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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4, Jul 2014

김현식
KIM, HYUNSIK

사이공간의 마술

과연 김현식의 작품이 맞는지 잠시 눈을 의심했다. 그의 작품하면 떠오르는 여인의 모습, 보다 정확히는 머리카락이 부각된 여자의 뒷모습 대신 유려한 색의 추상화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그가 집중해 있는 최근작은 스스로 만든 형식과 내용을 충실히 담은 채, 섬세한 손길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Beyond' 2010 에폭시 레진, 아크릴 칼라 100×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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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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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보이는 뉘앙스만 다를 뿐,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한 화면에 담는 작업 프로세스에는 변함이 없다. 작업과정은 이렇다. 투명한 레진을 캔버스에 붓고 말린 후 작가는 송곳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가 잡은 주제에 따라 인물의 뒷모습, 혹은 폭포를 그리기도 하고, 최근작의 경우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선을 긋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홈에 아크릴 물감을 넣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 후 그 위에 다시 레진을 붓는다. 그리고 반복. 날카로운 날로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틈에 물감을 채우고, 그 위에 레진을 부어 말리고. 이 과정이 일곱 번 정도 반복되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공간과 깊이가 그의 작품에 있다. 김현식의 작업은 예닐곱 개의 그림이 층층이 겹쳐져 완성된 것이고, 레진의 투명성까지 더해져 영롱하면서도 아득한 분위기를 머금는다. 그것은 호감가고, 단호하며,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분명하게 전달한다. 비록 직접 보기 전까진 100%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Illusion> 2010 

에폭시 레진, 아크릴 칼라 120×120cm  




나 또한 그랬다. 몇 해 전 크리스티 경매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 소개되며 명성을 얻고 있다는 김현식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고, “단지 여자 뒷모습인데, 왜 인기인가”라며 얼른 관심을 접어 버렸다. 허나 작품을 직접 대면하고 나서 그것들이 전혀 색다른 형식을 지녔음을 깨달았다. 무심코 분류했던 평면 회화가, 결코 아니었다. 솔드 아웃이나 경매가 경신 등의 키워드로 미술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그이지만, 상대적으로 신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은 뜸했다. 지난 2010년 서울 전시 이후 현재까지 그는 부산과 런던에서 짧게 작업을 전시했을 뿐이다. 그 사이 작업은 진화했고, 한껏 달라졌다. 여인의 뒷모습만 기억 하는 당신이라면 생경하게 여길만한 연작들에 그는 현재 집중해 있다. 이런 급진적인 변화가, 사실 김현식의 작업을 줄곧 봐왔던 이라면 그다지 놀랍지 않다. 1999년부터 한결 같이 레진을 주재료로 사용했다는 것 말고, 작품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변신했기 때문이다. 


천에 모래를 넣어 덩어리를 만든 후 레진을 부어 화석처럼 굳힌 2000년 초기 <JIGO> 시리즈를 비롯해 각각 다른 인쇄물에서 축출한 이미지를 작위적으로 혼재시킨 2003년 즈음의 시리즈, 또 2005년부터 시도한 머리카락 작품까지, 그는 일정 정도의 사이클을 바탕으로 기존의 작업에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보태거나 혹은 내려놓는 실험을 거쳤다. 정해진 패턴, 익숙한 방식을 바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특히 작가들에겐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형식은 그 작가를 규정짓는 브랜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현식처럼, 하나의 연작(머리카락이 입체적으로 돋보이는 <사이공간-Beyond> 시리즈)으로 경제적·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획득한 경우엔 더욱 그렇다. ‘머리카락=김현식’이란 등식이 성립되고 서서히 국내외에 작가와 작품을 각인시키던 중, 그는 2010년 돌연, 그림의 가장 밑바닥에 다양한 인물들이 콜라주 된 폭포 작업 <사이공간-Illusion> 시리즈를 선보이더니 이어 강렬한 색과 공간으로 승부하는 <사이공간-Nuance> 연작까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Beyond> 2011 

