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Art World

아이 웨이웨이

0원
U.K.

Ai Weiwei
2015.9.19-2015.12.13 런던, 영국왕립예술원

아이 웨이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강제로 여권을 빼앗긴 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1년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선보인 [해바라기 씨(Sunflower Seeds)]는 의도치 않게도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영국에서의 마지막 전시가 됐고, 정부가 그의 여권을 반환한 후 4년 만에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그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유난히 더 대중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그가 처했던 상황들을 많은 대중 매체가 보도했고, 그는 계속해 소셜 네트워크로 중국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고발했다. 웨이웨이라는 작가-막상 작품보다는 그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지도 모르겠다-의 이번 전시는 20년간의 그의 작품 역사를 보여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새로운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런던 벅스홀 갤러리(Vauxhall Gallery)에서 전시를 연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대결구도를 이루며, 과연 동시대 미술계에서 메가 작가로 거듭난 웨이웨이는 작가로서 어떠한 깊이를 보여줄지 그리고 현대 예술시장에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지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김보람 영국통신원

Exhibition view of 'Ai Weiwei' at Royal Academy of Arts 2015 Photo: Boram Kim
SHOPPING GUIDE

배송 안내

배송은 입금 확인 후 주말 공휴일 제외, 3~5 일 정도 소요됩니다. 제주도나 산간 벽지, 도서 지방은 별도 추가금액을 지불하셔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송비는 6만원 이상 무료배송, 6만원 이하일 경우 3,000원입니다.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주문된 상품 불량/파손 및 주문 내역과 다른 상품이 오배송 되었을 경우 교환 및 반품 비용은 당사 부담입니다.

- 시판이나 전화를 통한 교환 & 반품 승인 후 하자 부분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여 택배를 이용하여 착불로 보내주세요.


교환 및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 반품 기간(7일 이내) 경과 이후 단순 변심에 한 교환 및 반품은 불가합니다.

- 고객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포장을 개봉 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 가치가 상실된 경우,

  고객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하여 상품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 포장을 훼손한 경우 교환 및 반품 불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 상담 혹은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 교환/반품 배송비 유사항 ※
- 동봉이나 입금 확인이 안될 시 교환/반품이 지연됩니다. 반드시 주문하신 분 성함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 반품 경우 배송비 미처리 시 예고 없이 차감 환불 될 수 있으며, 교환 경우 발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상품 반입 후 영업일 기준 3~4일 검수기간이 소요되며 검수가 종료된 상품은 순차적으로 환불이 진행 됩니다.

- 초기 결제된 방법으로만 환불이 가능하며, 본인 계좌가 아니면 환불은 불가합니다.(다른 명 계좌로 환불 불가)
- 포장 훼손, 사용 흔적이 있을 경우 기타 추가 비용 발생 및 재반송될 수 있습니다.


환 및 반품 주소

04554 서울시 중구 충무로 9 미르내빌딩 6 02-2274-9597 (내선1)

상품 정보
Maker Art in Post
Origin Made in Korea
정기결제
구매방법
배송주기

정기배송 할인 save

  • 결제 시 : 할인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선택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Art World 수량증가 수량감소 a (  )
TOTAL0 (0개)

할인가가 적용된 최종 결제예정금액은 주문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

지난 2, 런던에 있는 경매회사 필립스(Phillips)에서 웨이웨이의 작품인 <Circle of Animals/Zodiac Heads>290만 파운드(한화로 약 49)에 거래됐다. 덕분에 침체된 경매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그는 다수의 기록을 남기며 미술 시장에서 거장으로 다시금 떠올랐다. 영국 왕립예술원에 들어서 까마득하게 보이는 매표소를 보며 정작 30분이 넘는 시간이 기다려 티켓을 구입하고서야 최근 경매 기록을 다시금 떠올리며 웨이웨이의 위상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서는, 마치 시장처럼 빽빽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움직이며 볼 수 있었다




