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바디 쿼테이션(full body quotation)’이라는 우창의 특별한 예술적 방식을 이용한 <The Shape of a Right Statement>(2008)는 그의 초기 작업으로, 전시의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한다. 벨칸토 오페라 창법을 배우면서 고안했다는 이 방식은 몸을 일종의 연주 도구로 사용하여 여러 다른 목소리나 소리들을 밖으로 전달한다는 컨셉을 지녔다. 트랜스 시네마의 유명한 대화 또는 역사적 정치적 연설을 립싱크하면서 재조명했다. 우창은 은색 커튼 앞에서 투명한 모자를 쓴 채 아만다 백스(Amanda Baggs)라는 자폐증 환자의 유튜브 비디오 <In My Language>(2007)를 반복하여 읽는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백스의 비디오에선 3분 동안 허밍하는 목소리를 배경으로 손가락으로 벽을 긁거나 목걸이를 반복하여 치거나 문고리를 반복적으로 긁는 자폐증 환자의 활동을 보여준다. 이후 번역이라는 부분에서 백스는 자신의 의견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타이핑한 내용을 컴퓨터 신시사이저가 읽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우창은 신서사이즈의 목소리의 떨림, 높낮이, 읽는 시간 등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내용과 말하는 소통의 형태, 이미지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자폐증의 소통방식은 일반인의 전형적인 의사전달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차별당하는 것에 의문의 던진 그의 말 “우리가 당신의 언어를 배울 때에만,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The thinking of people like me is only taken seriously if we learn your language).”는 트랜스 젠더인 우창의 몸을 통해 여러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소외 계층의 정체성과 사회 통합에 대한 문제는 인도적 입장에서 받아들이자는 자세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인식의 틀 자체의 문제로, 소통의 차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업이다.
<Wildness> 2012 Production Still: Love Ablan Courtesy the artist,
Clifton Benevento, New York, and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우창의 작업은 예술을 통한 소외계층의 정체성의 형성과 그것의 표현방식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에서 일반 자본주의적 사회 궤도에서 벗어난, 버려진 밑바닥 인생의 삶을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했던 낸 골딘(Nan Goldin), 리차드 빌링햄(Richard Billing ham)의 작업을 상기시킨다. 가까운 곳에서 같이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진정성 있게 담아냄으로써 미술과 삶을 하나로 주제화했던 이들의 작업은 결과상으로는 실제를 그대로 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들은 다큐멘터리 사진 스타일을 이용하여 오히려 일상의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따라한다는 컨셉적 차원에서 볼 때, 역설(패러독스)적으로 진정성이란 조작되는 것이고 픽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피사체의 몸은 일상이 남기는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진은 이를 그대로 담는다는 식의 다큐멘터리 사진 매체의 속내와 재현의 문제를 꼬집었던 이들의 작업에 우창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답한다.
<DAMELO TODO // ODOT OLEMAD> 2010/2014
Production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and Clifton Benevento, New York
풀 바디 쿼테이션을 통해 우창은 자신의 몸을 오센틱(authentic)한 경험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닌, 여러 가지 이미지와 목소리를 담아내는 트랜스젠더한 개체로 사용한다. 우창에게 트랜스젠더는 성적취향일 뿐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표명이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수행(퍼포먼스)을 통해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젠더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드랙퀸의 모방과 역할의 변동은 실제의 여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해진 당대의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여장남성은 선천적인 성의 구분을 해체하는 패러디적 존재이다. 드랙퀸은 모방된 여성성 자체에 대한 모방으로 더욱 짙은 화장과 인공적 글래머의 몸으로 과장된 여성성을 패러디한다. 우창의 드랙퀸은 당대의 여성성에 대한 관념의 해체를 넘어 그의 몸의 중성성을 강조하여, 여러 이야기와 시점을 연결하여 담을 수 있는 다리 같은 존재임을 강조한다.
