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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죽었다”는 전언은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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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Know My Name, Australian Women Artists 1900 to Now
2015.2.6-2015.5.3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시간들은 지나가고/날들이 지나간다./하나의 성과가 남는다./단지 살아 있다는 것.”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구겐하임미술관의 로툰다(rotunda)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노라면, 한 사람의 나날이 미술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작품이라는 형식을 빌어 고스란히 펼쳐진다. 단정하게 그려내고 추려낸 매일 매일의 프로젝트들을 수행했던 온 카와라(On Kawara). 데이빗즈워너갤러리 홈페이지에 나오는 작가의 이름 옆엔 여느 작가처럼 생몰연도가 표시되지 않는다. 대신 ‘29,771일들’이라고 그가 지구에서 보낸 매일들의 합이 적혀있다. 2014년 6월에 사망한 정도가 알려졌을 뿐, 정확한 사망일자와 사망사유는 모두 비공개다(사망일자를 내보낸 기사들도 많지만, 모두 약간의 오류가 있다). 그런데 그가 지구에 머문 날들의 숫자는 정확히 계산하는 게 가능한가? 이만 구천 칠백 칠십 일일. 714,504시간. 42,870,240분. 자꾸 자꾸 시간을 나눠 보게 된다. 그리움의 폭을 늘리려는 모양이다.
● 이나연 미국통신원

'Title' 1965 Acrylic on canvas, triptych Left panel:117.8×155.9cm; center panel:130.2×159.4cm; right panel: 117.5×155.9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Patrons’ Permanent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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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미술관(이하 구겐하임) 1971년 열린 국제 그룹전에서 처음으로 온 카와라의 회화를 소개했던 기억을 반추한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난 2015, 그의 작품이 구겐하임을 가득 채웠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뉴욕에서의 첫 데뷔를 구겐하임에서 한 작가가 사후에 최초의 회고전을 같은 장소에서 갖게 된 셈이다. 그가 일생을 지속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선형적으로 부드럽게 연결 지어 볼 수 있는 장소로는 구겐하임의 특별한 공간이 제격이다. 인위적으로는 분초단위로 분절되지만, 자연스럽게 두면 그저 흐를 뿐일 시간의 특성처럼, 카와라의 작품도 특정한 날짜와 색으로 나뉘긴 하지만, 로툰다를 살살 걸어가며 작품들을 지나다보면 작가가 보낸 인생을 자연스럽게 복기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해보자면 인간은 현재를 미래에 대한 욕구로 채우면서 영원을 기대하는 존재다. 미래가 달려오면 현재의 자아는 부정되고, 세계는 망각된다. 행복은 미래에 있고, 현재는 미래의 성취를 위한 수단, 즉 극복되어야 할 장애다. 그렇다면 현재를 장애물이 아니라 보조물로서 긍정적으로 인정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현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재현가능한가. 


카와라의 작품을 보며 이 질문의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음직하다. 카와라의 ‘날짜회화’ 시리즈는 1966년 1월 4일에 처음 시작된다. 캔버스에 “JAN.4,1966”이라고 적은 그림이다. 그리고 “JULY 10, 2014”가 마지막으로 그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질문이 발생한다. 분명히 6월에 사망한 것으로 보도된 작가의 마지막 날짜 그림이 7월 10일에 그려졌다? 여기엔 오류가 있다. 카와라에겐 선제작도 후제작도 없는 게 원칙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의 프로젝트는 작가에게 주어진 당시의 24시간을 정확히 통제하는 데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I Read> 1966-95 Clothbound loose-leaf binders 

with plastic sleeves and inserted printed matter 

Eighteen volumes, 29.2×29.8×7.6cm each Sleeve size: 

27.9×21.6cm Inserts: Newspaper pasted on paper 

with ink additions, 27.9×21.6cm each Front-page inserts: 

Newspaper with ink additions, 27.9×20cm each Collection of the artist 

 



24시간 안에 두 점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능했지만, 24시간 안에 한 점을 완성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과감히 폐기했다. 따라서 6 28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와라가 그린 2014 7 10일 날짜회화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의 정확한 사망일자는 7 10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글을 쓰고 있는 2015 2 15일 현재, 『뉴욕 타임즈』의 부고는 그가 6월 말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전속갤러리로부터 그렇게 통보를 받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 등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웹사이트의 자료들은 그가 7 10일에 사망했다고 적는다. 브리태니커는 사망일자 뒤에 물음표를 붙여두었다.) 그가 마지막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날.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정갈한 페인팅을 그리고, 심지어 완성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는 또 있다. 바로 자동 트윗 기능을 하는 트윗봇(Twittbot)을 활용해 매일매일나는 아직 살아있다(I am still alive)”라는 트윗이 온 카와라의 계정에서 내보내지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한, 그는 죽었어도 죽은 게 아닐까? 그 트윗은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I am ‘not’ alive anymore)”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어나는 시간, 처해있는 시간, 살아간 시간들에 본인이 세운 규칙을 더해 강박적으로 시간과 싸워온 그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선, 지금 그의 상황을 정확히 말해주는 문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난 이제 죽었다 같은 문장은 굉장히 으스스하긴 하지만, 매일매일 생존을 확인하며 죽음을 상기시켰던 그였기에, 죽음을 확인시켜주며 다시 생존을 상기하는 방식의 문법이 더 적확한 것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 물을 수 있다면. 




