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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제법 큰 독립 공간에 홀로 있는 사과 하나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투명 플렉시로 만들어진 좌대 위에 놓여 있는 이 사과는 바로 <Apple>(1966)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연대기적 구성을 보이는데, 초기 작품도 아닌 이 작품이 입구 정면에 설치된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비틀즈의 멤버였으며 요코의 남편이었던 존 레논(John Lennon)과의 첫 연결고리가 이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를 전면에 배치한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1966년, 요코의 개인전이 열리기 전날 밤, 존 레논이 전시장에 들어와 작품을 둘러보고, 투명 플렉시 좌대 위의 <Apple>을 한 입 베어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Apple>을 마주한 후 관람자는 우측과 좌측으로 나뉜 전시 공간 중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난감해진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관없다. 결국 끝에서 하나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 입구로부터 연대기적으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중간에는 <Apple>을 포함해 좌우측 공간을 넘나들 수 있도록 통로가 마련된 4개의 독립 전시 공간이 일렬로 존재한다. 그리고 좌우측 전시 공간이 만나는 전시장 끝에는 예외적으로 문이 달린 밀폐된 음악 감상실과 또 하나의 독립 전시 공간이 존재한다. 우측 전시 공간은 크게 4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섹션은 1960년 12월부터 1961년 6월까지 요코가 작업실 겸 공연장으로 사용했던 뉴욕 맨하탄 남부의 다락 창고(챔버스 거리 건물 꼭대기층)에서 행한 실험적 공연에 대한 자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작품은 만지는 시 <Touch Poem #5>(1960)다. 

<Cut Piece> 1964 Performed by Yoko Ono in

 <New Works of Yoko Ono> Carnegie Recital Hall, 

New York March 21, 1965 Photograph by Minoru Niizuma 

ⓒ Minoru Niizuma Courtesy Lenono Photo Archive, New York

이 작품은 요코가 자신과 친구의 함께 엉킨 머리카락 뭉치로 페이지를 구성해 32쪽으로 만든 책(혹은 시집)으로,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어 역설적으로 만질 수 없는 ‘만지는 시’로 존재한다. 하지만 옆에 있는 큰 터치스크린 안에서 한 장씩 넘겨 볼 수 있어서, 감촉 없는 만짐과 전체 내용의 확인은 가능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섹션은1961년 7월 뉴욕 AG 갤러리에서 행한 요코의 첫 개인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그녀는 ‘지시문 회화(instruction paintings)’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시문 회화는 관람자에게 어떤 행동이나 상상을 하도록 지시하는 문구(혹은 말)를 제시하는 작업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참여 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섹션의 바닥에는 “밟히기 위한 작품”이라는 지시문 카드로, 관람객이 밟도록 유도하는 <Painting to Be Stepped On (1960/61)>과, 매달아 놓은 유리병에서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면서 둥근 캔버스 조각의 변화를 보여주는<Waterdrop painting>(1961)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Works by Yoko Ono> Poster Carnegie Recital Hall, New York 

November 24, 1961 Photograph by George Maciuna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The Gilbert andLila Silverman 

Fluxus Collection Gift, 2008 ⓒ 2014 George Maciunas 

세 번째 섹션은 1962년 3월 소게츠 예술센터(Sogetsu Art Center)에서 열린 요코의 일본(도쿄) 첫 전시와 공연을 조명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관람자가 상상으로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지시문’ 작업들과 (처음 섹션에 있던) 만지는 시 <Touch Poem #5>를 전시하고 있으며, 더불어 동료 예술가, 음악가 그룹과 함께 공연을 실행했다. 이 섹션에서는 당시 지시문 작업과 공연 자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은 런던 인디카 갤러리(Indica Gallery) 개인전(1966)을 중심으로1966년부터 1969년까지 런던에서 개최한 전시와 영상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요코가 레논을 처음 만난 전시가 바로 인디카 갤러리 개인전으로, 이후 그들은 음악, 영상, 반전 캠페인 등 다양한 협업 작업을 진행했다. 이 섹션 중앙에는 레논과의 첫 만남 사건에 연관된 또 다른 작품 <Ceiling Painting>(1966) 3)과 게임의 경쟁 구조에 도전한 <White Chess Set>(1966)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색을 칠하도록 유도한 <Add Color Painting> (1961/66), 못을 박도록 유도한 <Painting to Hammer a Nail>(1961/66) 등 참여 예술 작품들도 있다. 벽면 위쪽으로는 걷는 사람의 벗은 엉덩이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Film No.4>(1966/67) 영상이 관음증을 자극한다. 

