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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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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0 – 2015.2.1 삼성미술관 플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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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영역 시선과의 대화 



1. 건축가 조민석의 발걸음이 움직일 때마다 건축계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파장 진원지의 실체에 대해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도시 스케일의 <부티크 모나코>[04G; 2008](조민석의 분류법을 따른다)작품 존재를 먼 시야에서 확인하고는 언젠가 따로 시간을 내어 그와 대면하리라 미래를 기약하고 난 후 여러 해의 시간이 흘러갔다. 2010,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국의 도시 베를린에서 귀국하자마자 처음 접했던 그의 작품, 파주 헤이리의 <딸기 테마파크/쌈지 미술창고>[01E; 2002]는 당분간 다시 보게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종류의 건축어휘와 문법에 익숙한 상태였고, 언제나 그것의 완성태를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플라스틱 재료로부터 시작하는 비정형의 제스처에 나 자신을 내던져 그와 동화시키는 일에는 다소 심리적 저항감이 있었다. 그의 공간도 나를 맞이하려고 하였지만, 나 자신을 그에 안기도록 허락하기는 더욱 내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작품의 조형에서 각각의 선들이 어지럽게 만들어내는 운율을 굳이 따라가서 그간 익숙하던 감흥의 질서를 재구성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오랜 역사의 관성이 조용히 건네준 커다란 형식들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데 익숙해 있었고, 그 정도의 편차를 점점 더 좁혀갔는지도 모른다. 정제, 혹은 섬세 등이 내가 사물을 대할 때 내세우는 주제어였다.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건축의 체계가 구축되어 내 앞에서 있고 그 내적 질서도 이제 파악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이 상황에서 변주곡에도 귀를 열고 시야를 넓혀야 하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어느 날카롭고도 예리한 건축비평가와 그 옆에는 시인이자 건축가 지인, 그들과 마주한 시각예술의 교수, 그리고 건축가 조민석과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건너야 할, 건너고 싶은 다리를 보게 되었고, 그것이 제시하는 다른 가능성의 세계는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2. 조민석은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링돔>[07I; 2014]을 전시장의 내부가 아닌 외부, 즉 입구의 공공 공간에 세우려고 했다. 이 중요한 생각은 실천되지 않았다. 미술관 주체가 이를 허락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우리 현실에서 과한 욕심이 아닌가 싶다. 미술관측 큐레이터에게 아무리 실천을 설득해도 이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의 관리와 보호에 대한 미술관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건축 작품을 미술 작품으로 보도록 하는 작용인으로서의 우리 언어 때문이다. 이 작용인의 논리가 성립했기 때문에 건축전이 미술관의 영역에서 가능했다.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것은 그 장르와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미술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박물관이 기능하는 방식을 일상의 삶에서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미술관이라는 개념어는 그 영역을 스스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화 작품, 조각 작품의 전시와 달리 건축의 작품은 누구라도 이해하듯이 미술관이라는 공간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 건축전은 따라서, 최종 창작품이 아닌, 사진, 도면, 스케치, 모형 등 창작 과정의 산물이나 최종 결과물의 재현물의 전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미술의 영역에서 그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자라고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링돔>은 어느 장르에 귀속하는가? 조민석은 이 작품을 구조물’, ‘순수하게 기하학적 형태로 정의된 장소라고 정의한다. 동시에 개방적인 공간으로,  새로운 환경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이 주제어들은 그런데, 건축 작품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건축의 본질 규정이라고 한다면 미술관 전시의 논리에 따라서 이 <링돔>은 미술작품이자 건축 작품이다. 아니, 미술작품으로서의 건축 작품이다. 그렇다면 미술과 건축 개념이 등가인 것은 아닌가? 흔히 이러한 장르의 작품을 설치미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3. 우리는 암묵적으로 건축을 공간으로 규정하고, 그 관점에서 작품을 논의해 왔다. 적어도 20세기의 한 시대를 이 주제가 지배하도록 허용해 온 것이다. 건축을 다른 장르와 대별되도록 했던 근거도 공간이었고, 건축 작품의 독자적 표현 수단도 공간의 시간적 체험에서 찾았으며, 도시나 대지가 그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경계 짓고 한정하는 하나의 형식이 미술관이라면, 그 내부를 채우는 것은 미술 이외의 다른 이름을 부여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사실을 자명하게 여겼기 때문에 건축전시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건축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이 논리의 결과로서 건축전시는 전시된 재현물을 통해 실제 건축 작품의 가치가 소통될 수 있는 여러 가지방식을 구성해야 한다는 강제가 지배한다. 관람객의 미적, 혹은 지적 호기심이 전시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표상하는 다른 가치들과 이야기로 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얼마나 타당한가? 




