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서 강렬한 시각 경험을 선사하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전시가 열린다. 언어의 이미지적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언어가 지닌 직접적 전달 방식을 활용하는 작가는 미국의 선전 문구를 흑백 사진과 결합하면서 정치적 효과를 강력하게 전달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지상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냉소적인 문구로 응답해 온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대표작들의 ‘원형’이 된 초기 작품을 포함, 올해 신작까지 총 16점을 선보인다. 특히, 항상 영어 텍스트를 사용한 작가가 이번에 한글로 만든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2019)와 <무제(제발 웃어 제발 울어)>(2019)는 관람객들이 번역이라는 과정 없이 직접 작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바바라 크루거_포에버> 전시 전경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정희승
또 한 가지 이 전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텍스트가 건축 공간에 기입된 방식이다.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번 전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무제(영원히)>(2017)를 관람할 수 있다. 이 거대한 텍스트는 공간 전부에 도배되어있어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텍스트 위를 거닐게 된다. 전시는 공간에 녹아든 여러 문장으로 관람객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시의 대표작인 이 작업은 작가가 미술관을 위해 특별히 다시 디자인했다고 한다. 한편, 전시장에 마련된 ‘아카이브룸’에서는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에서 잡지, 신문, 광고판, 포스터 등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매체를 통해 크루거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작가는 다소 비꼬는 듯한 문구들로 당대의 여러 논의에 대해 발언하면서 우리의 비판의식을 자극한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 문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02-6040-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