Installation view of <On Kawara: Silenc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2015.2.6-5.3) Photo: David Heald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온 카와라는 1932 12, 일본에서 태어났다. 신도(조상과 자연을 섬기는 일본 종교)와 불교, 기독교 교육이 결합된 지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카와라는 1945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사건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1951년에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로 이주했다. 유럽철학과 정치, 정신분석학 등을 독학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전시를 열면서 단숨에 도쿄에서 뜨는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의 카와라는 전후의 상황을 반영한 구상작업을 했다. 예를 들면 욕조에 신체의 일부가 떠다니는 모습을 그린다거나, 잘린 몸을 드로잉하는 식이었다. 1959년엔 아버지의 회사가 있던 멕시코시티로 여행을 했다. 그곳에서 3년을 머무르며 도시를 여행하고 아트스쿨을 다녔다. 이때의 경험이 그를 평생 여행자로 만든 계기가 됐다. 1962년에 뉴욕으로 왔고, 팝아트 같은 새로운 미술을 접하며 8개월을 보냈다. 그 다음엔 파리,그 후엔 스페인이었다. 1964,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작품은 추상화로 변해있었다. 


기하학적인 선과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이뤄진 화면이었다.(카와라는 이 시기의 작업을 폐기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65, <제목 붙여진(Titled)>이란 제목의 삼면화를 제작한다. 각각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1965,’ ‘One Thing,’ ‘Viet-Nam’이라는 글자를 쓴 작품이었다. 이 작업이 날짜 회화 연작에 영향을 미친다. 1966 1 4일에 최초의 날짜 회화가 제작된 배경이다. 그리고 이 즈음해서 그는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전보를 친구와 동료들에서 가능한 규칙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 전보보내기는 1979년까지 10년 이상 지속된 프로젝트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일어났다 연작도 시작했다. 그 날 몇 시에 일어났는지를 그 당시 머물던 주소가 적힌 엽서에 고무도장을 찍어 보냈다. ‘나는 만났다 연작은 그 날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리스트다. 이 결과물들을 전시한 첫 번째 개인전이 파리에서 1971년에 열렸고(전술했지만 뉴욕 구겐하임의 그룹전에 포함된 해이기도 하다),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은 1976년에 가능했다. 



<DEC. 29, 1977> “Thursday.”New York From <Today> 1966-2013 

Acrylic on canvas 20.3×25.4cm Pictured with artist-made cardboard 

storage boxes 26.8×27.2×5cm Private collection 

Photo: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카와라가 온몸으로 흡수한 1960년대의 뉴욕은 뉴욕화파가 문화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뉴욕화파란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예술에 영향을 받아 문학, 무용, 음악, 미술이 따로 또 같이 영향을 주고받던 흐름을 묶어 이른다. 미술에선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으로 대표되는 액션과 감성을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류였고, 문학에선 프랭크 오하라(Frank O’Hara) 퍼스니즘(개인성)’을 철학적 바탕으로 한 시들이 인기를 끌었다. 온 카와라를 뉴욕화파에 묶을 수는 없지만, 그의 수행적인 프로젝트들은 오하라의 점심 시 프로젝트를 상기시킨다. 모마의 큐레이터로 일했던 오하라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5년간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동안 짤막한 시를 썼다. 매일매일 먹고 마시고 대화하며 노는 평범한 일상을 관찰하여 시로 남기며 개인적인 것에 집중하는 대신 정치적인 이슈와 거리를 두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성소수자 친구들이나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릴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적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당시의 공기를 가장 생생하게 증언하는 목격자 노릇을 했다. 카와라는 은둔형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로 했지만, 이 시인의 프로젝트와 카와라의 프로젝트는 표현양식과 지속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자신의 하루를 자신의 처한 환경에 맞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솔 르윗(Sol LeWitte)이나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등 당시 카와라와 함께 개념미술 1세대를 함께 이끌었던 동료 화가들에게서 공통점을 찾는 것보다 오하라와의 공통점을 더 쉽게 찾는 이유다. 





<MAY 20, 1981> “Wednesday.”New York From <Today> 

1966-2013 Acrylic on canvas 45.7×61cm Pictured with artist-made 

cardboard storage boxes 62.5×47.3×5cm 

Private collection Photo: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3. Installation view of <On Kawara: Silenc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2015.2.6-5.3) 

Photo: David Heald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감정이 절제된 화면을 구사한 탓에 1960년대에 시작된 카와라의 화면이 50여 년간 거의 변화를 갖지 않음으로써, 60년대의 감성과 공기를 2015년으로 무리 없이 끌어온다. 오하라의 점심시 역시 2014년 발간50주년을 기념하며 재발간 됐다. 지금 읽어도 뉴욕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시들이다. 글을 시작하며 문장을 빌렸던 한나 아렌트의 문장을 다시 빌려볼까. 카와라는 들에 핀 라일락 같이 하루하루 사는 것,’ 심지어 시간마다 사는 것에도 항상 만족했다. 그 만족감을 지인이나 관객들과 나누기 위해 파편 같은 그의 시간의 흔적들을 남겼다. 





<JUN 10 1975> From <I Got Up> 1968-79 Stamped 

ink on postcard 8.9×4cm Collection of Keiji and Sawako Usami 





글쓴이 이나연은 사실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수료할 수 있는 기간 정도, 미술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후 뉴욕으로 유학을 가 미술 비평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고도 누구에게도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을 사랑한다. 주로 최대의 노력을 쏟아 붓고 최소의 결과를 얻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마르크스를 읽는 쾌감이 좋아서 뉴욕 체류 중이다. 누가 뭐래도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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