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25, Feb 2017
전시 공간의 비밀
Beyond the White Cube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가 1976년 『Artforum』에 기고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Inside the White Cube: The Ideology of the Gallery Space」는 전후 미술에서 화이트큐브(white cube)가 예술과 관람객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화이트 큐브는 궁극적으로 실제 삶을 지우고 ‘순수한 형태’로서 예술을 신화화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갤러리 공간과 경제, 사회적 맥락, 미학 등 시스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가 작업의 맥락에서 자기인식의 일환으로 전시공간의 형태를 검토했다면, 마리 앤 스타니제프스키(Mary Anne Staniszewski)는 『The power of display』(1998)를 통해 ‘전시디자인’ 자체를 미술사가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그는 200장이 넘는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뉴욕 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분석함으로써 디스플레이, 즉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보여주는지가 미학, 가치, 이데올로기, 정치 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임을 증명했다.
사실 아직까지 화이트 큐브의 힘은 건재하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이 전시 공간의 성역이 점차 무너지는 추세임은 미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큐브, 즉 정방형의 건물 일색에서 탈피해가는 미술관 건축 양식의 변화도 하나의 실마리라고 볼 수 있다. 일례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완성한 계단 없는 나선형의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도 독특한 태생적 구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의 전시디자인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정한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전시도 많지만, 미로를 헤매듯 혹은 수수께끼를 풀 듯, 관람객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음을 떠올려보자. 기존의 연구가 반증하듯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벽에 걸거나, 조각품을 텅 빈 공간에 놓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언프레임드(Unframed)는 종종 ‘Behind the Scenes’라는 제목으로 전시의 숨은 공로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기엔 전시 디자이너도 빠지지 않는데, 그들은 전시장 도면을 펼쳐두고 모형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획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에는 공간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을 자체적으로 꾸리고 있다. 이들은 전시마다 기획자와 협업하며 작품을 돋보일 수 있도록 최상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레이아웃, 설치, 조명부터 그래픽적 요소들(포스터, 도록 등)을 아우르는 모든 디자인적 요소들을 다룬다. 특히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소장품을 보기 좋게 나열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의 경험 내용이 중요해짐에 따라 기획자는 작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전시 디자이너는 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계획한다. 주제별 혹은 시기별로 분류한 특징에 맞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제한된 장소에 풀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고, 인파 속에서 작품을 보호하면서도 관람객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등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도 여러 가지다. 실제로 주로 연극, 오페라 같은 극예술의 무대미술 분야에서 사용되던 시노그래피(scenography)라는 용어가 해외에서는 전시 분야에서 공간을 꾸리는 일종의 방법론으로 여겨지며 큐레이팅 방식과 결합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층위의 내러티브를 공간 안에 구현하고,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뉴미디어와 융합하며 작품의 새로운 표현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 여기서 나아가 미술사, 미술계에 의미 있는 울림을 줄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서의 발전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소규모 기관에서는 담당 큐레이터가 전시디자인까지 도맡는 현실이긴 하지만, 전시 규모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기획 의도를 어떤 시각적 방식으로 풀어내는가는 그 공간 찾는 이들이 받는 인상과 직결되므로 전시디자인은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는 주제다.
「퍼블릭아트」는 화이트 큐브 이면에 담긴 비밀에 주목한다. 우선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정연심 교수의 글로 포문을 연다. 미술사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전시디자인의 변화에 관해 그 의미와 영향을 푼 글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용하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김용주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은 실무 경험을 토대로 전시디자인에 숨겨진 이야기와 방법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끝으로 디지털 시대의 전시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 고민할 거리 등에 대한 서울대학교 디자인학과 채정우 교수의 제언을 싣는다. 전시디자인이 특정 작품, 나아가 전시의 의미, 그리고 전시 공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술관 안에서 관람객의 경험은 어떻게 조성되는 것일까? 전시디자인에 담긴 숨은 맥락을 읽을 수 있음은 곧 전시를 읽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이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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