Yoko Ono with <Apple> 1966 At press preview for

 <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 On view 

at MoMA May 17-September 7, 2015 Photo: Ryan Muir ⓒ Yoko Ono

좌측 전시 공간은 크게 3개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섹션이 나뉘어 있다. 입구에서 봤을때 첫번째 섹션은 1964년 7월 도쿄에서 처음 선보였던 퍼포먼스 <Bag Piece>(1964)의 기록 사진들과, 관람객들이 직접 퍼포먼스를 행할 수 있는 무대로 마련됐다. <Bag Piece>는 두 명의 퍼포머들이 그들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불투명 가방(천 주머니)에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은 후, 가방에서 나와 그것을 들고 퇴장하는 퍼포먼스로, 보이지 않는 퍼포머들의 움직이는 실루엣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번째 섹션은 요코의 ‘지시문(instruction)’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Grape fruit> (1964)가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책의 151쪽 전체를 낱낱이 아크릴관에 넣어 벽면에 일렬로 길게 늘어놓아 각각의 지시문을 확인할 수 있게 한 전시전경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1967년 런던 리손 갤러리(Lisson Gallery)에서 열린 <오노 요코 바람의 반 쇼(Yoko Ono Half-A-Wind Show)>전에서 설치됐던 <Half-A-Room>(1967)에 주목할 만하다. 이 작업은 가정의 실내에 있는 오브제들을 반으로 나눠 반쪽만 설치한 작업으로, 완벽히 절반만으로 구성된 실내 풍경이 기괴한 감정을 자아낸다. 

<White Chess Set> 1966 In the Abby Aldrich Rockefeller Sculpture Garden, 

presented in conjunction with 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ay 

17-September 7, 2015 ⓒ 2015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Thomas Griesel

전시실 중앙에 줄지어 있는 4개의 독립 공간에는 입구로부터 <Apple>, 지시문을 실행해 볼 수 있는 공간,  <Cut Piece> 퍼포먼스의 영상 및 자료 전시 공간, 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구성된 공간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시문 실행 공간은 “다른 사람을 터치하라”라는 <Touch Poem for Group of People>(1963)의 지시(지시문 책 Grapefruit의 5쪽)을 관람객끼리 실행해 볼 수 있도록 만든 빈 공간이다. 다음 공간에는 관객들이 한 명씩 올라와 무대에 꿇어 앉아 있는 요코의 옷을 가위로 자르도록 주문한 그의 주요 퍼포먼스 <Cut Piece>(1964)의 영상과 자료가 있다. 날카로운 가위의 폭력성, 관음증, 희생자로서 여성을 느끼게하는 퍼포먼스다. 하늘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구성된 마지막 독립 공간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To See the Sky>(2015)가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관람자가 직접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 뉴욕현대미술관 유리 지붕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치한 관람객 참여형 작품이다.

Installation view of <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ay 17-September 7, 

2015 ⓒ 2015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Thomas Griesel 

좌우측 전시 공간이 연결되는 전시장 끝에는 밀폐공간과 또 하나의 독립 전시 공간이 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고 적힌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검은 밀폐공간은 1968년 즈음에 요코가 만든 (멤버 수에 제한 없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멤버 구성에 유연한) 개념적인 밴드,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가 발매한 음악을 헤드폰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음악 감상실이다. 그 옆의 독립 공간에는 1971년에 열린 <오노 요코,한 여자의 쇼>전 관련 자료와 그 당시 전시 광고로 진행했던 <Museum of Modern (F)art> 프로젝트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파리가 나체 여성의 몸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것을 근접 촬영한, 그녀의 대표 영상 작업 중 하나인 <Fly>(1970)가 벽면에서 상영 중이다. 이 공간은 전시 제목에 적힌 ‘1960-1971’에서 가장 마지막 시기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동안 존 레논이라는 세계적 스타에 가려져 있던 요코에게서 확실히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논의 웃는 모습을 찍은) <Film No.5(Smile)>(1968)나, 세계 평화를 위한 협업 작품 <Bed-In>(1969), <WAR IS OVER! if you want it>(1969-) 캠페인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레논에 대한 부각 보다는 요코를 조명하기 위한 역할로 그 작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가 아닌, 오노 요코의 전 남편 존 레논이라고. 

<Museum of Modern [F]art> 1971 Exhibition catalogue, 

offset 30×30×1cm The Museum of Modern Art Library, 

New York ⓒ Yoko Ono 2014

[각주]

1) 이 광고에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출입구가 있는 거리를 찍은 사진이 실려있다. 사진에는 “Museum of Modern art”라는 미술관 현판 아래로, 오노 요코로 보이는 여인이 오직 “F”만 크게 적힌 흰 쇼핑백을 들고 인도를 지나가고 있다. 문제는 “Museum of Modern”와 “art” 사이 밑으로 “F”가 적힌 쇼핑백을 든 여인이 지나가고 있어, 마치 “Museum Of Modern Fart”로 보인다. 참고로 현판 글자는 오노가 사진 상에서 조작한 것이다.

2) 오노 요코는 이 전시를 위해 유리병에 향수를 뿌린 파리들로 가득 채워 뉴욕현대미술관 조각공원에 가져가 뚜껑을 열어 날려 보냈다. 전시 방문자들은 미술관과 뉴욕 곳곳으로 흩어져버린, 향수 냄새를 풍기는 파리들을 찾도록 초대된 것이다.

3) 전시 전날 방문한 존 레논이 <Ceiling Painting>의 설치된 사다리를 올라가 매달려 있는 돋보기를 통해 오노가 아주 작게 써 놓은 "yes"를 찾았다는 일화.

글쓴이 안진국은 판화와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시각예술가이자 미술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동시대에 일어나는 다채로운 사건들의 이면에 흐르는 사유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동시대인의 보편적 사유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2015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