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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9, Feb 2014

손을 쓸 수 없는: 포스트디지털을 구체화하기

U.S.A

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Postdigital

3D프린터가 등장한다면 예술의 모양은 얼마나 달라질까. 벤야민의 선각(先覺)도 미처 3D복제까지는 내다보지 못했다. 2D와 3D복제물의 아우라는 그 차이가 복제품과 원본만큼이나 크다. 영화산업의 판도를 3D입체영상이 바꿔놓았다면, 조각, 디자인, 건축 등으로 이뤄진 나머지 시각예술은 이제 3D프린터가 바꿔놓을 듯하다. 아니 세상을 바꿔놓을지도 모르겠다. 3D프린터로 총기를 제조할 경우 최대 10년형을 구형한다는 영국정부의 결정이나 미국에서도 이 법안이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 요망한 기계가 어떤 사건·사고를 만들어낼지에 대한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상태. 이제 물건들은 공장이 아니라, 가정마다 한 대씩 놓일 프린터 위에서 생산될 날을 앞두고 있다.
● 이나연 미국통신원

척 클로스(Chuck Close) 'Self-Portrait/Five Part' 2009 Jacquard tapestry 75×185 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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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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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주문하고 설계도만 다운받으면 3D프린터가 실물을 만들어낸다. 공산품보다 훨씬 정교하고, 원한다면 개개인의 취향까지도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다. 무슨 공상과학 같은 소리냐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속으로만 삼키는 게 좋겠다. 3D프린터는 사실 30여 년 전에 개발돼 의학, 과학 등의 영역에서 부지런히 사용돼 왔던 터. 그런 말을 하면 디지털 시대의 낙오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렇게 혁신적 변화과정의 입구에서 얼떨떨해 하는 대중들을 위해 디자이너를 포함한 85명의 시각예술가들이 추출한 다채로운 견본들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렸다. 


<손을 쓸 수 없는: 포스트디지털을 구체화하기(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Postdigital)>라는 제목의 전시는 아트 앤 디자인 미술관(MAD, 이하 매드)에서 2013년 10월 16일부터 2014년 6월 1일까지 계속된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이야기는 사실 완전히 신선하지만은 않다. 2008년 같은 미술관에서 열렸던 <디자인과 탄력적인 마인드>전 역시 비슷한 주제로 이번 전시와 다소 겹치는 작가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주최 측의 변명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작품들이 좀 더 친숙해졌으니 이 주제를 다시 한 번 환기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나. 그렇다면 우리에겐 얼마나 시의적절 하게 잘 꾸려낸 전시인지 따질 일만 남았다.




마이클 한스메어(Michael Hansmeyer) 

<세분화된 기둥(Subdivided Column)>  




<손을 쓸 수 없는>은 매드의 큐레이터 로날드 라바코(Ronald T. Labaco)의 기획으로, 2005년 이래 제작된 신선한 작품들을 미술관 건물의 총 3개 층에 걸쳐 전시하고 있다. 몇몇은 인터랙티브 프로젝트이고, 모마의 디자인 전시처럼 시각 디자인을 소개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좀 더 현실적이고 생활에 밀접한 디자인이 위주다. 즉, 순수미술보단 실용미술 쪽에 추를 더 두고 있음에도 전시에서 보이는 형태들은 대체로 생소한데, 사람이 만들기 어려워 컴퓨터에 디테일을 위임한 형태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시가 꾸려지게 된 전제와도 통한다. “디지털 혁명은 컴퓨터의 시대를 끝냈다. 극도로 어렵거나 구현 불가능했던 형태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제는 쉽게 목격된다.” 전시는 미술과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흐름을 단순히 첨단기술에 초점을 맞춰 흥미를 유발시키기보다 ‘포스트 디지털 스타일’로 제시하려 노력한다. 디지털로 탄생한 유기적 형상, 알고리즘적 바로크양식의 모양, 복잡하게 구멍 뚫린 표면들을 새로운 스타일로 등장시킨다.




