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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나우: Political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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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 2015.2.15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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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 아프리카의 이른 회고 또는 늦은 회신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의 현대미술을 한국에서 처음 소개한다는 머리기사처럼, 당신이 모르는 아프리카의 속살(Inside the Africa You Don’t Know)을 보여주겠다는 <아프리카 나우: Political Patterns>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이 전시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초청 작가들의 면면이 직접 국내에서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었지만 국제미술계에서는 무척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는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일찍이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던 1세대 이민자 출신의 영화감독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정화의 밤>, 그와 마찬가지로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지휘했던 <카셀 도쿠멘타 11>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 <Earth>외 다수 작품들, 1998년 터너상을 거머쥐며 일약 미술관과 미술시장에서 동시에 신데렐라로 떠 오른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코끼리 똥 회화의 경우,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톱스타 3인 외에도 기획자가 분명 다채로운 구성을 위해 거듭 고심했을 다른 참여 작가들 역시 탁월하게 동시대적인 맥락을 획득하여 실천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각각 남아프리카 공화국, 알제리, 나이지리아,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탄자니아 등 현재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거나, 또는 선대 이주민들의 후예로 영국, 프랑스, 미국 동서남북 곳곳에서 거주하거나 혹은 서인도제도 제도 출신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는 사진, 비디오, 조각, 회화, 설치를 망라한 다채로운 매체의 작가 17인을 한 장소에서 선보이는 동시에, ‘전시 속 전시로 수공예,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7인의 작가를 소개하는 큐레이팅 섹션을 포함하고 있다. 분명 미술관의 역량을 집중시켜 쉽지 않은 대규모 기획 전시를 공들여 연출했음이 분명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 전시장의 공간을 두 가지 섹션에 따라 굳이 나누어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시의 기획 배경이나 핵심적인 메시지를 관객 입장에서 한눈에 파악하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아프리카는 광대한 대륙을 이르는 지명이면서, 우리가 거주하는 동아시아와는 문화교류가 다소 파편적이거나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장소다. 그곳의 들은 동물의 왕국 류 생태 영상물과 더불어 관광객이나 수집가들을 위해 생산된 야생동물 가죽으로 만든 토속적인 공예품이나 목가면, 수출용 원시주의 풍의 조각, 나이브(naive)한 회화라는 관상용으로 정형화된 모습으로 이곳에 먼저 도달하여, 현재 그곳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실상을 교묘히 은폐하도록 작동하고 있다.

 

이렇듯, 여전히 아득할 정도로 이국적(ethnic)’이라는 단어와 거의 자동 연결되는 문화정치적 개념인 아프리카를 여기에 우리가 정면으로 직시하도록 주문하는 반면, 지극히 한시적인 상태(now)’를 평면적으로 나열해 전시제목으로 내세우는 선택은 다소 의아스럽다. 일반적인 관람객의 입장에 서면, 광후장대한 타이틀 <아프리카 나우> 탈식민주의 미술을 소개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처한 다문화주의의 실상을 되새겨 보자.’라는 기획의 의도 간에는 상당한 이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섹션의 소제목인 <폴리티컬 패턴>을 동시에 전시의 부제로 병기한 것은, 지각과 사고의 면에서 발생하는 독해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고려 차원이라 이해된다.

 

우리 교육에서는 타 대륙, 특히 유럽이나 미주대륙에 비해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덜 알려준다. 이 대륙의 국경선들이 유독 지도에 삼각자를 대고 수직 수평 직선으로 그은 듯 이상하게 보인다면, 이는 보통 강이나 산맥과 같은 지리적 요인에 따라 나뉜 것이 아니라, 유럽 제국 열강의 끝물인 19세기 후반 베를린 회담의 나눠먹기에 의해 구획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겪은 것처럼 한때 식민지였던 한반도 역시 일본제국주의의 폭압적인 통치로부터 해방되자마자 강제로 시작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 한반도가 소련과 미국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서 북위 38도 선상을 따라 단칼로 잘린 경험이 각인되어서일지, 이 모습은 곧장 우리에게 그어진 하나의 가로선을 떠올리게끔 한다.




히스 내쉬 <Lilyball> 2009 작은드링킹 요거트 

2리터 콜라병 뚜껑 지름 40cm  작가


 


주최 측에서는 전시장 입구를 비롯한 이동 통로의 벽면 전체를 활용하여 아프리카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현황을 인포그래픽(infographics)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어진 조각보 같은 지도를 바탕으로 전시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함이다. 이들 디아스포라 탄생의 배경에는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대전, 자본주의의 전지구화, 즉 세계화가 망라해 있다. 우선 본래 부족민 토착어 자리를 대신 차지한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언어의 사용자 분포는 과거 구 제국별 식민지 경계와 거의 일치하다. 인포그래픽에서 과거 노예무역에 의한 강제 이주와 현재 자발적 노동 이주의 흐름은 지구 곳곳으로 확산되어가는 곡선들의 화살표로 물결치고 있다. , 주로 공업이 발달하여 노동력이 대거 필요한 미국 각 주 지역의 도시 또는 대도시에 주로 분포한 흑인들을 표시한 인구 도표는 그야말로 어지러움 자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현재의 모습을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 내지는 출품작들과 겹쳐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인포그래픽은 그들의 현실을 서로 다른 자투리 천 조각들을 덧대어 이은 퀼트처럼 두루 엮어내는 정치적인 문양처럼 보인다.