  

전시전경 사진:김영철




4. 매스스터디스의 전시에서는 그의 건축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두 가능성이 모두 가능하다는 전제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전시품이라는 사물 형식, 특히 모델들도 조각 작품들과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또 그 창작의 과정이라고 명명한 /의 형식도 공간의 시간 구성 속에서 작품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의 건축 작품들이 영상과 사진인화 등의 형식으로 재현되어 펼쳐져 내보일 때, 이들의 가치를 묻는다면, 이 전시 소재들은 단지 건축물이 사회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아가 이들이 회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대상과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건축전시는 건축의 추상 영역인 인문적, 예술적 의미뿐만 아니라, 건축 작품의 물리적, 공간적 경험을 효과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 과감한 시도는 과연 얼마나 성공적인가? 

  


5. 이 전시의 구성은 매스스터디스의 작업과 동일한 프로세스를 보여주고 있다. 픽토그램이 암시하듯이 이질적인 특정 요소와 모티브들이 그 시작을 알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결국 어떤 하나의 논리를 통해 하나의 체계에 맞물려 작동되도록 한다. 이 전시가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은 미술관의 전례에 속하는 숭고’, ‘작품의 아우라’, ‘공간 장악등의 전략을 애써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시 자체가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인 셈이다. 건축가의 주장이기도 하다. 도면, 자료, 완성단계의 사진들, 작품들이 살아가는 삶의 기록물들, 영상들이 건축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고 이들이 서로 세워지고 짜 맞추어져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서로의 독립 영역의 간극이 너무 커서 개별자들뿐만 아니라, 전체가 인지되기가 어려운 것은 다른 한편,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도시적 삶의 구조이기도 하다. 


파편들처럼 보이고, 필요불가결한 연결고리는 우리 시야에 드러나지 않는다. 불안을 현실의 조건으로 인식하는 훈련을 거친 자와 그를 도외시하려는 자들의 이중주는 엇박자일 뿐만 아니라 협화음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를 해체와 분석 등, 여러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체계로 실천하는 건축가는 대단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도시적 맥락에서 건축을 해명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다. 매스스터디스의 건축이 이 위상을 차지하면서 치렀던 대가는 혼성’, ‘융합’, ‘부산물 등의 부정적 의미로 차 있던 어휘들을 긍정으로 옮겨 놓는 힘겨운 작업들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건축은 하나의 도시이다. 

  


6.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의 제목은 마치 공안과 같다. 매스스터디스의 건축이 매스를 다룬다고 전제하지만 공간을 지향하고, 실제로 전과 후의 두 영역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작품일 수밖에 없지만 이를 하나의 건축 과정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으로 처음 길을 향해 나서는 사람은 분명히 매스-대중 혹은 덩어리-로부터 건축의 의미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이를 오랫동안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 노력이 건축의 진의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의 건축이 보여주고 있다. , 전과 후의 개념을 설정할 때, 전경과 후경의 회화의 구도 기법에 근거해 본다면 불합리한 정의-회화의 소재들은 모두 앞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모두 뒤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전경/후경의 정의가 가능한 것은 어느 영역에 감상자의 대별을 가상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가 창작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을 보면, 조민석의 건축하기-/는 그 형용모순을 통해 창작의 과정과 건축 작품, 그 삶의 이력을 하나의 건축으로 포괄해 간다. 따라서 그에게 건축 작품은 없다. 하나의 커다람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내던졌던 ‘BIGNESS’라는 주제어를 몸소 실천하는 것은 아닐까? 이 전시회는 이를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려면 사물을 보는 다른 눈이 필요하다. 텔레스코프가 아닌 열린 창, 열린 공간, 아니 벌거벗은 공간. - 시원하다. 이 답답한 현실에서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건축이 책임져야 할 의미의 영역이 아닌가?      

 

 

▶김영철,「세 영역 시선과의 대화」에 대한 메타비평 바로가기

 

<링돔> 설치전경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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