엘로나 반 겐트(Elona Van Gent) 

<Wheels, Claws, Teeth> 2006 Rapid Prototype Object 

Laminated Paper 30×50×60" ⓒ Elona Van Gent  




이 전시를 대표할만한 작품은 리차드 듀퐁(Richard Dupont)의 자소상으로, 주로 본인의 두상이나 왜곡된 인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두 점의 작품을 소개했다. 하나는 미술관 앞에 야외조각으로 설치된 두상. 이번에도 본인의 머리를 소재로 삼았지만, 투명한 레진으로 뜬 확대한 두상 속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집어넣었던 전작과는 그 표현방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는 페이스오프 하듯 두상의 껍질을 벗겨 천처럼 흐물흐물한 모양으로 만든 뒤 브론즈로 떠냈다. 한편, 전시장 안에는 본인의 전신상을 내놓았다. 신기루처럼 아스라하게 형태가 허물어져가는 피부색의 누드 조형물은 고대그리스의 조각처럼 밋밋하게 서 있지만 전형적인 단단한 조각과는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듀퐁은 자신의 머리나 전신을 스캔한 후, 디지털 몰딩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왜곡해 얻어지는 이미지를 소개했는데, 이점에서 전시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가라 말할 수 있겠다.     


이 밖에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나 록시 페인(Roxy Paine), 마야 린(Maya Lin),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뿐 아니라, 척 클로스(Chuck Close)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스텔라는 색색이 락커칠이 된 강철을 존 챔버레인의 방식대로 구기고 뭉쳐 조각으로 소개하고 있고, 록시 페인은 ‘조각 만드는 기계’를 제작했다. 그가 고안해 낸 ‘스쿠맥(Scumak)’이라 불리는 조각 제작 기계는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내듯, 컨베이너 벨트 위에 와인색의 폴리에틸렌을 짜내고 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형상이지만, 재료에 유동성이 있다 보니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에 따라 제각각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데, 페인의 작품은 기계가 기계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린다 뱅글리스(Lynda Benglis)나 켄 프라이스(Ken Price)의 유기적 모양의 핸드메이드 조각과 유사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그러나 당연하게도 기계는 사람처럼 정기적인 휴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조각은 관객들의 눈앞에서 쉴 틈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배리 볼(Barry X Ball) <질투(Envy)> 2008-2010  




이런 부지런함으로 기계는 마이클 한스메어(Michael Hansmeyer)의 <세분화된 기둥(Subdivided Column)>과 같은 작품의 탄생도 돕는다. 3D 모델을 바탕으로 무려 1mm 두께의 보드를 사용한 2,700장의 레이저 컷을 쌓아올려 6백만 개의 표면을 가진 기둥을 세상에 내보이는 식이다. 기계를 아예 만들어버린다든가, 기계의 효용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 말고도, 의외로 심플하게 기계에 접근한 작가도 있다. 그 이름도 친근한 척 클로스. 그는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이용해 본인의 얼굴을 다섯 각도로 찍은 뒤, 디지털로 짜인 타피스트리로 제작했는데, 기계를 사용한 타피스트리는 웬만한 사진을 뛰어 넘을 만큼 선명하다. 씨실과 날실이 겹쳐지면서 직조된 이미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변색의 위험도 분명 덜할 것. 클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 이미지를 쌓아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하게 복잡해요.” 


보다시피, 미술에서의 기술은 이렇게나 발전했다. 그러나 과연 미술 자체에 발전이라는 말이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좋아지거나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살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것도 확실한 듯하나, 더 행복해진 것인지는 의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가끔 손을 쓰지 않는(못하는) 예술가를 신뢰하지 못한다. 예술가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상상해 손으로 그리거나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아직 추앙한다. <손을 쓸 수 없는>전은 그런 사고방식의 사람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것은 어린이 교육용 예술이고, 진정한 예술은 다른 쪽에 있다고 믿는다. 왜 인간은 본인의 능력 밖의 것을 추구하다가, 되려 그 창조물에 역습을 받는 어리석은 존재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후기(post)디지털 시대에 탈(post)디지털을 바란다. 그냥 여전히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굳이 적고 싶다.




마야 린(Maya Lin) <Imaginary Iceberg> 2009  




글쓴이 이나연은 사실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수료할 수 있는 기간 정도, 미술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 후 뉴욕으로 유학을 와 미술 비평 전공으로 석사 학위 까지 땄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고도 누구에게도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을 사랑한다. 주로 최대의 노력을 쏟아 붓고 최소의 결과를 얻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마르크스를 읽는 쾌감이 좋아서 뉴욕 체류 중이다. 누가 뭐래도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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