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자가 독일관 작가 소식을 내게 전한 건, 그만큼 중요하고 영향력 있단 의미일 테다. 나 역시 지난 비엔날레 이후 독일관 소식이 가장 궁금했다. 작가 발표에 앞서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Galerie für Zeitgenössische Kunst Leipzig)의 디렉터 프란치스카 졸리엄(Franci-ska Zólyom)이 58회 독일관 큐레이터로 임명되었고 그러자 그가 초대할 법한 몇몇 작가가 거론됐다. 그리고 드디어 벗은 베일에 한 작가가 있었다. 그의 본명은 나타샤 사드르 하기기안(Natascha Sadr Haghighian). 한데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나타샤 쉬더 하펠만(Natascha Süder Happelmann)으로 바꿨다. 이름을 바꾼 이유에 대해 이미 수많은 인터뷰에 노출됐지만 분명히 꼬집어 하나로 요약하긴 불충분하다. 이란 태생인 작가는 명확한 의제를 드러내고 구조 자체와 설치 형식을 변주하는 역량으로 독일에서 계속 두각을 나타내왔다. 자신의 생태를 짐작케 하는 이름으로 전혀 문제없이 활동하던 그였지만 비엔날레 국가관 작가로 선정되자 그는 독일식 이름을 고안했다.
<pssst Leopard 2A7+, 2013-> Installationsansicht Accentisms,
Taxispalais, Innsbruck, 2017 Foto ⓒ Günter Kresser
이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가명이 실제 정체성을 변환하거나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반면 ‘Süder Happel-mann’은 그의 진짜 이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유도하는 장치이며 ‘중요한 행사를 위해 설계된 이름’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독일다움’을 드러내고자 성에 접미사와 움라우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작품과 그것이 놓일 공간 그리고 작가 정체성을 ‘통합’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작가 발표조차 치밀한 퍼포먼스로 진행됐다. 2018년 10월, 유럽의 유수 매체들을 원래 병기고였던 독일 역사박물관(German Historical Museum)에 모아 두고, 큐레이터 프란치스카도 독일관 언론 담당관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작가를 호명했다. 작가 대변인을 자처하는 ‘헬레네 둘둥(Helene Duldung)’이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는…,
나타샤 쉬더 하펠만.(The artist chosen for the presentation at the German Pavilion at the Biennale di Venezia 2019 is……. Natascha Süder Happelmann.)”이라고 선언하자 모두가 웅성거렸다. 아무도 그 작가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꿨으니 추적이 안 될 수밖에. 대변인 옆에 종이죽으로 만든 돌 형상을 ‘텔레토비’처럼 뒤집어쓴 채 말 한마디 없는 인물이 앉아있고, 그 앞에 분명 작가 명패가 놓였으나 기자들은 이름도 생소하고 얼굴도 볼 수 없는 그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DE PASO> 2011-2018 Installationsansicht Caroll
Fletcher Galerie, London 2012 Foto ⓒ Caroll Fletcher
기자 회견이 열린 장소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작가가 베니스에서 펼칠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 건물은 1875년 군대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1943년 루돌프 폰 게르도르프(Rudolf von Gersdorrf)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장소이기도 한데, 독일이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와 승인한 양식을 기반으로 작업한 사운드 조각 <pssst Leopard 2A7+> 등 하펠만의 작업과 거시적 연장선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펠만, 이전 작업을 논하기 위해서는 하기기안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겠다. 2013년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에 마련된 개인전에서 작가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좌우지간 비밀인, 공개 비밀 현상(the phenomenon of the public secret)을 작품 주제로 다뤘다.
