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44, Sep 2018
홍승혜
Hong Seunghye
진실 혹은 규칙
담뱃갑, 작은 술병, 오뚝한 화병 등 쓸 만한 물건을 고안해 대량생산하는 것에 그는 관심이 많다. 작가 홍승혜의 공간에는 그러나 작고 예쁘지만 결코 쓸모가 뚜렷하진 않은 오브제들이 나열돼 있었다. 작은 캔버스에 손잡이를 이어붙인 백기, 노란 고무줄을 잘근잘근 잘라 유황처럼 보이게 담아놓은 메이슨 자, 형광 아크릴로 된 구불구불한 조형 등이 선반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제각각 만든 이가 다른 십여 점의 작품들을 짚으며 홍승혜는, 누군가 이미 눈여겨봤거나 혹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젊은 작가들을 찬찬히 나열했다. “마감이 거칠어서 그런가, 이 작품은 좋은 줄 잘 모르겠다”고 내가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헌데 이 작가 작품은 마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순간 처음 그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네모난 픽셀 이미지들을 벽돌처럼 쌓아 올리고 축소와 확대, 순열과 조합으로 번식시켜 꽉 채운 2000년대 후반 국제갤러리 전시에서, 망막을 뚫으며 생각을 유도하는 홍승혜의 작품들은 예쁘지만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주한 작가 역시 작품과 다르지 않았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We All' 2016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점선면' 사진 김도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