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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9, Dec 2014

김성수_non-lieu

2014.11.5 – 2014.12.19 갤러리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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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석 아트미아재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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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 것들의 허망함에 대해



혁신을 감행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 있고 반대로 일정한 틀을 견지하며 그 틀 안에서 집요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김성수는 그 중 후자의 미덕을 충실히 살리는 유형일 것이다. 그의 이전 작업들은 크게 도시의 스펙터클과 욕망을 상징하는 철골 구조물이 주를 이루는 메탈리카 연작과 그 도시 내부에 존재할 법한 인물들의 소외나 고독을 묘사하는 인물 연작들로 구분된다. 전자가 건축적 구조물의 일부를 기하학적 형식으로 재편성하고 내부와 외부간의 경계면을 도입함으로써 이미지를 관조하는 의식의 본질을 언급하는 작업이었다면 후자는 집약된 감정으로 가득한 모멘텀의 묘사를 통해 일시성과 영원성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전의 유형과는 완전히 다른 신작들을 들고 왔다. 제작 과정이나 전시 규모, 작품의 다양성으로 미루어보건대 적지 않은 시간의 준비가 있었음직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것들은 도시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 혹은 모종의 장소들이다. 일상에서 흔히 지나치게 되는 익숙한 대상들은 불분명해진 윤곽과 왜곡된 색상으로 인해 그 물리적 특징들이 제거되어 있다. 그로 인해 대상은 먼 과거의 희미한 기억의 일부 같기도 하고 문명의 수명이 다한 이후 폐허처럼 남아 있는 미래의 가상적 이미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캔버스 안에서 시간의 선형구조는 무의미하며 장소의 물리적 법칙 또한 변형되어 있다. 장소이되 장소가 아닌, 모순의 장면들이다. 




<non-lieu> 2013 

캔버스에 오일과 아클릴릭 162×130cm




전시의 제목은 비장소(非場所, non-space)라는 의미의 불어인 ‘non-lieu’다. 그것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마크 오제(Marc Auge)가 장소성이 탈구된 ‘슈퍼 모더니티’로 점철된 현대 사회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오제는 장소성의 요건을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 등으로 규정하고 공항이나 기차역, 호텔, 대형 수퍼마켓 등 장소성을 상실한 곳들을 비장소라고 명명했다. 비장소의 확대와 고유성의 축소, 획일성의 확대 등의 도시화의 과정은 이미 보편적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동시대인들은 SNS를 비롯한 인터넷 상의 익명의 공간들에 체류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비장소의 차원이 사고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비장소는 사고와 기억의 체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시대적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성수의 회화는 비장소성의 보편성이 확대되는 시대에 변화된 정신세계를 언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것이 작가가 견지해온 회화적 특징을 토대로 형식적 혁신을 시도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전 작업들에서 엿보이던 독특한 감수성, 즉 차가우면서도 애상적인 상호 모순적 분위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는 그의 회화작업들이 궁극적으로 여전히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7년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한 ‘에페메르’는 그러한 방향을 묘사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필연적 죽음과 소멸의 운명을 앞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상황. 누구나 알고 있고 이미 수없이 묘사되었지만 결코 현실성을 잃어버릴 수 없는 이 사실이야말로 그의 회화가 지향하는 방향성일 것이다.




<non-lieu> 2013 

캔버스에 오일과 아클릴릭 162×130cm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대체로 허무의 분위기가 강조된 것들과 장소의 물리성이 강조된 작품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대상과 주제를 발표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방향성을 보다 명료하게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비장소성이 강조된 도시의 풍경 묘사에 방점을 찍거나 그 너머에 있는 궁극적 속성의 묘사에 집중하는 것, 그 양자 간 택일의 문제일 것이다. 여기엔 다양한 스펙트럼이 개입될 수 있으나 그의 회화가 갖는 이력과 특징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는 결국 방향성의 선택이 아니라 회화성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서 벌써 그의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 <non-lieu> 2013-2014 캔버스에 오일과 아클릴릭 162×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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