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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적대를 멈추고 자리를 내어주기
타지에서 새롭게 학업을 시작한 젊은 나이의 리 밍웨이도 그만의 방식으로 환대의 시간을 가졌다. 작가는 1995년 예일대학교의 석사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이전에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던 도시, 뉴 헤이븐(New Haven)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제 막 낯선 곳에 정착한 이방인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친밀감을 쌓는데 함께 식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그의 ‘식사 프로젝트(The Dining Project)’(1997-)는 교내에 “자신과 함께 식사하며, 자기 성찰적인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던 그는 자신의 식사 초대에 흔쾌히 응해준 사람들을 위해 손수 밥과 두부, 튀긴 야채 요리 등을 대접했고,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학교 학생과 교수, 노숙자, 관리인 등 50여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집을 방문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타의 조건 없이 누구든 환영하고, 그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이 행위는 정든 도시를 떠나 상실감과 외로움에 젖었을 작가에게도, 대가 없는 호의를 경험한 참여자에게도 첫 만남이지만 사적이고 내밀한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Installation view of <Lee Mingwei: 禮 Li, Gifts and Rituals> 2020
Gropius Bau, Berlin ‘The Dining Project’(1997-) Wooden platform,
tatami mats, black beans, rice, single-channel video, sound
335×335×85cm Collection of Jut Art Museum (Taiwan) Photo: Laura Fiorio
이와 비슷한 경험은 작가의 청소년기에도 있었다. 그가 이제껏 진행해온 작업 중 가장 힘든 프로젝트로 꼽히는 ‘수면 프로젝트(The Sleeping Project)’(2000-)는 배낭여행을 하며 유럽의 여러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이 시초가 되었다. 배낭여행이 으레 그렇듯, 작가는 여행 중에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폴란드에서 함께 방을 사용했던 남성으로부터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화를 듣게 된다. 작가는 이 이방인이 자신의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비밀을 처음 만난 작가에게 털어놓았던 그날 밤을 잊지 못했다. 잠들기 전, 곧 무방비 상태가 될지도 모르지만 낯선 상대에 대한 적대를 멈추고 자기 삶의 편린을 꺼내 보이는 일, ‘수면 프로젝트’는 이 기적 같은 경험을 관람객에게 환기하고자 전시장의 시간대를 밤으로 설정했다.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등의 거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규제되는 미술관을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장소로 치환하려고 했던 작가의 이 실험에 직접 참여해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한시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Installation view of <Lee Mingwei: 禮 Li, Gifts and Rituals>
2020 Gropius Bau, Berlin ‘The Sleeping Project’(2000-)
Wooden beds, night stands, personal items Photo: Laura Fiorio
프로젝트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의 선물 같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닉 블러썸(Sonic Blossom)’(2013-)은 전시장에서 한 성악가가 의자에 앉아 있는 관람객을 위해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가곡을 불러주는 단순하지만 꽤 로맨틱한 퍼포먼스다. 이 황홀한 경험은 전시를 보는 중에 느닷없이 “노래를 선물해도 될까요?”라는 짧은 질문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우연히 들었던 슈베르트의 음악이 중환인 어머니에게도, 병간호로 지친 자신에게도 선물 같았다고 회상한다. 굳이 작가의 일화를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무심결에 들리는 음악을 듣고, 마음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노래 소리에 관람객들은 금세 성악가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받았을 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무너진 그곳에서, 새롭게 다시
리 밍웨이가 말하는 의례란 조상이나 망자를 위한 제의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삶의 순환에서 겪게 되는 의식을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출생과 성장, 결혼, 장례와 같은 통과 의례들은 삶의 큰 변화에서 혼란을 완화하기 매우 일상적이고 익숙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로젠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리 밍웨이의 작품이 전시장을 전환 의례(rites of transition)의 장으로 치환시킨다고 분석했다. 전환 의례는 덴마크 태생의 프랑스 민속학자 아놀드 반 겐넵(Arnold van Gennep)이 분석한 통과의례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로젠탈은 분리-전환-통합의 단계 중 전환 의례가 기존의 사회적 역할이나 일상적인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는 문지방, 또는 가장자리 역할을 하며, 그렇기에 가장 창의적인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봤다. 물론 통과의례의 단계나 순서, 중요도 등은 개인이 처한 사회와 문화적 성격에 따라 다르게 이뤄지므로, 반드시 전환 의례만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과의례 자체가 언어적이기보다 행위로 이뤄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에 성취되는 재생(regeneration)의 역할 등이 리 밍웨이의 작업에도 잠재적으로 내재되었다.
