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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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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 2015.11.28 갤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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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누워있는 침묵의 유연한 소리



침묵에서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없다. 침묵은 무겁고 경건하다. 그래서 침묵은 검은색이다. 최기석 조각의 상태는 침묵을 닮았다. 묵직한 철의 물성이 침묵처럼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침묵은 무척 부드러운 시각적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재현해야 할 내적 풍경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예술가라면 그 풍경을 투명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느슨한 믿음의 미학적 보수성을 내면에 품고 있다. 그러나 최기석은 미학적 보수성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의 철 조각은 내적 풍경의 투명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재료가 되는 철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재현하고 투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미학적으로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재료를 내적 풍경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재료 그 자체를 올곧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기석은 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가객(歌客)이라기보다는 치열한 사색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철을 다루는 그의 작업 현장은 철과 철이 부딪히고 깎이면서 나오는 외침과, 변형을 완강히 거부하려는 몸짓으로 침묵이 머무를 틈이 없다. 하지만 작업하는 작가의 내면에서는 철이 끌어안았던 그 아득하고 무고한 시간을 사색하며, 시끄럽게 부유하던 외부적 소요(騷擾)가 조용히 침전된다. 검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갤러리 2의 전시 공간은 대단히 중성적이고, 최기석의 작품은 무척 형이상학적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입구부터 촘촘하고 균일하게 구멍들이 뚫려 있는, 유연하게 휜, 그에 반해 완전하게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검은 평면 철 작품이 벽에 가볍게 걸린 채 시선을 붙든다. 새하얗고 밝은 전시장 내부에는 균일한 빗살 틈들을 가진(그로 인해 전혀 철판 같지 않은) 거대한 검은 철판이 마치 둥글게 천을 말아놓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중앙에 놓여있다. 그것을 지나면 균일한 구멍이나 빗살 틈을 가진 사각의 검은 철 평면 작품을 몇 개 더 볼 수 있다. 전시장 끝과 연결된 내부의 작은 공간에는 최기석의 이전 작업의 소품들이 놓여있어, 그의 작업을 간헐적으로나마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성(無性)의 정연한 화이트큐브 공간에 놓여 있는 최기석의 철은 하얀 공간으로 인해 더 고요하게 느껴진다. 무심히 던져놓은 듯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세련되게 조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전시 광경은 무기교(無技巧)의 기교(技巧)’의 전형성이 너무 쉽게 읽혀 시각적 감수성을 견인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철에 물리력을 가해 구멍을 뚫거나, 철 조각들을 이음으로써 경직된 철을 부드럽게 직조하는 작가의 치열한 몸짓을 생각하게 되면, 시각적 전형성보다는 행위의 흔적이나 시간의 기록이라는 전혀 다른 물리적 차원으로 작품을 파악해야 된다. 실상, 모든 작품은 행위의 기록이며 시공간의 흔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감식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사물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사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되어간다. 그래서 그 과정은 작가라는 한 개인의 지난한 시공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이 시각적 르포르타주(reportage)로 읽히지 않는 것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시각성이 작품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화려함으로 인해 시각적 탐미주의자가 되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그 작품이 겪었을, 혹은 작가가 겪었을 지난한 시공간을 간과하게 된다. 그런데 최기석의 철은 이 시각적 화려함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철과 작가가 나눈 긴 시간의 대화를 세월의 주름처럼 작품 전면에 드러나게 한다.





설치 전경

 




작가는 만들지 않은 만듦(무기교의 기교)”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추구하는 바는 하나이다. 시각적 화려함에 대한 침묵. 작가는 시각적 화려함에 침묵함으로써 시간성과 신체성을 드러내는 것에서는 일정 부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각적 세련미를 놓아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각형으로 재단된 철의 형태나 조밀하고 균일하게 구성된 철의 표면은 화려하지 않지만, 시각적으로 무척 세련된 형태를 구현하고 있다. 세련미와 무작위(無作爲)가 함께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사항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은 해당 사항이 없어 보인다. “만들지 않은 만듦”, 즉 무기교의 기교라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작품으로 초대하기 위해 서술되는 표면적인 초대장의 문구처럼 읽힌다. 그렇다고 최기석의 이 언급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작가가 의미하는 바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바라보는 초점의 위치에 따른 문제일 뿐. 작품이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만들지 않은 만듦으로 읽히기도 하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는 분명 철에 가해진 물리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휘면서 형체를 갖게 되는 무작위성에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기교의 기교는 무척 당연한 말이다. 


작가의 이 말은 전시장의 중앙에 직물처럼 자연스럽게 말려 있는 철 조각에 대표성을 부여해서 전시 작품 전체에 동일한 의미로 세례 주려는 시도일 텐데, 문제는 대부분 작품에서 보이는 엄격한 사각 면과 균일한 표면 등이 이 세례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전시가 형태의 엄격성을 배제했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동일한 지점에서 동일하게 믿음에 의심을 줄 수 있다. 이전 전시보다 형태의 엄격성에서 유연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육면체(2008)나 구(2010), 원기둥(2012) 등의 기초적인 입체 형태의 경직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들은 경직성에 여유를 부여하여 이전 작품보다 편안한 감정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침묵의 소리를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모더니즘적 세련미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각모양으로 형태의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배제보다는 완화가 합당할 듯싶다.

 

사실 작품을 언어로 다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작품을 언술하는 것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하는 나의 언술도 작품을 온전히 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전시 주체의 언술이 실패했다고 목청 높이는 것은 허공에 손 젖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최기석의 철은 이미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미술은 해석 불가능의 영역이고 언어는 불완전한 도구이다. 해석 불가능한 영역을 불완전한 도구로 조직할 때 우리 각자는 절대 일치된 모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단지 그 속에는 소소한 견해의 난립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언술도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우리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최선의 모델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름만 난립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 최기석의 철을 보며 공통으로 느끼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영역 중 두드러진 부분은 유연함 아닐까? 작가는 철의 강하고 단단한 성질을 버리고 그 반대의 성질, 즉 부드럽고 유연하고 연약한 성질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분명히 이전의 육면체나 구, 긴 원기둥 작품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다. 굳이 작가의 이전 작품과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더라도 철의 물성을 잊어버릴 정도로 깃털 같은 연약함과 부드러움, 유연함이 작품 표면에 흐른다. 이러한 감성에는 작가의 시간성이 담겨져 있다. 그가 철과 대면하며 보냈던 오랜 세월이 유연하고 부드럽게 그 깊이를 드러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철을 이렇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참음을, 얼마나 많은 매만짐을,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겠는가. 침묵이란 단어는 부드럽고, 유연하고, 연약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최기석의 철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연약한 검은 침묵이라는 말 외에 도무지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술을 사랑할수록 예술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최기석은 철의 물성을 사랑하고 그것에서 풍기는 예술의 향기를 사랑하기에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작품을 단색화와 연결하는 것은 그가 행한 치열한 싸움, 그 물질에 대한 탐구를 너무 협소하게 만드는 것 같다. 최기석의 철을 단순히 단색화의 조각적 버전 정도로 끌어내리는 것은 작품이 가진 원재료의 시공간성, 그리고 작가가 작업하며 물체의 표면에 새긴 르포르타주, 내적 풍경을 재현하지 않으려는 태도 등 실로 많은 사유를 증발시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단색화의 옷, 그 모더니즘이라는 나이 많은 옷을 덧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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