에폭시 레진, 아크릴 칼라 90×90cm 




사실 이미지와 형태를 없앤 선 작업이야말로 애초부터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특별한 줄거리와 형태 없이 시간과 공간을 화면에 담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것은 단지 선 만으로도 충분히 구현이 가능했다. 허나 처음부터 선 작업을 했다면, 박서보나 윤형근 화백의 단색화 아류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작업이 모노크롬 회화와 어떻게 다른가?’ 묻는다면 반박할 뚜렷한 논리도 없었다. 전통 모노크롬의 사고나 형식과는 분명 다른데, 자기만의 논리가 미처 확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형태를 넣었다. 레진 드로잉을 켜켜이 쌓으며 그 화면에 인쇄 매체에서 따온 인물들을 편집해 넣거나 사람의 뒷모습을 그리는 등 스토리를 더한 것이다. 각 작품은 나름대로 밀도를 갖췄지만 어찌 보면 그것들은 김현식이 자기 형식을 견고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는 시간을 담는 회화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실험과 도전을 계속해 왔다. 


그런 그의 신작은 강렬한 색면 추상화이다. 적어도 이미지로만 대한다면 우리가 익히 아는 단색화와 많이 닮은 것이 사실이다. 허나 누군가 차이점을 묻는다면, 이제 작가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역사와 스토리를 머금은 스스로의 추상화에 대해 말이다. 형식은 매우 혁신적이며 모던하면서도 김현식의 작업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지닌다. 어쩔 수 없이 작품은 작가 안에 내재된 사고와 철학을 따르는 까닭이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형태를 고민하던 전작에 비해 오로지 색과 깊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근작에, 작가는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색을 결정하고 마지막 색을 올릴 때까지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가히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색을 더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처음엔 또렷하게 살아있던 색이 겹겹이 올라가면서 뭉개질 수 있으므로. 몇 년간 같은 작업을 거듭하며 김현식은 그 문제 또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Who likes Orange?> 2014 

에폭시 레진, 아크릴 칼라 120×120cm 




주제나 스토리로 시간과 공간을 담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색과 공간을 쌓는 최근작에, 그는 색다른 제목을 부여했다. 개념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넘어 그것이 한 개체로 완성될 때까지 더해진 시간과 공간을 화면에 담고 싶은 그는, ‘사이공간’이란 타이틀을 고정되게 사용해 왔는데, <사이공간-Nuance>로도 분류되는 작품들에 “Who Likes…”라는 친근한 제목을 붙인 것이다. 가령 녹색으로 완성된 작품은 <Who Likes Green>이 되는 것. 그는 ‘Like’의 시제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각 작품에 고유의 특성을 만든다. 우리가 보는 것 너머에 있는 그 무언가를 보기를 원한 ‘Beyond’ 시리즈, 존재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지만 상상 속에 읊조려지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Illusion’ 시리즈 그리고 지금의 ‘Who Likes’ 시리즈까지 켜켜이 쌓아 올린 레진과 깊은 색이 함께 만나는 김현식의 작품은 ‘too much’에 대한 견제로 요약된다. 애초 정갈하고 단정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온 그이지만 담백한 톤은 거듭거듭 더 강화되고 있다. ‘초록이 짙어 단풍이 드는’ 차원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의 작품은 ‘감각을 앞세운 현란한 작업’들에 당당히 맞서 위엄을 과시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투명하고 신뢰 가는 그런 작업으로 말이다. 




<Beyond The Visible> 2010 

에폭시 레진, 아크릴 칼라 120×60cm 




작가 김현식은 1965년 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지난 1993년 서울 삼정아트스페이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 <JIGO-Traveling>을 선보인 이후 지난해 런던 마거 모던 아트 갤러리(Mauger Modern Art Gallery)가 마련한 특별전 <KimHyunSik>까지 총 15차례 전시를 개최했다. 1999년부터 줄곧 레진을 주재료로 다양한 연작을 완성했으며 2005, 2006, 2009년 홍콩 크리스티의 <21th Asian Contemporary Art>, 2008, 2009년 미국 마이애미의 <ART MIAMI>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국내외에 이름을 알렸다. 새로운 작업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의 작품은 현재 런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의 <START>에 전시되고 있다.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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