‘Guernica in Sand’ Performance 2020.7.4
Gropius Bau Photo: Luca Girardini
이번 전시의 백미였던 ‘모래로 만든 게르니카(Guernica in Sand)’(2006-)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동서양의 역사와 종교, 사회문화적인 층위에서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전시 장소가 가진 역사적 특수성과 맞물려 그 의미가 배가됐다. 현재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은 베를린의 주요 관광 명소가 밀집된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나치당 집권 시기에는 게슈타포 본부와 항공 건물 등 주요 군사 시설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까닭에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 없었고, 1980년대 초 재건된 이후에도 여전히 건물 곳곳에 그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치유와 회복, 재생을 모토로 전시와 행사를 지속해서 기획하는 미술관은 베를린 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임과 동시에 독일 근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알다시피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 또한 극우 파시즘과 무차별 폭력, 테러리즘으로 대변되는 한 시대를 극복하고자 한 작가의 염원이 담겼다. 피카소는 파리에 머물면서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마을, 게르니카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매우 짧은 시간에 <게르니카>를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스페인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 스페인에서 절대 <게르니카>를 전시하지 않겠다고 한 그의 일화 또한 유명하다.
<Luminous Depths> 2013 Mixed media interactive installation
Photo: Sean Dungan © Peranakan Museum, Singapore
리 밍웨이는 미술관의 중앙 홀에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모래로 재현했다. 작가는 전시 시작 전, 반나절에 걸쳐 바닥 전체에 간단히 윤곽선을 그리고, 모래로 채우고, 밀고, 쓸어서 <게르니카>를 ‘거의 다’ 완성했다. 그리고 전시 기간 중 하루 동안, 미완성된 일부분을 모래로 마저 채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으며, 관람객들 또한 여기에 참여하여 게르니카의 모래 위를 걸어 다녔다. 모래를 신중하게 채워 넣는 작가의 손짓과 그 모래 위를 걸으며 형태를 흐트러트리는 관람객의 걸음이 마치 탱고의 스텝에 비유한 그의 표현처럼, 비슷한 템포와 리듬으로 이뤄졌다. 5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이 퍼포먼스의 절정은 게르니카가 완전히 완성된 직후에 있었다. 작가는 “모래로 만든 게르니카”가 완성되자마자 다른 퍼포머들과 함께 빗자루질 하며 수일에 걸쳐 완성한 이 게르니카를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종종 불교적 세계관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았던 그는 이 퍼포먼스 또한 티벳 승려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화려한 만다라를 완성하고, 그것이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쓸어 담아 다시 한 줌의 모래로 해체하는 행위에서 착안했다.
보통 만다라는 아름다움과 존재의 덧없음, 장시간의 수행으로 도달하는 무아지경에서 그 의미를 찾지만, 작가는 여기서 파괴 이후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전환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난 전시에서 ‘모래로 만든 게르니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관람객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오로지 파괴만 봤어요. 전환은 보지 못한 셈이죠. 이 작업은 정치적인 의미도 있지만, 나는 휴머니티를 말하고 싶어요. 파괴 이후에 어떻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지 말이에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지금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실하고 절박하게 휴머니티를 말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리 밍웨이
Portrait of Lee Mingwei Photo: Matteo Carcelli
Originally published in Gallery (Sep-Oct 2016), NGV
작가 리 밍웨이는 1964년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 컬리지 오브 아트(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와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1997년 뉴욕에 위치한 롬바르드 프리드 갤러리(Lombard Freid Gallery)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MoMA(2013), 대만 현대미술관(2007), 도쿄 모리 미술관(2014) 등 다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으며, ‘타이페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2000),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2003),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2004) 등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그는 파리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2021년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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