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17, Jun 2016
정복수
Jung bocsu
인간의 초상-체험적 원형으로부터 동사형 리얼리티로
Ⅰ. 작가의 삶이란 세상살이라는 번제(燔祭)에 바쳐지는 제물 같다. 고되고 고독하다. 정복수의 화력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부산에서의 활동과 갓 상경한 서울에서의 무명작가로서 홀로서기, 80년대 ‘자생적 미술’ 및 ‘인간’을 테마로 한강미술관에서 펼쳤던 대안적 형상미술운동, 90년대 이후 ‘몸’과 ‘욕망’에 대한 원형적 체험을 증명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기 세계와 작가활동에 몰입한 궤적이었다. 작품과 작업을 진행해온 삶과의 통일감이 주는 감동이랄까, 정복수의 그 엄청난 작업량을 마주하면서 먼저 드는 느낌은 묵직함이었다.
10대 후반기의 드로잉 작업부터, 캔버스 천에 그린 바닥화, 베니어판, 하드보드지, 골판지, 캔버스, 기타 재료들, 그리고 입체작업에 이르기까지 정복수는 인간만을 그려왔다. 소재와 주제, 회화적 양식에 있어서도 인간은 정복수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대상인 모양이다. 어느 대담에서 정복수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정의 내리는 것도 힘든 게 인간이다. 심리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이렇게도 파악하고 저렇게도 인간을 파악할 수 있기는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인간의 초상을 그리고 싶다. ”언어와 학문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어도 “나름대로” 그림으로는 접근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정복수는 인간이란 주제에 그토록 독특한 방식으로 천착해온 것이리라. 특정한 사람을 닮게 묘사하는 인물화도 아니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이나 선명한 풍자를 통한 정치적 공격성이 두드러진 것도 아닌, 중의적인 형상성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담아내는 어려운 작업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종잡기 어려운 존재인 인간을 40년 이상 그려왔어도 여전히 작업할 내용과 방법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다소 미안하지만, 그라면 충분히 번제의 제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김진하 미술평론, 나무아트 대표 ● 사진 작가 제공
'검은별' 2004 캔버스에 유채 130.8×193.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