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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7, Apr 2017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이미지-현실을 관통하는 시선

‘예술가의 예술가’라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동료나 후배 예술가들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를 가리킨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도 어쩌면 그런 부류의 작가다. 특히 뉴미디어아트 분야에선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를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한 진술은 일종의 신화화인가? 이름이 이름을 낳는 것처럼,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능통하게 풀어내는 전문가를 향한 무비판적 숭배인가? 앞서 뉴미디어아트라는 뭉뚱그려진 단어로 ‘장르화’를 시도하긴 했으나, 넷아트, 포스트인터넷아트 등 슈타이얼의 이론과 작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일컬어지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행위와 현상을 활용한다. 그는 ‘이미지’라는 키워드를 순수한 시각정보로 보기보다는 자본주의 저변에서 비롯된 영향, 정치적 환경 변화, 디지털이라는 기계적 조건과의 관계와 엮어 해석한다. 특히 최근의 예술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 예리하게 분석하는 솜씨는 특허라도 받은 듯 남다르다. 이처럼 그가 예술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까닭은 무엇보다, ‘동시대(contemporary)’라는 유동적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의 정중앙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그것에 관해 발언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이가진 기자 ● 사진 앤드류 크렙스 갤러리(Andrew Kreps Gallery) 제공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HD video, single screen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15 minutes, 52 seconds Installation view from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201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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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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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56th Venice Biennale)’ 독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은 이후 전 세계 주요 전시에 포함되며 슈타이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모션 캡쳐 스튜디오 안에서 노동자에게 강요된 움직임들이 인공 햇빛으로 바뀌는 초현실적인 스토리를 보여준다. 관람객은 인공 선탠기계에서 살갗을 그을리는 도시인처럼 배치된 비치 체어에 앉아 화면에 몰입될 준비를 마친다. 어두운 사방의 벽엔 그리드(grid) 형태로 붙은 형광등이 파란빛을 내뿜는 공간에서 말이다. 우리가 지켜보는 커다란 화면에선 뉴스 속보, 비디오 게임, 무용수, 감시 카메라 화면과 무인 정찰기의 공습 장면 등이 송출된다. 


사소한 일상부터 역사적 순간까지 어쩌면 거의 모든 장면을 기록물로 남기는 현대사회의 습성을 은유하고 있는 작품은, 점점 더 가상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감시’의 의미와 그것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2004년 저서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에서 “모던 아트의 모험은 끝났다”며 “컨템포러리 아트는 오로지 ‘컨템포러리’ 그 자체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과거나 미래를 향한 ‘초월성’은 어디에도 없고, 즉 컨템포러리 아트의 유일한 현실은 그것이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자, 그러한 현실과 혼란을 겪는다는 것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기술적이고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 디지털 작동과 분리할만한 차이가 없다고도 일갈한다.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HD video, 

single screen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15 minutes, 52 second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그에게 컨템포러리 아트는 “탁월함도, 차이점도, 또 다른 장면도 없이 현실을 반추하는 거울 같은 연극”이기에 그것은 가치가 없고, “컨템포러리 아트와 현실 세계 사이에는 제로섬(zero-sum)의 방정식이 존재”한다. 한낱 이미지-피드백(Image-feedback)으로서 종합적인 현실에 연루된 일부일 뿐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동시대 예술을 추궁하는 그의 반()미학, 혹은 부정의 미학은 무효한 냉소로 폄하하기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비난하는 ‘이미지-피드백’은 슈타이얼의 작품에서 주효한 시각적 문법이다. 색다른 기법, 전통적 시각 예술의 규칙을 따르기보단 현실에서 발생하는 이미지를 재료 삼아 자신의 예술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환경에 스며들어 있었고, 슈타이얼의 화면 속에선 인간의 몸을 빌려 육화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미지를 단순히 보고, 읽고,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순환하고 전진하며, 사람이 참여하게 하는 주체적 움직임으로 승격시킨다. 그에게 “이미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고, 2의 천성(Images do not represent reality, they create reality, they are second nature)”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가난한 이미지(poor image)’의 변호인으로 나서기까지 한다. 낮은 화질, 평균 이하의 해상도로 압축되고, 전송되고, 복사와 붙여넣기의 반복 속에서 떠도는 ‘가난한 이미지’를 향한 힐난에 대고 ‘가난한 이미지는 더 이상 진짜에 대한, 진짜 원본에 대한 것이 아니다. 





<Factory of the Sun> 2015 Single channel high definition video, environment, luminescent LE grid, 

beach chairs 23 minutes Installation view from the Venice Biennale, German Pavilion 2015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Photography by Manuel Reinartz  

 



대신 이미지 자체의 실제적인 존재 조건들, 즉 떼 지은 순환, 디지털을 통한 분산, 균열적이며 유동적인 시간의 단락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수주의와 착취에 대한 만큼이나, 저항과 전유에 대한 이야기’1) 라고 옹호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반영하고, 대표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는 그는 특히 복권된 이미지가 하는 것, 이로 인해 일어난 일들, 오브제로서의 이미지와 상황으로서의 이미지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기울인다.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2013)은 웹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튜토리얼 영상의 형식을 차용한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BBC에서 방영된 영국 코미디물 <몬티 파이튼 비행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의 에피소드에서 제목의 일부(How Not to be Seen)를 따왔지만, 이어지는 설명에서 눈치 챌 수 있는 것처럼 이 비디오는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 자체를 비꼰다. 작가가 직접 등장해 마치 숙달된 시범 조교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순서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을 실행한다. 


