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85, Oct 2013
회고담: “흐르고 흘러, 다시 공공미술이로세”
SUSPICIOUS ARGUMENT
질문. 한국미술계에서 스스로를 ‘공공미술가’라고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공공미술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 대한, 이 ‘주저함’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위 공공미술의 ‘황금기’라 불렸던 참여정부 시절이 지나간 이후, 공공미술계(?)의 어떤 소강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염되고 남용되고 있는 ‘공공’의 개념들은 너도 나도 공공미술가이면서 또 한편으론 그렇지 않은 현실을 절감케 한다. 공공미술이란 재고돼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듯 복잡다단한 궁금증에 대해 속 시원히 풀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퍼블릭아트」는 창간특집호를 맞아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공공미술 1세대라 불리는 박찬국(68년생), 이섭(60년생), 박삼철(64년생)이 그 주인공이다. 박찬국은 잘 알려졌다시피 공공미술 작가 겸 기획자로 꾸준히 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공공미술계의 대선배. 한편, 이섭과 박삼철은 한국 공공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는 아트컨설팅서울(ACS)의 주역으로서 현재 각각 이론과 행정 쪽에서 제 임무를 열심히 수행 중인 인물이다. 이들에게 물었다. “한국 공공미술,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 기획·진행 안대웅 기자, 이정헌 객원기자 ● 정리 최 선 인턴기자 ● 장소협찬 블루스퀘어 네모
최정화 '꽃나무' 2004. 리옹,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