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203, Aug 2023

김정은
Kim Jungeun

PUBLIC ART NEW HERO 2023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무목적 지도

● 오세원 콘텐츠 큐레이터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 이미지 작가 제공

[Turning BLUE DOT] 2020-2021 모터, 스틸, 아크릴원형 판, 타임센서, 스틸, 혼합재료 가변설치 트라이보울 설치 전경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오세원 콘텐츠 큐레이터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Tags

역사적 유물론의 파괴적 에너지를 사유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삶과 생명의 시각적 공간을 지도로 그려보겠다는 생각”*을 통해 도시산책자로서의 유년 시절을 회고했다. 작가 김정은도 - 벤야민을 따라 - 한국 산업화의 상징인 도로건설업에 종사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의 세대와는 다른’ 삶과 생명의 시각적 공간을 지도로 그려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3대 독자인 아버지는 중동 건설수출의 역군이 될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하고, 국내 도로 건설 공사와 지하철 노동 현장에 투신하여 완공이라는 사적이자 사회적인 성취감을 경험하면서도, 조기에 퇴직해야 할 정도로 직업적인 육체적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고된 현장의 신체적 경험과 사회·역사적 기억을 보고 들으며 성장한 작가는, 지도와 함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 삶의 상실과 성과 모두를 투영한다.

불가항력으로, 작가는 도시에서의 이동에 대한 의미를 지도로 추상화하는 작업을 출발점(starting-point)으로 설정하고, 이중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길과 그 역사·환경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공간에 조각적인 도로를 내고 지도를 그려나가는 시각화 작업에 착수한다. 작가는 무차별적으로 효율만이 극대화된 신자유주의 도시의 물신화 과정과 함께 희생과 소외 그리고 역사적 비연속성이라는 양가적 측면 모두를 감각하면서, 도시공간을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지도로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나아가 동시대 도시산책자로서 곧게 뻗은 도로나 지하철이 생성하고 단절·소멸시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고민하며, 주변 맵핑(‘셀프 맵핑(Self-mapping)’), 흩어놓기(‘블루 닷(Blue Dot)’), 교차하기(‘교차맵 프로젝트(Intersection Map Project)’) 시리즈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Rolling_D> 2022 수집한 돌, 모터, 스피커, 
아두이노, 터치센서, 스틸 프레임, 가변설치
 72×185×34cm



‘셀프 맵핑’ 시리즈에서는 주로 집이나 작업실로부터의 생활반경을 기본 동선으로, 객관적 기준 대신 보폭과도 같은 자기 신체 사이즈를 측정 단위로 하여 다양한 이동 경로와 주변 정보를 대상화한다. 사적 감각을 기반으로, 실제 장소들의 물리적 특성이나 역사성을 리서치와 아카이빙을 통한 정보를 더하여 맵핑의 객관화를 시도한다.

또한 실제 지도, 트레이싱 페이퍼, 라이트 박스 등 아버지가 공사작업이나 모델링을 위해 사용하던 매체를 등장시키고, 조금 더 나아가 <플라워 맵 시리즈-Flowers Map>과 <나열된 장소>에서 에폭시, 포맥스, 목재, 철재 등 다채로운 매체와의 혼용을 시도하면서 조각 구조로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점, 선, 면의 매체는 철저하게 계산된 듯 - 마치 아버지의 직업적 태도를 모방이라도 하듯 - 치밀하고 정교하게 입체 공간에 설치되면서, 김정은만의 지도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조각 기호로 구축된다.

‘블루 닷’ 시리즈에서는 이동 경로와 지도의 요소들이 푸른 점망을 따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재배치되는 듯하다. 이는 아버지 영향으로 인해 체화된 이중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주관/객관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해체-추상화 실험이었을 것이다. 지도 이미지는 일정한 비율로 축소된 기호의 세계이자 현행화된 기록의 축적이지만, 특정한 정치적 조건이 부여한 가상 이미지이기도 하다.



