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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6, Mar 2017

김현철
Kim Hyun Chul

바다에 마음을 놓다

깊고 짙은 김현철의 푸른색은 보는 이를 붙잡는다. 그렇게 붙잡힌 이는 그저 그림 앞에 가만히 머물면 된다.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필요 없다. 조용히 시간을 내려놓고 평소보다 조금 깊이 숨만 들이쉬면 된다. 그의 푸른색은 왜 별다른가? 시점에 따라 지각되는 공간을 시공간(視空間)이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서양의 일점투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다시점을 쓴 동양화를 대할 때 더러 낯설면서 빨려드는 경험을 한다. 여기에 화면을 2등분하여 수평선 아래 바다를 여러 시점으로 처리, 모이는 공간을 넓히는 작가의 기법이 더해져 그 푸른색은 진할 뿐 아니라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김현철은 해안 가까이 바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으로 시작하여 해안 멀리 나갈수록 시점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종국에는 바다 속에서 올려다보는 고원법(高遠法)을 취해 보다 깊은 바다를 표현한다. 색의 짙고 흐린 정도를 조절하고 섬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더함으로써 공간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를 확장하는 것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제주 진경'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53×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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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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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푸른색에 취해 있다. “푸른색은 근원에 가까운 빛으로 새벽 여명(黎明)의 색”이라 피력하는 작가는 일찍이 제주도 서귀포 바닷가에서 어떤 색과 마주했다. 어둠으로부터 만물이 색을 갖기 전,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검고 짙푸른 색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그 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원래 사용하던 천과 질료까지 바꿨다. 비단에 먹을 쓰던 방식을 미뤄두고 아사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자신이 목도했던 여명의 푸른색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비단과 아사는 색을 머금을 때 각각 더 팽팽해지거나 보다 느슨해지는 등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 2015 아사천에 수묵채색 50×72.5cm




그런 까닭에 김현철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보다 확실한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했다. 풀, 나무, 산, 바다, 하늘은 분명 다른 빛깔이지만 전통산수화에서는 이를 다 ‘쪽 물감’ 하나로 채색한다. 지금처럼 물감이 다양하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겠으나 굳이 색조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그리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이가 서로 다 알아서 느끼고 소통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물의 현상을 쫓아 다양함을 추구했던 서양회화의 화려한 색채와 달리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검정 먹을 중심으로 쪽(푸른색), 대자(갈색) 등 몇 가지 색으로 모든 빛깔을 대변한다. 이러한 이치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던 김현철이지만 새로이 조우한 푸른색은 또 하나의 도전이며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왔다.  




<제주 진경>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53×73cm  




일찍이 그는 여러 색을 품은 먹을 학습했다. 삼원색을 함께 섞으면 검정색이 되듯 검정 먹은 빨강, 파랑, 노랑의 색을 다 함유하고 있다. 현상보다 본질을 쫓기에는 검정색 먹이 제격이라 여기던 그에게 청명하여 상서로운 푸른색이 다가온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색과 형에 대한 작가 개인적인 해석과 선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만든 비결이다. 예를 들어 몇몇 작품에는 풍경이 상형적이며 수평의 개념을 강조한 미적 차원에서 해석되지만 어떨 때는 색은 최소화하되 형태는 세밀하게 표현되는 등 때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다. 자신의 판단에 머뭇거림이 없는 작가는 때론 굉장히 극단적인 전개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들을 완성하고, 그 작품들은 여지없이 화단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작가는 푸른색이 매우 일반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수용되는 점에 착안, 그것을 작품에 끌어들이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 푸른색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맑고 처연하게 가슴을 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깨달음에 자신이 학습해 온 화법을 접목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 김현철 작업의 큰 줄기다. 





<공재윤두서 초상> 2016 비단에 진채 135×69cm




한편 작가 김현철을 화제의 중심에 놓았던 작품은 단연 2016년 해남 녹우당 충헌국에서 열린 <공재, 녹우당에서 공재를 상상하다>전에 선보인 <공재 윤두서 초상>이다. 가로 20.5cm, 세로 38.5cm에 불과한 작은 윤두서의 자화상,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걸작을 바탕으로, 작가는 비단에 진채를 이용해 이 그림을 완성했다. 머리에 쓴 탕건의 윗부분은 없고 목 아래의 부분도 생략된, 얼굴과 수염만 도드라져 보이는 윤두서 자화상은 우리에게 가히 익숙하다. 쉬이 ‘원래 얼굴만 부각해 그린 그림’이라고 여겼던 그림은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사료집진속』 제3집에 수록된 공재의 자화상을 찍은 사진에서 몸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미완성작이 아니라 완성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애초 섬세한 채색으로 그려졌음이 증명됐다. 이에 김현철은 여러 사료와 이론을 바탕으로 얼굴만이 아닌 의관을 정제한 상태의 공재 초상을 완성했다. 초본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는 공재 후손의 얼굴을 참조하고 공재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벗 담헌 이하곤이 칭찬하며 지은 “6척도 안 되는 몸으로/ 사해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라는 문장에도 집중하는 등 퇴화된 부분들의 실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해남도>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112×388cm





초상화를 만듦에는 생존해 있는 사람을 직접 보고 그리는 도사(圖寫), 사후에 모습을 기억해서 그리는 추사(追寫) 그리고 이미 그려진 것을 보고 다시 그리는 모사(模寫)가 있다. “도사이든 추사이든 사람을 그리는 일은 실로 간단하지 않다”는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귀신을 그리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을 그리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듯 사람의 초상은 바로 그 사람이어야 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 강조한다. 그는 추사를 그릴 경우 주변인으로부터 그 모습과 행적 등을 더듬고, 직접 대상을 마주하는 도사의 경우에도 직접 교류하며 인물을 파악한다. 





<진경>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100×100cm





초상화를 그릴 때 사람의 외모만이 아니라 내재된 정신성까지 그려야 진정한 닮음에 이르게 된다는 동양회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저변에 깔고 그는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제 공간에 대해서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동양화라는 장르로 크기에 대해 자유롭고, 색에 대해 자유로워야하는 두 가지 열망에 도전한다. 관념이나 직관보다는 이론과 사유에 집중하는 작가. 그는 방법적인 문제에 억눌리지 않고 실패와 성공 모든 것이 어차피 자신의 것이라 믿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매진할 작가는 의미 있는 일을 계속 발견하고 학습할 터다. 오늘과 내일을 여는 가치 있는 자산, 전통을 바탕으로 두고 말이다. 그는 말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지금 느껴지는 것도 다가 아니다. 태생대로 느긋하게, 그것들을 우리 그림으로 차근차근 펼쳐 보일 것이다.”  



 

 

김현철




작가 김현철은 1959년 김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과 석사를 마쳤다. 1996년 종로갤러리를 시작으로 20년 동안 인사갤러리, 한벽원갤러리, 공갤러리, 경기창작센터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금호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 많은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으로 작품과 연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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