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86, Nov 2013

오인환
Oh, Inhwan

때로 필요한, 무위(無爲)의 시간

‘스탠딩 바바’란 수도승이 있다. 힌두교도인 이들은 평생 앉거나 눕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장에 매단 줄 받침대나 나무에 기댄 채 서서 잔다. 10년 정도 지나면 그들의 다리는 부어올라 거대해지고 튀어나온 정맥으로 뒤덮이는데, 그 뒤에는 부기가 빠지며 온전히 뼈와 피부만 남게 된다고 한다. 이는 분명, 극렬한 신념이다. 이렇게까지 극적인 결정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에 몰두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보이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 어떤 존재보다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쓰는 사람인지라, 쉬이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오인환은 특별한 사람이다. 물론 사회와 문화의 큰 틀을 보는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따윈 지극히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던 듯 여겨지지만 말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우정의 물건' 2000, 2008 시바크롬 프린트 각 사진 115.6×77.5cm Courtesy of the Artist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정일주 편집장

Tags

2001년,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운 카키색 향 가루를 보며 현대미술의 역량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눈으로 감지되는 강렬함, 뇌와 코를 자극하던 냄새, 실로 감각을 뒤흔드는 그 강한 자극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냄새에 취했던 걸까 아니면 서서히 타들어가던 불길에 넋을 놓은 걸까, 한참 만에 걸음을 옮기며 난 작업을 설명한 문장은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후 그 작업의 내용이 실은 어떤 것-향 가루로 대한민국 도시의 응달에 산재하는 몇 십 개의 게이바 이름을 적은 것이고, 그것에 불을 놓아 소각시킴으로써 관객의 뇌리에 침투한 것-이라는 본의를 아는데 까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이 무감각의 소치로 인해 작가 오인환은 그저 예측불허의 형식으로 작업을 완성시키는 현대미술가로, 내겐 각인돼 있었다.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란 타이틀과 작업에 적혀 있던 낱말의 뜻을 인지하자 다시 한 번 말초신경이 건드려졌다. 향이라는 재료가 지닌 정적이며 정신적(사유적) 느낌과 동성애/게이 등 주제가 지닌 동적이고 성적인 관념이 충돌하며 강한 자극을 선사한 것이다. 늦되고 둔한 나란 관객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시나리오를 받들어 따른 모범적인 대상이 됐다. 오인환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작업을 받아들이고 이후 작업의 내용을 인지하며 달라지는-불편하거나 낯선 감정을 느끼는- 관객의 심리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언캐니한 감정이야말로 이 작품을 완결시키는 방점인 셈이었다.  
     


<만남의 시간> 1999-현재 사진 
Courtesy of the Artist



이 강렬한 작품으로 대중과 평단이 얼떨떨해하는 사이,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이듬해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 놓은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는 남자와 남자의 관계를 실재적으로 유도한 작업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했던 이 프로젝트의 내용은 이렇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빨래방에서는 참여자의 옷가지를 빨아준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세탁물을 들고 올 수 없으며 빨래방에 입장할 때 자신이 입고 있던 옷 중에서 선택해 세탁을 의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자는 자신이 얼마큼 노출할 것인가를 직접 정하고, 빨래가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 작가와 마주앉아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작가는 그들이 의뢰했던 세탁물을 정갈하게 접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 작업을 완성했다.(전시기간 동안 참여한 관객은 18명이다.) 빨래방 안에 있었던 관객과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상태였으나 사진을 보는 관객은 여러 가지를 상상하고 해석하게 된다. 군복부터 팬티, 양말, 청바지 등이 가지런히 개어진 채 찍힌 사진들은 대게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인 이슈로 규정됐지만, 사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토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바로 자가 확장을 이룬 것이다.      



