 설빙의 연구 등으로 발전해 최종적으로는 혹독한 자연환경에서도 생활할 수 있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낳는다. 1955년부터 히말라야산맥 K2 등정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왔던 요시자카는 아쉽게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980년 타계했으나, 2년 뒤 1982년 요시자카의 의지를 이어받은 와세다 대학의 산악부가 K2 등정에 성공했다. 산을 사랑한 요시자카. 산으로 이어진 U 연구소 동료들이 설계부터 현장 작업까지를 다양한 모형을 통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눈이 지붕에 쌓이지 않도록 돔형으로 만든 ‘쿠로자와이케 휴테’ 산장은 1/3의 스케일로 재현했다.



제5장: 탐험가의 삶

요시자카는 늘 수첩을 휴대해 관찰 그림을 그려왔다. 어디를 가든 등을 곧게 펴고 대상을 관찰한 스케치에서 독특한 풍경을 보는 시점,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구, 색과 조형을 포착하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병풍접기 방식으로 접힌 종이를 길게 펴나가면 기다란 그만의 관찰 스케치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어간다. 요시자카의 이러한 스케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U 연구실에서는 요시자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현지의 술과 함께 테이블에 길게 편 스케치를 보면서 여행의 이야기를 하던 것이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요시자카의 스케치북은 현재 일본에서 그린 것이 64점, 해외에서 그린 것이 76점이라고 한다.




‘요시자카 자택(吉阪自邸)’ 1955

사진: 키타다 에이지(北田英治) 1982년 촬영




제6장: 놀이

“좋아하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느냐 죽느냐 목숨을 걸고서라도”(요시자카, 1980)

요시자카는 먹고 자는 것을 잊을 만큼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진심으로 놀기’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마을을 걷고, 산에 오르고, 교육하며, 상호 이해와 평화를 위해 ‘유형학’을 제창하여 지구를 여행했고 작은 소품 이를테면 반지, 루프 타이, 메달 등을 디자인하며 자기 손으로 스케치하고 도면을 작성해 모형을 만들었다. 건축 설계에서도 타일을 활용한 모형, 난간 손잡이, 가구와 심볼 마크 등의 디자인까지 그가 좋아하는 ‘놀이’를 담았다. 평범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부터 여행지에서 발견한 작은 돌까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자세는 요시자카 디자인 속 ‘즐거움’의 근저를 만들고 있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 ‘주사위 세계지도’, ‘한선 긋기’ 등 삼라만상의 원리를 발견하여 다양한 형태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쓰 시청사(江津市庁舎)’ 1962

사진: 키타다 에이지(北田英治) 1994년 촬영




제7장:유형학

“유형학을 생각해낸 것은 인류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요시자카, 1980)

1966년 도시계획의 연구를 하는 연구실로서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 새로이 설립한 요시자카 연구실은 주로 도시와 농촌 지역의 연구, 계획을 해왔다. 그는 그 속에서 ‘유형학’과 ‘발견적 방법’ 등을 독자적인 이론 전개를 통해 ‘도시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이 도시를 만든다’는 이념으로 ‘열도 개조’와 메가로 폴리스의 대두와 함께 진행한 도시의 인구 증가와 환경 오염, 무질서한 개발로 인한 지역 커뮤니티 붕괴, 농촌의 인구 감소 문제 등 사회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분석한 바 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 고찰하며, 사회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도시계획 연구실로서 그 시작점이었던 ‘오오시마 모토쵸 계획’과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와세다 그룹의 ‘21세기 일본 열도상’, ‘도쿄 계획’의 제안을 비롯해 도쿄, 센다이 그리고 한국과 농촌에 대한 조사 등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다양한 지역에서의 조사와 프로젝트에 대해 전시는 다루고 있다. 인류가 평화로이 지낼 수 있는 것을 지향한 ‘유형학’을 근간으로 독자적인 계획의 제안을 통해 미래 사회를 구축하는 새로운 발견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을 사랑한 건축가, 산을 사랑한 탐험가. 요시자카의 삶은 아쉽게도 63세에 마감됐다. 그러나 그가 남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그 자신의 철학과 더불어 후세에도 이어질 것이다.  PA




‘대학 세미나 하우스 본관(大学セミナー・ハウス 本館)’

1965 사진: 키타다 에이지(北田英治) 1997년 촬영




[각주]
* 종전 후 주택난 해소를 위해 ‘삶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된 대지를 인공의 힘으로 만들 것’이라 제창하고 그것을 ‘인공토지’라 호칭함

 


글쓴이 김도희는 일본의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영상,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에서 디자인 경영 전공. 광고대행사 Hakuhodo i-studio, MUJI Korea 등 UX/UI,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등으로 디자인의 스펙트럼을 넓혀, 현재는 일본 도쿄에 거주하면서 CASIO 본사 디자인 전략팀에서 전략팀 리더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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