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86, Nov 2013
이건용
Lee Kun Yong
논리로 치장한 생생한 욕망
백묵을 들고 땅에 서 허리를 굽힌 후, 마치 컴퍼스처럼 빙글 돌면서 원을 하나 그린다. 그리고 나서 원 밖에 잠시 나가 서 있다가 원의 중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기”하고 외친다. 그래, 거기. 거기잖아. 아리송하다. 이때 원 안으로 슬그머니 다시 들어가 발밑을 향해 가리켜 “여기”하고 외친다. 여기?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원 밖으로 걸어 나가 멈춰서 등 뒤에 있는 원을 어깨 너머로 가리키면서 “저기”라고 또 다시 외친다. 관객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모든 시선은 하얀 원에 집중된다. 이 틈을 타 원 둘레를 따라 걸으면서 “어디, 어디, 어디…….” 그는 외치면서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때 관중 틈에 섞여있던 어느 분석 철학자 한 명이 머리를 탁 치며 내지른 외마디. “…당했다…!”
● 안대웅 기자 ● 사진 작가 제공
메인'달팽이 걸음' 1979 바닥에 백묵 드로잉, 언어 퍼포먼스. 상팡울로비엔날레 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