 

물론 추가로 제공되는 이 정보들은 한국의 일반적인 관람객들로 하여금 <아프리카 나우> 전시를 정치사회학적인 관점, 특히 탈식민주의적인 담론으로 양식화하게끔 하려는 의도를 잘 보완해준다. 또 한편으로는, 저 먼 땅으로부터 비롯하여 이곳까지 도달한, 그래서 더 낯선 얼굴을 한 다른 인종의 현대미술을 친절하게 번역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서인도 제도의 흑인 문화가 각각 다른 특색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전 지구로 퍼져서 각자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정체성을 뭉뚱그려서 단 한 편의 전시에 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아시아, 더 좁혀서 동아시아의 현대미술을 어떻게 한 나이지리아인이 쉽사리 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타쉔(Taschen) 출판사의 인기 시리즈 간행물인 『아트 나우』의 사례가 보여주듯, (어떠한 각도에서 고려해 봐도) 서구의 시선을 빌려 수평적 방식으로 독자적인 한 문화권의 일각이라도 드러내고자하는 움직임은, 으레 커다란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힘을 쏟는 것으로 귀결된다.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 현상이 비단 특정한 대륙에 국한된 것이 아님에도 굳이 이 전시에 기대가 가는 것은 다름 아닌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 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 형식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타자화를 변증법적으로 고찰한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는 유럽중심적인 보편주의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문화의 추정적인 우월성과 식민화된 비서구의 열등함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을 창안한 점을 비판한다. 구별되지 않는 대상으로 피식민자를 다루면서 발생한 치명적인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이것에 대한 저항으로 유럽 또는 서구 또한 허상이라는 사고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며,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지배적인 권력을 입은 담론에 대해 저항하는 한 방법은 피식민 국민들이 잃었던 문화적인 과거를 되찾고 그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시 속 전시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전통문양의 의미론적, 심미적 교차점을 보여주는 공예, 디자인 및 예술작품으로 구성됐다. 이 섹션의 공간은 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근대 박물관 유물 전시실의 인테리어를 재현하도록 연출됐다. 사이드가 식민사관의 담론에서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근대미술관이 수행한 역할은 무관심한 예술 감상을 위한 악의 없는 제도로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사회적, 정치적인 담론으로 엮어진 미적 공간으로 읽힌다. 이 섹션은 곤살로 마분다(Goncalo Mabunda)의 폐기된 무기로 만든 다소 익살스러운 금속 조각이나 아드모어 세라믹 아트(Ardmore Ceramic Art)의 처절하고 생동감 넘치는 세라믹의 수공예 작품들에 양식화된 박물관이라는 유럽 문화의 보편주의를 한 겹 덧입힘으로써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보다 복잡한 담론의 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근대 이전 시기,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가 열린 15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은 앞장서서 유럽 본토의 산업혁명과 신대륙 식민지 경영에 필수불가결한 노동인력을 강제로 이주시키기 위해 노예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역시 식민주의의 여파는 잔잔한 물결이 아니라 점점 거세게 밀려드는 파도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은 참혹한 전쟁과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공포의 전염병이나 기아로 부터의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서, 무동력 조각배에 수십 명씩 나눠 탄 채 목숨 걸고 국경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근대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분쟁과 살육의 불씨를 피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피의 다이아몬드를 비롯, 그들의 땅에 숨겨진 희귀 자원에 대한 외부의 수탈욕으로 인해 그들이 받는 고통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농구를 좋아하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초강대국 미국의 최초 흑인 재선 대통령이 됐어도 현재 미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인종과 종교 갈등이 극단적으로 커지고 있다. 퍼거슨 사태나, 전 세계인의 눈앞에 중계된 시사비평지 『샤를리 앱도(Charlie Hebdo)』에 가해진 이슬람 청년들의 테러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서구사회를 결속시키며 알 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에 대한 복수를 외치게 한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이 대부분인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에서 그것은 테러가 아닌 순교로 받아들여지고, 오히려 서구사회가 집요하게 종교적 존엄성을 모욕해온 것에 대한 격렬한 항의가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광적인 원리주의 이슬람 무장집단 보코 하람(Boko Haram)이 민간인의 땅에서 무고한 비이슬람 아프리카인들을 납치, 학살하는 참사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서로 연대하여 구-식민제국의 후예인 서구와 더욱 거세게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 모든 비극이 인터넷으로 거의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더 무기력하게 한다. 이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전시실의 거의 막바지에서 마주친 바라본 행크 윌리스 토마스(Hank Willis Thomas) <Overtime>은 두 흑인 선수가 1 1 농구 대결을 하며 공수 교대로 교수대 밧줄에 농구공을 꽂아 넣는 영상이다. 이 작품은 여전히 아프리카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스스로에게 주고받는 고통을 슬프도록 고발하고 있다.

 

근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한국 문화 전반에 복고 열풍이 거센 가운데, 현 시점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이 1990년대 후반 절정기에 달했던 탈식민주의 담론이라는 회고적 전시를 열었다는 점은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관람을 마친 후 조선족, 탈북민,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이주지가 된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며 세계화와 탈식민주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런 복합적인 관점에서 지난 2014년 서울이 이미 코스모폴리탄임을 드러낸 전시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제3세계의 현대미술을 다시 소개하는 이번 전시 <아프리카 나우: Political Patterns>, 그리고 앞으로 광복 7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열릴 전시 <북한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다원다문화 시리즈는 현 시대의 시의적절한 주제를 매개하는 역량이 돋보이는 프로그램들이다.              



* 닉 케이브 <Drive-by> 2011 HD 비디오, 색, 소리 15분 루프 ⓒ 작가 Photo by James Prinz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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