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허물기’가 아무리 고루한 주제라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몸에 부착하는 전자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인간과 기계’ 구분의 틀 안에서 전자제품은 아직 기계로 분류된다. 후니다 킴은 테크놀로지와 감각이 맺는 관계를 자세히 탐구함으로써 인간과 기계, 원본과 복사본 등의 이분법을 넘나든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후니다 킴은 작업을 통해 일상을 그만의 방식으로 ‘번역’한다. 그가 번역하는 것은 ‘소리’이며, 그가 이용하는 도구는 디지털 매체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소리에 둘러싸여 사는데, 작가는 이렇게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재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Soundscape Apparatus> 2018 전자기판,
3D프린트, 혼합매체 150×150×130mm
<아파라투스(apparatus)>는 소리환경 장치로서 소리를 모으고 가공하여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소리를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녹음하고 재현하는 음향기기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이 오브제의 핵심은 외부 소음의 ‘받아들임’과 그것의 ‘변조’에 있다. <아파라투스>를 통해 가공된 소리는 복사본이 아니라 새로운 원본으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상호작용’은 후니다 킴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다. 일방적인 공연이나 전시의 형태가 아니라, 관람객이 참여자로서 오브제를 직접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여자는 전시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객체에 머물지 않고, 전시를 함께 구성해 나가는 주체로 발돋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