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리 시메티(Turi Simeti)는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의 작가지만 그의 활발한 활동은 식을 줄을 모른다. 그가 또다시 한 발을 내딛었는데,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전시를 펼친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말부터 이어져 온 모노크롬 작품 중 2014년 이후의 신작 회화와 조각으로 구성된다.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그는 1958년 30세에 처음 미술을 접하고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와 교류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런던, 파리, 바젤, 뉴욕에 거주하며 당대의 예술을 만나고 전통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Zero Avant-garde Group’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2차원 캔버스에 대한 도전적 실험으로 모노크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때 그는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둘은 비슷한 단색의 평면을 보인다.
<Nove ovali gialli> 2015 셰이프드 캔버스에 아크릴릭
120×120cm
그러나 그 안엔 깊은 차이가 있다. 폰타나의 작품이 캔버스 뒤로 확장된 것이라면 그는 캔버스에 타원을 더함으로써 세계를 넓힌다. 캔버스 앞이 아닌 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형은 더욱 궁금증을 자극해 비가시적 대상에 대한 질문을 자아내는 것이다. ‘타원’은 그에게 독특한 의미다. 캔버스를 뒤에서 밀며 굴곡을 만드는 타원은 ‘빛과 그림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형태란다. 이번 전시도 그것을 활용한 작품이 전부를 차지한다. 다른 모형도 물론 시도해봤지만 다시 타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5,000점 이상의 다작을 한 그는 팝아트의 주도적인 흐름과 인기도 마다하고 줄곧 모노크롬을 고수했다. 현대미술사의 곡류를 거치면서도 그는 한 우물만을 수십 년 고수한 것이다. 부침 없이 하나에 매달릴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굳건해 보인다. 구성을 결정짓고,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활약하는 그의 이성적인 판단은 그 믿음을 지속하게 한 힘이다. 3월 15일부터 4월 29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모노크롬의 세련됨과 작가의 강인함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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