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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4, Jan 2017

30년 후, 다시 한 번 입증된 미술계 내 차별에 대한 유쾌한 고발

U.K.

Is it even worse in europe?
2016.10.1-2017.3.5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가 ‘유럽은 더 심하지 아니한가?’라는 슬로건을 들고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를 찾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커미션으로 게릴라 걸스가 1986년도에 만들었던 포스터의 ‘유럽이 더 심하다(It’s even worse in Europe)’이라는 문구를 살짝 고친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포스터가 미국에서 모은 일화적인 증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더 탄탄한 자료에서 나온 통계를 가지고 좀 더 증거다운 증거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겠다. 게릴라 걸스는 익명의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1985년 7명의 여성 작가들이 시작했다. 처음엔 미국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고발한다는 임무 아래 고릴라 마스크를 쓰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나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처럼 고인이 된 선배 여성 작가의 이름을 사용했다. 지금은 그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 훨씬 더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활발히 활동 중인데 그 인원이 정확히 몇인지는 밝히지 않지만 수십 년간 55여 명의 여성들이 이 그룹을 거쳐 갔다고 한다.
● 양화선 영국통신원

'Whitechapel Gallery Guerrilla Girls Commission: Is it even worse in Europe?' 2016 Photo David Parry/PA W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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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선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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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행동개시를 하게 된, 아니 하게 만든 전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MoMA,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이 새로 수리하고 확장한 후 열린 최초의 전시였다. 전시 제목은 <최근의 회화와 조각에 관한 국제 조사(An International Survey of Recent Painting and Sculpture)>(1984)로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169명 중 오직 13명만이 여자 작가였다. 심지어MoMA의 큐레이터인 맥샤인(Kynaston McShine)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은 작가는 그의(his) 경력을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단다. 이에 게릴라 걸스는 화가 나 “‘그’의 경력이라니, 이 전시가 남자들만의 것인가? 이것은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고 응수했다. 


이 전시에 대한 반발이자, 맥샤인의 편견에 대한 분노로 게릴라 걸스가 탄생한 것이다. 1989년엔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들의 가장 유명한 패러디 포스터를 뉴욕 최대의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앞에 걸어둔다. 샛노란 바탕에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작품 <오달리스크(Grand Odalisque)>의 여성에게 고릴라 마스크를 씌웠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는가?라고. 당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미술’ 부문에 여성 작가의 작품은 5%밖에 걸려있지 않았지만, 여성의 누드화는 85%나 차지하고 있었다. 게릴라 걸스는 화를 내거나 남성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조사한  통계를 유머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질문을 던졌다.  





 <How Many Women Had One-Person Exhibitions 

at NYC Museums Last Year?> 2015 Courtesy the Guerrilla Girls





게릴라성 방법으로 포스터를 만들어 걸고, 엽서를 복사해 뿌리고, 스티커를 제작하여 여기저기에 붙였다. 자신들과 같은 의견을 가졌다면 누구나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이미지를 출력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런 유쾌한 방식이, 사실에 기반을 둔 이해하기 쉬운 언어들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작업이 아닌 하나의 이슈를 끈질기게 얘기했던 것이, 심지어 유쾌 통쾌하게 보여준 덕분에 사람들에게 더 쉽게, 잘 전달되었고 도처에 숨겨져 있던 이슈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토론하게 만들었다. 최근엔 페미니스트라 자칭하는 남성들도 많이 생겼으니 말이다. 이후에는 성차별을 시작으로 인종차별, 노숙자 문제, 낙태, 전쟁 등의 사회문제로도 눈을 돌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지지하는 그들의 ‘이슈’는 예술 세계가 가지는 윤리의 부족, 명목주의(tokenism)에 대한 소리 높은 비난이다. 분명히 미술계에서 여성의 지위는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대형 갤러리, 경매장, 주요 컬렉션 등 미술시장은 아직도 백인 남성 위주로 흘러가고 있고, 예술 시장 경제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들의 의견이다. 예술이 선택된 소수의 것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대형 미술 기관에 일침을 날리는 그들에게 전속 갤러리는 존재하지도 않고, 가끔은 쫓겨나기도 했으며 비난도 많이 받았다. 재밌는 사실은 그들을 하대하면서도 게티(Getty Center)나 테이트(Tate)같은 큰 미술관은 그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5 Photo Andrew Hindraker Courtesy the Guerrilla Girls  




이번 전시에서 게릴라 걸스는 유럽에 있는 29개 나라, 383개의 기관(박물관, 쿤스트할레, 미술관 등)의 관장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질문지에는 그들이 운영하는 기관의 전시, 프로그램, 컬렉션에 관한 14개의 질문이 있었고 지난 5년간 얼마나 많은 여성작가가 개인전을 했고, 백인 출신이 아닌 작가들의 전시를 얼마나 했으며, 그들의 컬렉션에 몇 퍼센트가 여성작가의 작품인지 등의 통계적 사실을 물었다. 전시장을 들어가기 전, 화이트채플 갤러리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게릴라 걸스가 보낸 질문지에 오로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기관들만이 답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궁금하면 들어와서 보라고 적혀있었다. 미술관을 들어서서 계단을 오르면 전시장의 문 옆에 과거의 퍼포먼스들을 보여주는 비디오 작업이 설치되어있다. 자신들이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만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의 연장선인 이 작업을 통해 3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아직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공간은 크지 않았다. 한 방을 가득 메운 답변이 이루어진 질문지들과 그 위에 오버랩된 게릴라 걸스의 통계자료들이 빽빽하게 벽 하나를 채우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전시장 중앙 바닥에 삐딱하게 붙여져 있는 프린트다. ‘부끄럽게’도 그들의 질문지에 대답하지 않은 기관의 목록이었다. 그리고 게릴라 걸스는 “부담 없이 그들을 밟고 지나가라(Feel free to walk on them)”이라고 말한다. 