Exhibition view of <Ai Weiwei> at Royal Academy of Arts 

2015 Photo: Boram Kim 





11개의 방을 채운 그의 작품들은 그의 20년간의 작품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중국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가 중국 정부로부터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작품들을 통해 중국성(Chinesness)과 그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뿌리 깊이 박혀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구 현대 예술시장은 반복되는 듯한 작품들로 점점 대중들로부터 흥미를 잃어가며 동 아시아의 작품들로 시선이 가는 것이 실상이다. 그런 면모에서 본다면 중국의 현 모습을 고발하듯 고스란히 전하지만 중국의 고유한 색깔을 담고 있는 웨이웨이의 작품들은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관람객들에게 희망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그저 서구 문화에서 잠재성을 가진 중국이라는 시장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청나라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당시에 청나라 성에 있던 유물들은 약탈당해 아직까지도 경매장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09년 런던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청나라 황제의 상징이던 옥새가 한화로 약 69억 원에 팔렸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방황하는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웨이웨이의 초기작품들은 청나라 때 쓰인 나무들과 가구들로 재창조된 작품을 선보이며 역사라는 것에 대한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전시장 밖에 있는 청나라 때의 나무 파편들로 만들어진 대형 설치작품과 전시장의 한 가운데에 놓인 부서진 벽돌과 당시의 웅장함을 보여준 장식물들은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역사 속 흔적을 계속해 되뇌려는 듯했다. 영국인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가 만든 중국 역사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의 일부 모습을 보듯이, 전시장의 모습은 당시 대영제국의 시선 속 중국에 대한 모습을 아이러니컬하게 재현하는 듯했다. 비록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언정.




<Free Speech Puzzle> 2014 Hand painted porcelain

 in the Qing dynasty imperial style 51×41×0.8cm 

Work courtesy of Ai Weiwei Studio Image courtesy Ai Weiwei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들을 기리기 위한 180톤의 <Straight>. 당시 중국정부가 은폐하려 했던 두부건축(Tofu Building)이라고 하는 허술한 건축방식으로 지은 건물들 때문에 안타깝게도 학교가 무너져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웨이웨이는 당시 건축에 쓰인 철물 구조물을 모아 하나하나 곧게 펴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커뮤니티를 만들어 찾아낸 아이들 5,000명의 이름을 벽에 가득 채웠다. 작품의 웅장함과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했을 철근을 곧게 펴내는 작업 과정을 상상하니 자연스럽게 숙연해졌다. 쓰촨성 지진으로 인한 그의 사회활동이 그의 작품세계에서도 반정부 운동가가 되는 전환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연이은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가 반사회 운동가라는 것을 계속해 각인시켰다. 각기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들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작가가 중국 정부의 상황을 스펙터클로써 이용한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심지어 웨이웨이-이즘이라는 타이틀로 반정부적인 글을 모아 저서로까지 만들어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Coloured Vases> 2006 (representative image)

 Neolithic vases (5000-3000 BC) with industrial paint

 Dimensions variable Photograph ⓒ Harry Pearce/Pentagram 

2015 Work courtesy of Ai Weiwei Studio Image courtesy Ai Weiwei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져갈 수록 작품이 내제하는 의미뿐 아니라 비주얼적인 면모 또한 점차 강렬해져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전시장 내부 벽이 화려한 벽지로 장식되어 있는 방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황금색의 카메라와 수갑들이 있었고, 카메라는 모두 가운데 한 마리의 새를 향하고 있는 패턴이었다. 새의 얼굴 부분엔 웨이웨이의 얼굴이 있었다. 그 방은 아이 웨이웨이가 수개월간 감금당했던 시기 수용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고 방문객들은 좁은 틈으로 그 방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작은 문과 틈으로 보이는 내부는 실제보다 작아 마치 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이미 위압감을 주는 것 같았다. 


감시자의 시선과 감시당하는 이는 시각적인 계급(Virtual Hierarchy) 그리고 권력기구(Power Structure)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프린트된 벽지는 중복된 의미를 전달하는데 사회적 부조리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가리키는 듯했고 또한 수용소를 틈으로 보고 있는 관람객들을 마치 카메라로 둘러싸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보는 이가 되는 듯하지만, 마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듯이 시각적인 플레이로 보여지는 이가 된다. 결국 작품들은 방문객들이 그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며 사회구조 모순 속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게 해 이해를 돕는다. 





Exhibition view of <Ai Weiwei> 

at Royal Academy of Arts 2015 Photo: Boram Kim




오래전 나폴레옹은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동양과 서양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웨이웨이는 중국을 비판하면서도 중국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더 큰 목소리를 낼수록 오히려 작품들은 대담해지고 시각적으로 압도감이 커졌다. 전시는 각 방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다른 작품 스타일과 다른 스케일들로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그것들의 중심에는 웨이웨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사회 운동가라는 타이틀과 작품이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다소 불편함을 갖게 하지만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이름에 가려져 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또한, 어쩌면 서구 중심적인 생각들과 대영제국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 점차 지루해져가던 서양(혹은 영국)의 예술시장에서 동양과 서양의 다리를 잇는 선구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hibition view of <Ai Weiwei> 

at Royal Academy of Arts 2015 Photo: Boram Kim




글쓴이 김보람은 영국 골드스미스컬리지(Goldsmiths college)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소더비 인스티튜트오브아트(Sotheby's Instituteof Art)에서 아트 비지니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런던 소재 예술 프로젝트 기업에서 전시기획, 교육, 저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는 독립으로 일하며 예술 관련 번역을 하고 있다.

 



게시물이 없습니다

WRITE LIST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