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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혜 복선伏線을 넘어서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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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9 - 2023.3.19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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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것들은 대체로  
어디든 잘 달라붙는다


홍승혜의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는 관람객을 압도하거나 경탄시키는 데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런 종류의 묵직한 야망들은 홍승혜의 한껏 힘을 뺀 작품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력해진다. 젠체 없이 “이게 다예요(C’est tout)”(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별 대단한 목적 없이 ‘그냥’ 거기에 있다. ‘그냥’의 무게 없는 산뜻함은 때로 바람 빠진 웃음을 유발한다. 요컨대 홍승혜에게 <별모양>은 정말 ‘별모양’이고 <콘솔/테이블>은 정말 ‘콘솔/테이블’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복선을 넘어서 II>에는 작가만 아는, 또는 몇몇 식자들에게만 독해가 허락된 이중 부호가 없다.

시쳇말로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과 같다)’로 요약될 수 있을만한 홍승혜의 작품들은 보이는 것 이상의 ‘진정한’ 의미라는 개념을 표표히 지나친다. 의미는 무겁고, 의미가 연루되는 인간적 상황들은 그보다 더 무거울 뿐만 아니라 복잡하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선과 색은 달라 붙을 벽만 있다면 어디로든 간다. 아마도 홍승혜의 작품들이 ‘시적(poetic)’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면 이는 시인이 문자의 물질성에 봉사하듯 그가 선과 색의 물질성에 그렇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국제갤러리 K1에 설치된, 자기주장이 거의 없다시피한 디지털 그림 - ‘회화’라는 단어에 주렁주렁 매달린 일군의 관념들은 홍승혜에게 이미 중량 초과다 - 과 도형 조각 혹은 ‘가구’들을 보자. 시각적 균형 또는 쾌를 고려해 배치되었을 뿐 그 이상의 의미 체계를 산출하지는 않는 단순명쾌한 도형과 명랑한 원색의 중첩(layer)은, 애쓰지 않고도 공간 전체의 ‘아이 같은’, 혹은 ‘유치한(childish)’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한다. 이러한 분위기의 주된 공신은 물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에게 헌정된, 한쪽 벽면의 모서리 부분이 접힌 듯 꽉 차게 채색된 색면 벽화다.

이들이 방사하듯 내뿜는 샛노랗고(<레몬 자르기>) 새파란(<하늘 자르기>) 빛깔은 차가운 화이트월을 일종의 ‘놀이방’으로 탈바꿈하고도 남는다. 같은 맥락에서 홍승혜가 개러지밴드(GarageBand) 앱으로 작곡한 음악이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맞춰 흘러나오는 K3는 철제로 만들어진 다섯 쌍의 픽셀 ‘무용수들’이 ‘꽃잎’과 함께 춤을 추며 하강하는 “무도회장”처럼 보인다. 선과 색이라는 시각적-인지적 요소의 최소 단위가 ‘의미’의 논리에 우선하며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유연하게 변모시키듯, 음악과 빛(<서치라이트>) 또는 조명 역시도 정적인 조각들의 풍경에 극적인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전경화한다.



<꽃병> 2023 자작나무 합판, 아크릴릭 라텍스 페인트  
꽃병: 23×50×63.5cm, 3개의 바: 160×5×1.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사진: 안천호



이처럼 <복선을 넘어서 II>에 등장하는 각각의 요소 ‘다발’들은 서로에게 의존하는 한에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인 형식적 한계로부터 해방된다. 가령 공간과 벽화, 조명과 조각이 맺는 관계 속에서 이들은 그림이면서 그림‘만’은 아니고 조각이면서 조각‘만’은 아니게되는 것이다 - 궁극적으로 전시장이 전시장‘만’은 아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은근한 용도 변경 혹은 확장은 ‘미술’ 전시장이라는 장소의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만 한시적으로 가능한 것이므로, 결국 <복선을 넘어서 II>는 일종의 일회적 ‘퍼포먼스(performance)’와 같은 위상에 놓이게 된다.