<Dear Art Collector> 2015 Courtesy the Guerrilla Girls




벽 하나를 가득 메운 질문지 종이엔 예술 기관 대표들의 말투나 형식도 다양했고, 하고 싶은 말도 가지각색이었다. 성의 없게 대충 휘갈겨 써 보낸 곳도 있었고, 형식적인 답변도 있었으며 아주 정성 들여 쓸데없는 말까지 보태 구구절절 써 보낸 곳도 있었다. 게릴라 걸스는 이 답변들을 그냥 그대로 보여준 것만은 아니다. 몇몇 답변을 묶어 노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서 다시 보게 만들고 빨간색으로 큰 글씨를 적어 강조하기도 했다. ‘불만을 토로하라’는 질문에는 그들의 질문지 형식이 영어로만 질문하고 영어로만 대답해야 했던 사실이 결국엔 앵글로 색슨족 위주의 발상이라 불편하다는 곳도 있었고, 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성비는 묻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So Sorry)’ 섹션에는 자기들이 통계를 내본 후 여성작가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는 결과에 반성하는 갤러리도 있었다. ‘미국의 미술관들이 유럽을 훈련시켰다고 생각하나’(게릴라 걸스는 ‘오염시켰나’라는 질문 끝에 재해석하여 적어두었다)라는 질문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가 “아니오” 라고 답했고 게릴라 걸스는 빨간색 동그라미로 강조했다. 


그 대답 바로 밑에는 프랑스의 프락 로레인(FRAC Lorraine)의 “그렇다, 싸우자!” 라는 대조적인 답변이 있었다(이 ‘전투적인’ 기관에서 2017년2월부터 게릴라 걸스의 또 다른 전시가 열린다). 노르웨이의 1857에서는 노르웨이 최악의 정치문화가 미국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다. 공간 대표들이 밤을 새울 만큼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요소에는 ‘지원금’이 가장 많은 답으로 나왔고 몇몇 갤러리들은 게릴라 걸스가 꺼내지 않았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공적 영역의 개인화나 재개발에 쫓겨나는 문제 같은 것들이 있었다. 재밌는 반응이다. 이 질문지 하나가 뭐라고 거대 기관의 대표들이 화를 내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쩔쩔매기도 한다. 이것이 게릴라 걸스가 하는 일이다. 그들의 데이터와 통계를 보면서 깜빡할 수 있는 사실이 이들은 사회 과학자가 아닌 작가라는 것이다. 결과는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고칠 방법도 찾아볼 테니 말이다. 




Installation view of <Whitechapel Gallery Guerrilla Girls 

Commission: Is it even worse in Europe?> 2016

 Photo Steven White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미술계의 사건들 그리고 피해를 본 여성 작가들에 관한 기사들이 많은 사람을, 특히 여성들을 분노케 하였다. 대학 시절 달달 외워야 했던 영국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미술사』에는 여성작가가 단 한 명도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 기억난다(16번째 개정판에 드디어 한 명의 여성작가-케테 콜비츠- 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여성작가가 하나도 없다니 이 얼마나 남성주의적인 사학인지, 심지어 교과서로 채택된 그 책을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주입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내내 어느 학생도 교수도 이에 질문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미술역사 속에서 여성작가들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잊고 살았다. 한국이 유독 그러한가를 보면 그것 또한 아닌 듯하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Donald Trump)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고 실제로 그가 당선된 이후 백인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세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인도,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다. 막상 갤러리를 들어가 보면 갤러리 밖에서 흔히 보이는 그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백인들로만 가득하다. 일하는 사람들도 관객들도. 그리고 가끔 보이는 흑인과 동양인이 있다. 필자 또한 이곳에서 유색인종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성차별과 인종차별적인 사건들은 아직도 너무 흔히 일어난다. “유럽이 더 심하지 아니한가?” 라는 게릴라 걸스의 질문에 전시장을 나오면서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이 질문이 정말 유럽이 더 심하고 아니고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상황은 분명히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지역적 경계를 나눌 필요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고, 아직도 세상 밖으로 더 드러나야 하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마 이것이 게릴라 걸스가 대중들에게 보내는 외침이 아닐까 한다.  



글쓴이 양화선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itns)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를 통한 회상, 향수, 흔적의 키덜트후드 연구」 논문과 회화 작품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스트런던유니버시티 (University of East London)에서 공간의 패러독스에 관한 논문과 회화작품으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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