사람과 기계의 중간쯤인 듯 들리는 어색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몇 가지 손동작으로 화면을 지우고, 넘길 수 있다는 가르침은 새로 산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처음 작동시킬 때 자동으로 실행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작품은 한 개인이 어떻게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시각적으로 포착되지 않을 수 있는가를 냉소적인 유머로 아이러니하게 알려주는데, 가령 1픽셀보다 작아지거나, 50세 이상의 여성이 되거나, 외부인 출입제한 주택단지에 거주하라는 식이다. 이 작품 역시 디지털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산재하고, 아카이브 되는 것이 결국 개인을 감시하기 위해 발달한 기술이고, 화질이 선명해질수록 그 감시의 폭도 넓어진다는 점을 짚어내고 있다. 또한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가시적인 행위들이 곳곳에 있음도 환기한다. 





<Factory of the Sun> 2015 Single channel high definition video, environment, luminescent LE grid, 

beach chairs 23 minute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화자가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해상도는 가시성을 결정한다. 해상도에 포착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다(resolution determines visibility; whatever is not captured by resolution is invisible)’는 경제·정치·군사적 이익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언제 어디에서 나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지 감지조차 어려운 이 시대에 반드시 암기해야 할 주문처럼 들린다. 2014년 슈타이얼은 런던의 현대미술학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에서 선보인 <Liquidity Inc.>로 동시대 예술이 지구적 공동체를 대표하는 어떤 개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주요 부동산 사업이 도시 공간을 재배치하고, 결국 도시를 변화시키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현대미술도 장소의 확산과 책임의 결여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예술품은 경제적 자산이 되었고, 때로 공공성과 사적인 부()가 충돌하는 아트마켓의 흥망성쇠를 보면 점차 소멸하는 공공의 지반, 공간을 떠올릴 수 있다. 38 21초짜리 3채널 비디오에는 ‘유동성/환금성(Liquidity)이라는 이름의 법인(incorporation)’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작품은 전후 고도경제 성장 이후의 추락을 종합 격투기, 기후 체계, 초단타 매매, 노동, 정보, 시장의 유동성을 혼합한 우화로 보여준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견고한(Solid) 근대성이 유동하는(liquid) 국면”으로 바뀌면서, 전례 없는 새로운 생활환경에 맞닥뜨린 현대의 상황을 말한 것처럼, 제도, 통제 같은 사회적 행태는 더는 굳건하지 않고, 변화의 속도 역시 개개인이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슈타이얼은 이러한 전 지구적 불확실성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다. 알레고리적 어법으로 오히려 우리 시대의 가장 파괴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예술 속에 현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미술관을 전쟁터, 공장에 비유하고 뉴미디어를 활용한 창작의 기술적 조건이 통제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경쾌하게 끌어들인다.  





<Liquidity Inc.> 2014 HD video, single channel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30 minute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 때 여러 레퍼런스를 끌어들이는 글쓰기 방식처럼 그는 한 작품 안에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듯한 장면을 등장시키곤 한다. 갑작스레 들어간 전시장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만나는 관람객은 시작과 끝이라는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맥락의 난기류 속에서 허둥대다가 누군가는 참을성 있게 앉아 결국 온전한 작품을 만끽하고, 대다수는 몇몇 장면만을 지켜보다 떠나버린다. 그렇다 보니, <Liquidity Inc.>라는 하나의 작품이 어떤 이에겐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으로 기억되거나, 다른 이에겐 도인처럼 조언하는 브루스 리(Bruce Lee)의 목소리만을 남길지도 모른다. 슈타이얼은 작품과 글로 동시에 목소리를 낸다. 때로는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자신이 던진 화두를 시각언어와 문자로 실험한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갈등, 모순, 긴장, 퇴락에 맞서는 전방위 예술가로서 투사적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의 작품이 동시대를 넘어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지’란 주제를 시대의 최전선에서 과감하게 논증한 그의 행보는 이미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예약해놓은 듯 보인다.  

 

[각주]

1)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 워크룸 프레스 2016 p.52

 



히토 슈타이얼

Portrait of Hito Steyerl Photography by Tobias Zielony


 


히토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에서 영화와 철학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 빈 미술 학교에서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상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시각 예술가이자 미디어, 테크놀로지, 이미지 등의 주제로 흥미로운 글을 발표하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베니스 비엔날레, 베를린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도쿠멘타 등 유수의 미술전에 참가했으며, 베를린을 기점으로 전 세계를 오가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뉴미디어아트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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