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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헌_미장제색
허구영_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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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 2020.1.5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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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만 보고 있는 사람



2019 11월부터 2020 1월까지 약 두 달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작가 배종헌과 허구영의 전시는 각각 분리된 두 개의 개인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미장제색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점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걸어놓은 배종헌과여전히 나에게 뜨거운 이미지 중 하나라는 다소 감상적인 제목과 함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허구영은 같은 날에 오프닝을 열고 202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함께 문을 닫는 두 개의 독립적인 전시를 선보였다. 이들은 일견중진 작가라는 의심스러운 범주 아래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세대론에 기반한 제도적인 장치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으로 확장된다. 각각 대구와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두 작가의 지리적인 특수성은 서울에서 열리는 기획전을 위한 흥미로운 서사를 제공한다


두 개의 개인전은 이렇게 상반된 풍경에도 불구하고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진작가라는 제도적인 범주를 통해 하나의 기획전으로 묶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두 작가를 한 장소에 소환하는 일이 제도적인 차원의 어색하면서도 손쉬운 분류법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아마도 꽤 긴 시간 동안 한국 미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언급된 어휘의 목록 중에서 가장 의심스럽고 그 정체가 불분명한 단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개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된다. 즉 배종헌과 허구영은 1970-1980년대에 발명된(혹은 수입된) 개념미술의 계보를 199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가는 대표적인 작가군의 부분집합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발견되는 세대론과 지리적인 감각, 그리고 미술사의 오래된 범주가 교차하는 엉성한 서사를 냉소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두 개의 공간에 구축된 상이한 이미지는 이 기획이 그저 제도적이고 학술적인 장치로 손쉽게 치부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1층에 들어섰을 때 시선을 끄는 이미지는 마치 동양화의 현대적 번안처럼 보이는 배종헌의 그림이다. 하지만 캔버스가 아닌 나무 위에 그려진 풍경들은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관념적인 풍경도 아니고, 팝적인 감각으로 전통적인 이미지를 능수능란하게 전유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작가가 전시장 한편에 설치해놓은 <처럼_‘미장제색개념풀이 미론소설>이라는 짧은 텍스트를 통해 그에게 풍경의 이미지란 모종의 사적인 매개의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텍스트를 통해내장재 철거 흔적이 몽유도원도이며, “벽면의 기공이 구름이라고 말한다. 즉 배종헌에게 풍경이란비존재를 통해 매개되는 것, 다시 말해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풍경으로 인식되지 않는 존재가 작가의 사적인 관조의 시간을 통해미의 기원이 되고, 그로부터 매개되는 이미지가 바로 풍경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작가가콘크리트 벽면의 균열 요철 곰팡이로부터발견한 풍경이 그저 형식적인 실험이나 비존재의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는 실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회화의 표면으로 초대하는 자율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사적인 매개의 과정은 언제나 벽면의 얼룩이나 바닥의 균열과 같은비존재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1층의 몇몇 그림들은 하늘의 구름을 재현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이 풍경이 지시하는 것 역시 매개되지 않은 자연은 아니다. 벽에 설치된 텍스트 <Ethereal mountain #000>는 우리에게너무나 아름다운 하늘이 배종헌에게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중립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그에게현실과는 동떨어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하늘이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이미지가바닥에 버려진 작은 거울 너머로 반사되어 비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하늘은 비존재의 매개를 통해 비로소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다.





