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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Park Dae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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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쓰다: 기계시대, 박대성의 ‘필획(筆劃)’ 발명 당위와 필연에 대하여

●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 이미지 작가, 가나아트 제공

'불국사(효설)' 2018 종이에 수묵 270×504.5cm 작가 소장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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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화가 박대성의 예술궤적은 보통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먼저 그림수련시기(1945-1979)로 국전(國展) 7회 입선과 대만 유학을 든다. 두 번째 실험시기(1979-1988)는 중앙미전에서 연거푸 최고상을 획득하는 한편 호암갤러리 개인전을 통해 기성 동양화단의 틀에 박힌 예술 흐름, 즉 기법 스케일은 물론 도구 재료까지도 실험을 통해 전복시켜낸 때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서 예술현장 주유(1989-1995)로 실크로드-뉴욕-서울 등 국내외로 넘나든 때, 네 번째 경주시기(2001-2015)는 영원한 신라인으로 신서화일체(新書畫一體)경지를 창출해 동양화/한국화를 당대 미술로 도약시켜낸 때다.

물론 다섯 번째 현재진행형인 수구초심의 청도시기(2015-2022)는 경주와 감포를 내왕하며 바다를 타고 필묵 우주를 유영하는 대항해시대를 준비 중이다. 여기서 보듯 일생에 걸쳐 박대성 예술의 학교는 대자연이고 김범부, 함석헌, 김종영, 이가염 등 동서양의 학예거장과 석학, 역사유물이 소산 예술의 선생님이었다. 실제 박대성의 예술만행은 청도-대구-서울-실크로드-뉴욕-서울-경주-청도로 이어지는 주유천하 그 자체다. 마치 목장(木匠)에 불과했던 치바이스(齊白石)가 15년 동안 베이징, 상하이, 친저우, 광저우, 베트남, 광동을 오출오귀(五出五歸)로 천지자연학교를 주유하며 20세기 세계미술 거장(巨匠)이 된 것과 같은 경우다.



<만월> 2022 
종이에 수묵 125.5×100.5cm 
작가 소장 사진: 황정욱



하지만 필자는 박대성 예술을 글씨를 척도로 경주시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눈다. 이유는 전자가 동양화/한국화 카테고리 안에서 놀았다면 후자는 글씨로 그림을 쓰면서 동양화/한국화를 컨템포러리, 즉 당대 미술로 그 경계를 무한대로 넓혀낸 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박대성을 절반의 화가로 묶어둘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박대성의 역설은 그간의 화필만행(畵筆卍行)을 마무리하고 2001년 경주에 안착하였지만 실제 20여 년을 하루같이 잠심하고 화선지가 산이 되도록 실천해낸 것은 글씨쓰기였다는데 있다. 동서양화를 불문하고 우리 시대 작가들 어느 누구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예술의 후진 내지 미련한 퇴행을 몸소 감행하면서 그간의 그림궤도 자체를 뒤바꾼 것이다. 이러한 화가 박대성의 난데없는 붓글씨 쓰기는 당시 주위 모든 사람의 힐난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림이나 제대로 하지 무슨 붓글씨까지 손을 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대성은 조선의 추사체(秋史體), 20세기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서체 시문(詩文), 통일신라 김생의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문’의 해행서, 고구려의 ‘국광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문’의 고예는 물론 안진경, 소동파, 황산곡, 미불의 행초서까지 팔뚝으로 녹여냈다. 박대성의 글씨갈증은 급기야 갑골문, 종정문과 같은 상형문자(象形文字)/그림문자를 파 뒤집어엎는가 하면 선사시대 암각화까지 닥치는 대로 모조리 섭렵해냈다. 그것도 쌍구가묵(雙鉤加墨)을 통한 형임(形臨)과 같이 그냥 따라 쓰기부터 의임(意臨)에 해당하는 재해석과 원본/원형을 무화/형해화시키는 배임(背臨)에 이르기까지 텍스트 하나를 잡으면 그야말로 중탕에 중탕은 물론 볶아먹고 지져먹고 삶아먹고 고아먹고 하면서 완벽하게 내 예술의 신(神), 기(氣), 골(骨), 육(肉), 혈(血)이 되도록 해버린 것이다. 사실 고전의 재해석에 대한 박대성의 이런 극공의 태도와 성취는 우리시대 서가들조차 감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유루> 2022 
종이에 수묵 140×80cm
 작가 소장 사진: 황정욱



2. 그 결과 정작 뒤바뀐 것은 작가 스스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경지의 기존 그림이었다. 경주시기 이전의 그림이 주로 공간에서 사물을 전복적으로 위치시키는 평면적인 경영이었다면 그 이후 그림은 사물 자체를 필획으로 파고드는가 하면 문자와 사물을 동시에 문제 삼는 입체적인 공간 경영으로 차원과 궤도를 달리한 것이다. 예컨대 다 같은 사람이나 집, 산과 나무 꽃, 바다와 강이라도 전자와 후자는 선(線, line)과 획(劃, stroke)의 차이만큼 확연히 차이가 난다. 특히 박대성이라는 몸을 만난 먹과 붓이라는 물질(物質)은 이내 필묵(筆墨)으로 돌변하고, 필획(筆劃)에 몸을 실은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은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격정(激情)인가 하면 대정(大靜)이자 적멸(寂滅)로 치환됐다.