Installation view of <Wu Tsang: Not in my language>
(2014.11.22-2015.2.8, Migros Museum
Fur Gegenwartskunst) Courtesy of the artist
켈 구티에레즈(Raquel Gutierrez)의 단편소설에서 착안한 작업인 <다멜로 토도(DAMELO TODO /ODOT OLEMAD)>(2010/2014)는 엘살바도르에서 1985년 로스엔젤리스로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십대 소년 테오둘로 메히아(Teódulo Mejía)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민전쟁 때문에 미국 땅에 와 갈 곳이 없어 머물게 된 트렌스젠더 바 실버 플래터(Silver Platter)에서의 삶과 그곳에서 나이트클럽 댄서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우창은 스스로 로스앤젤레스의 이 바에서 ‘와일드니스(Wildness)’라는 파티를 기획하며 이민족, 게이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이 이곳에서 서로 갈등 속에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의 개인적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이 작업의 일부분으로 녹아있다.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점과 여러 시·공간이 공존하는 모자이크 같은 영화 편집 때문에 이 작업은 하나의 만들어진 진실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이 부분적 인상들로 머릿속에 남는 열린 형식을 띤다. 꿈같은 이야기방식의 채택과 다큐멘터리적으로 찍은 일화들의 만남은 실버 플래터라는 장소가 가진 정체성이 실제의 사건들 뿐 아니라, 이것이 가지는 이미지와 관련된 픽션으로 결정됨을 시사한다. 영화 ‘와일드니스(Wildness)’(2012)는 1963년부터 로스앤젤리스 맥아더 파크에서 운영된 실버 플래터라는 역사적 디스코 바를 주제화한 영화이다.
<Safe Space> 2014 Installation view of
<Wu Tsang: Not in my language>(2014.11.22-2015.2.8, Migros
Museum Fur Gegenwartskunst)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and Clifton Benevento, New York
라틴계 이주민 커뮤니티, 트랜스젠더, 게이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에 우창과 그의 친구인 ‘NGUZUNGUZU & Total Free dom’이라는 여러 인종의 퀴어 아티스트들이 같이 기획한 ‘와일드니스’라는 파티를 열기시작한 후 예전 실버 플래터의 주고객층과 새로운 세대들 간에 생겨난 논쟁들을 다룬 영화다. 트랜스젠더나 게이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식의 휴머니스트적 관점에서 다루어진 식상한 영화가 아닌 여러 이야기들의 중첩을 통해 인종간의 문제라든지, 미국 자본주의내의 사회계급의 갈등이 표면화시킨 영화로, 2012년 뉴욕 모마 다큐멘터리 포트나이트 상영 후, 토론토 핫 독스(Hot Docs), 로스앤젤레스 아웃페스트(OUTFEST)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Installation view of <Wu Tsang: Not in my language>
(2014.11.22-2015.2.8, Migros Museum Fur Gegenwartskunst)
Courtesy of the artist
우창은 80년대 에이즈 위기 속에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함께 이념으로 뭉쳤던 아티스트 그룹 ‘액트 업(act up)’이나 (실제로 액트 업의 그렉 보르도비츠는 그의 시카고 예술학교의 스승이었다) 그랜 퓨어리의 미술적 관점에서 그의 뿌리를 찾는다. 우창의 네온사인으로 된 간판 작업 <The Fist is Still Up>을 통해 당시의 미술이 지닌 정치적 힘이 오늘날에도 필요함을 시사한다. <A Day in the Life of Bliss>(2014)는 공상과학영화의 형태를 빌린 작업으로 하위문화 같은 저항의 공간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소통을 통해 주류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겪고 있는가를 살핀다. 블리스(Bliss)라는 언더그라운드 댄서가 인기 캐릭터로 과대 포장되어 이용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로 하류문화와 주류문화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복잡한 디지털 시대 문화 속에 정치적 예술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잘 담겨있다.
글쓴이 김유진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 현재 스위스 취리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