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 홍콩’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갤러리즈’, ‘인사이트’, ‘디스커버리’, ‘엔카운터스’ 섹터들을 통해 글로벌한 작가들의 맥락을 다시 한번 짚었으며, ‘캐비넷’ 섹터와 ‘필름 프로그램’으로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먼저 ‘아트 바젤’의 메인인 ‘갤러리즈’에는 세계 각국에서 갤러리 196개가 참여해 회화, 조각, 드로잉, 설치, 사진, 비디오,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갤러리, 리안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PKM 갤러리, 학고재 6개의 화랑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국제갤러리에선 권영우와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등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앞세웠으며, 현재 우리나라 미술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김홍석, 함경아, 강서경 등을 통해 한국 미술의 현주소를 짚었다. 또 리안갤러리는 이건용, 남춘모, 윤희, 김택상, 제이콥 카세이(Jacob Kassay)의 작품을 선뵀는데, 모두 컬렉터에게 낙점받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Mit Jai Inn <Planes (Electric)> 2019
Oil on canvas, jute Dimensions variable
아시아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출신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집중 조명하는 ‘인사이트’ 섹터 참여 갤러리 21개 가운데 한국 갤러리도 찾아볼 수 있었다. ‘2017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인 이완을 내세운 313 아트프로젝트, 지니 서의 <The Presence of Absence>를 선뵌 갤러리바톤, 김종학의 대작 <Untitled>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조현갤러리, 최병서의 섬세한 작업을 내세운 우손갤러리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본 전시인 ‘갤러리즈’와 ‘인사이트’ 외 신진작가들의 솔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디스커버리’ 섹터에서는 로스엔젤레스, 파리, 마드리드, 프라하, 상하이, 비엔나, 방콕 등 세계 각지에 위치한 25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이들이 신중히 선별한 신진 작가 가운데 소시에테(Société)의 루 양(Lu Yang), 마델른 갤러리(Madeln Gallery)의 션 신(Shen Xin), 그리고 커먼웰스 앤 카운슬(Commonwealth and Council)의 클라리사 토신(Clarissa Tossin)은 제8회 ‘BMW 아트 저널’의 쇼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갤러리 부스 내 별도 공간에 기획 전시를 선뵐 수 있는 ‘캐비넷’ 섹터에서는 올해 21개의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한국 추상화의 선도 주자인 유영국의 1964년 이후 작품을 전시했고, 리만 머핀에서는 이불 작가의 신작을 소개했다. 특히 이불의 작업은 리만 머핀뿐만 아니라 PKM 갤러리, 타대우스 로팍 갤러리 등의 부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 국내외에서 굳건하게 선 그의 입지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Chiharu Shiota <Where Are We Going> 2017-2018
White wool, wire, string Dimensions variable ⓒ Art Basel
이번 해 ‘아트 바젤 홍콩’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프로그램은 바로 ‘필름’ 섹터이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해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필름 프로듀서인 리 젠화(Li Zhenhua)가 현대 정치·사회에 영향을 받은 27개의 영화 및 비디오 작품을 선별해 상영했다.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류 샤오동(Liu Xiaodong)의 ‘On the Riverbanks of Berlin’ 시리즈의 초연이다. 또한 2019년 베를린에서의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담아낸 양 보(Yang Bo)의 다큐멘터리 필름도 있었으며, 대만 영화감독인 허우 샤오셴(Hou Hsiao-Hsien)의 <Liu Xiaodong: Hometown Boy>, 중국 영화감독 지아 장커(Jia Zhangke)가 2006년 ‘베니스 국제 필름페스티벌’과 같은 해 ‘토론토 국제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한 <Dong> 등이 ‘아트 바젤 홍콩’ 기간 동안 관람객들을 만났다.
