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33, Oct 2017

정광화

2017.9.6 – 2017.9.11 인사아트센터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윤범모 미술평론가·동국대 석좌교수

Tags

비어 있는 공간에 그리기 혹은 정광화의 신작

 


현란하다.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같다. 여러 가지 색깔들이 중첩되어 있거나 흩어져 있다. 아름다운 꽃밭과 같다. 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바탕의 색깔을 이고 뭔가 문장이 종서로 가득하다. 유려한 필체의 한문 문장이다. 자세히 보니 『반야심경』 같은 불경 구절이다. 그렇다면 문자도의 일종인가. 그렇지만도 않다. 문장과 더불어 관음보살과 같은 불상 이미지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면과 색채를 거부하고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형상이다. 그야말로 서화일치의 경지이다. 사실 이미지의 유무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느 단계에 오르면 형상/비형상이 그렇게 중요할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이라고 일렀거늘. 정광화의 신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묘공(描空) 동위성(同位性)’이란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묘공이라, 화가의 말에 의하면, ‘공간 속에 무엇인가를 그린다 뜻이다. 허공 속에 화가의 생각을 그냥 그린다는 . 특정 사물을 묘사하고자 것이 아니다. 허공에 그린다. 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허공에 그린다, 그래서 묘공이라. ‘비어 있음을 그린다.’ 그렇다면 동위성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시공간을 하나의 절단된 단면을 통해 모든 것들의 파편을 본다 뜻이다. 너무 철학적인가정광화 작품의 기법적 특징은 이렇다. 무엇보다 그는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캔버스를 깔아놓고 위에 물감 튜브를 짜면서, 손동작의 흔적을 남긴다. 다만 물감은 자신이 특별하게 만든 것으로 아크릴이나 젯소 그리고 돌가루 성분 등을 혼합한 것이다. 캔버스에 직접 붓이나 튜브를 대지 않고 허공에서 뿌리기 때문에 묘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광화의 작품은 기법적으로나 주제면에서공간 중요하다.




<묘공 - 동위성(화조도)>

 2016 아크릴, 혼합재료 72.7×90.9cm





일반적으로 회화작품은 화면에 붓을 이용하여 뭔가를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광화는 같은 방식을 거부하고, 허공에 물감을 뿌린다. 다만 의도적으로 뿌리다 보니 문장이 되기도 하고 특정 형상이 되기도 한다. 아니, 같은 점은 겉에 드러난 외형적 특징이다. 정광화 작품의 화면은 물감의 중첩에 따른 층위를 보게 한다. , , 물감을 뿌리다보면 캔버스 바탕은 2cm 정도로 두툼하게 차오른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물감 뿌리는 시간보다 물감 말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물감이 마르면 그라인드로 갈아 표면을 매끄럽게 한다. 바탕은 다양한 색채 층이 올라와 화면의 깊이와 무게를 자아낸다. 그런 표면 위에 화가는 초서 형식의 글씨를 쓴다. 새로운 형식의 문자도라 있다. 그리고 특정 이미지를 주어 작품을 완성한다. 화가는 말한다. 나는 색채를 가지고 때로는 사물을 허공 속에 그리기도 하고, 문자를 쓰기도 하고, 무의미한 동작으로 행위 하기도 한다. 작업에서 색채가 공간 속에 머무는 것은 순간이다. 생명이 순간이듯이, 억겁의 세월 속에서 색계(色界) 모든 것이 먼지가 되어 현상계에 쌓이는 것처럼. 색채는 화면위로 떨어진다


색은 화면 위에 그냥 그렇게 떨어지고 흩어져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살아왔던 흔적이다.) 그러나 한번 다른 형상으로 덮여 버린 흔적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며 죽은 것도 아니라 그냥 감추어진 것이다.” 정광화의 작품은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성과물이다. 그것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이거나 아니거나, 형상이 있거나 아니거나, 표면에 드러난 결과 자체에만 비중을 두지 않는다. 살아가는 인생이 그렇듯 과정의 소중함을 화면에 담는 것이다. 이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한다면, 그의 작업은 보다 주목 받게 같다. 허공은 많은 물건을 쌓아두려 하지 않는다. 허공에 그린다는 것은 결국 무위(無爲) 가는 길목이 아닌가.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