군수품 제조사인 크라우스-마페이-베그만(Krauss-Maffei Wegmann)이 제작한 전투탱크 ‘Leopard 2A7+’에서 모티브를 따 구조물을 만든 작가는 그것에 많은 은유와 전치를 녹여 넣은 것이다. 전투탱크 ‘Leopard PSO(Peace Support Operations)’ 프로토 타입에서부터 진화된 ‘Leopard 2A7+’는 도시의 폭동이나 시위 및 무력 충돌을 저지하도록 고안됐으며 특히 에어컨 시스템 등을 통해 더운 기후 지역에서도 효율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무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독일, 무기 제조사들이 사람을 죽이는 영리한 기계를 만들고 그곳의 영업 판매실적이 국가의 경제적 안정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 온 작가는 2010년 드디어 만들어진 ‘Leopard 2A7+’가 2011년 독일 정부에 의해 자국의 민주화 시위를 저지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200대나 팔렸고 한 매체가 “이는 아랍의 봄에 대한 독일의 기여”라고 쓴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축출했다.
<Passing One Loop Into Another> 2017
Installationsansicht Umanesimo-Disumanesimo
19802017 Atrio Esterno, Palazzina Reale, Florenz,
2017 Courtesy the artist
그는 이 탱크에 대한 냉소적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pssst Leopard 2A7+>는 공간 중심에 놓여 있었다. ‘진짜’ 탱크에서 비롯된 파란색, 녹색 또는 회색의 위장 무늬로 덮인 목조 플레이트를 만든 작가는 탱크 포탑이 있던 원 안에, 60개의 헤드폰 소켓을 삽입했다. 침묵하고 움직이지 않는 ‘탱크’에 앉아 헤드폰 잭을 소켓에 끼우면 작가와 다른 6명의 컨트리뷰터가 만든 20가지 사운드 중 하나가 들리도록 고안된 설치 조각. 독일 군수품 수출 보고서를 낭독하는 작가 목소리부터 이집트 혁명 기간 동안 익명으로 작성된 편지, 보코더(Vocoder)를 통해 열거된 시위하는 군중의 소리 등이 송출됐다. 그러면서 디지털로 현장을 파악하고 정보를 인식하는 탱크 ‘Leopard’의 위험성을 알리는 정보들도 문장으로 추가 전달됐다.
한편, 그는 CV, 이력서 그리고 약력에서의 간추린 생각들을 거부하고, 오로지 ‘bioswop 프로젝트(CV를 모으고 교환하는 플랫폼)’로부터 얻어진 자료만이 자신의 작업과 관련한 인쇄물에 사용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그녀/그들의 개인 이력과 예술적 결과물에 관한 적절한 서사적 요약의 전체 아이디어는 가정된 정치적 그리고/혹은 예술적 이상에 대한 저주라고 할 수 있다. 하기기안과 관련 있는 어떤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모든 참조 정보가 ‘bioswop 프로젝트’로부터 전용된 것임을 감안할 때, 이 위키피디아 항목에서 하기기안과 그/그녀/그들의 예술적 산출물을 고려하여 오직 외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은 MoMA 영구 소장 컬렉션에 포함된 그의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작업 <Empire of the Senseless Part II>(2006) 뿐이다.
<Onco-mickey-catch> 2016 Installationsansicht Neuer
Berliner Kunstverein, 2016 Foto ⓒ Jens Ziehe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을 위해 이름을 새로 채택한 까닭에, 이 글에서도 그를 하펠만으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하기기안으로 적는 게 맞는지 헷갈리지만(작품 이미지를 제공한 독일관과 작가의 전속갤러리조차 캡션에 두 가지 이름을 병행했다), 그의 이름은 독일과 다른 곳에서 이슈를 몰고 있는 이민, 이주 및 정체성에 관해 진지하게 지적하는 것임을 새삼 주목하자. 작가뿐 아니라 그의 대변인 또한 필명인 ‘헬레네 둘둥’을 통해 ‘통합’을 강조하며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이주에 관한 정치적 환경과 긴장감을 언급한다.
나타샤 쉬더 하펠만
Natascha Süder Happelmann(Right), Ihre Sprecherin Helene
Duldung(Left) Vor dem Auswartigen AMT, 2018 Foto ⓒ Jasper Ket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