<교차 맵 프로젝트- walk on the water_물길> 
2021 투명필름인쇄, 아크릴컷팅, 이동일지, 지도, 
수집한 오브제(떠온 물, 퍼 온 흙, 주운 돌, 채집한 풀)
 유리용기, LED, 스틸 가변설치 OCI미술관 설치 전경



그는 실제 공간을 평평하게 가시화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며 체계인 지도를 재배치하고 분산시켜 파열음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일상적 자아가 뒤로 밀려나고 가려진 지리적·사회적·역사적 실체를 마주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서 실제로 청계천의 원류인 삼청동천의 발원지를 찾기도, 이면의 가려진 역사의 비극을 들춰내기도 한다.

하지만 위성 자료까지 동원된 영상, 입체, 키네틱이 공간에 설치되면서 새로운 맥락의 조형 언어가 강조된다. 그에게 리서치를 종합하여 길을 만들고 이를 꼼꼼히 기록하는 작업방식은 결국에는 조각 언어와 담론의 맥락에서 제시된다. 이는 리서치와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태도 및 표현방식과 김정은의 그것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교차맵 프로젝트’ 시리즈에서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가 잠재하는 심층의 목소리를 들춰내고자 한다. 그는 아마도 도시 개발로 인해 차단되고 막힌 물의 길을 따라가면서 목적을 잃어 두려움과 주저함이 공존하는 동시대 주체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전시 <도르르 도르르르 Dorr dorrr>(인천아트플랫폼, 2022)에서 작가가 포착한 경로는 인천의 변두리 지역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 작가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입주예술가로서 개인적이고 우연적으로 이 지역이 매일의 생활반경이 된 것에 기인한다. 작가의 동선은 반복적인 일상에서 최단노선(short-cut)을 지양하고, 마치 미로와 같은 경로를 찾아간다.



<Self-Mapping: 공간의 기억, 시간의 조각들> 
2017-2022 레진 캐스팅, 우레탄도색, 스틸, 
아크릴프레임, T5 LED, 혼합재료 가변설치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사진: 조준용



미로에 빠진 작가가 발견한 길거리에 차이는 돌멩이, 버려진 자전거, 토끼풀이나 다크하고 블루한 감성은 아버지와 이 사회가 놓쳤거나 포기한 상실의 사물이다. 동시에 서울 변두리나 위성도시 지역을 돌면서 볼 수 있는 하찮은 길거리 풍경이라는 보편성을 도출하면서 계급적 공간으로서의 함의를 주요한 논의의 장으로 불러낼 수 있을지 모른다. 끊임없는 양가성을 마주하며 이에 대한 반사적 충동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다시 확장된 조각적 실천의 드라이브를 건다.

김정은이 그리는 지도는 근대화 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비속도감과 무목적성 그리고 비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추상화된 설치 풍경이다. 물론 작가에게 있어 감상적이고 낭만적 접근과 함께 조형 언어에 대한 집중이 역사적 단절의 문제나 억압받는 계급의 파괴적인 힘과 전통에 대한 노출을 방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미로 같은 조각 개념과 우리에 갇힌 담론을 통과하고 있는 한 조각가가 목도하는 풍경이기도 할 것이다.PA



이미지 제공: 인천아트플랫폼 사진: 홍철기



작가 김정은은 성신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도르르 도르르르 Dorr dorrr>(인천아트플랫폼, 2022), <BLUE DOT>(SeMA 창고, 2018), <SELF MAPPING: 기억의 이동, 이동의 기억>(OCI미술관, 2015)이 있고 금호미술관, 문화역서울284, 대전예술창작센터, 성곡미술관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인천아트플랫폼, OCI창작스튜디오, 권진규 아틀리에, 금호창작스튜디오를 거친 바 있다. 오는 11월 예술경영지원센터 융합예술지원 <2023 아트 코리아 랩_수퍼 테스트베드>와 12월 개인전 <New Ground>를 통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각주]
* Walter Benjamin, Berlib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 Berliner Chronik: 윤미애 옮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발터 벤야민 선집 3)』, 길, 2007, p. 158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