허구영 

<두 조각-나는 미술을 통해서 미술을 벗어나고 싶다

2019 면천에 락커 스프레이 페인트 90.9×72.7cm





허구영의 개인전이 열린 2층은 어두침침한 1층과는 대조적으로 밝고 선명하다. 하지만 형광등 조명 아래 놓인 사물과 이미지의 의미는 손쉽게 읽히지 않는다. 우리는 전시장 안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작품들이 관람객의 현전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허구영의 작품들은 서로서로 참조하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노트에서 오려내어 접힌 종잇조각은 다른 사물들과 함께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혹은 전시를 위해 설치된 하얀 구조물의 측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뿐 아니라, 회화의 도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의 작업실 어딘가에서 출발해 이런저런 작품들로 이동했을 사물의 기나긴 여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관람객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이러한 작품 간의 상호참조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축을 자유롭게 넘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시장 한편에 놓인 <작업실>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관람객은이제 작품은 나를 상처 냈다라는 문장이 이미 1997년 당시 허구영 작가의 회화와 텍스트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시장에 설치된 2019년 작 <-작업실>의 일부인 금박을 두른 그릇 안에는 동일한 문구가 적힌 나뭇잎이 들어 있다. 이렇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 간의 대화는 외부 담론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 관람객이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 작품들이 스스로와의 끊임없는 대화뿐만 아니라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와 같은 미술가나 피터 빅셀(Peter Bichsel) 같은 작가, 혹은 피터 가브리엘(Peter Brian Gabriel)과 같은 음악가와의 대화 혹은오마주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허구영의 책 <작업실>을 통해 이 무한한 대화의 상대가 특정 작가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니체(Friedrich Nietzsche)나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부터,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의 모더니즘, 그리고 할 포스터(Hal Foster)와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의 포스트모더니즘 따위를 총체적으로 포함한다. 이렇게 작품과 담론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로서로 참조하는 과정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관람객의 영역이 아니다. 허구영이 책 <작업실>의 초반에 밝혀놓은 편집의 원칙, “보는 이에게 친절함을 넘어서 불편할 정도의 과도한 자료 제시는 책을 넘어 그의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1)


중요한 것은 이런 정보의 과잉 혹은 극단적인 불친절함이 그저 관람객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보는 이는 작가 본인을 포함한다. 그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 모든 상호작용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게임의 설계자가 아니다. 허구영은 1997이제 작품은 나를 상처 냈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작품은내가 알지 못할 또 다른 나라고 말했다.2) 이런 자기 파괴의 흔적은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회화의 표면에는나를 소외시킬 수 있는가,” “자폐적 예술은 가능한가,” 또는나는 미술을 통해서 미술을 벗어나고 싶다와 같은 문장들이 쓰여 있다. 다시 말해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망은 작가의 탈주 욕망을 매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1층 전시장에서도 작가와 작품을 매개하는 숨겨진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종헌은 벽에 설치된 텍스트 <벽만 보고 있는 사람>을 통해 그가 벽에 남겨진 얼룩, 비존재를 바라보던 그 순간이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절망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눈물의 자리는 벽의 표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비로소 웃음의 여울에 닿는 순간이 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얼룩에서 풍경을 발견하던 바로 그 찰나의 시간을 통해, 즉 비루한 비존재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기나긴 절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두 개의 전시 모두가 작가 본인과 작품을 매개하는 은밀한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우리는 두 전시에서 개념미술에 대한 김복영의 놀라운 통찰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김복영은 서구의 개념미술과 달리 소위 한국의 개념미술이주체와 사물의 연속체를 강조하는 것, 다시 말해자신의 주체를 사물로 전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3) 마찬가지로 우리가 두 작가의 전시에서 발견하는 것은 주체와 사물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어떤 연속체의 모델이다(이들은 더 나아가 주체와 자연의 연속체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구영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며 배종헌은 비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사실 이런 풍경은 2020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모두가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끊임없이 주변을 향하는 그들의 바깥에의 욕망을 담아내기에 어쩌면 전시장의 새하얀 공간은 턱없이 좁을지도 모르겠다.                         

 

[각주]

1) 허구영, 작업실, 2019, 3

2) 허구영, 앞의 책, 69

3) 김복영, 「사물의 언어: 1970-8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기원」,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경기도미술관, 2011, 44-46

 


 *배종헌 <절골입구N1-01_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얼룩그리고 껌딱지로부터> 2019 자작나무 합판에 유채 70×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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