그야말로 산도 바다도 나무도 꽃도 모두 박대성이 된 것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박대성의 그림에는 추상과 구상이 따로 없이 해독된다. 구상 안에 추상을 보고, 추상 안에 구상을 봐야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앞서 본대로 내재적인 형임, 의임, 배임의 서적(書的) 필획으로 서구외래의 추상과 구상을 용해시켜 제삼의 박대성만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00여 년 전 서양화 도입 이래 지금까지 한국에서 그림은 구상과 추상으로 으레 대별해왔다. 전자가 대상의 재현이고, 후자는 내면의 표출로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대상재현과 내면표출은 본래 둘이 아니다. 이런 본원적인 생각을 박대성의 ‘글씨로 그림쓰기’를 통해 돌려내고 증명해내기 위해 100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공투양도> 2014 
종이에 수묵 107×286cm 
작가 소장 사진: 황정욱



사실 서구의 미메시스(mimesis)라는 척도로 보아도 고대에서부터 자연물과 같은 대상재현과 인간의 내면표출은 하나의 맥락으로 간주되었다. 플라톤(Plato)이 자연물은 이데아의 모조이고, 이 개념을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미메시스를 인간의 본디 마음이라고 통찰해낸 것이 그 증거다. 이런 맥락에서 박대성의 필획그림은 추상과 구상, 한국화/동양화나 서양화로 갈래지어진 개념과 장르를 다시 열린 필묵으로 통합시켜 기계시대 서화미술일체의 당대미술 전형을 창출해낸 데에서 그 참된 가치가 있다. 그것도 밤새도록 곡을 하고도 누가 죽은 줄도 모르는 서맹(書盲)시대에 다 죽은 붓글씨를 단순히 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상 발명해냄으로써 평지돌출과 같은 성취를 이룩해냈다.  여기서 장차 도래할 서(書)의 르네상스를 위해 우리시대 서언어(書言語)의 실상을 직시해볼 당위와 필요가 생긴다.

3. 식민지 서구화로 점철된 20세기 한국미술에서 서는 그 존재조차 미미했고, 한국화/동양화 역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존재였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이 서화에서 미술로, 글씨에서 그림으로 대전환돼 자리매김한 이유도 있지만, 서예가와 화가의 숫자나 작품의 수준은 물론 이전의 교육 정책 시장 등 인프라 측면에서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예술운동장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이유는 식민지 서구화 과정에서 문명개화를 이유로 우리의 역사전통을 스스로 내다버렸기 때문이다. ‘서는 미술도 아니다. 그래서 예술도 아니다’라는 식민지시대 일본화된 서구미술 척도가 우리 서화(書畵)를 재면서 서는 100여 년 동안 미술에서 내쳐졌다.



<천지인> 2011 
종이에 수묵 236.5×301.5cm 
작가 소장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전통시대 시서화일체, 서화동원으로 서와 화는 한 몸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 분리되어 화는 반신불수가 된 채로 미술에 편입되어 지금까지 왔다. 실제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1부 서양화, 2부 동양화, 3부 서예가 있었으나 11회부터 서예는 폐지되고 공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초중고 미술교과서 역시 미술이 7할이라면 동양화는 2할, 서예는 1할도 될까 말까하는 비중으로 편재되었고, 그것마저도 서는 실제 미술시간에서 수업자체가 이루어 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30여 년간 전국 5개 사립대학에서 서예학과가 개설되었지만 2022년도 현재 사실상 모두 폐과가 되거나 통폐합된 상태고, 대학 동양화과에서 조차 서예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일상의 문자생활 또한 붓글씨/펜글씨 ‘쓰기’에서 키보드 ‘치기’로 대전환되면서 사실상 서는 죽었고, 우리는 서맹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미술시장은 이러한 서의 죽음시대를 적나라하게 반증한다. 생존 작가가 경매에 나온 경우는 없고, 작고 작가역시 A급의 경우 미술작품이 10억 대라면, 서는 100만 원대 정도다. 사실상 서 언어자체가 우리시대 예술의 기억 몸 유전인자(遺傳因子)속에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100년 동안 캔버스에 유채, 브러시에 밀려 제대로 발언권조차 확보해내지도 못하고 사실상 식물인간으로 죽었거나 성장이 멈추어져 있었던 붓과 먹, 화선지라는 물질을 기계시대 조형언어로, 그것도 홀몸의 힘으로 다시 발명해낸 것이 박대성의 필획이라는 것이다.



<고미(향로)> 2014 
종이에 수묵 44×46cm 
작가 소장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그래서 겸재 추사는 물론 폴 세잔(Paul Cezann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도 박대성의 글씨그림에는 다 있다. 요컨대 박대성의 그림언어는 극도의 과장과 파격의 공간재구성, 천년만년, 동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공간경영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필획과 태산과 같은 적묵(積墨)이 요지부동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대성의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글씨그림, 즉 필획으로 쓴 그림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박대성이라는 개인이 서, 화, 미술 분리의 20세기 한국의 조형언어를 서화미술(書畵美術)일체의 기계시대 인간의 보편 조형언어로 다시 발명해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박대성 예술의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위대한 철학적 실천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의 미래는 따로 없다. 오직 작가가 살고 있는 당대의 실존을 이 땅의 역사전통으로 치열하게 싸워내는 그 자체가 전위이자 미래이고, 세계이자 인류다. PA



프로필
이미지 제공: 솔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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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대성은 1945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 1966년 등단,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수묵화의 전통을 이어 나가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한 그는 국내외 유수 기관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했다. 오는 12월 11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서 개인전 <박대성: 고결한 먹과 현대적 붓(Park Dae Sung: Virtuous Ink and Contemporary Brush)>를 선보이고,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Korean Institute Harvard University), 후드미술관(Hood Museum of Art),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 New York), 프레더릭스버그 메리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Mary Washington) 등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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