특히 ‘필름’ 섹터는 바젤 전시 바깥 공간에 마련돼 입장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 문이 활짝 열려있어 더욱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트 바젤 홍콩’에서 가장 많은 화젯거리를 낳은 ‘엔카운터스’ 섹터. 올해 홍콩 ‘엔카운터스’의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알렉시 글라스-칸토(Alexie Glass-Kantor)가 내건 슬로건은 바로 “Still We Rise”이다. 그는 우리가 현재 혁명과 봉건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된 예측 불허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 ‘엔카운터스’ 섹터에 참여한 작가들의 눈과 손을 빌려 우이는 이러한 현상을 뒤집어 생각해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했다. 따라서 “Still We Rise”란 슬로건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새로운 에너지, 혁명과 봉기를 촉구하는데 제격이었다.
Lee Bul <Willing To Be Vulnerable - Materialized Ballon> 2019
Nylon taffeta cloth, polyester with aluminum foil, fan,
electronic wiring 230×230×1000cm ⓒ Art Basel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불의 <Willing To Be Vulnerale-Metalized Balloon>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미래 지향적 거대한 스케일의 설치로 작가는 유토피아적인 열망과 이를 이루지 못한 실패에 의해 영향을 받은 판타지적인 풍경을 형성했다. 이불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추구를 설명하고자 했다. 20세기 초반 진보와 근대의 상징이었던 힌덴부르크의 비행선 추락 참사에서 모티브를 따와 대중문화에 투영된 ‘파괴’가 어떻게 사람의 뇌리에 생생히 각인되어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우리는 결국 “자발적으로 나약함”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의 <City in the Sky>는 세계적인 금융 대도시로 성장한 홍콩, 상하이와 런던에서 영감을 받아 상상 속 도시를 거꾸로 매달아 선보였다.
작품 중심부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설치된 거울에 거대한 도심 속 작은 점처럼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들은 ‘아트 바젤 홍콩’의 방문객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Where Are We Going>을 선보인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는 공간을 유영하는 보트의 형상을 검은 메탈 선체에 흰색 코튼 실을 매달아 마치 연필로 세심하게 그려낸 듯한 작품을 연출했다. 작가는 직접 “이 보트들은 어디서 관람하느냐에 따라 형상이 보이기도, 사라지기도 하고, 안이 비어 보이거나 꽉 차 보이기도, 또 환하거나 불투명한 양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략) 나는 이 작품이 하나의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연’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종착지를 찾기 위해 시간이란 바다를 유영하는 것이다. 보트는 바로 꿈과 희망을 담아낸 매개체다.” 이밖에도 호주 출신의 토니 앨버트, 조엘 안드리아노메아리소아, 호세 다빌라, 라피타, 제라시모스 플로라토, 미트 자이 인, 피나리 산피탁, 사이먼 스탈링, 쟈오 쟈오까지 총 12명의 대규모 설치 작품들이 소개됐다.
Elmgreen & Dragset <City in the Sky> 2019 Polished stainless steel,
aluminum, LED lights 400×500×220cm ⓒ Art Basel
이렇듯 ‘아트 바젤 홍콩’은 늘 그렇듯이 휘황찬란한 작가들과 풍부한 볼거리로 꽉 채워져 있다는 평을 받았지만, 일각에서는 “아트 바젤 홍콩의 전시 전략이 전환기를 맞은 것 같다”는 의견도 팽배했다. 참여한 국내 갤러리들의 출품 목록만 살펴보더라도, 이불, 서도호, 양혜규, 백남준, 유영국과 같이 국제적으로 이미 입지를 다진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던 반면에 한동안 한국 미술을 대표하던 단색조 회화의 그 다음(post)을 찾으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부스 출품 비용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국내갤러리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잘 팔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는 점도 ‘아트 바젤 홍콩’이 ‘진부하다’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5일간 총 88,000명의 관람객을 모았다는 점은 그만큼 홍콩에서 열리는 이 ‘아트 바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아트 바젤’의 산업적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갤러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동시대 미술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 그 흐름을 한눈에 짚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그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아트 바젤’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