설치 단계에서 개입할 ‘그때그때’의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연성과 (작가 자신의 작업이 그리는 일관적인 궤적을 참조점 삼는다는 점에서) 필연성은 전시장 내에 배치되는 모든 작품들로 하여금 그들 각자가 혼자일 때와 결코 같지않게 만든다. 그 결과 한 공간에 놓인 일련의 작품들이자 ‘파편(debris)’들은 자신의 고유한 ‘작품’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대신 이를 하나의 가능한 효과로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한 배우가 다른 여러 역할들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처럼, 이들은 회화인 동시에 소품이고, 조각인 동시에 가구이며, 벽화인 동시에 벽지라는 모호한 상태를 천연덕스럽게 수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홍승혜는 어쩌면 전에 없던 무엇을 창조하는 발명가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무엇을 재발견하는 연출가에 가까울 것이다. 그가 작업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삼는다는 “회상”의 작업(process) 역시 과거라는 일견 닫힌 시공간으로부터 열린 채로 남아 있는 가능성들을 재연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 재연은 과거의 ‘모티프’를 반복하되 이를 동일하게 반복하지 않는 변주를 통해 차이를 발생시키는 재연이다. 과거는 마치 처음‘처럼’ 반복된다. 아직 재연되지 않은 가능성들의 무한한 원천인 과거는 - 마치 언제든 재배치되고 재활용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처럼 - 자신의 영광도 실패도 깨끗이 잊은 채 영원히 다시 돌아온다. 마치 멈추는 법을 모르고 반복적 유희를 지속하는 “어린 아이”나 가장 낮은 수준의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하는 “아마추어”가 그러하듯이.



<홍승혜_복선伏線을 넘어서 II> 전시 전경 
2023 국제갤러리 1관(K1)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이처럼 고정된 대상 또는 상태의 내부로부터 차이를 생산하는 홍승혜의 (자기)반복적인 운동은 기실 그의 작업 전체를 특정한 장르적 정체성로 요약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물론 그의 운동이 “작고 부드러운”(윤난지) “손노동”(김홍희)과 닮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무겁고 둔중한 ‘의미’나 ‘메시지’를 기념비적으로 쌓아 올리는 대신 번식력이 강한 디지털 ‘점(pixel)’들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윈도우에 설치된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을 이용해 모니터라는 “거대 자연”에 픽셀이라는 “하나의 세포”를 배양하고 이를 증식/변형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온 홍승혜는, 그의 비유가 이루는 관계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이른바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모순”적인 용어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왔다. 명제의 참/거짓을 따지는 논리적 관점에서 그의 “모순”에 접근한다면, 온전히 ‘유기’도 ‘기하학’도 아닌 둘의 사이를 부유하는 중간자(The in-between)의 즐거움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모순’은 한계가 아니라 이것에도, 저것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적인 차원을 개방하는 희미한 틈새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홍승혜의 생산적인 ‘모순’은 “유기적 기하학”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그가 지향하는 “생활 미술”, 즉 ‘생활’과 ‘미술’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순’이 출현한다. 주로 서사 구조가 있는 작품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은밀히 암시하는 장치를 뜻하는 전시 제목의 ‘복선(伏線)’에 대응하는 다른 단어는 ‘레이어(Layers)’다. 이는 그가 다루는 디지털 도구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 단위인 레이어를 가리키기도 하고, 말 그대로 전시장의 물리적 공간을 채운 각각의 요소들의 시각적 구성 원리인 ‘쌓기’ 그 자체를 암시하기도 할 것이다. 쌓는다는 것은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반복된다는 것은 패턴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패턴화된다는 것은 곧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장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식은 추상 미술도 구상 미술도 아니다. 왜냐하면 (특히 여성화된 ‘사적’ 생활 공간을 점유하는 오브제 또는 형태로서) 장식은 미술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복선을 넘어서 II>의 그림, - 소품과 조각 - 가구가 때로 스스로를 기묘한 긴장 상태로 빠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우리는 언제든 ‘생활’ 속에서 ‘미술’을, ‘미술’ 속에서 ‘생활’을 발견함으로써 ‘모순’의 입구에 진입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적시할 필요는 있겠다. 요컨대 종이보다 가벼운 ‘픽셀’로 된 장식은 마치 자가증식을 거듭하는 곰팡이처럼 어디로든 달라붙고, 어디까지든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각주]
* 이 글에 등장하는 직접 인용들은 특별한 표기가 없는 이상 모두 국제갤러리의 보도자료와 작가의 아래 인터뷰들에서 참조한 것이다.
- “MMCA 작가와의 대화 | 홍승혜 작가 / MMCA Artist Talk | Hong Seunghye”(국립현대미술관), youtube.com/watch?v=Kj0QM_ 4JzV0
- “Studio Visit l Hong Seung-Hye”(국제갤러리), youtube.com/ watch?v=8xO2x7nJoD0&t=304s

* 또한 이 글은 다음의 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 윤난지,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 『월간미술』, 2021년 5월호
- 김홍희,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 8-‘환상의 복식조’ 양주혜 vs 홍승혜 vs 박미나」, 『경향신문』, 2021. 7. 21
- 김계원,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과 기술의 미술적 전용」, 『한국 근현대미술사학』 4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1



* <홍승혜_복선伏線을 넘어서 II> 전시 전경 2023 국제갤러리 3관(K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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