<거리에서 글쓰기> 
2000-현재 시바크롬 프린트 각 사진 
68.5×101.6cm Courtesy of the Artist  



형식을 넘나들며 뚜렷한 맥락을 완성하던 그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 <우정의 물건>을 발표했다. 절친한 친구의 집을 뒤져서 자신과 친구가 공통으로 소유한 물건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데, 전시로 보일 때는 한 쌍의 사진(친구의 집에서 촬영한 컷과 자신의 집에서 찍은 사진)들과 실제 물건들을 함께 배치했다. 제 주인을 떠나 덩그러니 놓인 사물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닌 물건들을 보며 다종다양한 관계를 유추하는 놀이에 빠져든다. 동성애를 기반으로 한 오인환의 작업들은 2009년 아트선재에서 마련한 〈TRAns〉전을 통해 진일보한다. 게이인 자신, 그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주변인을 주인공 삼았던 그의 시선은 보다 확대돼 동시대를 사는 남자와 여자, 즉 현대인으로 대폭 넓어진 것이다. 그는 작곡가, 애니메이터 등과 함께 특별히 제작한 영상 〈진짜 사나이〉를 내놓았는데, 이는 군가 ‘진짜 사나이’를 재편집하는 한편 비트에 맞춰 가사를 해체해 스크린에 쏘는, 그야말로 복합소스 작품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남성주의를 작품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복시켰다. 국기 게양대와 국기를 세 개의 화면으로 분리해 동영상으로 촬영한 〈태극기 그리고 나〉는, 만세를 부르듯 카메라를 들고 태극기를 촬영한 작업이다. 가장 공공적인 이미지인 태극기를 촬영하며 작가는 힘겨운 듯 신음 소리를 내고, 화면 안 깃발은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이렇듯 그는 소리와 이미지를 이질적으로 결합시키거나 기존의 정보를 과도하게 과장함으로써 일반화되고 익숙해져 있는, 사고의 전복을 유도한다.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 2002, 2003 
혼합매체 사진 각 50.8×36cm, laundromat: 
360×360×220cm Courtesy of the Artist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한결같다. 이전 작업에서 이런 이슈들을 개인적 경험의 사례들을 통해 전개했던 작가는 이제는 점차 공공의 사례들을 통해 선보이는 차이를 보인다. 그가 지닌 정체성 등의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우리 모두의 문화와 직결된 지점이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대상과 사건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그 주제들을 관념적으로 다루지 않기 위해 이전 작업에서는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구체성’을 활용했을 뿐이다. 미술 전시가 범람하는 시대지만 오인환의 작업은 쉽게 볼 수 없다. 철두철미한 그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업을 선보일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그저 간간히 작품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그를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로 꼽으며 보다 완숙해진 작업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프로젝트들이 지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콘텐츠 공>, <거리에서 글쓰기>, <만남의 시간> 등이 그렇고, 2009년 선보인 <유실물 보관소>의 경우 2002년에 모인 분실물들이 몇 년이 지난 후 오브제로 전환돼 등장함으로써 그의 작품에 대한 분명한 행보와 뚜렷한 의지를 대변했다. 조금도 나사를 풀거나 긴장을 놓지 않는 작가 오인환. 정작 그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채찍 하는 시간이 아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찰나인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2001-현재 향 가루 가변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오인환



작가 오인환은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의 헌터컬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지난 1995년 갤러리 드 서울에서 첫 전시를 선보인 후 200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Meeting Place, Meeting Language>, 2001년 미국 뉴욕의 팔러 프로젝트에서 <Things of Friendship>, 2002년 호주 시드니 아트스페이스 시각예술센터 개인전, 같은 해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 2009년 아트선재센터에서 <TRAnS>, 2012년 신도리코 문화공간에서 <거리에서 글쓰기> 등 밀도 높은 개인전을 선보인 바 있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이슈들을 다루며 새로운 형식의 관객참여와 협업으로 열린 결론을 선사하는 그는 2002년 광주비엔날레, 2006년 부산비엔날레, 2007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비롯해 국내외 기획전에도 참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